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aming a Munchkin RAW novel - Chapter (96)
먼치킨 길들이기 96화
* * *
‘조금 이르긴 하네.’
새벽부터 일어나 준비해서 그런가.
아침잠도 많은 편인데, 오늘은 왜인지 해도 안 떴는데 눈부터 떠졌다.
‘에이얀은 아직 자나.’
키네미아는 혜민원 안쪽을 바라보다가 시계를 확인했다.
에이얀이 뭘 하고 싶느냐 묻기에, 상점가에서 쇼핑을 하자고 했다. 대공 성이나 혜민원 밖으로 나가려면 호위를 잔뜩 데리고 나가야 하는 신분인지라, 쇼핑 같은 건 번거로워서 좀처럼 나서 본 일이 없었다. 대부분 대공 성으로 배달되는 카탈로그를 보고 골랐지.
‘이 정도면 무난하지 않나.’
그보다 일단 데이트하자고 무작정 지르긴 했는데…….
‘그 시험이란 건 어떻게 하는 거지.’
으, 키네미아가 심란해하던 그때였다.
“요정님!”
“로우.”
“오늘 정말 정말 예쁘십니다.”
“고마워.”
그녀가 평소와는 달리 부끄러워하며 대답하자 로우가 의아한 듯 고개를 기울였다.
“고민이 있으신 얼굴이네요.”
그렇게 티가 나나. 키네미아는 손가락을 꼼지락거렸다.
“무슨 일이십니까?”
“별일 아닌데…….”
“제게는 말 못 할 일인가요?”
“음, 로우. 지금 내가 묻는 말, 무례한 질문이면 대답하지 않아도 돼.”
“뭐든지 물어보셔도 됩니다. 무례하다고 생각할 리가요.”
로우가 다정히 웃으며 말하니 키네미아가 큼 목을 가다듬고 물었다.
“……로우는 연애해 봤어?”
사실 이렇게 물으면서도 기대는 없었다. 평생 검만 잡았지, 연애 같은 건 안 해 봤을 것 같은 사람 아닌가.
그러나 그에게서는 의외의 대답이 튀어나왔다.
“14살부터 한 번도 쉰 적이 없습니다.”
……장난 아닌데? 박사 수준인데?
하기야 지금도 대공 성 사용인들한테 인기 많지. 혜민원에서도 지나갈 때마다 손님들이 넋을 놓고 쳐다보지. ‘혜민원 표범남’이라고 불리면서 알게 모르게 매출 향상에 일조하는 중이었다.
그런데 쉰 적이 없다는 건 지금도……? 누구랑?! 물어보는 건 예의가 아닌가.
키네미아는 일단 해일처럼 밀려오는 질문을 미뤄 둔 채 본론을 꺼냈다.
“그, 그럼 말이야. 이건 내 친구 얘기인데.”
키네미아가 친구를 들먹이자 근처에 서 있던 연금술사들에게서 탄식이 터져 나왔다. 그러나 로우는 진지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예.”
“A라는 남자가 내 친구를 좋아해. 고백도 받았어.”
연금술사들이 모두 한마음으로 ‘아기 선녀님께서 고백을 받으셨구나.’라고 생각했다.
“아, 친구분께서 그것 때문에 고민이시군요.”
개중에 알아채지 못한 이는 로우뿐이었다.
“그 친구, 부모님이 안타깝게 헤어지셨거든. 그것 때문에 아버지가 많이 힘들어하셨어. 그래서 친구도 아직 사랑을 시작하는 게 무서운 것 같아.”
“흠.”
로우가 고개를 끄덕였다.
“친구가 그걸 설명하면서 거절하려고 했더니 A가 말하길, 그러면 나랑 시험을 해 보자고 한 거지.”
“그런 개수작을…….”
가만히 듣고 있던 연금술사가 신음처럼 말했다.
개수작?! 키네미아가 귀를 쫑긋 세웠다. 그러자 로우가 계속 말씀하시라며 키네미아의 시선을 돌렸다.
“어, 그래서 시험을 해 보려고 하는데, 그 친구가 대체 어떻게 해야 하는 거냐 물어보더라고…….”
