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aming a Munchkin RAW novel - Chapter (90)
먼치킨 길들이기 90화
* * *
“여기입니다!”
키네미아는 어린 연금술사에게 이끌려 혜민원 후원으로 걸음을 옮겼다.
“이 몸은 더 이상 상놈의 말 같지도 않은 말은 듣지 않을 것이다.”
연못 근처 너른 정원에 선 쉔 티엔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의 맞은편에는 로우가 맞서듯 서 있었다.
‘싸움?’
매번 있는 일이긴 하지만, 오늘은 쉔 티엔의 분위기가 꽤 흉흉했다.
무슨 일이지? 키네미아는 연못 쪽으로 다가가다가 코를 킁킁거리며 냄새를 맡았다.
‘술 냄새.’
술 연못은 술에 대한 갈망으로 비롯된 쉔 티엔의 추한 야심이 만들어 낸 산물이었다.
혹시 피해자가 생길지 모르니 신의 술이 아닌 다른 술로 채워 넣으라고 했던 키네미아의 당부는 다행히 지킨 모양이지만.
“근데 대체 무슨 일이야?”
“그게 말이죠…….”
키네미아를 데려온 어린 연금술사의 말에 의하면 이 대결 구도의 원인은 이러했다.
찌들 대로 찌든 한량인 쉔 티엔에 비해 로우는 세상 바른 사나이인 것이 발단이었다.
“이런 해로운 연못은 제가 없애겠습니다.”
“뭐?! 내가 밤낮으로 생고생을 해서 만든 걸 왜 없앤단 말이냐!”
로우는 이런 추잡한 연못은 없애 버려야 한다며 연못을 부수려 하고, 쉔 티엔은 이를 막으려고 하면서 지속적인 다툼이 일어나고 있다는 것이었다.
“이번에야말로 시건방진 네놈과 담판을 지어야겠다.”
마력을 끌어 올린 쉔 티엔이 담뱃대에 오러를 입혔다.
“사부님. 알코올 중독은 치료해야 할 병입니다.”
이에 맞서 공익 광고 문구처럼 말한 로우가 검을 뽑아 들었다.
둘을 지켜보는 연금술사들과 흑야는 연못가에 쪼르륵 앉아 돈을 거는 중이었다.
쉔 티엔과 로우, 둘 중 누가 이길지에 돈을 거는 내기판이었다.
‘호오오오오!’
싸움을 말려 주리라는 어린 연금술사의 기대와는 달리, 돈을 주고받는 사람들 사이에 끼어 앉은 키네미아는 가방을 뒤적여 금화를 꺼냈다.
“아기 선녀님께서는 어떤 분께 돈을 걸려고 하십니까?”
“응? 나는 당연히 로우한테.”
지는 패에는 돈을 걸지 않는 법. 이건 뒤구르기 하면서 봐도 로우가 이길 대결이었다.
“엣? 전부 로우 님께 거시면 내기가 성립이 안 되는뎁쇼.”
“엥. 연금술사들도 전부 로우한테 걸었어?”
“그렇게 됐습니다.”
아무리 정신적 지주라고 해도 돈 내기에는 가차 없는 연금술사들이 헤헤 웃었다.
그러자 내기 판을 힐끔거리던 쉔 티엔이 버럭 노성을 질렀다.
“왜 이 몸에게는 아무도 돈을 걸지 않는 게야!”
쉔 티엔의 매서운 눈초리에 키네미아와 연금술사, 흑야가 전부 시선을 피했다.
“사부님. 이것이 바로 알코올 중독자가 세상에서 받는 멸시와 냉대입니다. 이제 슬슬 정상인으로 돌아오시지요.”
“시끄럽다! 난 너 같은 제자를 둔 적이 없는데 왜 아직도 사부님 타령이냐!”
쉔 티엔이 이참에 네놈을 내 앞에 꿇리고 너의 나의 눈높이를 보여 주겠다며 길길이 날뛰던 그때였다.
“어? 아기 선녀님, 저것 좀 보십쇼.”
“음?”
연금술사가 가리킨 곳을 보니, 갑옷을 차려입고 말을 탄 기사들이 대열을 맞춰 혜민원 앞을 지나가고 있었다.
