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aming a Munchkin RAW novel - Chapter (98)
먼치킨 길들이기 98화
둘의 시선이 잠시간 마주쳤다. 에이얀은 나름의 생각에 빠진 채였고, 키네미아는 불안한 기색을 감추지 못한 채로 기묘한 침묵이 이어졌다.
“아니야, 싫으면 됐-”
“아니.”
에이얀이 키네미아의 말을 막듯 말했다.
“그럴 리 없잖아.”
무르지 못하게 하기 위함인지 키네미아의 손목까지 잡은 그는 더 이상의 군말 없이 눈을 감았다.
잡힌 손목을 보던 키네미아가 고개를 들어 그를 올려다보았다. 미려한 얼굴에 기다랗고 촘촘한 속눈썹이 내려앉아 있었다. 오목조목 뜯어봐도 흠이 없는 얼굴이다.
‘사실 이 얼굴에 홀린 건 아닐까.’
가능성이 높을지도. 아빠의 얼굴에 한눈에 반했던 엄마의 피가 나한테도 흐를 테니까.
‘그래도 그저 그 이유만으로 좋아지진 않겠지.’
키네미아가 그와의 거리를 재고는 한 발자국 다가갔다. 그러곤 제 심장께에 손을 올렸다. 더 이상 모른 척할 수 없을 정도로 심장이 세차게 뛰고 있어서 어떤 방식으로든 확인하고 싶었다.
하지만-
‘……높아.’
키네미아는 에이얀의 어깨에 손을 올리고 발꿈치를 들어 올려 서로의 코가 맞부딪힐 정도로 다가갔다.
잠시 동안 긴장한 숨결이 오갔다. 긴장한 속눈썹이 파르르 떨렸다.
이내 마음을 굳힌 키네미아가 눈을 질끈 감았다.
잠깐 스친 것처럼 입술이 닿았다가 떨어졌다.
‘해, 했다!’
비록 처음 마음먹은 것처럼은 아니지만!
그때 손목을 쥔 에이얀의 손에 힘이 들어갔다. 화들짝 놀란 키네미아가 몸을 물리려다 반짝 뜬 새카만 눈동자와 마주쳤다.
“……!”
흠칫한 키네미아는 굳어 있는 에이얀에게 변명하듯 말했다.
“그때…… 시험, 해도 된대서.”
심장이 무서울 정도로 뛰었고, 얼굴에는 피가 쏠렸다.
걱정했던 것처럼 불쾌하지도, 무섭지도 않았고.
“해도 돼.”
한숨처럼 웃음을 내뱉은 그가 쥐고 있던 키네미아의 손목을 들었다. 그러고는 손바닥에 얼굴을 묻었다.
“싫어졌어?”
“……아니.”
작은 목소리로 나온 대답에 에이얀이 작게 소리 내어 웃었다. 우물쭈물하는 키네미아의 얼굴에 머릿속이 아찔했다.
다행이라고 해야 할지, 애가 타 괴롭다고 해야 할지…….
에이얀은 자그마한 손을 만지작거리며 물었다.
“그럼 다음 시험은 언제야?”
“다, 다음 시험?”
“지금?”
“아니!”
새빨갛게 달아오른 키네미아가 자유로운 쪽의 손을 내저었다.
“……생각해 보고.”
고개를 숙여 얼굴을 숨긴 그녀가 우물거렸다.
“빨리 생각했으면 좋겠다.”
이젠 정말 참기 힘들어졌거든. 눈을 내리뜬 그가 키네미아에겐 들리지 않게 조용히 중얼거렸다.
* * *
“잘 와 주었네.”
남자는 웃으며 곧장 사령술사에게로 다가갔다. 사령술사는 몸 둘 바를 모르고 고개를 깊게 숙였다.
“됐네. 인사는 생략하고, 이게 그 구울인가?”
“그렇습니다.”
사령술사에 의해 되살아난 시체, 구울.
오래전에 죽은 시체라지만 비교적 온전한 모습을 갖추고 있는 구울에게서는 흙이 툭, 툭, 떨어져 내렸다.
남자는 바닥에 떨어지는 흙을 보며 미간을 찌푸렸다.
“뭐, 예상보다는 덜 끔찍한 몰골이군. 청소만 깨끗이 하면 되겠어. 그보다 마법사들의 사역마에게 들키지는 않았겠지?”
사령술사를 모은 게 자신이란 것을 마탑에서 알아차렸다가는 괜히 골치 아픈 일로 번지게 될 터였다.
“예. 흔적은 완벽히 지웠습니다.”
남자의 옆에 서 있던 주술사가 고개를 숙였다.
“그 말에 책임을 질 수 있어야 할 텐데 말이지.”
눈을 가늘게 뜬 남자가 떠보듯 이야기하자 주술사가 어깨를 움찔 떨었다. 제 앞의 남자가 얼마나 잔인해질 수 있는지 익히 알고 있었기 때문에.
“정말입니다. 믿어 주십시오.”
그러자 남자가 빙긋이 웃었다. 그는 믿겠다고 말하면서 구울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자, 이제 말해 봐. 너희 왕국을 멸망시킨 게 대체 누구인가?”
“……들.”
“뭐?”
“……드을.”
“하, 구울이란 건 원래 이렇게 답답하게 말하는 건가?”
“오랫동안 잠들어 있다가 깨어난 시체이기 때문에…….”
사령술사가 면목이 없다는 듯 고개를 조아렸다.
“나 참. 이번에도 허탕이라면 내 기분이 과히 좋지는 않을 것 같은데 말이야.”
남자는 지금까지 대륙 내 모든 사령술사를 모으는 데에 큰 힘을 쏟았다.
