Taming a Munchkin RAW novel - Chapter (76)
먼치킨 길들이기 76화
“호오오오……!”
“정말 마탑으로 가신 거야!”
리온의 기사들이 키네미아가 사라진 곳을 두리번거렸다.
“난 우리 주군께서 그저 영지나 둘러보면서 기분이나 내시려는 줄 알았는데…….”
기사들 중 하나가 부끄러운 듯 얼굴을 붉혔다.
시찰이라고 해도 대부분의 귀족들은 제 가문의 문양이 대문짝만하게 박힌 마차를 타고 다니면서, 제게 고개를 조아리는 영지민들의 모습을 즐기는 게 전부였다.
더 잘하면 보여 주기식으로 영지민들의 손이나 잡아 주면서 그들의 말을 듣는 척 고개나 끄덕거리는 정도다.
한데 이렇게 제가 누구인지 숨긴 채 실질적인 고민을 하나하나 듣고 챙기는 영주는 처음이었다.
“다른 영주들과는 다르시단 말이야…….”
“내가 그렇다고 했잖아.”
제임스가 괜히 자신이 으쓱거리면서 그의 팔꿈치를 쿡 찔렀다.
“한데 주군께서는 마탑에서 뭘 하려고 하실까?”
“뭔가 떠올린 것 같으셨지?”
본 소드부터 포션에 흑야 길드까지.
“이번에도 굉장한 걸 가져오시는 거 아냐?”
기사들이 기대하며 걸음을 옮겼다.
* * *
뭇 마법사들이 마탑주의 능력에 복종하는 것과 다르게, 벤자민은 울프만의 인품과 도량까지 존경하고 사랑했다. 울프만은 위엄 있고 자비로운 군주 중의 군주였으니까.
그러나 오늘만은 그 마음을 접기로 했다.
“음…….”
낮게 목을 울린 그는 막사 앞에서 영주인 허링 후작과 나란히 선 채였다.
펑! 콰캉!
멀리서 또 폭발음이 들려왔다. 곧이어 버섯구름이 뭉게뭉게 피어오르자 눈을 흐리게 뜬 벤자민이 손차양을 드리웠다.
주위에 선 마법사들은 폭발의 여파가 멀리까지 가지 않게 쩔쩔매며 결계를 쳤다.
그러든가 말든가 에이얀은 그들과 멀리 떨어진 공중에 선 채로 심드렁하게 손짓하는 중이었다.
허링 후작은 저 악마의 손짓 한 번에 제 영지가 폐허가 되는 꼴을 응시하면서 멍하니 입을 벌렸다.
겨우 레드둠 치료 약이 대량으로 보급될 기미가 보이면서 길디긴 고생이 끝나나 싶더니, 웬 사령술사가 나타나 영지를 점령하고 돈을 내놓으라 강짜를 부리며 골머리를 썩였다.
그런 이유로 사령술사를 해결하기 위해 마법사들을 불렀는데, 이젠 사령술사가 문제가 아니었다.
허링 후작이 입을 열었다.
“벤자민 님.”
벤자민은 대답을 꺼렸다. 그는 후작이 할 말을 알아차렸으나 후작에게 해 줄 말이 없었다.
“벤자민 님.”
“예, 예……. 말씀하십시오.”
뜸을 들여 보았지만 보채듯 말을 걸기에 차마 무시할 수가 없었던 벤자민이 어쩔 수 없이 대꾸했다.
“아까까지는 이렇게 한 번에 광범위한 수의 구울을 처리할 수 없다고 하지 않으셨습니까?”
“아, 뭐, 예…….”
그렇다. 그게 보통 마법사들의 상식이다. 마력은 무한하지 않고, 저런 광범위 마법을 연달아 사용하는 건 마법사들의 기력을 쪽쪽 빨아서 마구잡이로 바닥에 내던지겠다는 뜻이었다.
그러나 에이얀은 보통이 아니었고, 벤자민은 그의 보통이 아님을 과소평가하고 말았다.
“분명히 막사 안에서 이 사태를 어떻게 해결하면 좋을지 전략 회의를 한 것 같습니다만…….”
“아, 예. 뭐…….”
벤자민에게도 분명 그런 기억은 남아 있었다. 어떤 식으로 어느 범위의 마법을 어느 구간에서 펼칠지 따위를 의논했던 것 같다. 에이얀에게는 그 기억이 없는 듯해서 문제였지만.
‘……어쩐지 웬일로 조용하더라니.’
막사 안에서는 알 게 뭐냐는 식으로 가만히 보고만 있기에 조금 마음을 놓았었는데.
좀 더 적극적으로 참여하도록 해야 했나? 아니면 지도를 눈앞에 들이밀기라도 해야 했을까?
그것들 전부가 문제였을까?
아니다. 벤자민은 고개를 저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에이얀의 존재 자체가 문제다.
콰과과광!
아아…… 숲이 완전히 사라졌네……. 탄식한 벤자민이 다시 손차양을 드리웠다.
마법사들은 저 괴물 같은 마력에 혀를 내둘렀고, 허링 후작은 저 괴물 같은 손속에 사색이 되어 갔다.
“제 영지가 완전히 초토화되고 있잖습니까!”
“예, 뭐…… 그렇군요. 제 본의는 아닙니다만.”
벤자민의 무심한 대꾸에 허링 후작은 이를 사려 물었다.
벤자민은 그로서도 함부로 대할 수 없는 최상급 마법사였다. 게다가 리카샤까지 대동하지 않았는가. 방금까지만 해도 그런 마법사가 와 주어 고맙다고 생각했는데……!