그녀가 눈치를 보며 말을 흐리니 로우가 고개를 갸웃 기울였다.
“시험이요? A를 좋아할 수 있을지?”
“응응.”
14살부터 한 번도 연애를 쉬어 본 적이 없던 베테랑 로우는 음, 신음성을 흘렸다.
“그거야 당연히-”
“당연히?”
“스킨십이죠.”
“……?!”
새빨갛게 달아오른 키네미아가 화들짝 놀라 어깨를 꿈틀거렸다.
“왜? 갑자기 왜?”
“그게 연인과 친구의 다른 점일 테니까요. 손을 잡을 수 있는지, 안을 수 있는지, 입을 맞출 수 있는지, 그 이상으로는-”
그가 대수롭지 않게 말을 잇는 동안 키네미아는 사색이 되기 시작했다. 당황한 연금술사들이 빠르게 다가와 키네미아의 귀를 막았다.
“아기 선녀님, 괜찮습니다. 급히 생각하지 마세요.”
“예. 천천히 알아 가는 것부터 시작하는 거죠.”
그들이 키네미아를 토닥거렸다.
“내, 내 얘기가 아니라 친구 얘기야.”
키네미아의 말에 연금술사들은 측은한 눈길로 ‘그러셨군요.’라고 답했다.
안 믿어?!
너무 많이 오픈했나. 키네미아가 눈동자를 떨었다.
아니, 그보다 손잡기나 안는 것 정도는 그 전에도 했는데.
대부분 장난이긴 했지만.
“……안는 것까지는 되는데. 나랑 로우나 오라버니도 그 정도는 하잖아.”
생각에 잠겼던 키네미아가 중얼거렸다. 은근 치대는 성격이라 친한 사람들과 포옹하는 걸 꺼리지 않는 편이었다.
이에 ‘그렇군요.’ 하고 생각에 잠겼던 로우가 대꾸했다.
“그럼 그 이상을 해 보라고 하세요.”
“엥. 그 이상?”
그가 유순하게 웃으며 말을 이었다.
“예, 키스부터.”
키스으? 키네미아는 혼란스러운 얼굴로 입을 벌렸다.
그러자 연금술사들이 다시 키네미아를 토닥였다.
“아기 선녀님, 심호흡하세요.”
“흘려들으셔도 돼요. 저런 건 다 애먼 소리입죠.”
연금술사들이 입조심 좀 하라고 눈치를 주었지만 로우는 홀로 물음표를 띄울 뿐이었다.
결국 그들의 신호를 전혀 알아차리지 못한 로우가 쐐기를 박듯 말했다.
“그게 제일 확실하다고 친구분께 전해 주세요.”
“……!”
키네미아가 눈을 동그랗게 떴고, 연금술사들이 벽을 쳤다.
로우의 폭주를 막을 만한 쉔 티엔이 보이지 않는다. 평소 같으면 득달같이 따라와서, 사내새끼들은 눈만 마주쳐도 결혼할 생각을 한다면서 철벽 방어를 했을 텐데.
이내 한 연금술사가 호통을 쳤다.
“이럴 때 쉔 티엔 님은 어디 가신 거야!”
“쉔 티엔 님께서는 술 연못 때문에 가출을…….”
“……아, 참. 그랬지.”
키네미아가 재차 놀란 표정으로 물었다.
“오라버니가 가출하셨어?”
그 나이에? 그 위치에?
“예, 간밤에 로우 님께서 술 연못을 없애시는 바람에 조금 토라지셨나 봅니다. 찾지 말라고 쪽지를 남기셨습니다요.”
그는 우리 애가 모자라 송구스럽다는 듯 설명했다.
이에 로우가 유순히 웃었다.
“걱정 마십시오, 요정님. 술 떨어질 때 되면 알아서 돌아올 테니.”
연금술사들이 다들 고개를 끄덕였다. 알코올 중독자를 향한 냉랭한 시선에 키네미아는 남몰래 마음 아파했다.
그렇게 이야기를 마쳤을 때였다.
‘이제 슬슬 일어났으려나.’
키네미아는 시계를 확인하다가 에이얀의 방으로 향했다.
