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aming the Villainess RAW - Chapter (187)
EP.188)자리에서 # 4
188 – 각자의 자리에서 # 4
하이낙스가 물었다.
“…혹시 그 문을 열어 봤는가?”라고.
마치 해서는 안 될 짓을 한 사람을 타박하는 말씨였다.
괴담 같은 것에서 흔히 등장하는 대사인 “너. 봤구나-.”같은 것이 떠오른다고 해야 할까?
그래서 나는 내가 못할 이야기를 하고 말았나 싶어서 입을 다물게 됐다. 다만 그 애매한 태도는 이미 정답을 말한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후-.”
짧게 한숨을 내쉰 하이낙스는 “역시, 봤는가.”라고 짧게 결론을 내렸다. 그리고는 주변을 둘러보더니 딱-손짓을 한다. 그러자 방금까지 시원하게 열려 있던 창문과 문이 닫혔다.
“문을 왜 닫는 거죠?”
갑작스럽게 밀폐되는 공간에 내가 살짝 불안에 떨자 하이낙스가 나를 안심시키듯이 말했다.
“앞으로 할 이야기들은 특정 위계에 달한 구도자들만이 할 수 있는 이야기거든. 태오 경. 솔직하게 말해야 하네. 나도 솔직하게 말함세. 혹시 문의 너머에서 본 것이 있는가?”
“잘 모르겠습니다. 제가 본 것이 뭔지도 모르겠구요. 그래서 현자님께 여쭤보려 온 것입니다.”
“그래, 그럴 테지. 애석하지만 태오 경, 나도, 아니 우리도 그것에 대해 알고 있는 자가 없다네.”
“그게 정말입니까?”
“그래, 우리 모두 마의 벽을 넘어서며 같은 것을 봤지. 검은 먹 같은 바다. 문, 그 너머에 위치한 별세계와 왕좌. 그 위에 가부좌를 틀고 있는 기묘한 것….”
별세계와 왕좌. 가부좌를 틀고 있는 기묘한 것. 나는 거기까지 설명한 적이 없었다.
하지만 하이낙스 쪽에서 먼저 말을 해온 걸 보면 그도 내가 본 것과 비슷한 것을 본 게 확실했다.
역시 단순한 꿈이 아니었구나.
하이낙스가 말했다.
“사람의 자질에 따라 다른 모습으로 보인다고 하지. 나의 경우에는 흐릿하고 구불구불한 형체의 가부좌를 겨우 볼 수 있었을 뿐이네.”
“흐릿한 형체….”
“하지만 갈색의 현자 브라운은 무수한 눈이 꿈틀거리는 것을 보았다고 하지. 사람마다 보이는 정도가 다른 거야.”
과연 이해가 됐다.
내게 녀석의 형체는 무척 끔찍하지만 생생하게 잘 보였다.
수많은 인간의 몸을 뒤틀어 합쳐 놓은 것 같은 생불의 가부좌. 너무 생생하게 잘 보여서 외면하고 싶을 정도였다.
하이낙스가 계속해서 말했다.
“검은 마법사, 펠토 경은 목소리마저 들었다는군. 끊임없이 부정을 늘어놓는 목소리. 음울한 미래의 나열들-. 펠토 경이 미친 것은 그것을 너무 가까이 들여 봤기 때문일 걸세.”
그렇구나. 머릿속에 선이 연결되는 기분이었다. 펠토 경은 가장 뛰어난 마법사였지만, 6위계에 달하며 미쳐버렸다고 했다.
“가장 뛰어났기에, 가장 동화되어버리고 만 거야.”
그가 말하는 단어는 “파괴. 혼돈. 겁탈, 방화-.”같은 부정적인 단어들 뿐. 그는 그저 자신의 들었던 것을 앵무새처럼 따라하고 있을 뿐이었구나.
어째서 고위계의 마법사들의 머리가 맛이 가는 지 확실히 알게 될 것 같은 기분이었다. 그렇다면 혹시 아이라도 그것을 본 적이 있을까?
