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aming a Munchkin RAW novel - Chapter (86)
먼치킨 길들이기 86화
* * *
파직!
벌벌 떠는 주최자에게 다정하게 부탁해 규칙을 바꾼 에이얀은 요새 7개를 부순 참이었다.
노여워할 것이라는 벤자민의 예상과 달리, 에이얀은 퍽 즐거워하고 있었다.
이 같잖은 놀이의 승자가 자신이란 것을 확신했으니까.
키네미아를 데리고 있는 조증 마법사 탓에 무슨 일이 터지리란 건 예상하고 있었고, 때문에 주최 측이 모여 있는 컨트롤 룸 옆에서 대비는 하고 있었지만- 이렇게 깜찍한 일을 벌일 줄이야.
생글생글 웃은 에이얀의 발밑에서 마력이 짙게 깔리기 시작했다.
질식할 정도로 마력을 뿜어낸 그가 다음 요새의 망루로 가볍게 올라섰다.
요새 안에 주둔해 있던 마법사들은 망루에 선 에이얀을 보고 질겁하며 외쳤다.
“에, 에이얀?!”
“뭐?! 에이얀?!”
“안녀엉-”
제법 기분이 좋은 터라 빙긋 미소를 지어 준 에이얀이 살랑살랑 손을 흔들었다.
미친! 마법사들이 소름이 돋은 듯 물러섰다.
“에이얀이 왜 기술 개발팀에 있는 거야!”
“나도 모르지!”
“멍청이들아!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니야! 전부 다 호출해! 일단 저걸 막아!”
벌떼같이 몰려오는 마법사들을 보며 에이얀이 눈을 곱게 접었다.
* * *
송출된 화면 너머에서 에이얀이 가볍게 요새를 부수었다.
우르릉, 무너지는 소리와 함께 요새가 가루가 되어 흩날렸다.
그리고 요새가 부서진 자리에 에이얀의 이름이 달린 깃발이 꽂히면서 기술 개발팀의 요새가 차곡차곡 쌓이기 시작했다.
‘벌써 8개잖아.’
에이얀이 직접 전투하는 모습을 보는 건 처음인 키네미아는 줄곧 입을 다물지 못한 채였다.
그때 에이얀이 영상을 담는 곳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새하얀 얼굴이 정면을 향했다.
– 미아.
그가 웃음기 어린 목소리로 말했다.
– 기대할게.
“……?!”
어깨를 흠칫한 키네미아가 상체를 뒤로 물렸다.
“기술 개발팀의 에이스는! 우리 신입의 키스를 받게 될 거야!”
순간 쥬디스의 호언장담이 머리를 스쳐 지나갔다.
그걸 왜 기대해! 키네미아의 얼굴이 새빨갛게 달아올랐다.
‘……아니야, 설마. 또 장난치는 거겠지.’
울프만이나 벤자민도 참가하지 않았던가. 에이얀도 혹여나 자신이 곤란한 상황에 처할지 모르니 참가한 것이리라.
괜한 생각 하지 말자면서도 그녀는 망토를 쓰개치마처럼 쓰고서 달아오른 볼을 숨겼다.
“대공녀, 추우신가요?”
“아뇨. 그냥 이러고 있고 싶어져서…….”
눈코입만 빼꼼 내민 채 키네미아가 고개를 도리도리 저었다.
“그런데 리카샤가 저래도 되는 거예요? 실력 차이가 너무 많이 나는데?”
“규칙이 바뀌었으니…… 안 되는 건 아닌데요…….”
“안 되는 건 아니지만…….”
부원들이 멍하니 화면을 응시했다.
애들 싸움에 어른이 낀 형국이니, 양민 학살이나 마찬가지였다.
지도를 확인하자 이미 기술 개발팀의 영역이 과반을 넘어가고 있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그거지?’
‘맞아. 그거밖에는…….’
부원들이 수군거리면서 대공녀를 힐긋거렸다. 애들 싸움에 끼어든 세 마법사의 폭주가 다 대공녀 때문인 것을 짐작한 탓이었다.
“……?”
왜 저렇게들 보지. 불안하게…… 키네미아가 머리 위에 물음표를 띄웠고.
“가즈아!”
그러거나 말거나, 쥬디스만이 희열에 차 주먹을 붕붕 휘둘렀다.
첫 우승을 앞둔 그녀는 이미 걷잡을 수 없이 들떠 있는 상태였다.
그때였다. 적갈색 머리카락을 반듯하게 넘긴 마탑주가 화면에 들어찼다.
마탑주의 등장에 모두가 입을 다물고 스크린에 시선을 고정했다.
그는 평소 자애롭고 서글서글하던 표정은 온데간데없이 굳은 얼굴로 외쳤다.
– 키네미아! 네가 누구와 어디서 뭘 하든 나는 널 존중할 것이다!
잠시 뜸을 들인 울프만은 울컥한 듯 말을 토해 냈다.
– 그렇지만 뽀뽀는 20살부터다!
“…….”
“…….”
마탑주의 피를 토하는 듯한 외침이 울리자 마탑 전체에 침묵이 감돌았다.
– 20살이 되기 전까지 뽀뽀는 절대 안 된다! 20살 이전에는 포옹까지만이야!
울프만은 무척 보수적인 편이었다. 그의 관념상, 입맞춤은 20살부터였다.
