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aming a Munchkin RAW novel - Chapter (80)
먼치킨 길들이기 80화
한편 키네미아는 두꺼운 커튼 뒤에 숨어 바짝 굳어 있었다.
멀찍이서 에이얀의 목소리가 들려오자 몸이 반사적으로 숨을 곳을 찾고 있었다. 이리저리 방 안을 살피던 키네미아는 허둥지둥 커튼 뒤로 몸을 숨겼다.
그 후에 에이얀과 벤자민이 방 안으로 들어섰다.
둘이 무슨 이야기를 나누는 듯했지만 긴장한 키네미아에게는 아무것도 들리지 않았다.
머릿속에 가득 찬 생각 탓에 눈앞이 어지러울 정도였다.
‘왜 숨어! 이게 더 이상하잖아!’
물론 이 생각은 숨기 전에 했어야 했다.
아, 큰일 났다.
눈앞이 빙글빙글 도는 것 같았다.
나갈까? 그냥 나가?!
키네미아는 머릿속으로 시뮬레이션을 돌렸다.
그래, 전혀 아무 일 없었다는 듯이 ‘잠깐 실례했어.’라고 하면서…….
‘아니, 대체 그게 무슨 미친 소리야!’
키네미아가 두 손으로 제 긴 머리카락을 쭉 잡아당겼다.
나가면 안 돼. 지금 커튼 뒤에서 나가는 그림이 더 이상해. 나 지금 완전 변태야.
아, 죽고 싶다.
‘빨리 방에서 나가라, 나가.’
마침 에이얀이 벤자민에게 그만 가라고 재촉하는 참이었다.
‘그래. 나가라, 나가.’
커튼에 눈을 바짝 대자 이제 커튼 너머로 보이는 인영은 하나였다.
‘같이 가지. 좀.’
하지만 늘 그렇듯 에이얀은 키네미아의 바람을 들어줄 생각이 없는 모양이었다.
삑.
순간 부츠의 굽이 나무 바닥과 마찰하며 돌아가는 소리가 났다.
“……!”
눈가에 눈물을 그렁그렁 채운 키네미아는 두 손으로 입을 틀어막았다.
인영은 키네미아가 있는 곳을 안다는 것처럼 뚜벅뚜벅 일직선으로 걸어왔다.
거세게 뛰는 심장 소리가 너무 커서 방 안의 모두에게 들릴 것만 같았다.
이윽고 긴 그림자가 지고, 큰 손이 키네미아의 머리께 양옆을 짚었다.
놀라 숨을 들이켜자 에이얀 특유의 시원한 향이 진하게 밀려왔다.
품에 가두듯 양팔로 키네미아의 퇴로를 막은 에이얀이 달콤한 목소리로 말했다.
“안녕, 미아.”
“……!”
키네미아가 소리 없는 비명을 내질렀다.
커튼에 이마를 기댄 에이얀이 눈을 감았다.
“아.”
그러던 중 무언가 생각난 듯 그가 잠시 뜸을 들였다가 말했다.
“보고 싶었어. 피하지 마. 안아도 돼?”
잠깐 대답하지 말까, 고민했지만 어차피 들킨 이상 더 비참해지지 않기로 했다.
“……갑자기?”
“앞으론 솔직하게 말하랬으면서.”
“응.”
그러긴 했다. 우물우물 대답하니 에이얀이 되물었다.
“다시 말할까?”
“아니. 안 피해. 안지 마.”
키네미아가 그의 말을 막듯 연이어 대답했다.
“하나 더.”
“더?”
“나 안 보고 싶었어?”
“…….”
“대답해 주면 안 돼? 너 없이도 착하게 있었잖아, 나.”
그가 조르듯 재촉하자 키네미아가 주저하다가 들릴 듯 말 듯 자그마한 목소리로 말했다.
“……조금.”
“후…….”
깊은 한숨과 함께 나직한 웃음소리가 들렸다.
“한 번만 안을게.”
“안는 거에 왜 이렇게 집착하는 건데?!”
“네가 귀엽게 말하잖아.”
그 말에 키네미아는 올라오는 열에 귀까지 달아오른 것을 느끼고 고개를 푹 숙였다.
“너…… 자꾸 귀엽다고 하지 마. 오해하니까.”
“무슨 오해?”
“있어. 묻지 마.”
네가 만날 때마다 이러니까 피하게 되는 거잖아!
귀엽다느니, 사랑스럽다느니, 안아도 되냐느니.
세상 누구한테 들어도 설렐 말 아닌가?
그거다. 에이얀이 마음에도 없는 말을 매번 흘리고 다니는데, 순진한 나는 일일이 반응하다 이 모양, 이 꼴이 된 거지.
새삼 이것저것 다 화가 난 키네미아가 커튼 밖으로 얼굴만 빼꼼 내밀었다. 에이얀은 눈썹을 추켜세운 얼굴을 보면서 입꼬리를 올렸다.
“이제 나오려고?”
키네미아를 포박하듯 양옆을 짚고 몸을 굽힌 에이얀이 키네미아를 지그시 내려다보았다.
일단 얼굴을 내밀긴 했지만, 지금은 내가 켕기는 상황이었지. 키네미아가 눈을 굴렸다.
“에이얀, 혹시나 해서 그러는데 먼저 말해 둘 게 있어.”
