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aming a Munchkin RAW novel - Chapter (94)
먼치킨 길들이기 94화
* * *
엄마가 살아계셨을 때, 때때로 그녀는 이렇게 말했다.
“활과 창이 날아들고, 그 수많은 위협에서 날 살아남게 만든 것은 9할이 감이었어. 네 감을 의심하지 마.”
키네미아는 그녀의 가르침을 잊지 않았다.
‘여기에 오기 전까지는 그랬지만…….’
제국을 연 용사가 제 검의 마지막 조각을 숨겨 두었다는 동굴.
그 안에서는 기묘한 냉기가 흘렀다. 키네미아는 찬 손끝을 매만지며 동굴 입구까지 다가섰다.
그때, 앞을 막아서듯 불투명한 막이 빛을 반사했다.
“가까이 다가가지 마, 미아.”
키네미아를 제 쪽으로 당긴 에이얀이 결계를 올려다보며 재차 입을 열었다.
“안에 뭔가 있으니까.”
있을 것이다. 그것도 용사가 고대 유물을 지키기 위해 남겨 둔 마물이.
마물의 심기를 건드리지 않으려면 그럴 능력을 가진 인물이 결계를 파훼해야 한다.
당연히 그런 능력은 원작 주인공이 가지고 있었고…….
‘그래, 내가 아니라 주인공이 가지고 있어야 한다고!’
키네미아는 날 파훼하라는 듯 서 있는 결계를 눈싸움을 하듯 노려보았다.
이내 끙, 소리를 낸 그녀가 손을 꼼지락거렸다.
불안한 감각이 머리부터 발끝까지 저릿저릿하게 맴돌았다.
‘이제 겨우 영주 노릇도 적응이 됐다고 생각했는데.’
어쩐지 이상했지. 원작만 그렇게 또렷하게, 다시 책을 읽는 것처럼 펴 볼 수 있다는 것부터가 자연스럽지 않았다. 다 알려 줄 테니 이렇게 따라 움직이라는 가이드라도 되는 것 같지 않은가.
‘지금 여기에 오게 된 것도…….’
종국에 키네미아가 이 동굴 앞까지 오게 된 것도, 마치 누군가가 이렇게 움직이라며 등을 떠민 것 같은 모양새였다.
‘으음.’
키네미아의 머릿속에 양팔 저울이 생겨났다. 저울의 양팔에는 최종 보스를 없애야 하는 험난한 주인공의 삶과 이제 그럭저럭 살 만해진 영주의 삶이 매달렸다.
오래 고민할 것도 없이 쿵, ‘청산에 살어리랏다.’를 읊는 평화로운 대공령의 영주에 무게가 쏠렸다.
무엇보다 그 원작 소설- 아니, 이제 소설인지 뭔지 확신할 수도 없는 그것은 항상 전개가 산으로 갔다. 주인공은 던전 뺑뺑이나 도는 놈이었다.
‘처음부터 알려 주려면 제대로 알려 줬어야 할 것 아니야!’
그러면 아주 잠깐쯤은 ‘용사 노릇도 경험해 볼 만하지.’라는 생각을 해 줄 수 있었을 텐데.
지금은 그저 비극적인 출생의 비밀에 직면한 기분이었다.
그렇게 키네미아의 기분이 나락으로 떨어지는 동안에도, 결계는 계속 빛을 반사하면서 눈을 현혹하는 중이었다.
‘그래, 주인공이야. 나는 내 인생의 주인공인걸!’
결국 현실에서 도피한 키네미아가 빙글 몸을 돌리자 에이얀이 고개를 갸우뚱 기울였다.
“돌아가려고?”
“응, 워맥 자작만 만나 보려고.”
이번 임무가 황제가 명한 것이 맞는지에 대해서 알아 둘 필요가 있었다.
에이얀은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한데 그때였다.
빙글 돌아선 키네미아의 앞에 보송보송한 털에 콩알같이 박힌 눈이 깜빡였다.
“……?!”
깜짝 놀라 뒷걸음질 치는 키네미아 앞에는 어느새 에이얀이 만든 방어 결계가 세워져 있었다.
‘웬 강아지?!’
……는 아닌가.
그건 강아지보다는 작은 늑대에 가까워 보였다. 회색 털, 커다란 귀에 새카만 양말을 입고 있는 듯한 늑대처럼 생긴 생물체.
고양이 정도의 크기인 그것은 종종걸음으로 다가와 앞발로 결계를 콕콕 찍었다.
‘뭐지, 이거……. 귀여운데.’
쪼그려 앉은 키네미아가 손을 내미니 늑대는 키네미아의 손에 강아지처럼 머리를 비볐다.
폭신폭신한 털에 즐거워하는데 에이얀이 그녀의 손을 치웠다.
“광견병 옮아.”
“……?!”
광견병을 알아들은 것인지 순간 그것의 동공이 세로로 찢어졌다. 새카맣고 반질반질한 단추 같던 눈이 금빛으로 물들었다. 이내 그것이 아주 매섭게 울부짖었다.