워낙 질이 좋지 않은 자들이라 곱게 말을 따르지 않고 말썽을 피우는 바람에 결국 마탑의 시선까지 끌게 됐으니, 그는 제법 예민해진 상태였다.
“저, 정말입니다!”
그러는 와중에도 구울은 줄곧 입을 뻐끔거렸다. 이를 눈치챈 남자가 입술에 검지를 댔다.
“쉿, 이제 조금 들릴 것 같군.”
띄엄띄엄, 쉰 목소리가 들려왔다.
“들. ……내, ……아들, 이.”
“……아들?”
간신히 아들이라는 단어를 알아들은 남자가 눈살을 찌푸렸다.
“나를, ……왕국을. 아들, 이.”
하! 하하! 맙소사! 아들? 눈을 번뜩인 남자가 웃음을 내뱉었다.
그의 웃음에 사령술사와 주술사가 안도의 한숨을 내뱉었다.
그는 희열에 찬 목소리로 물었다.
“그래, 네 아들이란 자의 이름은?”
순간 구울의 새카만 눈동자가 남자에게로 굴러갔다.
문득, 남자마저 섬뜩함을 느낄 정도로 소름 끼치는 목소리가 정확히 흘러나왔다.
“에이얀, 크로츠.”
20장 수도로
사교 활동의 일환으로 살롱에 모인 이들은 저마다 인사를 나누며 술잔을 건넸다.
혹자는 그들을 ‘제국을 움직이는 건 자신들이라는 자부심에 빠진 귀족들의 모임’이라 부르기도 했는데, 정작 여기에 속한 이들은 그런 비아냥 섞인 수식어를 자랑스러워했다.
그러한 그들의 입에 근래 제일 자주 오르내리는 건, 물론 리온 대공녀에 대한 이야기였다.
그들이 한참 워맥 자작이 친히 영지로 내려가 그녀에게 모욕을 주었다는 이야기를 떠들어 대던 중이었다.
“워맥 자작은 소문의 그걸 찾았답니까?”
“듣기로는 허탕을 치고 왔다던데요.”
“쯧쯧, 그렇게 으스대더니…….”
허링 후작이 혀를 찼다. 무엇인지 알려 주었다면 제가 흔쾌히 도울 수도 있었을 것을. 멍청한 놈.
“무슨 일인지 수도로 온 이후로 정신이 오락가락한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흐음, 허링 후작은 목을 울리며 고개를 주억거렸다.
그때 귀족들의 화제가 다른 곳으로 돌아갔다.
“대공녀가 또 새로운 걸 준비하고 있다는 소문이던데.”
“또 말입니까? 이번에는 뭘 하려는지…….”
허링 후작이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이 자리의 귀족들 대부분이 그와 같은 감정을 느끼고 있으리라.
굳이 리온에 대한 악감정이 아니더라도, 분명 자신들보다 낮은 위치에 있었던 리온이 그들을 추월하기 시작하자 느껴지는 조급함이나, 수완 좋은 어린 소녀에 대한 시기심이 고개를 들고 있을 터였다.
줄곧 대공녀에 대한 화제가 끊임이 없는 것부터가 그에 대한 방증일 것이다.
허링 후작은 술을 마시며 빈정대듯 말했다.
“젊음이 좋긴 한가 봅니다. 지치지도 않고 이것저것 잘도 시도하는 걸 보면.”
“지금까지 모아 놓은 재물을 보세요. 이번 한 번쯤은 망해도 그만이라는 생각 아니겠습니까.”
한동안 시기심에 가득 찬 말들이 오갔다.
“그도 그렇겠지요. 돈이 있는데 사업도 망해 보면 그만, 작위야 없어도 그만 아니겠습니까.”
작위 얘기가 나오자 곳곳에서 와르르 웃음이 터져 나왔다.
대공녀는 얼마 전, 황제의 명을 받은 워맥 자작에게 모욕까지 받았다.
다른 이들 같았으면 작위를 받기 위해 사교계를 드나들면서 제 편을 만들고, 황제에게 간이고 쓸개고 다 내준다 약속했을 텐데.
모르긴 몰라도 아마 황제조차 이를 바라고 있을 터였다. 작위를 인질로 잡고 대공녀에게서 무언가를 받을 수 있길 기대하면서.
그러나 대공녀는 내내 무슨 생각인지 영지에만 틀어박힌 채였다.
“한데 그 작위 말입니다. 혹시 그 얘기 들으셨습니까? 폐하께서 대공녀의 작위 승계를 준비한다는 소문이요.”
“설마요. 보나 마나 뜬소문 아니겠습니까. 폐하께서 ‘쭉 보아하니 네가 참으로 영주답다.’면서 작위를 치하할 분은 아니시잖습니까.”
수도의 대귀족들은 황제가 어떤 성향을 가진지 잘 알고 있었다. 그는 영악하다고 표현하는 것이 딱 어울리는 인물이었다.
일견 제국의 황제라기에는 수더분해 보이기도 하지만, 그는 의심이 많고 끝없이 사람을 시험하려 들었다.
그런 황제가 자신이 가진 패를 쉽게 내놓을 리가 없다는 것이 그들의 중론이었다.
“글쎄요. 혹시 모르는 일이지요. 갑작스레 마음이 바뀌었을지.”
“그렇다 해도 정도가 있는 법이지요.”
허링 후작도 그 말에 내심 동의했다. 정도가 있는 법이지.
그때 귀족들 사이에서 불쑥 나타난 누군가가 허링 후작에게 넌지시 이야기를 건넸다.
“그런데 말입니다. 대공녀도 참 괘씸하지 않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