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aming the Villainess RAW - Chapter (16)
EP.17)양이 사는 법 # 2
017 – 사자굴에서 양이 사는 법 # 2
왕의 도시 모나크 시티.
그곳에 지어진 리오네스 가문의 별장 사자의 쉼터에는 제법 커다란 훈련장이 있었다.
나무 목판과 허수아비, 짚단과 도랑물이 차 있는 참호가 여기저기 위치한 훈련장 말이다.
본디 리오네스 가문의 사병들을 교육하는 곳이었는데, 엘가가 검을 잡게 된 뒤로 이곳은 그녀만의 개인 공간이 되었다.
내게 있어서는 여러모로 ‘추억’이 서린 곳이기도 하고. 군생활 같은 추억.
“너도 알지? 여기라면 누가 죽을 정도로 비명을 질러봐야 아무도 안 와. 널 혼내주고, 손 봐줘도 아무도 날 간섭하지 않는다는 소리지.”
사람 하나 없이 휑한 그 공간에서 엘가는 정말 자신이 여왕이라도 된 것처럼 고개를 치켜들고 오만하게 말했다.
“그러니까, 정말 큰 코 다치기 싫으면 어서 나한테 사과 해.”
이러고 있으니 옛날 생각이 난다.
내가 막 노예가 되었던 시절.
나는 혈기 넘치는 엘가를 상대하는 시종이 되었었는데.
매일 그녀에게 꿀밤을 쥐어 박히거나, 볼을 꼬집히거나 귀를 잡아당겨지는 것이 일상이었다.
인권 없는 노예가 그렇지 뭐.
특히 이곳 훈련장에서 많은 일들이 있었기 때문에 이곳은 도무지 잊을 수 없는 곳이기도 했다. 내 첫 키스를 이 엘가한테 강제적으로 빼앗긴 곳도 여기였지.
그때 생각이 나서 갑자기 화가 났다.
“뭘 사과하라는 말입니까?”
내가 묻자 엘가는 더욱 화가 난 것처럼 와락 인상을 찌푸렸다.
“그런 태도 말이야! 그리고, 아까부터 날 요상한 눈으로 봤잖아! 인정 해 안해?”
뭘 요상한 눈으로 봤다는 건지.
지금에 와서야 생각나는 것이지만 엘가는 좀 그런 면이 있었다.
방구석 여포라고 해야 할까? 밖에서는 다른데, 집에 와서는 막 한층 더 자신감이 샘솟고 포악해지고 하는 것 말이다.
물론 엘가는 밖에서도 여포니까 방구석에서는 초사이언이 된다고 표현하는 게 옳겠지.
홈 그라운드, 홈 어드밴티지를 받은 엘가는 누구의 말도 듣지 않는 안하무인 그 자체라서 나를 향하 다다다다-하고 말을 쏟아냈다.
“너, 그리고 다른 사람한테 말 했어 안 했어?”
“뭘 말입니까?”
“뭐기는! 내가 너를, 이렇게 둘만 있을 때 가르치고, 혼내준다는 거.”
“그야 당연히, 말할 수 없죠. 누가 믿어주기나 하겠습니까?”
“그래, 당연히 그래야지.”
그때서야 엘가는 조금 느슨히 인상을 푼다.
엘가는 자신과 내가 둘이 만나는 게 밝혀지는 걸 꺼려했다. 그야, 엘가는 아이라에 비해서는 나름대로 상식이 있었으니까.
리오네스 가문이라는 대귀족의 영애로 자라났으니 언젠가 정략적인 약혼도 해야 하는데.
남자와 단 둘이 있었다더라-라는 소문이 나돌면 좋은 혼사 자리는 물 건너간다. 사교계는 소문이 엄청 빨리 도는 곳이기도 하고.
그래서 이 세상의 귀족들은 자신의 아들과 딸들을 마치 경건한 청교도처럼 성적인 것에 무지하도록 만들었다. 그게 가능할 리 없지만.
기본적으로 아주 보수적인 입장이라 이 말이다.
문제는 엘가가 다른 사람들에 비해 더욱 활동적이고, 호기심이 많은 뱅갈 고양이 같은 녀석이었다는 것이고-.
그런 녀석의 옆에 입이 무거우면서도 호기심을 충족시켜 줄 만한 실험대상이 있었다는 점이다.
운이 좋다고 해야 할지, 나쁘다고 해야 할지 그게 나였다.
