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aming the Villainess RAW - Chapter (153)
EP.154)국면 # 7
154 – 새로운 국면 # 7
엘가와 밤에 편지를 함께 읽었던 날로부터 며칠이 지난 날.
그러니까 아이라가 풍차의 기사 베르도나스와 승급전을 벌이고, 또 주인공 파티의 일행인 사냥꾼에게 피습을 당했던 날로부터 며칠 후.
나는 재판의 증인으로 참가하게 됐다.
“대륙의 현자 회의 의장인 나 하이낙스의 주관 하에, 앙그마르 국왕 피격 사건에 대한 제 2회 공식 재판을 개회하도록 하겠소.”
한 나라의 국왕.
그것도 앙그마르 정도 되는 대국의 여왕의 습격을 받았다는 것은 당사자가 용서하였다고 하더라도 그냥 무시하고 넘어갈 수 있는 사건이 아니었으니까.
말하자면 로마제국의 황제가 피격당한 것이니 당연하다면 당연한 일이다. 미국의 대통령이 총탄에 노려졌다고 표현해도 좋겠지.
그리하여 빌런 사냥꾼 파티의 징계에 대한 논의가 활발하게 이루어진 결과.
대륙에서도 현명하다고 소문난 현자회는 이러한 결론을 내린 것 같았다.
“히히, 사형!!!”
검은 마법사의 이야기에 강당에서 이야기의 행방을 주시하고 있던 모두가 일제히 술렁거리기 시작했다.
━사형이래.
━역시 왕족을 건드린 죄는 덮을 수가 없나보구나.
━당연한 일이지. 님프 사탕 뺏어먹은 것만으로도 징역 사는 시대에…!
다만 하얀 고깔모자의 마법사 하이낙스는 고개를 저으며 검은 마법사 펠토를 자리에 앉힐 뿐이었다.
“펠토 경. 아직 판결이 내려지지 않았다네. 자리에 앉도록 하게.”
“히히, 오줌 발사!
“어허 펠토 경, 지금 신성한 재판장에서 무슨 짓을 하는 겐가?”
검은 마법사 펠토는 6위계를 넘어서며 머리가 맛이 간 남자였다.
그의 입에서 나오는 이야기는 온통 부정적이고 음습하며 끔찍한 이야기와 단어들의 나열뿐이라고 하던가.
“다만. 이번에 관해서는 펠토 경의 의견이 옳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드는군. 고장 나 멈춰버린 시계도 하루 두 번은 맞는 법이지.”
현자회의 의장 하이낙스는 오랜만에 펠토 경의 이야기를 긍정해준 것 같았다.
“유구한 전통과 역사가 깊은 앙그마르, 그 군주이자 마법학회의 최고회원 및 서부의 황야와 북부의 대수림 그리고 동부의 험준한 산 그리고 남부 평야의 지배자인 아이라 폰 타란테라─.”
무언가를 좔좔 읊은 원로 마법사가 강당에 빼곡이 들어선 좌중들을 한 차례 바라봤다.
정작 증인 겸 원고 석에 앉아있는 아이라는 심드렁하게 자신의 손톱 끝을 바라보고 있다.
“태오야, 이 재판은 언제까지 진행되는 거니?”
자신이 이 재판의 주인공이나 마찬가지인데 이렇게나 무신경하다니.
“곧 끝날 것 같습니다.”
“오늘 점심은 엘가와 함께 약속이 있는데 말이다. 어서 끝났으면 좋겠구나.”
다행인지 불행인지 이렇게나 가벼운 대화를 듣지 못한 하이낙스가 다시 입을 연다.
“타란테라 여왕을 향해 쏘아낸 화살의 죄는 무겁다. 이는 국가와 규율을 향한 야만적인 도발 행위. 따라서 극형에 처해져야하는 것이 옳다. 그러나-.”
그러나.
그러나, 하지만 등의 접속부사 뒤에 나오는 말이 진짜라는 걸 나는 잘 안다.
