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aming a Munchkin RAW novel - Chapter (93)
먼치킨 길들이기 93화
* * *
골렘 설명회가 끝난 이후, 키네미아는 이제 돌아가자며 칭얼대는 에이얀을 데리고 셰넌벨을 한 바퀴 돌아보았다.
셰넌벨 정비는 안정적으로 진행되는 중이었다. ……나름.
‘이걸 안정적으로 진행된다고 해도 되는 걸까.’
키네미아는 한 곳에 멈춰 서서 눈매를 좁혔다. 길을 뚫으려고 계획했던 작은 숲 앞에 선 건 인부가 아니라 2명의 마법사였다.
한 마법사가 지도를 보여 주며 손으로 가리키니, 고개를 끄덕인 다른 마법사가 시동어를 외웠다. 곧 원통형의 빛이 쏜살같이 숲을 뚫고 지나갔다.
찰나에 나타났던 빛이 사라지자 그 위에는 단정하게 정돈된 길이 생겨나 있었다.
“……?”
키네미아는 데구르륵 눈동자를 굴렸다.
여러모로 보나 저 마법사들은 셰넌벨에서 길을 뚫는 중인데-
‘대체 왜?’
그사이 인부들과 모험가들, 그리고 마을 사람들은 구경하듯 모여 서서 마법사들이 마법을 쓸 때마다 환호하며 박수까지 치고 있었다.
‘왜 저런 고급 인력들이 여기에 내려와서 도로를 깔고 있는 건데…….’
다른 곳에선 건물을 수리하고 강화 마법까지 걸어 주면서 마법사들이 복작거리는 가운데, 키네미아는 익숙한 얼굴을 발견했다.
‘쥬디스?!’
“쥬디스는 마력 기계 재설계로 바쁘다고 하지 않았어?”
저기 있는데? 키네미아가 그녀를 가리키자 에이얀은 모른 척 고개를 갸웃 기울였다.
“그러게. 널 모의 공성전에 끼워 넣었던 게 미안해서 자원 온 건 아닐까?”
저렇게 다 죽어 가는 얼굴로?!
“그럼 다른 마법사들은?”
“자원봉사?”
뻔뻔하게 대꾸한 에이얀이 목 안으로 웃었다.
‘왜 이렇게 대공 성으로 돌아가자고 칭얼대나 했더니.’
아무래도 이걸 보여 주고 싶지 않았던 모양이다.
“네가 시켰어?”
‘저들에게 대체 뭘 한 거니?’를 돌려 묻자 에이얀은 의중을 기민하게 파악한 후에 천연덕스럽게 답했다.
“부탁했지. 우리 친하거든.”
생글생글 웃은 그가 여봐란듯이 손을 흔들었다.
이를 마주하자 세상에서 에이얀과 제일 친하지 않은 마탑 소속 마법사들의 얼굴에서 핏기가 가셨다. 개중에서도 쥬디스는 거의 사시나무 떨 듯 떠는 중이었다.
흘겨봐도 매우 일방적인 관계로 보임에도 그들은 에이얀의 인사에 착실히 손을 마주 흔들어 주었다.
“쥬디스, 도와줘서 고마워요!”
키네미아는 애써 밝게 웃으며 손을 흔들었다.
‘이유야 어찌 되었든 간에 무척 유용해 보이니 모른 척하자.’
그때 손을 흔드는 키네미아에게로 베일과 가면을 쓴 크샨이 다가왔다.
‘역시 무슨 일을 벌였나 보네.’
워맥 자작이 무슨 짓을 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감시를 붙여 둔 참이었다.
‘얌전히 토벌하고 가리라고 생각하진 않았지만.’
키네미아는 크샨이 전하는 말을 들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알았어. 그쪽으로 안내해 줘.”
* * *
“으으…….”
누군가 몸을 거칠게 흔들자 워맥 자작의 부관 버나드는 서서히 눈을 뜨기 시작했다.
몸은 어딘가에 등을 기댄 채 밧줄에 묶여 있는 듯했고, 머리는 물먹은 솜처럼 무거웠다.
‘분명히 알을 깨고 있었는데…….’
워맥 자작의 명에 따라 마을로 마물을 보내기 위한 밑작업을 하고 있는 중이었다. 그런데 갑자기 목 뒤에 엄청난 통증이 일었고…….
그때, 가물거리는 시야로 여러 사람의 다리와 신발이 보였다. 좋지 않은 예감이 스쳤다.
‘설마!’
곧 거친 손이 우악스럽게 버나드의 턱을 잡고 들어 올렸다.
제 눈앞에는 언제 봐도 시선을 떼기 힘들 정도로 아름다운 소녀가 그를 차가운 눈으로 내려다보고 있었다.
버나드는 흐리멍덩한 정신을 깨우며 신음처럼 말했다.
“대공녀…….”
키네미아는 팔짱을 낀 채 고개를 모로 기울였다.
“네 주인은 창의성이 없는 거야, 날 바보로 아는 거야?”
날카로운 말에 버나드에게서 얼빠진 목소리가 튀어나왔다.
“예, 에?”
무슨 세기의 악당처럼 말하고 나가기에 엄청난 일이라도 벌일 줄 알았지.
나 참, 어이가 없네. 키네미아가 헛웃음을 흘렸다.
“고작 이 정도 수작을 부리는 거 보면 날 우습게 봤다고 기분 나빠 해야 하는 건가?”
혹시 무슨 짓을 벌일지 몰라 흑야를 붙여 두었더니, 마물들이 알 냄새를 맡고 마을로 침입하도록 얕은 수작을 부리고 있었다.
