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aming a Munchkin RAW novel - Chapter (95)
먼치킨 길들이기 95화
* * *
에이얀은 동굴 안으로 들어가는 키네미아를 바라보며 입매를 쓸었다.
‘알고 있었나…….’
자신에게 특별한 힘이 있다는 걸.
부러 입을 다물고 있었건만, 근래 마탑에 오가서일지도 모르겠다. 마법사들이라면 어떻게든 키네미아에 대해 알게 됐을 테니까.
쯧, 그가 짜증스럽게 혀를 찼다.
그와 동시에 앞에 줄을 지어 몸이 굳어 있던 워맥 자작의 기사단이 전부 무릎을 꿇고 앉았다.
“……!”
그들은 몸이며 입이며 그 어느 것도 자유자재로 움직이지 않는 공포에 질려 동공을 좁혔다.
에이얀은 그들의 시선을 익숙하게 받아들였다. 괴물이든, 악마든, 멋대로 생각해도 상관없었다.
그렇지만 키네미아는 자신이 남들과 다르다는 걸 모르길 바랐는데.
* * *
아주 오래전, 용사는 대륙을 뒤덮었던 사악한 어둠을 봉인하고 제국을 세웠다.
그러나 봉인은 불완전했다. 어둠은 사람의 영혼에 달라붙어 몇 번이고 다시 태어날 터. 미래를 볼 수 있었던 용사는 그 불완전하게 봉인된 어둠을 부활시키려는 자가 나타날 것이라는 걸 예견했다.
이를 대비하기 위해서 그는 후대를 위해 제 능력을 모두 쏟아붓고 먼지가 되었다고 한다.
‘알디움 연대기’는 주인공이 부활한 어둠을 되찾으려는 최종 보스를 찾아 없애는 것이 메인 스토리였다.
주인공이 던전 뺑뺑이나 도는 바람에 결국 최종 보스가 누군지는 알 수 없게 됐지만.
‘그게 문제라는 거지…….’
누군지 찾아내기까지 해야 한다고?
‘……싫다.’
근데 원주인공은 어디 간 거야? 나보고 여기에 들어와 고대 유물을 가지게 만들어서 원주인공은 완전히 사라진 건가?
‘윽.’
떠넘길 사람도 없어지는 것 같다는 생각에 점점 나락으로 떨어지는 기분을 느끼며 키네미아가 동굴 안으로 깊이 들어갔다.
늑대는 앞장선 채로 꼬리를 살랑살랑 흔들었다.
‘기분 좋아 보이네…….’
그때, 동굴 내벽에 박힌 새하얀 수정이 공명하듯 웅, 웅, 소리를 냈다.
동굴 한가운데에는 빛나는 수정에 낡은 검이 박혀 있었다.
낡은 검은 녹슬고 듬성듬성 이가 빠져 있었으며, 몹시 풍화되어 제 본래 색을 알아보지 못할 정도였다.
그러나 단 하나. 검 손잡이에 박힌 보석만은 새것처럼 반짝였다.
늑대는 검에 앞발을 대고 코로 보석을 가리켰다.
“컁!”
키네미아는 보석을 향해 한 발자국 다가갔다.
‘왜 이렇게 돼 버린 걸까.’
키네미아의 꿈은 어디까지나 공허한 삶을 비관한 채로 최고급 소파에 앉아 최고급 와인을 들이켜면서 눈물 한 방울 글썽이는 삶이었다.
최고급 소파와 와인도 없는데 괜히 눈물을 글썽인 키네미아가 고대 유물을 쥐었다.
한데 손안으로 들어온 차갑고 단단한 보석의 감각을 느끼는 그 순간, 시야에 묘한 것이 들어와 박혔다.
검 옆에 놓인 찢어진 종이였다.
“……?”
키네미아는 의아한 얼굴로 종이를 주워 들었다. 종이 위에는 익숙한 하트 그림이 그려져 있었다.
