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aming a Munchkin RAW novel - Chapter (88)
먼치킨 길들이기 88화
그러거나 말거나 에이얀은 보란 듯이 손깍지까지 끼고는 유치원 선생님이라도 된 양 나긋하게 말했다.
“앞으로 계속 그렇게 해야 돼. 알았지?”
“싫어. 난 할아버지가 좋아.”
몸서리를 친 키네미아가 제게 들러붙은 에이얀을 털어 내고 울프만 쪽으로 다가갔다. 그에 울프만이 여봐란듯이 키네미아의 어깨에 손을 올렸다.
“키네미아, 저렇게 성격 나쁜 놈과는 가까이하지 말거라.”
“네, 할아버지.”
승리자 같은 표정의 울프만과 당장 하극상이라도 시작할 듯한 에이얀의 시선이 마주쳤다.
“스승님, 오늘 모의 공성전 승자가 누군지 아십니까?”
“네가 내 눈에 흙을 뿌리지만 않았어도 내가 이겼을 테니 자만하지 말거라, 제자야.”
흙을 뿌렸어?! 본성 부수는 모습은 보지 못했던 키네미아가 화들짝 놀라 어깨를 움츠렸다.
“저는 스승님께서 계속 흙 타령을 하시기에 원하시는 줄 알았습니다.”
“뭘 원해! 너 때문에 아직도 눈이 꺼끌꺼끌하다, 이놈아!”
한편, 마탑주와 리카샤의 신경전을 보던 벤자민은 키네미아를 흘긋거렸다. 대공녀가 옆에 있으니 큰일은 안 벌이겠지.
그는 느긋하게 샴페인을 잔을 소환했다가 멀뚱히 선 키네미아에게 건넸다.
“대공녀, 한 잔 드릴까요?”
“아, 고마워요.”
방긋 웃은 키네미아가 반사적으로 샴페인을 받아 들었다.
‘너무 많이 마시나.’
아까부터 주는 대로 다 받아먹긴 했지.
일단 받았으니 이 잔까지만 마시려는데, 어느새 다가온 에이얀이 샴페인 잔을 빼앗아 들었다.
“애한테 술을 왜 자꾸 권하지?”
그의 손안에서 잔이 소멸하듯 가루가 되어 사라졌다.
애? 고작 1살 차이- 아니, 따지고 보면 4개월 차이인 주제에 생색내는 에이얀에 키네미아가 얼굴을 우그러트렸고, 울프만과 벤자민은 정말 염병을 한다는 얼굴로 입을 다물었다.
남들이 제게 어떤 반응을 보이든 관심 없는 에이얀은 뻔뻔한 낯으로 키네미아의 손을 잡아 깍지를 꼈다.
왜? 키네미아가 올려다보자 예쁘게 웃어 보인 에이얀이 울프만에게 말했다.
“그럼 저희는 이만 가 보겠습니다, 스승님.”
“엥.”
그러자 얼른 가 버리라는 듯 울프만이 손을 내저었다.
“빨리 눈앞에서 사라지거라.”
이내 키네미아가 무어라 할 새도 없이 에이얀이 장소를 이동했다.
* * *
찰나에 눈앞의 풍광이 바뀜과 동시에 세차게 쏟아지는 폭포 소리가 들렸다.
코끝에선 물 향과 꽃향기가 진동했다.
공중 섬 오른쪽 끝. 뾰족하게 솟은 언덕에서 내려오는 폭포수 주위를 뱅 둘러 아름답게 꾸며 놓은 야외 정원이었다.
“와……!”
별세계 같은 풍경에 키네미아가 탄성을 터트리자 에이얀이 미소를 지었다.
눈을 반짝인 그녀가 사뿐사뿐 걸으며 구경하려던 그때였다.
그들보다 먼저 야외 정원을 거닐던 마법사 연인이 에이얀을 발견하자마자 사색이 되더니 후다닥 사라졌다.
‘또 피해?!’
마법사들의 반응은 리카샤에 대한 경외와는 분명히 달라 보였다. 그것보다는 사냥꾼을 만난 야생 동물 같은 느낌인데…….
“에이얀, 뭘 했길래 다들 저렇게 피해?”
“글쎄, 기억 안 나는데.”