그때 예쁘게 손질된 자신의 손톱 끝을 바라보고 있던 아이라가 옆 자리에 앉아 있는 나를 향해 또 물었다.
“태오야.”
“네. 이 재판에 대해 하실 말씀이 있다고 하이낙스에게 전할까요?”
“아니. 그럴 필요 없다. 태오 너는 저들이 어떠한 판결을 받을 것이라고 생각하느냐?”
“판결이라면….”
극형에 처해질 것이 옳다고 했다만. 그러나-라는 말이 붙은 이상 무언가 자비로운 처사가 주인공인 사냥꾼에게 처해지지 않을까.
아이라가 이 사건을 가볍게 넘어가기로 했다는 것이 아마 죄의 처벌을 크게 줄여주는 요인이 되리라.
다만.
그럼에도 죄에는 항상 대가가 따라야 한다.
행동에는 책임이 있어야 하는 법이니까.
“…….”
나는 비어있는 피고석의 자리를 바라봤다.
여왕을 공격할 만큼 통제가 되지 않는 사냥꾼은 지금 아크에서 엄중히 감시되는 지하 감옥에 갇혀 있고.
그 대리인이라고 볼 수 있는 파티원-여사제 미리암이 그 자리를 대신하고 있는데.
그녀는 몹시도 불만과 불평이 가득해 보이는 얼굴을 하고 있었다.
자신이 지은 죄도 아닌 일에 재판에 끌려와서 사람들에게 손가락질 받고 있으니, 당연히 미리암의 억울하겠지.
하지만 파티원의 죄는 때로 자신의 죄가 되기도 한다. 주인공 파티는 일심동체니까.
“태오야, 그 사내가 어떤 형벌을 받게 될 것이라 생각하니?”
아이라의 재촉에 나는 여러 잡생각에서 빠져나왔다. 그리고는 내가 추측하고 있는 소신을 적당히 말해주기로 했다.
“제가 봤을 때는 아마도 장벽행 정도 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흐응, 과연 장벽이구나.”
그림자 군세를 막아내고 있는 거대한 장벽. 그곳으로 향한다는 것은 곧 죽는다는 것과 다를 바가 없지만.
그래도 사형은 아니다.
결국 사형보다는 인도적이나 결국 사형과 다를 바 없는 판결이 바로 장벽행인데. 그래도 내가 직접 사형 판결을 내렸다-라는 찝찝함은 없어서 나도 종종 써먹곤 했다.
“피고인의 신분과 재산을 몰수하고 장벽행에 처한다-!”
봐. 역시 그렇잖아.
그에 사냥꾼 파티의 사제 미리암이 크게 반발했다.
“현자 님, 죽으라는 말과 다를 바 없지 않나요? 장벽행이라니! 너무 가혹한 처사에요! 판결을 물러주실 수는 없나요?”
“판결은 무를 수 없다네, 시스터 미리암.”
“그렇다면 결투재판을 신청할 수는 있을 까요? 결투재판은 신께서 내려주신 정당한 권리니까!”
━결투재판?
━정말로?
미리암의 이야기에 사람들이 저마다 얼굴을 바라보며 한 마디씩 술렁였다.
결투재판은 재판이 성립되기 위한 증거가 부족하거나 혹 부당함이 있을 때 피고나 원고 측에서 제안하는 재판 방식이다.
그 내용은 피고와 원고가 서로 직접 싸우거나 아니면 대전사를 고용해 싸우게 만드는 것이다. 결투에서 승리한 측이 재판에서도 승리한다.
나도 궁정에서 일하며 몇 번 봤는데 무척 무식한 방식이었다.
극악한 죄를 지은 사람이 강한 용병을 구매했다는 이유만으로 무죄를 받을 수 있다니.
유전무죄, 무전유죄를 극대화 시켜서 앙그마르 국내정세를 혼란스럽게 만드는 원흉 중 하나가 결투재판이었다고 단언할 수 있을 정도다.
그래서 앙그마르에서는 결투재판을 금지시키는 법안을 통과시켰지만. 이게 또 의외로 또 인기가 좋아서 도무지 없어지질 않았다.