키네미아가 턱을 괸 채 그를 가만히 응시하자 버나드가 더듬더듬 입을 열었다.
“대, 대공녀, 저는…….”
“응, 말해 봐.”
친히 들어 주겠다는 듯 자애롭게 대꾸하니 그가 마른침을 삼키며 빠르게 머리를 굴렸다.
아직 마을에 무슨 일이 벌어지진 않았다. 그렇게 만들기 위해 꾸민 것일 뿐.
버나드는 기회를 잡기라도 한 듯, 얼굴을 단호히 굳혔다. 그에게는 잘하면 빠져나갈 수 있으리라는 믿음이 있었다.
“무언가 오해가 있으신 것 같습니다.”
“변명도 상황 봐서 먹히는 사람한테 해야지.”
그녀는 한숨까지 내쉬면서 그를 한심하다는 듯한 눈초리로 응시했다.
“감히 내 영지에 막무가내로 토벌을 와서, 마물들이 마을을 습격하도록 수를 쓰다 들켰으면 살려 달라는 말이 먼저 나와야 하는 게 아닌가.”
제기랄! 제 믿음이 단숨에 깨지자 욕설을 짓씹은 버나드가 넙죽 고개를 숙였다.
“사, 살려 주십시오! 대공녀!”
키네미아는 그를 물끄러미 보다가 물었다.
“그래서, 네 주인은 어디로 가고 있지?”
워맥 자작이 향한 곳은 익히 잘 알고 있었다만, 모두의 앞에서 이를 밝힐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저, 하, 한 번만 목숨만 살려 주신다면-”
“먼저 제대로 대답해야 그럴 마음이 들지.”
“예, 하겠습니다. 대답하겠습니다. 화, 황제 폐하의 명으로 고대 유물을 찾으러 가셨습니다.”
“황제 폐하께서?”
순간 키네미아가 고개를 갸우뚱 기울였다. 그럴 리가 없는데.
“뭔가 잘못 알고 있는 게 아닌가? 워맥 자작이 이번 토벌을 자청한 걸로 알고 있는데.”
원작에서 워맥 자작은 저택 지하에서 구전으로 내려오던 고대 유물의 행방이 적힌 퀴퀴한 서류를 발견한다. 이에 기회를 보다가 이번 토벌에 나서겠다 자처한 것이고.
그러자 버나드가 고개를 주억거렸다.
“맞습니다. 자작님께서 토벌을 자청하셨습니다.”
“그럼 폐하의 명으로 고대 유물을 찾으러 갔다는 건 뭐지?”
“그건, 황제 폐하께서 토벌을 허락하신 후에 따로 명을 내리셨다고…….”
버나드가 말을 흐렸다.
“그럼 저 워맥의 못난이는 날 모욕하러 토벌에 자청한 거고, 폐하의 명이 있기 전까진 고대 유물에 대해서 몰랐다고?”
“예, 그런 말씀은 없으셨습니다…….”
머릿속에서 원작의 책장을 넘기던 키네미아가 끙, 소리를 내며 미간을 좁혔다.
아무리 기억을 떠올려도 황제가 고대 유물에 관여했다는 구절은 나오지 않는다.
‘거짓말일까? 그렇지만 굳이 이런 거짓말을 할 이유가 없는데. 그게 아니라면 처음부터 이자에게 워맥 자작이 제대로 알려 주지 않았다든가.’
아니면. 그 둘도 아닌 다른 이유가 있다거나.
‘……곤란한데.’
키네미아는 입을 부루퉁하게 내밀었다. 전부터 목에 걸린 가시처럼 불유쾌하게 목을 콕콕 찔러 대던 것이 현실화되고 있는 기분이었다.
“그럼 고대 유물이 있는 곳이 어딘지는 알고 있어?”
그에 버나드가 고개를 연신 끄덕였다.
“예, 예. 저기 저곳입니다.”
그는 저 산 중턱에 있는 동굴이라고 손으로 가리켰다.
‘흠, 장소는 맞는 듯한데.’
허리를 펴고 선 키네미아가 에이얀에게 눈짓했다.
“에이얀, 나랑 같이 좀 가 줄래?”
에이얀은 산 중턱을 한 번 느른히 보다가 고개를 돌렸다.
“미아, 저 근방은 위험한데.”
“저희들이 가 보겠습니다.”
그때 뒤에서 지켜보고 있던 흑야가 나서자 그녀가 고개를 저었다.
“아니.”
위험해도 직접 가 봐야 했다. 워맥 자작이 결계를 건드리면 마물이 튀어나올 테고, 다른 사람을 보내게 되면 예기치 못한 희생이 생길지도 모르니까.
“너랑 가면 금방 다녀올 수 있잖아. 직접 가서 알아보고 싶은 게 있어.”
음, 에이얀이 목을 울리면서 키네미아를 내려다보았다.
에이얀의 침묵을 어떻게 생각했는지 키네미아가 눈을 굴렸다.
“……싫어?”
“음.”
그가 뜸을 들였다. 그러자 머뭇거리던 키네미아가 에이얀의 귀에 무언가를 속삭였다.
“가자.”
귓속말을 들은 에이얀은 묘한 미소를 지으며 키네미아의 손을 잡았다.
부루퉁한 표정으로 새빨개진 키네미아의 얼굴을 보며 흑야들이 의아한 듯 물음표를 띄웠다.
* * *
결계 속에서 오랫동안 잠들어 있던 그는 깜빡이며 눈을 떴다. 멀지 않은 곳에서 기다리고 기다리던 사람의 냄새가 풍겨 왔다.
세로로 가늘어진 동공이 어둠 저편의 입구를 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