딱히 저들에게 뭘 하진 않았으리라. 아니, 했나? 고민하던 그가 눈을 굴렸다.
그러다 비 맞은 강아지 같은 표정을 꾸며 내며 말했다.
“마법사들이 일방적으로 날 꺼리는 것 같아.”
“아무 이유 없이?”
“응.”
……아, 그러니? 키네미아가 흐린 눈으로 응시하자 에이얀이 고개를 갸웃 기울였다.
“안 믿네.”
“믿겠어? 바보야.”
키네미아는 가볍게 타박하면서도 입꼬리를 올렸다.
에이얀이 다른 이들에게는 무슨 무서운 짓을 하고 다니는지는 모르겠지만, 제게는 늘 다정하기만 하지 않던가. 그것이 에이얀 크로츠에게 키네미아 리온이 특별한 친구란 증명 같았다.
에이얀은 키네미아가 앉아서 쉴 수 있을 만한 곳을 찾다가 큰 고목에 걸린 그네로 인도하듯 이끌었다.
키네미아는 에이얀에게 이끌려 벤치 그네 한가운데에 앉았다.
에이얀은 키네미아 앞에 한쪽 무릎을 꿇고 앉아 바람에 날리는 키네미아의 머리카락을 넘겼다.
기다란 손의 끝이 볼을 스치자 키네미아가 한쪽 눈을 찡긋 찌푸렸다. 옅게 입꼬리를 올린 에이얀이 키네미아의 말랑한 귓불을 가볍게 매만졌다가 손을 뗐다.
“미아, 많이 마셨어?”
“음, 8잔?”
아니, 9잔인가? 더 될 수도……. 키네미아가 끙 소리를 내며 지금까지 비워 낸 와인과 샴페인 잔을 곱씹었다.
에이얀이 낮게 웃음을 흘렸다.
“그 정도면 많이 마셨어. 뭐 좀 가져다줄까? 물?”
“아니, 아니. 아무렇지도 않아. 나 잘 안 취해.”
제국은 술 문화가 발달해 있고, 미성년자 음주에 관대한 편이었다. 그 때문에 키네미아도 어렸을 적부터 기념일마다 홀짝홀짝 술을 먹어 와서 제 주량을 잘 알았다.
‘이 정도로는 알딸딸하긴 해도 취하진 않지.’
그러자 에이얀의 새카만 눈동자가 샅샅이 핥는 것처럼 그녀의 얼굴을 살폈다.
으음, 키네미아는 불안한 기색으로 눈동자를 데구르륵 굴렸다.
어느 순간부터 에이얀이 눈을 지그시 마주쳐 오면 종종 어쩔 줄 모르는 불안감을 느꼈다.
“정말 안 취했어?”
“응.”
“그런데 얼굴에 왜 이렇게 열이 있지.”
그가 키네미아의 볼에 손등을 대 열을 쟀다. 서늘한 날씨에도 불구하고 얼굴은 더 홧홧하게 달아올랐다.
그런 자신의 반응이 탐탁지 않았던 키네미아가 미간을 찌푸렸다.
에이얀은 눈을 살포시 접으며 고개를 모로 기울였다.
“취한 게 아니면. 왜?”
에이얀이 무릎에 얹고 있던 키네미아의 두 손을 포개 잡았다.
모아 잡은 그 손끝에 에이얀은 턱을 대고 올려다보며 재차 물었다.
“응?”
채근하는 달콤한 목소리에 키네미아가 느릿하게 눈을 깜빡였다.
“……그냥.”
취한 사람처럼 어물어물 답하는데 머릿속이 엉킨 실처럼 복잡하고 어지러워졌다.
‘껄끄러워.’
키네미아는 에이얀을 피해 시선을 아래로 떨궜다.
네가 너무 가까워서. 네가 너무 다정해서. 네가 날 좋아하는 것 같아서.
몇 가지 답안을 머릿속에 늘어놓은 후에야 겨우 알맞은 답을 찾아냈다.
“무서워서.”
한숨처럼 말을 내뱉은 순간이었다.
“…….”
에이얀이 몸을 굳혔다. 차마 되묻지도 못하는 듯 그대로 경직된 것처럼.
에이얀의 전에 없던 반응에 되레 놀란 건 키네미아였다. 키네미아는 제대로 설명하기 위해 에이얀의 망토를 끌어 잡았다.