“컁!”
귀여워! 키네미아가 가슴을 부여잡았다.
흐물흐물해진 그녀가 다른 손을 들어 쓰다듬자 에이얀과 마물 사이에서 서로 으르렁거리는 듯한 시선이 오갔다.
“……그만해.”
쟤는 그렇다 쳐도 너는 사람이잖아. 키네미아가 에이얀의 소매를 잡아당겼다.
그때 늑대가 코로 키네미아의 다리께를 밀었다. 키네미아는 질질 밀려 결계 쪽을 향해 갔다.
“엥.”
뭐야. 얘 힘 엄청 센데.
이를 막은 것은 물론 에이얀이었다.
그는 키네미아를 덥석 안아 올린 후에 컁컁거리는 늑대를 물끄러미 내려다보았다.
“너, 역시 그거구나. 고대 유물을 지키는 마물.”
“컁!”
키네미아가 우울하게 중얼거리니 맞다고 대답하는 듯 늑대가 컁! 울었다.
원작에서는 엄청 거대한 마물이라고 표현됐었는데. 동굴 밖으로 나와서 작아진 걸까.
마물이 키네미아의 다리에 얼굴을 비볐다. 주인에게 귀여움을 받으려는 아이처럼.
“컁! 컁!”
빙글빙글 돌던 늑대는 꼬리를 흔들며 결계와 키네미아를 번갈아 보았다.
기대에 차 별처럼 반짝거리는 눈빛이 향하자 키네미아는 가슴을 콕콕 짓누르는 죄책감에 휩싸여 두 손에 얼굴을 묻었다.
‘세상에.’
이제는 귀여움으로 현혹하려는 건가!
‘함정. 이건 함정이다.’
키네미아가 마음을 가다듬는데 늑대가 왜 결계를 부수고 들어가지 않는지 의아하다는 듯 고개를 갸우뚱 기울였다.
그렇지만 얘는 정말 포켓몬같이 생겼는걸! 귀엽다고! 키네미아는 늪에 빠지는 기분으로 에이얀을 힐긋 응시했다.
“나보고 이걸 깨라는 것 같지?”
“미아.”
하지만 에이얀이 말리기도 전에 키네미아가 결계에 손을 댔다.
‘아니길 바라지만.’
후, 그녀가 깊게 숨을 내뱉었다. 마탑에서 쥬디스가 만든 마력 기계를 만졌을 때의 그 느낌처럼 힘을 불어넣자 이내 쨍그랑, 소리가 나며 결계가 부서져 내렸다.
‘맞네.’
제 짐작이 들어맞았음을 확인한 키네미아는 눈을 흐리게 떴다.
반면 어느새 키네미아를 제 품으로 끌어안은 에이얀은 부서져 내리는 결계를 가만히 바라보다 웃었다.
“우리 미아, 힘세네.”
키네미아는 에이얀의 품에서 빠져나온 뒤 저를 향해 빙긋 웃는 에이얀을 빤히 응시했다.
‘이걸 어떻게 설명하면 좋지.’
고심에 잠긴 키네미아가 결계가 부서진 동굴 쪽을 바라보려는 찰나.
우르르 몰려오는 발소리가 들려왔다.
“……대공녀?”
기사단을 이끌고 이제야 도착한 워맥 자작이었다.
“한발 늦었네, 경.”
키네미아가 빙긋 웃었다.
“여긴 어떻게…….”
뿌드득 이를 간 워맥 자작이 버나드를 중얼거리며 손을 들었다. 이에 기사들이 눈치를 보면서 검을 뽑아 들었다.
“버나드에게 어디까지 들으셨는지 모르겠습니다만, 그만 비켜 주시지요, 대공-”
그 순간, 워맥 자작의 혀가 굳어졌다.
“……!”
다른 기사들도 마찬가지였는지, 모두가 검을 빼 들고 굳은 채 서 있었다.
알 수 없는 힘에 식은땀을 흘리는 기사단을 에이얀은 전혀 신경 쓰지 않는 기색이었다. 그는 대신 명령을 기다리듯 키네미아를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었다. 그녀 앞에서 누군가를 죽이는 모습을 보이는 건 영 마뜩잖은 일이었으니.
“에이얀, 나 금방 다녀올 테니까 여기 좀 부탁해.”
순간 에이얀의 표정이 와락 구겨졌다.
“미아아…….”
“금방 온다니까.”
못마땅하다는 기색을 역력히 내보인 에이얀이 한숨을 내뱉었다. 이내 그가 팔을 들자 검은 안개로 된 까마귀가 만들어졌다. 날개짓을 하던 까마귀는 키네미아의 어깨에 앉았다.
에이얀은 키네미아의 손목을 잡아채고는 귓가에 속삭였다.
“아까 약속, 지키기야.”
키네미아가 난처한 얼굴로 그를 밀어냈다.
“……알았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