“응.”
“나 변태 아니야.”
미간까지 모으고 그녀가 단호하게 말했다. 이건 아주 중요하니까. 짚어 두고 갈 필요가 있다.
그러자 에이얀이 시무룩하게 대꾸했다.
“아쉽다.”
뭐?! 왜?!
“아아아아니! 막 몰래 훔쳐보려고 그런 게 아니라고……!”
“내가 눈치가 없었네. 지금이라도 벗을까?”
그가 짓궂게 말하며 셔츠를 벗는 시늉을 보였다.
설핏 보인 복근에 키네미아의 심장이 똑 떨어졌다.
미친 거 아냐?! 키네미아가 후다닥 나와 에이얀의 팔을 붙들었다.
“안 보고 싶거든!”
얼굴이 새파랗게 질렸다가 새빨갛게 달아오른 그녀가 제 두 팔을 꼭 잡았다. 생글생글 웃던 에이얀은 키네미아의 어깨 위에 닿지 않을 정도로만 고개를 숙였다.
“난 내 방에 네가 있길래, 오늘 내가 착한 일을 해서 상 받는 건가 했지.”
“……오늘 뭐 했어?”
“음, 착한 일?”
“더 자세히. 바보야.”
“허링 후작령에 사령술사가 나와서 해결하러 다녀왔어.”
아아, 키네미아가 고개를 끄덕였다.
“근데 허링 후작?”
“아는 사이야?”
“조오금? 우리 할아버지가 그 사람 멍청하다고 공개적으로 비난을 엄청나게 했거든. 그래서 그쪽이 일방적으로 날 싫어할걸? 별 9개 정도?”
“별도 매겨?”
“응. 원한 관리에 유용해.”
“음, 그 별 9개짜리의 영지는 내가 다 부쉈어.”
에이얀이 칭찬해 달라는 듯 꼬리를 흔들었다.
부쉈다고? 아까 복원 어쩌고 하던 게 이거였나? 키네미아는 고개를 갸웃 기울였다.
“아까는 지켰다면서.”
“다시 생각해 보니 부순 거였네. 가서 더 혼내 줄까?”
“됐어, 바보야.”
키네미아가 웃음을 터트리면서 조금 안도했다.
얼굴을 마주하고 시답잖은 이야기를 하다 보니 다시 예전 같은 사이로 돌아간 기분이었다.
‘나도 참, 순진하다니까.’
그사이 키네미아가 앉을 자리가 없나 찾던 에이얀이 어지러운 책상 위의 서류와 책들을 모조리 이동시켰다.
다른 방으로 쏟아졌는지 문 너머로 와르르 소리가 들려왔다.
……?!
“정리 안 해도 돼?”
그때, 에이얀이 키네미아의 허리를 안아 책상 위에 올려 앉혔다.
“나중에.”
키네미아가 책상 위에 자리를 잡자 그가 양팔로 키네미아 옆을 지탱한 후에 눈을 맞췄다. 미간을 좁힌 키네미아는 슬쩍 몸을 뒤로 물렸다.
“미아.”
“응.”
“나 왜 피했는지 물어봐도 돼?”
키네미아가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평생 피해 다닐 게 아닌 이상, 언젠가는 해야 할 이야기였으니까.
“……우선, 나 원래 피하고 그런 성격 아니야.”
“처음 알았네.”
그녀가 얼굴을 구기자 에이얀이 어깨를 늘어트리고는 고개를 기울였다.
“화났어? 이번에도 내가 잘못했네. 입조심할까?”
“응. 영영 다물고 있어.”
“미아아아아아-”
칭얼거리던 에이얀은 키네미아에게서 아무런 반응이 없자 귀여운 척 고개를 낮추고 물었다.
“그래서, 그런 성격 아닌데?”
뭐라고 표현하면 좋을까. 몇 가지 단어가 머릿속을 휙휙 지나갔다. 이내 키네미아가 손을 뻗어 에이얀의 얼굴을 쓸었다. 그가 그랬듯 매끄러운 살결을 쓱쓱 문질렀다.
“갑자기 네 얼굴 보기가 낯설어서 그랬어.”
그녀의 손끝이 닿자 눈을 질끈 감았던 에이얀은 화가 난 것처럼도 보이는 무표정한 얼굴로 되물었다.
“갑자기?”
“응.”
“그래서 내가 싫어졌어?”
“아니…… 그런 건 아니고.”
키네미아가 한숨을 내쉬었다.
“그럼 지금은?”
“응?”
“내가 계속 낯설어?”
“지금은 괜찮아졌어.”
키네미아는 빙긋 웃으며 손을 내렸다. 이제 직접 얼굴을 맞대고 손이 닿아도 심장이 덜컥거리거나 과민 반응을 보이진 않으니까.
“……아쉽네.”
뭔가를 알아차린 듯한 에이얀이 떨어진 손을 포개 잡으며 말했다.
체온이 닿자 키네미아는 또다시 밀려오는 두근거림에 어깨를 굳혔다.
‘아닌가.’
아, 몰라! 그녀가 신경질적으로 손에 얼굴을 묻었다.
“너 때문에 자꾸 나만 이상해지는 것 같아.”
그에 에이얀이 웃음소리와 함께 나지막한 말을 흘렸다.
“오해는 내가 하겠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