덕분에 나는 결투재판의 대전사로 일하는 용병들과 돈 걸기를 좋아하는 귀족들에게 욕을 왕창 먹었던가.
━결투재판이라니. 이게 얼마만이야?
━그거 재밌겠네. 그래, 재판은 이래야지.
━싸움이야?
“정숙하시오, 정숙.”
망치를 탕탕 내려친 하이낙스. 그가 아이라를 바라본다.
물론 아이라는 자신의 손끝만을 바라보고 있었기 때문에 그 사실을 알 리가 없었다. 그래서 내가 대신 아이라를 향해 말해주었다.
“아이라 님. 상대의 변호인 측에서 결투재판을 요구하는데. 어떻게 하실 겁니까? 거절 할까요?”
“결투재판? 그거 정말 재미있겠구나.”
그러자 방금까지 자리에 따분하게 앉아 있던 아이라가 처음으로 흥미를 보이는 듯했다. 아이라에게는 사실과 결과보다 본인의 흥미가 더 중요한 것이겠지.
아이라가 졸음이 가신 눈빛으로 주변을 바라봤다.
“누구와 누가 싸우는 거지?”
아니, 네 재판이잖아.
다만 그런 이야기는 하지 않고 나는 침착하게 대답했다.
“글쎄요. 아이라 여왕님의 재판이니 아이라 여왕님께서 결정해주셔야하지 않겠습니까?”
재판의 당사자끼리 직접 싸우는 방법도 많지만. 아무래도 아이라는 높은 왕족. 그러니 대전사를 내세우는 것이 일반적일 터.
아이라의 대전사가 될 만한 사람이 누구려나.
설마, 나를 지목하진 않겠지.
내가 그런 느낌으로 살짝 긴장감을 느낄 즘이었다.
“좋다. 결투 재판을 승낙하도록 하지…!”
아이라가 사람들을 향해 커다랗게 소리쳤다. 그러자 여기저기서 환호가 터져 나왔다.
* * *
“방금 다 보고 있었어. 결투재판이라니. 재밌게 됐잖아.”
재판이 끝난 후 점심시간.
금 등급 이상의 생도들만이 이용할 수 있는 고급 뷔페에 앉아 식사하는 아이라에게 엘가가 말을 걸어왔다.
엘가의 손에는 야채가 잔뜩 올려 놓여 있었는데. 왜 야채만 골랐는지 모르겠다. 초식동물인가.
“아이라, 대전사로 누굴 지목하려고? 누구 생각해 놓은 사람은 있냐? 설마 직접 싸우려는 건 아니겠지? 뭣 하면 내가 싸워줘도 괜찮은데.”
호전적인 엘가는 결투라는 이름에 몸이 근질근질한 듯했다. 하지만 토끼처럼 당근을 먹고 있던 아이라는 그저 “흐응-.”하고 긴 콧소리를 낼 뿐이다.
“아직 생각 안 해 봤냐?”
엘가의 재촉에 아이라는 입에 오물거리던 당근을 삼킨 후에 이야기했다.
“내가 직접 싸워볼까-.”
내 머릿속에 직접 결투재판에 참여하는 아이라가 떠올랐다.
사냥꾼 측에서는 미리암이나 대검의 여전사 혹은 사냥꾼 자신이 직접 나오겠지.
그자들과 아이라가 싸우는 모습은 두고두고 회자될 것이 분명하긴 하다만. 아무리 그래도 여왕이 직접 위험을 무릅쓴다니.
혹 주인공들이 가진 변수로 인해 만에 하나 일이 잘못되기라도 한다면 내 계획도 모조리 물거품 될 게 분명했다.
“아이라 님. 용병들도 아니고 직접 결투에 참가하신다니 언어도단이십니다.”
“그것도 그렇구나.”
아이라는 어딘가 아쉬운 것처럼 고개를 끄덕였다. 곧 그녀가 포크를 짚고 잘 썰어놓은 스테이크 조각을 입에 물려 할 때-.