“얼른 사과 안 하면, 오늘 하루 종일 여기 바깥에 내버려 둘 줄 알아. 나 엘가는 한다면 하는 사람인 거 알지?”
“미안합니다.”
“그래, 그렇게 사과 하면 다 끝나는 일이야. 그렇지만, 네가 끝끝내 뻣뻣하게 고개를 들고 있으니 내가 벌을 주지 않을 수가…뭐라고?”
“미안합니다. 사과 드려요. 이상한 눈으로 흘겨봐서 미안해요. 이제 됐습니까?”
“….”
엘가는 예상치 못했다는 것처럼 한쪽 눈썹을 치켜 올렸다. 그녀의 사자 갈기 같은 묶음머리칼이 휘오오-하고 바람에 흩날렸을 때.
엘가는 마침내 생각을 정리한 것처럼 말했다.
“좋아, 그럼, 그, 사과를 했으니까. 내 말에 잘 따랐네. 내 말에 잘 따랐으면 상을 줘야지. 그렇지? 나는, 내 사람이다 싶은 사람에게는 잘 해주거든.”
그리고 나서 엘가는 자신의 허리춤에 묶여 있던 자그마한 호주머니를 뒤적이더니, 작고 동그란 무언가를 하나 꺼내 나에게 내밀었다.
“이게 뭡니까?”
“바시키르 벌꿀 사탕. 꿀물의 님프들에게서 훔친 벌꿀로 만든 진짜 바시키르 벌꿀 사탕이야. 짝퉁 말고. 너, 이런 거, 먹어본 적 없지?”
사탕이라니.
내가 애도 아니고.
그런데 그때 신기한 일이 벌어졌다.
내 몸이, 사탕을 원하는 것처럼 몹시도 달아오르기 시작한 것이다. 그건 마치 사막이 단비를 바라는 것처럼 뜨거운 갈증에 가까운 것이었다.
“뭣…?”
“그래, 먹고 싶은 모양이지? 역시 그럴 줄 알았지. 너, 듣자 하니, 하프 님프라며? 님프의 피가, 사탕을 원하는 거지.”
“그걸 어떻게 알았습니까?”
내가 하프 님프라는 것은 그때 거기 있었던 아이라와 나 단 둘만의 비밀이었을 텐데.
이걸 엘가가 어떻게 알고 있는 건가 궁금해서 물어보니 녀석이 답했다.
“리오네스 가문을 얕보지 마. 네가 아이라랑 뭘 하는 지 정도는, 나도 알거든?”
“그렇게 다른 가문의 프락치를 솎아냈는데, 아직 남아 있었나봅니다.”
“그보다 하프 님프라니. 이제보니 내가 무척 신기한 종족을 구매했었네. 역시 이 몸의 심미안이야.”
엘가는 사탕을 내게 내밀어주는 척 하다가.
이내 자신의 입에 퐁당 집어넣었다.
“자, 먹고 싶으면 뺏어가 봐.”
여의주를 입에 물은 용처럼 엘가의 입에는 그 찬란한 황금빛 사탕이 오롯이 존재하고 있었다. 그것이 나를 부르는 느낌이 난다.
머리를 잔뜩 썼기 때문에 몸이 당분을 원하는 걸지도.
그런 생각으로 천천히 걸음을 움직여 엘가의 입 속을 향해 손을 뻗었다.
손가락으로 저 입안에 있는 사탕을 뺏어 내리라.
다만 엘가는 몹시도 화가 난 것처럼 내 손바닥을 찰싹 쳐냈다.
“야-. 지금 누가 손으로 가져가래? 손, 발, 쓰지 마.”
“그럼-.”
“도구도 안 돼.”
“쯧-.”
“야, 너 지금 혀 찼어? 아니, 자, 아무튼 먹고 싶지? 나 같은 대귀족들도 예약 받아야 겨우 몇 알 구하는 사탕이야. 님프들은 특히 이것에 사족을 못 쓴다던데. 비어노이한테 들었거든-.”
아-, 비어노이.
내가 하프님프라는 걸 거기서 들었나보구만.
그보다 한 알에 5실버, 5만 원이나 하는 사탕이라니.
이 얼마나 큰 사치인가.
그러한 사치품이 저 못된 계집애 엘가의 입에서 실시간으로 녹아내리고 있는 것은 어째선지 나를 몹시도 화나게 만들었다.
