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aming the Villainess RAW - Chapter (19)
EP.20)양이 사는 법 # 5
020 – 사자굴에서 양이 사는 법 # 5
“뭐? 방금 너 뭐라고 했어? 내가 잘못 들었나?”
엘가의 반응은 내가 생각했던 것처럼 몹시도 당황한 듯한 모습이었다.
삶은 문어처럼 새빨갛게 달아오른 얼굴에서는 삐질삐질 땀이 흘러내릴 정도.
“내 귀가 잘못되지 않은 거라면. 미친 부탁을 들은 것 같은데? 감히, 감히 후작 영애의 가슴을 만지고 싶다는 부탁 말이야.”
엘가는 나의 결의를 미친 부탁이라고 치부했다.
사실 맞는 말이다.
감히 귀족영애의, 그것도 리오네스 가문처럼 창세의 시절부터 귀하게 대접 받았던 대가문 여식의 가슴을 만지게 해 달라니.
당장 호위병들에게 목이 베였어도 솔직히 할 말이 없는 부탁이었다.
물론 지금 여기에는 호위병이 아무도 없지만.
호위병 열 명을 합쳐 놓은 것보다 위험한 엘가가 정말 뭐라 말할 수 없을 만큼 와락 인상을 찌푸렸다.
“너, 방금 그거 사형감이야. 너도 알지? 지금까지, 너도 너 나름대로 국가를 위해 고생한 공이 있을 테니. 한 번 봐주겠어. 못 들은 걸로 할 테니까 다시는 그런 얘기하지 마.”
역시 거절당했나.
실패로구만.
아무리 엘가라고 해도 남자에게 덜컥 가슴을 만지게 할 만큼 절조가 없지는 않았던 모양이다.
생각보다 가드가 더 단단하네.
이래서야 내 마음대로 엘가를 통제할 만한 수준이라고는 부를 수가 없다.
“죄송합니다. 그럼, 역시 못들은 걸로 해주세요.”
“그래. 자비롭고 관대한 나니까 용서해주는 거야. 너 어디 가서 다른 여자애들한테는, 절대 그런 말 하면 안 돼. 절대로. 만지게 해준다고 해도 만지지 마. 사형당해.”
“네. 그렇겠죠.”
적당히 대답하며 나는 방금 있었던 일에 대한 자기 피드백을 빨리 진행해본다.
잘 나가는 남자들은 자기를 좋아하는 여자들과 하루 만에 선을 넘기도 하고 그런다는데.
대체 그런 남자들은 어떻게 여성들의 가드를 하루 만에 박살내는 걸까?
여러 문제들이야 어떻게든 척척 해결하지만, 내게 있어서 가장 어려운 것이 이 남녀 간의 관계다.
남녀 간의 애정. 그것만 어떻게 마스터할 수 있다면 엘가와 아이라를 잘 유혹해서 내 계획대로 통제하는 것이야 일도 아닐 것 같은데.
나 같은 연애초보에게는 너무나도 어려운 일이었던 모양이다.
최근 여러 일들로 상승시켰던 자신감이 쭉 하락한다.
역시 얼굴이 문제인가?
잘 생긴 얼굴이 해답인가?
아니, 이 몸의 얼굴도 어디 가서 못생겼다는 소리 들을 얼굴은 아닌데. 따지자면 준수한 외모에 더 가깝지.
얼굴 한 복판에 흉터가 크게 그어져 있는 것이 흠이라면 흠이지만.
지릿, 지릿-.
그때 나는 내 오른쪽 눈썹 위부터 볼까지 욱신거리는 통증을 느꼈다.
내 얼굴 위에 흉터의 존재를 자각하자 가끔 그러했던 것처럼 아파왔던 것이다.
슥-.
그래서 나는 손을 들어 올려 내 흉터를 슥슥 매만졌다. 이렇게 쓰다듬으면 통증이 좀 진정이 된다.
다만 그 모습을 본 엘가의 표정에 살짝 그늘이 드리웠다.