‘이거, 왜 익숙하지?’
생각에 잠긴 키네미아가 미간을 좁혔다. 이 익숙한 하트가 어디에서 나왔는지 아무리 떠올려 봐도 그거밖에 없다.
지클린에게 정보를 샀을 적, 그가 수임비로 받아 갔던 바로 그 사인이 적힌 종이…….
“이게 대체 왜 여기…….”
복잡한 머리를 정리해 봤으나 나오는 답은 없었다. 끙, 소리를 낸 키네미아가 이내 종이를 구겨서는 휙 바닥에 내던졌다.
‘말려들지 말자. 말려들면 지는 거야.’
콩닥거리는 심장을 가다듬은 키네미아는 한 손으로 얼굴을 쓸었다.
‘일단 이건 갖고 있는 게 낫겠지.’
다른 손으로 쥔 보석에 시선이 닿았다.
어떤 이유로든 이걸 가지고 있어 하등 나쁠 건 없으니까.
‘됐어. 이제 끝.’
키네미아는 그저 제 할 일이나 열심히 할 생각이었다.
부활하는 어둠이고, 최종 보스고, 뭐고 나랑은 어떤 관계도 없으니까!
그렇게 생각을 정리하는데, 낑 소리를 내면서 늑대가 키네미아의 다리에 머리를 비볐다.
키네미아는 늑대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폭신폭신한 털이 손에 감겼다. 늑대는 까맣고 반질반질한 눈으로 키네미아를 애처롭게 바라보고 있었다.
얘가 또 귀엽게 양심을 콕콕 찌르네.
그렇지만 동굴로 들어와서 고대 유물을 줍는 일과 최종 보스를 물리쳐야 하는 일은 좀 많이 다르지…….
“이기적이라서 미안. 그렇지만 내가 할 일은 아닌 것 같아.”
이런 의무를 짊어져야 할 사람이 꼭 나여야 할 이유가 있던가? 글쎄. 곰곰이 생각해 봐도 키네미아에겐 그럴 동기가 없다. 피할 이유는 많아도.
“나 같은 예쁜 쓰레기 말고 다른 사람을 찾는 게 좋을 거야. 그럼 안녕.”
괜한 희망을 주는 것보다는 단호히 끊어 내는 게 나을 것이다.
늑대에게 담담히 말한 키네미아가 이윽고 몸을 돌려 동굴 밖을 빠져나갔다.
“컁!”
그녀의 뒤를 늑대가 졸졸 따랐다.
* * *
키네미아는 식은땀을 흘리며 꿇어앉아 있는 워맥 자작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눈알만 이리저리 굴리는 걸 보아하니, 혀가 굳어 아무 말도 할 수 없는 모양이었다.
“정말 황제 폐하께서 고대 유물을 찾아오라고 명령했나? 맞다면 눈을 한 번, 아니면 두 번 깜빡여.”
워맥 자작이 눈을 한 번 깜빡거렸다.
흐응, 키네미아가 입을 뾰족하게 세웠다.
순간 갖가지 가설들이 떠올랐다가 사라졌다.
에잇! 신경 쓰지 말자. 키네미아는 고개를 도리도리 저었다.
“에이얀, 혹시 이 사람들에게 정신계 마법을 쓸 수 있어?”
그녀가 조심스레 묻자 에이얀이 빙긋 웃으며 말했다.
“얼마든지.”
“……그럼 부탁할게.”
이내 워맥 자작은 동굴 안에서 아무것도 찾지 못했다는 세뇌를 받고 돌아갔다.
키네미아는 살짝 긴장한 손끝을 매만졌다.
‘과연 황제는 어떻게 반응할까.’
19장 데이트
세뇌당한 워맥 자작이 돌아간 지 벌써 일주일.
키네미아는 지클린에게서도, 황제에게서도 답신이 오길 기다리는 중이었다.