내가 생각에 잠겨 있을 때 하이낙스가 말했다.
“자네가 본 것은 모두에게 비밀로 하는 게 좋네. 세상에 괜한 혼란을 줄 수 있으니까 말이야. 우리 대마법사들은 문의 존재와 그 안의 것을 철저히 비밀로 하고 있지.”
“그래도 되는 겁니까?”
“그래. 이건 교단에서의 결정이네. 성녀님과 그 전, 그 전의 성황 폐하들과도 이미 협약이 되어 있는 이야기지. 우리가 본 것은 문을 본 자들 외에는 비밀로 해야 하네.”
그런 어마어마한 것을 숨긴다니. 머리로는 납득하기 어려우면서도 가슴으로는 이해가 됐다.
그야 비밀로 할만도 했다.
세상에 숨기고 싶을 것도 같았다.
이 세상 어딘가에 기이한 문이 있고 그 너머에 그렇게나 끔찍한 것이 온갖 부정적인 말들을 중얼거리며 꿈틀거리고 있다고 생각하면, 사람들은 불안해서 살 수가 없을 테니까.
그때 하이낙스가 쐐기를 박듯이 한 마디 더했다.
“기묘한 것이지. 하지만 그것이 어떤 강력한 힘을 지녀서, 우리의 마도를 한 층 깊게 만들어주는 것도 사실. 그래서 우리는 그것을 진리라고 부르기로 했네.”
“진리요? 별로 그런 이름이 어울릴 것 같이 생기진 않았던 것 같은데….”
“그래. 그렇지. 하지만 이 명칭을 정한 것은 자네도 익히 잘 알고 있는 자일 걸세. 현존하는 가장 뛰어난 마법사인 그녀보다 정확한 이름을 붙일 수 있는 자는 없겠지.”
그 말에 내 머릿속으로 까만 머리칼이 휘날리는 것 같았다.
아이라.
그녀는 내게 이런 말을 단 한 번도 해준 적이 없었으니까.
어쩐지 아이라에 대한 얕은 배신감이 내 안에 스멀스멀 피어올랐다.
방침 자체가 그 진리라는 것을 모두에게 비밀로 숨기도록 하고 있으니, 아이라가 비마법사였던 내게 그 사실을 숨긴 것도 당연한 일이지만….
내가 복잡한 감정을 처리하고 있을 때 하이낙스가 한 마디 흘러가는 말처럼 중얼거렸다.
“분명, 솔로몬도 보았을 텐데. 그가 그것에 이름을 붙였다면 무엇이라 했을지 궁금하군.”
마왕 솔로몬이 그것에 이름을 어떻게 붙였을지 나는 알 수 없었으나.
내가 이름을 붙인다면 그것은 아마도….
악마나 뭐 그런 게 아닐까.
* * *
아크의 한 구석에 위치한 훈련장.
─에어 불릿-!
나는 가장 기본 적인 공격마법을 영창 해 봤다.
그것은 자그마한 공기의 탄환을 완드 끝에서 사출 시키는 마법으로, 통상적인 소총탄에 해당하는 파괴력을 지니고 있었던가.
파아앙-!
하지만 훈련장 허수아비에 격돌한 나의 공기탄은 허수아비의 허리를 관통하다 못해 커다란 구멍을 뚫고 반으로 아주 박살내버렸다.
이 정도면 완전 대포구만. 위력이 두 배에서 세 배는 커진 느낌. 정말 위력이 크게 보정되었다.
이제 이 마법도 사람에게는 못 쓰겠네.
이것이 5위계에 달한 대마법사의 실력이란 말인가?
가장 기본적인 공격마법조차 이렇게나 보정되었다면 다른 필살의 마법들은 어느 정도의 수준으로 강력해졌을지 기대가 되면서도 은근히 두려웠다.
짝, 짝짝-.
그때 저 멀리서 하이낙스와 그의 동료인 현자회의 할아버지들이 박수를 쳤다.
“상당한 발전이로군. 태오 경, 아직 젊고 실력이 출중한 자네라면 그 끝을 모를 만큼 성장할 수 있을 것이네.”