“저쪽은 대공 성으로 가는 길 아닙니까?”
“맞아…….”
저들은 여러모로 봐도 대공 성 쪽으로 향하는 중이었다.
뭐지? 듣도 보도 못한 기사단이 왜? 키네미아가 미간을 찌푸리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부용, 마차를 준비해 줘. 성으로 돌아가야겠어.”
“예! 조금만 기다려 주십쇼!”
이름이 불린 연금술사, 부용이 헐레벌떡 뛰어갔다.
키네미아는 기사단의 깃발을 보며 얼굴을 갸웃 기울였다.
‘저 깃발은 설마…….’
* * *
‘기분이 묘하네.’
키네미아는 집무실 의자에 앉아 제 앞에 반듯하게 선 남자를 응시했다.
짧은 밀빛 머리카락. 그을린 피부에 험상궂은 얼굴. 표정 없이 마주해도 예뻐 보이지 않을 판에, 키네미아를 고깝게 내려다보고 있는 남자는 대공 성으로 찾아온 황실 기사단 이글의 단장인 크리스 워맥 자작이었다.
다짜고짜 찾아온 그의 말의 요지는 이와 같았다.
‘내 영지에서 마음대로 토벌전을 지휘하겠다?’
키네미아가 잠깐 눈을 감고 가만히 숲을 떠올렸다. 그럼에도 가슴을 두드리는 스트레스성 부정맥과 머릿속을 점령한 거친 욕설은 가시질 않았다.
‘뭐 이런 게 다 있지?’
일방적 통보에 내내 침묵을 지키던 그녀가 그의 별을 체크했다.
[크리스 워맥]원한도 : 별 10/10개
위험도 : 별 7/10개
그의 원한은 키네미아의 친할아버지이자 전전대 대공이었던 케네스 리온의 작품이었다.
능력도 없는데 야심만 크다고 욕을 처먹으면서 자존감이 깎여 나간 것으로 한 번.
좋은 가문과 혼인으로 연을 맺어 신분 상승의 꿈을 꾸고 있었는데, 결혼도 전에 예비 신부의 가문이 케네스의 손에 숙청당해 신분 상승의 꿈이 좌절된 것으로 두 번.
그 두 번의 과정을 거쳐 별을 10개나 채우고 원한인이 된 인물이었다.
키네미아가 눈을 가느스름하게 떴다.
‘그래도 이건 원작이랑은 달라질 줄 알았는데.’
내가 아직도 그렇게 힘이 없단 말이야? 훈장은 왜 줬어? 이제 슬슬 내 존재를 인정하겠다는 뜻 아니었냐고!
비록 황제가 준 건 저기 어디에 던져 버리긴 했다만.
짜증을 참아 낸 그녀가 예쁘게 미소를 지었다.
워맥 자작은 불시에 날아든 키네미아의 미소에 화들짝 놀라 큼, 목을 가다듬었다.
키네미아는 마음을 가라앉힌 후에 온화하게 말했다.
“무언가 착오가 있는 게 아닐까 싶네만.”
“착오라니요. 황제 폐하의 명이십니다.”
워맥 자작이 책상 위에 놓은 칙서를 눈짓했다. 저 위에 찍힌 금인을 보라는 듯.
‘아, 태워 버리고 싶다.’
당장 촛대에 지져 버리고 싶은 욕망을 참아 낸 키네미아가 칙서에 찍힌 금인과 칙서의 내용을 대충 훑었다.
두꺼운 미색 종이에는, 너희 영지의 마물을 저놈이 토벌할 것이니 지원 빵빵하게 해 주라는 재수 없는 글이 담겨 있었다.
현재 북부로 깊이깊이 올라가면 나오는 숲에서는 마물들이 떼로 나와 기승을 부리고 있었다.
험지에 길도 없고 주위에는 전부 산뿐인 외진 곳이라 모험가들로는 처리가 안 되는 수준이어서, 리온에서는 마물들이 큰 무리를 이루고 내려오기 전에 토벌을 진행할 예정이었다. 곧 토벌을 위해 기사들을 차출할 생각이었는데…….