다시 쾅, 쾅, 쾅! 연이은 폭발음이 이어졌다.
순간 퀭해진 허링 후작이 마른세수를 했다. 누가 저 악마를 말리라는 말이 혀끝까지 치밀어 오르고 있었다.
그때, 에이얀이 새하얗게 언 연못 앞에서 멈춰 섰다.
뭐지? 또 뭘 하려고?
순간 연못이 한꺼번에 녹으면서 주변의 풀들이 알록달록 색이 들었다.
허링 후작은 놀라서 벤자민을 붙들었다.
“저, 저게 뭡니까?!”
벤자민은 그의 손에 잡힌 옷깃을 빼면서 침착하게 답했다.
“시간계 마법입니다.”
얼마 전에도 에이얀이 산꼭대기에서 시간계 마법을 쓰는 바람에 큰 소란이 일었었더랬지.
‘그때를 떠올리나.’
울프만이 ‘에이얀, 네가 한 짓이냐.’ 물으니 천연덕스럽게 데이트를 했다고 대꾸했다나…….
벤자민은 전형적인 마법사였다. 이성을 신봉하며, 감성적인 부분에선 면역력이 낮았다. 사실 울프만의 이혼도 그 때문이었다. 감성적인 부분이 많이 모자라니까.
때문에 전형적인 마법사였던 벤자민은 탄식했다.
‘시간계 마법을 저렇게 부질없이 쓰다니.’
시간계 마법은 최상위급 마법사들도 쉽게 할 수 없는 마법 중 하나였다.
그러니 상식인들은 데이트의 추억 같은 걸 곱씹으면서 시간계 마법을 쓰지는 않는다는 뜻이었다.
벤자민에게 에이얀은 ‘내가 저 얼굴, 저 능력으로 태어났다면 저렇게 안 살았을 사람’의 대표쯤 됐다.
그래도 확실히 껍데기는 근사해서, 우수에 찬 모습으로 호수 위에 선 에이얀은 한 폭의 그림 같았다.
벤자민은 에이얀이 청순가련 우수 지랄을 떨고 있는 모습을 보며 고개를 내저었다.
그때였다.
어디선가 종달새가 날아와 벤자민의 어깨에 앉았다.
“탑주님?”
혹여나 먼저 돌아오라 말해 주지 않을까 싶었던 벤자민이 반색했다. 그러나 마탑주는 무시무시한 폭탄을 떨어트렸을 뿐이었다.
– 요주의! 키네미아가 마탑에 왔다!
“…….”
벤자민이 저를 지옥에 떨어트리고 가증스럽게 뾰로롱거리는 종달새를 힐긋 보고는 허링 후작에게 말했다.
“허링 후작님, 저는 잠시 자리를 비워야겠습니다. 급한 일이 생기는 바람에. 금방 돌아오겠습니다.”
“아니, 지금 대체 어딜 가시려는 겁니까!”
“사령술사 건은 리카샤께서 깔끔하게 처리해 주실 겁니다.”
“……깔끔?”
벤자민이 저게 깔끔이냐 묻는 듯한 후작의 시선을 피했다.
어떻게든 매달리는 후작을 떼어 낸 벤자민은 우선 자리를 옮긴 후 결계를 쳤다.
이러면 에이얀이 알아채지 못할 테니.
그러고는 식은땀을 닦으며 소리를 높였다.
“대공녀께서요?! 마탑에는 왜 오신 겁니까? 에이얀을 찾으러 오셨답니까?! 그럼 빨리 데려가라 말씀해 주시면 안 되겠습니까? 되도록 지금 당장이요!”
우다다다 쏟아 내는 벤자민의 목소리가 세차게 떨리고 있었다.
울프만도 그가 퍽 안타까웠지만 그래도 할 말은 해야 했다.
– 키네미아가 에이얀을 만나길 꺼리는 것 같으니, 이야기가 끝날 동안 잠깐 에이얀을 붙잡아 두거라.
벤자민의 눈동자에 순간 절망이 깃들었다.
“탑주님! 여긴 이미 초토화입니다……! 저 미……! 에이얀이 광범위 폭발 마법으로 영지를 다 망가트리고 있습니다.”
울컥했던 벤자민은 소리 높여 얘기하다가 애써 마음을 다스리곤 차분하게 말을 마쳤다.
– 복원 마법이면 되지 않느냐.
그러나 울프만은 아주 쉽게 그의 복장을 뒤집어 놓았다.
복원 마법은 시간계 마법의 일종이었다. 그걸 저리 쉽게 말하는 마법사는 세상에 마탑주와 에이얀 둘뿐일 것이다.
“그게 마력이 얼마나 드는 일인데……! 그리 쉽게 말씀하십니까아…….”
제아무리 벤자민이라도 이런 상황에서는 자꾸 울컥거리는 마음을 다스리기가 힘들었다.
– 에이얀에게 시키거라. 에이얀도 이제 성인인데 자기가 벌인 일의 수습은 알아서 해야지.
“탑주님. 그걸 저보고 말하라는 뜻이십니까?”
– 내가 하마. 그러니 진정해.
그제야 조금 진정이 된 벤자민이 냉철한 모습으로 다시 돌아왔다.
“그런데 대공녀께서 마탑에 오신 걸 숨긴다면 에이얀이 절 가만히 놔두겠습니까?”
– …….
이건 울프만조차도 쉽게 입을 뗄 수가 없었던 모양이다.
이쯤 되자 벤자민은 궁금하기까지 했다. 왜 17살, 18살짜리들의 사랑싸움에 제가 고통받아야 하는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