나흘은 잠도 못 자고 발소리만 들려도 맨발로 뛰쳐나갈 정도로 애가 탔지만, 5일째가 되면서부터 이제는 무소식이 희소식이라 생각하자면서 마음을 달래는 중이었다.
‘그래, 별일 없이 이렇게 평화롭게만 지내도 상관은 없지.’
혜민원은 오늘도 만원이었다.
“이것이 바로 마탑주께서도 애용하신다는 바로 그 위장약, 갈포스입니다.”
“오오! 마탑주께서요?”
“그럼요! 어제도 이걸 사 가시면서, 제 옆에 아주 고약한 악마가 달라붙어 있는 바람에 이제 이 약 없이는 살 수가 없다고 하셨죠.”
왁자지껄한 혜민원 안에서 마탑주를 팔아 약을 홍보하는 점원을 바라보던 키네미아는 빙글 뒤돌아 작업장을 통해 안으로 들어섰다.
그러자 한 연금술사가 그녀를 발견하고 환하게 웃음을 지었다.
“아기 선녀님, 오늘따라 더 어여쁘십니다.”
“……고마워.”
키네미아가 부끄러운 듯 수줍게 웃으며 볼을 붉혔다.
그때 연금술사 몇몇이 다가와 하얀 원피스를 입고 예쁘게 치장한 키네미아를 보며 탄성을 터트렸다.
평소에도 예쁜 키네미아였지만, 오늘은 준비를 단단히 하고 나온 듯 물이 올라 있었다.
“이거, 이렇게 아름다운 모습을 영상으로 남겨야 하는 거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에이, 농담도.”
키네미아는 애써 올라가려는 입꼬리를 내렸다.
흐뭇하게 웃던 연금술사들 중 하나가 별안간 물어 왔다.
“오늘 어디 가시려나 봅니다? 혹시 데이트?”
“어? 응?”
“아, 데이트 나가시는구나.”
키네미아는 입을 어물거렸다. 보탤 말이 없었다.
……데이트 맞으니까.
고대 유물을 찾으러 갔던 날, 키네미아가 에이얀에게 약속한 내용이었다.
이번 일만 내가 해 달라는 대로 해 주는 조건으로 데이트를 걸었으니까.
키네미아는 제 차림새를 훑었다. 차림이 좀 과했나? 아닌 것 같은데.
‘다들 알아차리니까 조금 창피하네.’
키네미아가 민망한 듯 시선을 내렸다.
‘데, 데이트가 뭐 별거인가! 성인인데 적당히 이 사람, 저 사람 만나 보고 하는 거지.’
한데 연금술사들은 누구와 가는지는 묻지도 않고 다들 알겠다는 듯 고개만 끄덕거렸다.
‘왜지?’
그러고 보니 대공 성의 사용인들도 전부 ‘너 데이트 가는구나?’라는 얼굴이었지, 상대가 누구인지에 대한 질문은 일절 하지 않았다.
‘궁금하지도 않나?’
키네미아가 의아해하는 동안, 연금술사들은 모두 한 사람을 떠올리고 있었다.
‘리카샤인가.’
‘리카샤구나.’
‘그 리카샤랑 데이트하시는구나.’
연금술사들 대부분이 신전의 혜민원 습격 당시, 광란의 살육을 펼치던 괴물이 키네미아가 나타나자마자 아픈 척 상처를 내면서 낑낑거리던 걸 목격한 당사자들이었다.
게다가 누군가가 키네미아를 3초 이상 쳐다보기만 해도 당장 그 눈 떼라는 듯 무시무시한 마력이 날아오는데, 당연히 그 리카샤겠지.
사실 그들로서는 모르려고 해야 모를 수가 없었다. 안타까운 일이었다.
‘아기 선녀님께서 결국 넘어가시네…….’
‘역시 얼굴인가?’
‘얼굴은 괜찮지.’
연금술사들이 키네미아에겐 들리지 않도록 서로 수군거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