* * *
한편, 울프만과 벤자민은 제 앞에 앉은 에이얀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에이얀은 짜증스러운 얼굴을 감추지 못하는 중이었다. 평소에도 살가운 성격은 아니지만, 오늘따라 어찌나 까칠하고 사납게 구는지. 마력을 갈무리하지 않아서 다른 마법사들은 전부 멀리 피해 있는 상태였다.
“…….”
벤자민이 위장약을 건네자 울프만이 받아 쪽 빨아들였다.
“표정 풀거라. 다 네가 자초한 일이 아니냐. 그러니까 마법사들을 왜 마을 정비에 다 동원해. 태반이 앓아누웠잖느냐.”
에이얀이 긴급 호출당한 이유는 다 그 때문이었다. 상급 마법사들이 모자라서.
에이얀은 키네미아가 밤낮없이 영지 걱정을 하는 게 불쌍하지도 않느냐면서 마법사들을 골고루 부려 먹어 댔다. 가엾은 마법사들은 에친놈의 협박 어린 부탁을 거절할 수가 없었다.
게다가 그에게 차출된 마법사들은 전부 모의 공성전에서 키네미아를 보고 기술 개발팀 소속으로 들어온 놈들이었다. 하나하나 기억해 두고 있었던 모양이다.
‘무서운 놈.’
그러나 에이얀은 전혀 가책을 느끼지 않는다는 얼굴로 말했다.
“고작 그 정도에 앓아누울 정도로 마법사들이 쓸모없는 게 제 탓입니까?”
뻔뻔한 낯짝에 뻔뻔한 대꾸를 듣자 방금 먹은 위장약이 넘어올 것 같아 울프만은 가슴을 퍽퍽 쳤다.
며칠 쉬면 마법사들의 마력은 복원될 테지만, 곤란해진 이유는 심상치 않은 제국 내 상황 탓이었다.
얼마 전부터 사령술사들이 곳곳에 나타난다 싶었는데, 제국 내에서 일제히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사령술은 금술이었고, 이를 배운 자들은 보통 질이 나쁜 범죄자들이었다.
‘대개 사령술사들은 보통 점조직으로 움직일진대.’
누군가 계획적으로 불렀다고밖에는 설명되지 않는 상황이었다.
마탑에서는 의뢰를 마법사들의 재량에 맡기는 편이지만, 대륙 내 이상한 흐름이 있을 때는 의뢰가 없어도 자체적으로 주의 깊게 살피는 편이었다.
그리고 또 걸리는 것이 한 가지가 남아 있었다.
대부분의 사령술사들이 이제는 사라진 왕국이 있던 곳에서 나타나고 있었다. 그곳에서 무언가를 찾는 것처럼.
울프만은 피아노를 치듯 책상 상판을 두드리다가 말했다.
“하여간, 며칠간은 제국 내에 사역마들을 풀어 사령술사들의 동태를 살펴야겠다.”
“그렇게 하겠습니다.”
제국 내에 사역마를 푸는 것으로 울프만의 용건이 끝나자 에이얀은 냉큼 대답했다.
“……?”
손쉬운 대답에 의아해하던 울프만이 돌연 화제를 바꾸었다.
“한데 네놈은 오늘 꼴이 그게 뭐냐.”
“제 꼴이 뭐냐니요.”
울프만은 긴 다리를 꼬고 방만하게 앉아 있는 에이얀을 위아래로 훑었다.
평소에도 숫제 악마같이 눈을 홀리는 외모긴 했다만-
“왜인지…… 짜증 나게 잘생겼구나.”
오늘따라 얼굴로 염병한다는 느낌이 들어 울프만이 조용히 중얼거렸다.
그에 에이얀은 입꼬리를 비스듬히 끌어 올렸다.
“스승님께서 그리 말씀해 주시니 자신이 생기네요.”
“……?”
“그럼 저는 이만.”
“뭐?”
“미아와 데이트가 있어서요.”
“……!”
순간 놀란 울프만이 벌떡 일어섰다.
“사역마는 바로 풀도록 하겠습니다.”
울프만이 만류하기 전에 에이얀은 혜민원의 제 방으로 곧장 이동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