하이낙스가 건네는 수건을 받아 든 나는 몇 번의 마법을 시연하느라 이마에 맺힌 땀을 슥 닦아냈다. 그 하얀 수건 사이로 영감들이 환하게 웃는 모습이 보인다.
━아주 훌륭해. 이대로만 가도 우리 중 가장 뛰어난 마법사가 될 걸세.
━진리에 대해 탐구할 수 있는 연구자가 더 늘어나게 될 것이라는 소리구먼.
━반요정은 수명도 길 테니, 언젠가는 꼭 유의미한 결과를 도출해낼 수 있을 것이야.
늙은 마법사들은 내가 새로운 시대를 향해 나아갈 탐험가가 되어줄 것이라고 생각하는 듯했다.
그 ‘진리’라는 것이 대체 무엇인지. 또 그것이 위치한 문이 어디에 있고 또 어떻게 해야 만날 수 있는 것인지 내가 밝혀 주리라 기대하고 있다 해야 할까?
그러나 나는 그 기이한 생불 같은 것에 더 이상 접근하고 싶은 마음이 없었다.
그들은 흐릿한 형체만을 봐서 잘 모르는 것 같지만, 내가 봤던 그것은 솔직히 가까이 하고 싶은 그런 게 아니었으니까.
“내일의 결투재판에서 무운을 빈다네, 태오 경. 솔직히 조금 걱정했다만, 그만한 실력이 있으면 충분히 해볼 만하겠어. 또 결투는 마도를 깊게 해주기도 하니까.”
“감사합니다.”
“그리고 카심 군에게 마법사들의 회의에도 좀 잘 참석하라고 전해주게. 자네의 여왕에게도 말이야.”
“알겠습니다.”
노파심 가득한 원로 현자들의 배웅을 받으며 나는 거리로 나섰다.
무언가 답을 얻을 수 있을 것 같아서 찾은 현자들이었지만, 오히려 더 많은 질문거리를 안게 되었을 뿐이다.
그런 와중에 나의 눈에 누군가가 들어왔다.
“굉장한 실력의 발전이십니다. 과, 과연 태오 님이세요. 몸에 감돌고 있는 마력도 전과는 수준이 다르십니다.”
더듬거리는 목소리로 나를 칭찬해오는 여성은 자줏빛 드레스를 몸에 걸치고 높은 굽의 구두를 신고 있는 미모의 여성이었다. 풍성하게 남색 머리를 늘어뜨린 발란 교수다.
발란 교수가 훈련장의 모퉁이에서 내 마법 시연을 지켜보고 있었다는 건 알고 있었는데. 내 볼일이 다 끝나길 기다리고 있었던 모양이다.
“무슨 일이십니까?”
“그게, 여, 여기는 눈과 귀가 조금 많아서….”
슥슥 주변 눈치를 보는 발란.
아무래도 남들에게는 할 수 없는 이야기를 하려는 듯하다.
그래서 나는 발란과 함께 주변 건물 사이의 비좁은 틈으로 들어갔다. 사람이 없이 버려진 쓰레기만 나뒹구는 곳이 되어서야 발란은 안심한 것처럼 이야기했다.
“태오 님께서 말씀하신대로, 조사를 했습니다.”
“조사라면 어떤 조사를?”
“이번에 여왕의 암살을 꾀했던 사냥꾼 말입니다. 그, 그 자의 일행 중 기묘한 길잡이의 존재에 대해 조사를 하라고….”
“아, 그랬었죠. 그래서 이렇게 절 기다리셨던 걸 보니 성과가 좀 있으셨던 모양입니다.”
나의 말에 발란 교수가 쿠후후 웃었다.
“과연, 태오 님의 안목대로 그 남자. 수상한 점이 있었습니다. 아주 수상한 점이.”
보아하니 나름대로 발란 교수가 성과를 올린 듯했다.
“수상한 점이라면, 어떤 점이죠?”
내가 기대하며 묻자 발란 교수가 말했다.