“그게 아니라…….”
“…….”
“어, 내 말뜻은 그게 아니라, 네가 무섭다는 게 아니라…….”
그녀가 횡설수설 말을 잇자 에이얀은 그제야 숨을 쉬는 것처럼 보였다.
‘왜 이렇게 빙빙 도는 것 같지.’
이내 키네미아가 단호하게 쏘아붙이듯 말했다.
“내가 너 의식하는 게 싫고 무서워. 나한테는 안 어울려. 그래서 말인데, 이제부터는 선을 넘지 않았으면 좋겠어.”
그녀가 에이얀의 손아귀에서 제 손을 빼냈다.
“……그러니까 이런 식으로.”
막상 내뱉으니 정말 최악이네. 널 좋아하게 될 것 같아서 무서우니 떨어지라니. 에이얀의 얼굴을 볼 자신이 없었다.
키네미아가 망토 목깃에 달린 깃털에 얼굴을 코까지 숨긴 채 웅얼거렸다.
“내가 오해하게끔 굴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거야.”
한껏 눈동자를 옆으로 굴려서 시선을 피하자 에이얀이 달래듯 말했다.
“미아, 나 좀 봐.”
키네미아는 주저하다 새파란 눈동자만 데굴데굴 굴려 그를 흘겼다.
“왜 무서운지 물어봐도 돼?”
키네미아가 숨을 깊게 마셨다가 내뱉었다. 지금도 숨고 싶었다. 막상 이러니저러니 하는 속내를 내뱉기 부끄러웠다.
“창피해.”
“듣고 싶어 해서 미안.”
죄책감을 주는 투였다. 빤히 보여도 말려들 수밖에 없어서 그녀가 헛웃음을 흘렸다.
“넌 야비하고.”
“그것도 미안.”
예쁘게 눈웃음을 친 에이얀이 입꼬리를 올렸다.
“……아빠가, 자꾸 생각나.”
엄마의 장례식에서 사랑이 이런 거냐 묻던 아빠의 목소리가 줄곧 머릿속에 맴돌았다.
“그래서 무서워. 누굴 좋아하는 건 처음부터 하면 안 되는 일처럼 느껴져서.”
낯설어서, 설레서, 친구라서. 모든 변명의 깊은 곳에는 두려움이 숨어 있었다.
모두 털어 내듯 말한 키네미아는 에이얀을 두 손바닥으로 막아서듯 거리를 두었다.
“이제 끝. 알았지?”
“아니.”
에이얀이 날카롭게 말했다.
“……?”
“시험해 봐. 나랑.”
“뭘?”
“정말 무서운 일인지, 나한테 시험해 보면 되잖아.”
그가 거리를 두려는 키네미아의 손을 꼭 잡았다.
“한 달이든, 두 달이든. 네가 알 수 있을 때까지.”
망토 밖으로 튀어나온 고양이 같은 눈매가 일그러졌다. 대체 뭐지. 오해하게 굴지 말라 했더니, 보란 듯이 더 성큼 다가와 당황스러웠다.
“미아, 대답은?”
“……?”
“싫다고 대답 안 하면 알겠다는 걸로 생각할 건데, 나는.”
나지막이 말한 에이얀이 큰 손으로 키네미아의 볼을 감싼 후 엄지로 눈매를 쓸었다.
“-그래도 괜찮겠어?”
그래도 괜찮냐니. 키네미아가 곤혹스러움이 역력한 표정으로 입을 다물었다. 당장 싫다고 답하면 될 것을, 차마 말이 나오지 않았다.
잠시 고민하던 그녀가 확실하게 싫다는 대답 대신 두루뭉술하게 그러면 안 되는 이유를 생각해 냈다.
“……너는 내가 시험한다느니 하면서 애매하게 굴어도 괜찮아?”
“좋아서 미칠 것 같아.”
뭐? 말문이 막힌 키네미아가 입을 벙긋거렸다.
“미아.”
“……왜.”
“사랑해.”
네가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에이얀의 말에 쿵, 심장이 바닥으로 내려앉았다. 당황한 키네미아는 얼어붙은 것처럼 어깨를 굳혔다. 맥박이 잦게 떨려 왔다. 내쉬는 숨마저 흔들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