에이얀의 승리를 직감한 그는 키네미아를 지키기 위해 직접 나선 것이었다.
‘에이얀, 미안하지만 뽀뽀는 20살부터. 그것이 마탑의 규칙이다.’
울프만이 거대한 바람을 일으키며 몸을 움직였다.
* * *
다시금 화면이 넘어갔다. 에이얀이 흉흉한 기세를 풍기며 스승이 점령한 요새를 파괴하는 중이었다.
“……?!”
모의 공성전을 보고 있던 모두가 같은 팀 요새를 왜 부수는지 의아해하는 사이였다.
콰드득-
무표정한 얼굴을 한 에이얀이 요새를 짓밟으며 말했다.
– 스승님, 그거 아십니까? 20살에 입 맞추던 시절 살았던 인간들은 다 관짝에 들어가 있어요.
에이얀은 스승의 마인드가 고루하다는 말을 최대한 상스럽게 표현했다.
다음 화면으로 넘어가자 에이얀의 요새를 부순 울프만이 근엄한 얼굴로 입을 열었다.
– 마탑의 군주로서 명한다. 뽀뽀는 20살부터야. 내 눈에 흙이 들어가기 전까지는 절대 안 돼!
마탑주의 공고한 세계관 탓에, 울프만과 에이얀은 서로가 서로의 요새를 부수며 다투기 시작했다.
“안 돼! 서로 싸우지 말고 저 팀으로 진격하시라고요!”
– 와하하하하하!
쥬디스는 비명을 지르고, 필립은 자지러지게 웃는 난장판이었다.
그나마 셋 중 가장 착실하게 일하는 건 혼자 이성이란 걸 붙들고 있는 벤자민뿐이었다.
그때 화면이 바뀌면서 스크린에 벤자민의 얼굴이 떠올랐다. 미간을 찡그린 벤자민은 손으로 영상구를 막았다.
– 찍지 마십시오. 할 말 없습니다. 아, 나는 할 말 없다니까. 안 노립니다. 대공녀의 입술은 안 노려요. 나는 여기에 평화를 지키러 온 거라니까.
* * *
“젠장 할!”
지도를 확인한 속성 마법 연구팀의 필립이 테이블을 쾅 내려치며 일어섰다.
기술 개발팀의 깃발 2개는 다른 팀들의 본성까지 모두 부수고 제 팀의 본성으로 향하는 중이었다.
‘대체 이게 무슨 개 같은 상황이란 말이야!’
어느 순간부터 규칙이 바뀌고 괴물 셋이 참전하면서 이해하지 못할 상황이 펼쳐지고 있었다.
필립은 제 팀의 마법사들을 모두 코어가 있는 홀 안으로 모이도록 했다.
이윽고 남아 있는 수십 명의 마법사가 한곳으로 모였다.
‘막을 수 있을까.’
그는 오소소 소름이 돋은 팔을 문질렀다.
그 순간 갑작스레 본성 안에 붉은 마력이 퍼져 나갔다. 이런 마력을 가진 이는 마탑 안에서 단 한 사람뿐.
“문에 결계를 쳐!”
마법사들이 적을 막기 위해 문 앞에 수십 장의 결계를 생성했다.
콰과과광!
그러나 압도적인 힘의 차이 앞에서 그들의 결계는 얇은 유리판처럼 깨져 버렸다.
쾅!
결국 코어가 있는 홀로 들어서는 문이 터져 나갔다.
바짝 긴장한 마법사들을 향해 뚜벅뚜벅 걸어온 이는 울프만이었다.
필립은 대기시켜 둔 마법사 부대와 함께 마탑주의 앞을 막아섰다.
울프만은 그들과 적당한 거리를 두고 걸음을 멈추었다.
“필립. 미안하지만 비켜 주겠나? 자네들을 다치게 하고 싶지는 않은데, 내게 질 수 없는 사정이 있어서 말일세.”
“저도 이대로 질 수는 없습니다, 탑주님. 이참에 한 수 가르쳐 주시죠.”
필립이 씨익 입꼬리를 끌어 올렸다.
사실 마법사들로서는 좋은 기회였다. 마탑주와 이렇게 대련할 수 있는 기회는 흔치 않으니까.
그때, 무언가를 감지한 울프만이 결계를 쳤다. 찰나에 세찬 폭풍이 몰려왔다.
“크윽!”
“끄아아아악!”
마법사들이 뒤늦게 결계를 쳤지만 막아 내기에는 역부족이었다.
대부분의 마법사들이 폭풍에 휩쓸려 홀의 벽으로 거칠게 밀려났다. 단단한 돌벽에 거세게 부딪친 마법사들의 비명이 곳곳에서 터져 나왔다.
“큭!”
개중 마력의 폭풍을 겨우 버텨 낸 필립은 결계를 거두고 숨을 몰아쉬었다.
그는 폭풍우와 함께 결계를 뚫고 들어와 제 손에 잡힌 것을 확인했다.
‘모래?’
그사이 폭풍우와 함께 나타난 마법사가 서늘한 표정으로 눈매를 좁혔다. 아까까지의 여유는 사라져 있었다.
결계를 거둔 울프만이 눈에 이채를 띠었다.
“에이얀.”
“스승님.”
울프만과 에이얀이 얼굴을 마주한 채 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