“그 남자, 매일 아침부터 저녁, 잠에 이르기까지. 하, 하루도 빠짐없이 똑같은 일과를 반복하고 있습니다.”
“…….”
그냥 평범하게 규칙적인 사람이 아닌가?
그렇게 성실한 사람은 세상에 흔히 존재했기 때문에 어디서 수상한 점을 느끼는 것인지 내가 의아함을 느낄 때였다.
“아침에 먹는 토마토의 개수부터, 저녁에 잠들기 전에 양치하는 칫솔질의 수까지. 병적으로 고정된 하루를, 반복하고 있습니다.”
“그건 좀 수상하네요.”
“그렇습니다. 수상합니다. 부, 분명 무언가 숨기려는 듯한 행동입니다. 의심을 받지 않으려는 것처럼 연기하는 태도, 눈 여겨 보지 않으면 모를 것입니다.”
“과연 그렇군요. 그걸 용케 잘 파악했습니다.”
내가 고개를 끄덕이자 발란 교수가 다행이라는 것처럼 약간 안도감을 담은 듯한 미소를 희미하게 지었다.
“저, 저는 태오 님의 지시에 따랐을 뿐입니다. 도움이 됐다니 다행입니다.”
내가 정보에 긍정해주는 게 좋은 모양이다.
발란의 입장에서 보면 모시는 왕에게 인정받은 것이라고 볼 수 있으려나? 나도 아이라에게 칭찬을 받을 때면 은근히 기분이 좋아지곤 했으니까.
그래서 나는 생각 난 김에 물었다.
“일이 잘 끝나면 상으로 받고 싶은 게 있으십니까?”
“상…?”
“그렇습니다. 일에는 대가가 있어야겠죠. 기브 앤 테이크. 중요한 법입니다.”
“상…. 제게는, 태오 님을 모시는 것 자체가 이미 하나의 포상입니다. 이미 멸망해버린 줄 알았던 앙그마르의 핏줄에 다시금 봉사를 할 수 있는 기회를 주, 주셔서-.”
구구절절한 충성의 맹세가 이어졌다. 내가 자신의 충성심을 확인하기 위해 시험을 하는 줄 알았던 건가.
“그럼 갖고 싶은 게 없다는 겁니까? 마지막으로 다시 여쭤보겠습니다. 제가 드릴 수 있는 것이면 상으로 드릴 수 있습니다.”
그래도 혹시 모르니 마지막으로 물어봤다.
“그, 그렇다면….”
발란 교수가 무언가 바라는 게 있긴 한 것처럼 뜸을 들이더니 조심스럽게 말을 꺼낸다.
“그렇다면 임프를 한 명….”
“임프요?”
“임프들은 예로부터 마군들의 도우미, 잔심부름을 시키기 좋은 친구들입니다. 임프가 있다면 지금보다 능률이 오를 것 같은….”
“음-.”
“죄, 죄송합니다. 제가 너무 무리한 요구를-.”
내 침음에 발란 교수가 화들짝 놀라서 바들바들 떨었다.
지금 와서 느끼는 것이지만 그녀는 필요 이상으로 나를 두려워하고 어려워하고, 동시에 충성하고 있었다.
내 전임인 솔로몬이 그만큼 대단하고 무시무시한 공포로서 군림하고 있었기 때문이겠지.
나는 고개를 저었다.
“임프라면 아는 녀석들이 있으니 한 명 붙여드리겠습니다. 대신 임프들에게도 많은 것들을 비밀로 하셔야 할 겁니다.”
푸르푸르나, 타르타르 중 한 명이면 충분하겠지.
“가, 감사합니다. 태오 님. 꼭 합당한 포상을 받기 위해 더욱 노력하겠습니다.”
꾸벅 고개를 숙이는 발란에게 내가 말했다.
“그럼 각자의 자리에서 서로 힘내도록 하는 겁니다.”
내 머리 위로는 해가 저물고 있었다.
이제 내일이면 나는 모두의 앞에서 내가 그 동안 노력해왔던 것을 증명할 수 있게 되겠지.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