“역시 다들 여기 있었군요?”
접시를 쥔 미르나 드레이코가 나타났다.
“보아하니 결투재판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모양이죠?”
“미르나, 평소 식당에는 코빼기도 보이지 않는 네가 웬 일이냐?”
엘가가 미르나를 향해 한껏 으르릉거렸다. 하지만 미르나는 엘가의 옆을 우아하게 미끄러지듯 스쳐지나가 내 옆자리의 의자를 빼서 앉는다.
“가끔은 모두와 이렇게 식사를 하는 것도 나쁘지는 않을 것 같아서 말이죠.”
엘가와 미르나 그리고 아이라가 다시 한 자리에 모이다니. 셋 다 아크의 같은 건물 내에서 생활하고 있지만 이런 일은 무척 드물지 않았나.
“…….”
“…….”
엘가와 미르나가 서로를 말없이 노려봤다.
곧 그들은 서로에게서 시선을 떨어트리고 천천히 식사를 개시하기 시작했는데, 모두 고귀한 아가씨들이기 때문에 식기를 움직이는 소리조차 들리지 않았다.
우아한 품새가 식사라기보다는 마치 종교적 행위같이 보이기도 했다.
심지어 그 다혈질인 엘가마저 고상하게 식사를 한다니.
이렇게 아가씨처럼 고풍스러운 모습을 보여줄 수 있었는데 평소에는 귀찮았던 건가?
달각, 달각.
오직 나만이 잘 썰리지 않는 고기에 접시를 나이프로 벅벅 긁고 있을 뿐. 그 모습을 보다 못했는지 엘가가 내게서 접시와 나이프를 슥 빼앗아갔다.
“너 지금 접시까지 썰어먹으려고 그러는 거니?”
그리고는 능숙한 칼질로 깔끔하게 고기를 알맞은 크기로 다 썰어 준다.
“자, 이제 됐지?”
마치 자상한 누나가 동생을 대하는 듯한 태도에 나는 어쩐지 조금 부끄러워지기도 하고, 얘가 갑자기 왜 이러나 싶기도 했다.
탁.
그때 미르나가 포도주가 담긴 은잔을 테이블에 내려놨다.
지금까지 소리하나 내지 않고 조용했던 행동했던 것과 달리 의도적으로 주의를 준 것 같은 모습이다.
“식사 도중 남녀가 담소를 나눈다니. 경건하지 못한 행동이네요. 식사는 기도의 일종. 엄숙하게 이루어져야 하는 걸 모르는 건가요?”
“퍽이나. 야, 태오. 여기 다 묻었잖아. 칠칠치 못하기는. 반요정이라 그래? 애 같네.”
미르나가 주의를 주건 말건 엘가는 손수건을 꺼내어 내 입가를 슥슥 닦아줬다.
대체 내 입에 뭐가 묻었는지 모르겠다만 반요정이라서 그러냐니. 무척 요정 차별적인 이야기라서 잠깐 눈살이 찌푸려질 뻔 했다.
그러다가 나는 이게 엘가의 노림수라는 것을 깨달을 수가 있었다.
엘가가 미르나를 도발하고 있는 것이라고 봐도 좋다. 둘은 앞으로 한 달 뒤, 나의 선택을 받는 자가 승리하는 내기를 하고 있으니까.
“…….”
다만 미르나는 평온한 표정으로 식사를 이어갈 뿐이었다. 물론 그것은 테이블 위만 그렇게 보이는 것뿐이지. 테이블 아래로 보이는 다리는 아주 작게 달달 떨리고 있었다.
그 모습이 마치 우아한 모습을 위해 수면 아래로 열심히 물장구 치고 있는 백조 같기도 했다. 마침 색깔도 비슷하네.
그러다가 마침내 잔을 쭉 들이켜는 미르나. 다시금 탁 소리 나게 테이블 위에 잔을 내려놓은 그녀가 주변을 향해 말했다.
“그래서, 결투재판의 대전사는 결정한 건가요?”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