못된 계집애. 이렇게 좋은 집에서 태어나 돈을 팡팡 쓰면서 살아가니 안하무인이지.
“뺏어 봐. 먹고 싶지? 응?”
아-하고 입을 벌린 엘가. 녀석의 입 안에서 빨간 혓바닥과 구슬만한 크기의 끈덕진 사탕이 이리저리 굴러다닌다.
“뭐하고 있어? 내 상, 안 받을 거야? 이대로면, 녹아 없어져버리고 말 걸?”
담배처럼 목이 칼칼한 마력초 보다야 저게 낫겠지.
나는 하는 수 없이 마음을 가다듬고, 엘가의 곁으로 다가가 그 입에 내 입술을 포겠다.
부드러운 숨결이 화악 느껴지고, 내가 녀석의 입술 안에 혀를 내밀었을 때.
“어엇!?”
콰당.
엘가는 그런 내 태도를 예상치 못했던 것인지 뒤로 걸음 질치다가 넘어져버렸다.
나는 그렇게 반쯤 벌려진 입 사이에서 사탕을 빼앗기 위해 열심히 혀를 놀렸다.
츠릅, 츄릅, 츠릅,
그런데 사탕 알이 커서 그런지, 그게 내 입으로 도무지 옮겨지질 않았다.
그보다 맛있는데?
당분이 혀끝에 닿자 몸의 피로가, 머리에 뭉쳐 있었던 걱정들이 싹 풀리는 느낌. 이걸 더 맛보고 싶다.
“아읏, 흐, 흐으-. 뭐, 뭐야 갑자기, 하아앗-!?”
엘가는 계속해서 나를 밀어내려고 했다.
내게 여자의 입술 맛을 알려주겠다고 말한 뒤로, 여기서 몇 번이나 입을 맞춰왔던 주제에.
자기 입 안으로 혀가 들어오는 것에는 영 적응이 안 되는 모양이지? 생각 이상으로 입 안이 약점인 것 같기도 하고.
나는 여태까지 내가 당했던 일들을 복수할 겸, 엘가의 입 안 모든 것을 맛 봤다.
엘가의 말버릇은 언제나 매웠지만 녀석 입 안은 정말 마치 달기가 꿀 같았다.
츄릅, 츄르릅-.
꿀 맛.
그렇게 한참 입을 맞추고 있으려니, 얼굴을 옆으로 휙 돌린 엘가가 참았던 숨을 몰아쉬며 소리친다.
“하아, 하아아, 하아, 이, 이 녀석…. 갑자기, 무슨…. 이, 일단 떨어 져…! 꺼져…!”
떨어지라고?
내게 이 벌꿀 사탕을 주기로 약속해 놓고선, 그걸 혼자 삼키겠다는 심보 아닐까?
그건 도저히 용납할 수 없는 님프혐오적 행동이다.
나는 달아나려는 엘가의 고개를 손으로 붙잡았다.
엘가 역시 저항하려는 듯 했으나, 녀석의 몸에서 서서히 힘이 빠져나가고 파르르 떨리는 경련 같은 것이 찾아오는 게 느껴진다.
“으, 흐으. 이, 이 녀석이-, 으읍, 흐으, 누가 이렇게 멋대로…, 흐아-.”
그리하여 이제 막 사탕을 붙잡았던 그때였다.
“누나…?”
“……!!!”
어디선가 들려온 자그마하고 연약한 새싹 같은 목소리에 엘가가 나의 몸을 휙 집어 던지듯 밀쳐냈다.
“누나…? 거기서 뭐해…? 괜찮아…?”
“리, 리차드! 여기는, 여기는 어쩐 일이야! 누나가 위험하니까, 여기는 오면 안 된다고 했잖아! 여기는, 위험한 게 많아!”
엘가는 황급히 자리에서 일어나 저 멀리서, 이쪽을 향해 다가오고 있는 소년에게로 다가갔다.
금발을 곱게 빗고, 하얀 셔츠에 멜빵, 반바지를 착용한 그 소년의 얼굴은 이제 넷, 다섯 살 정도 되어 보이는 느낌.
저 애가 바로 라인하르트 공의 보물 리차드구나.
서부 바르자에 위치한 본가가 아니라 이곳으로 와 있었나?
리차드를 보는 것은 나 역시 처음이었기 때문일지, 방금까지 기묘하게 끓어오르고 있었던 흥분 같은 것이 착 가라앉았다.