키네미아는 나직이 입을 열었다.
“나는 폐하께 원군을 요청한 적이 없는데.”
“알고 있습니다.”
“영지에도 병력은 충분하고.”
“뭐, 그러시겠지요.”
“그런데 기별도 없이 찾아온 기사단이 내 영지에서 제멋대로 토벌을 지휘하겠다니, 이게 착오가 아니면 대체 뭐란 말이지?”
순간 워맥 자작이 바람 빠지는 웃음을 흘렸다.
비웃어? 키네미아가 입매를 꿈틀거렸다.
“착오는 대공녀께서 하시는 모양입니다. 외람되지만 대공녀. 이곳은 대공녀의 영지가 아닙니다.”
아하, 그렇게 나오시겠다. 키네미아의 눈이 서늘하게 가라앉았다.
워맥 자작이 싸늘해지는 키네미아의 반응을 즐기듯 이죽거렸다.
“대공녀께서는 현재 작위를 가진 분이 아니십니다. 리온의 핏줄이신지라 서쪽에서는 관습적으로 영주 대우를 해 주었는지는 모르겠으나, 제국법상으로는 무엇이 옳은지 명백하지 않습니까.”
그의 오만한 말투에 키네미아가 눈썹을 꿈틀거렸다.
“따라서 이번 토벌은 제가 지휘하겠습니다. 주인 없는 영지는 황제 폐하의 관할이니까요.”
‘하! 주인 없는 영지?’
이 자식, 대체 뭐지? 짜증을 숨기지 않은 채 그녀가 턱을 괴었다.
마음 같아서는 당장 꺼지라며 쫓아내고 싶지만, 여기서 저놈과 왈가왈부해 봤자 결국에는 황제의 명이었다.
공식적으로는 작위가 없는 것도 사실이고, 정식으로 항의할 명분이 없는 키네미아로서는 받아들이는 수밖에는 다른 방도가 없었다.
물론 짜증이 나는 것도 막을 수 있는 방도가 없고!
“그래. 토벌이 얼마나 잘 끝날 수 있을지 지켜보겠네, 경. 필요한 게 있다면 언제든 말하고. 지원해 줄 테니까.”
키네미아가 태연하게 입에 올린 ‘경’이라는 호칭에 워맥 자작의 눈이 날카로워졌다. 그는 무척 떨떠름하다는 기색을 숨기지 않고 드러냈다.
고만고만한 작위에 연연할수록 이런 호칭에 민감한 법이지. 키네미아가 피식 웃음을 흘렸다.
“경이 아니라 자작입니다.”
“지금은 황제 폐하의 명을 받고 토벌전을 지휘하러 온 기사가 아닌가. 자네의 기사로서의 기개를 높이 사 경이라 부르겠네.”
네가 뭐라고 발작을 하든 난 네가 원하는 대로 불러 주지 않겠다는 산뜻한 모욕에 그가 주먹을 꽉 쥐었다.
“……대공녀. 그건 제국의 예우가 아닙니다.”
“내가 대공녀인 줄도 알고, 예우도 아는군. 내게 예를 표하지 않기에 아둔한가 했지. 아니라니 다행이야. 자네가 사리에 밝은 듯하니 이번 토벌이 그렇게 힘들지는 않겠어. 지휘관이 아둔하면 아랫사람들이 고생 아닌가.”
모욕적인 언사가 이어지자 워맥 자작이 주먹을 더욱 불끈 쥐었다.
“통 사교계에서 뵙지 못해서 이리 달변가이신 줄은 처음 알았군요, 대공녀.”
다른 귀족들과는 달리 영지에 틀어박힌 키네미아에 대한 빈정거림이었다.
키네미아는 대수롭지 않다는 듯 어깨를 으쓱 들어 올렸다.
“이렇게라도 알게 되어 다행 아닌가. 이런 인연이 아니었으면 서로가 쉬이 말을 섞을 위치는 아니니까.”
이럴 때 아니면 언제 네가 나와 얘기나 해 보겠니? 키네미아는 신분제가 낳은 괴물 같은 미소를 띠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