그리고 나서 격렬한 현자타임 비슷한 이성이 나의 머리를 사르르 잠재운다.
세상에, 내가 사탕 때문에 무슨 짓을 하려 했던 거지?
님프 혐오적 행위라고?
평소에 전혀 생각해본 적도 없었던 키워드들이 내 머릿속에 번개처럼 꽂히는 데, 도무지 내 정신이 내 것이 아니었던 기분이 든다.
나는 입 안에 남아있는 달콤하기 그지없는 꿀을 바닥에 퉤- 뱉으며 호흡을 골랐다.
그리고 새로이 알아낸 정보들을 머릿속에 적립한다.
첫째로는 님프들이 바시키르 벌꿀 사탕을 문자 그대로 미칠 듯이 좋아한다는 것.
그리고 내게 흐르고 있는 님프의 피가 생각보다 짙다는 것.
이것은 지난 1년 동안 생각지도 못했던 특징이라서 나는 그야말로 간담이 서늘해지는 것만 같았다.
주의해야겠네.
“저-.”
그때, 누군가 나를 향해 작은 발걸음으로 타박타박 다가오는 게 느껴졌다.
고개를 돌려보니, 가냘프게 생긴 어린 꼬마애가 나를 올려다보고 있다.
“당신은 가스펠 경이죠…? 저희 누나를 살려주셔서 감사해요.”
“살려주었다…?”
“저희 누나가, 사탕을 삼키다 기도에 걸렸는데. 가스펠 경께서 방금 그걸 구해주신 것이라고 들었어요.”
이게 뭔 소리인가 하다가, 고개를 들어 올리니 리차드의 옆에 선 엘가가 나를 향해 슥슥하고 손을 움직이고 있는 게 보였다.
대충 말을 맞추라는 뜻이다.
그러니까 서로 혀를 굴려가며 사탕을 빼앗기 위한 결전을 벌인 게 아니라, 기도 막힌 엘가를 위해 내가 하임리히법 해준 것으로 해라 이거지?
엘가 치고는 머리를 썼다.
“저희 아버지께 말씀을 드려서, 용감한 행동을 한 가스펠 경에게 보답을 내리라고 요청해 볼 게요. 제 소중한 누나를 살려주신 것에 대해, 아버지께서 꼭 답례하실 거에요.”
티 없이 맑은 눈동자로구만.
거짓은 아닌 느낌이다.
얘는 말괄량이에 싸가지 없는 엘가를 누나로서 정말 좋아하고, 그런 누나를 구해준 나에게 진심으로 감사를 표하고 있었다.
이것이 동심인가?
아이라가 어린애들이 자신에게 다가오는 걸 막지 않는 이유를 좀 알 것 같다만. 나는 오히려 가슴이 좀 찔렸다.
“리오네스 도련 님, 그럴 필요 없습니다. 마땅히 해야만 하는 일을 한 것이니까요. 응급 구조라고는 하지만, 리오네스 아가씨의 입술을 빼앗은 것은 큰 죄. 그것이 세상에 드러나면 저는 큰일 납니다.”
“그런가요…? 알겠어요. 그럼 이번 일은 비밀로 할 게요.”
똘똘한 친구네.
아이라의 후계로 삼기 부족함 없어 보인다.
10년만 더 지나면 온갖 여자들의 마음을 울리고 다닐 테지. 부러운 놈.
그런 느낌으로 고개를 돌리자 “후으-.”하고 거친 숨을 몰아쉬고 있는 엘가가 보였다.
그녀의 얼굴은 매우 땀에 젖어 있었고, 그 덕분에 가슴에 파인 붉은 드레스가 살짝 속을 비추고 있어서 무척 야릇…이라기보다는 음란해 보였다.
내가 저런 애랑 방금 찐한 키스를 했단 말이구나.
그보다 사탕은 이미 삼켜버린 건가?
그런 생각을 하며 나 역시 이마에서 흘러내리는 땀방울을 손으로 스윽-훔치고 있을 즈음. 누군가가 허겁지겁 달려와 우리를 향해 소리쳤다.
늙은 집사다.
“엘가 아가씨. 큰 일이 났습니다! 아이라, 여왕 폐하가, 저희 별장 저택을 찾아 오셨습니다…!”
아이라가 여기에?
그에 으득-하고 이를 가는 엘가.
“걔가 갑자기 여기는 왜 왔을까. 그렇게 초대해도, 평생 한 번 오지를 않더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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