“뭐야, 너. 지금. 네 얼굴에, 상처 만든 게 나라고. 지금 날 압박하는 거야 뭐야?”
압박?
뭔 소리인가 싶다가 나는 이 흉터를 만든 것이 엘가였다는 걸 떠올렸다. 1년 전, 아이라의 생일을 맞이하여 궁정의 연회로 출발하기 전.
“그때도 여기였었죠. 갑자기 이곳으로 절 끌고 오시기에. 저는 또 꿀밤을 맞겠구나 생각했는데.”
그때의 기억이 새록새록 난다.
여느 때와 같이 이 훈련장으로 끌려왔던 나는 또 엘가의 스트레스 풀이용 샌드백으로 꿀밤을 맞거나, 볼을 잡아당겨지거나 할 줄 알고 있었는데.
“갑자기 단검을 꺼내셔서 깜짝 놀랐습니다.”
“야, 그건, 어쩔 수 없었다니까. 아이라는, 흠이 있거나 얼룩이 있는 것에는 흥미를 느끼지 않는 애니까.”
촤악-.
엘가는 나의 눈썹부터 볼까지 능숙한 솜씨로 단검을 그어 상처를 냈다.
날붙이로 얼굴을 베여본 것은 처음이라 나는 정말 깜짝 놀랐고, 또 피가 굉장히 많이 나와서 무서웠던 기억이 난다.
“아이라는 언제나, 내가 가진 것 중 제일 좋은 걸 가져간다고. 예언을 하는 하프 님프 노예라니 당연히 뺏길 게 뻔하잖아? 물론, 당시에는 하프님프라는 건 몰랐지만….”
슥, 슥슥-.
엘가는 다시 흙바닥을 구두로 문질러 구덩이를 파내기 시작했다. 그 행위에서 나는 마음의 빈틈이라고 부를 수 있을 만한 것을 파악했다.
이 빈틈은 이용할 수 있을 만한 것인가?
이래저래 계산을 해본 나는 마지막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말했다.
“이 흉터는, 아직도 밤만 되면 쑤셔 옵니다.”
“그래서, 내가 미안하다고 했었잖아! 조금만 자국을 내려고 했는데. 네가 움직여서 그렇게 커진 거야. 오히려 네 잘못이거든!”
빽-하고 소리를 지른 엘가.
아니, 이걸 피해자 탓을 한다고?
이 사실엔 나도 조금 어이가 없다고 해야 할지 정이 뚝 떨어진다고 해야 할지 모를 복잡한 감정이 가슴에서 피어올라왔다.
그래서 잠깐 말문이 막히고, 당황스러움으로 미간이 찌푸려졌을 때.
그런 나를 바라보고 있는 엘가 역시 스스로의 말에 당혹해버리고 만 것처럼 황급히 손사래를 쳤다.
“아니, 말이 그렇다는 거지. 후-. 그래, 뭐. 그때 일은 내가 잘못했다. 조…좋아. 사죄의 의미로 까짓거 뭐. 가슴 한 번, 만지게 해주지 뭐.”
“그게 정말입니까?”
내가 밝게 되묻자 엘가의 표정도 그때서야 조금은 안심한 것처럼 풀린다.
“난 두 번 말 안 해. 대신 한 번만이야. 한 번만. 10초, 아니 5초 줄 거야.”
별로 의도한 방법은 아니지만 결국 엘가의 가슴을 만질 수 있게 됐다. 내가 계획하고 있었던 ‘엘가를 길들이고 통제하는 방법’과는 조금 거리가 먼 것 같긴 했는데.
그래도 여자 가슴을 만져볼 수 있는 기회를 놓쳐서는 남자가 아닌 것이다.
엘가는 무척 가슴이 크니까.
사실 엘가에게 잔뜩 화가 났을 때도, 이상하게 저 가슴이 위아래로 출렁거리며 흔들리는 걸 보고 있으면 노기가 사르르 가라앉을 때가 있을 정도였다.
엘가를 따르는 친위대의 사기가 이상하리만치 높은 것도 혹시 저 가슴 때문이 아닐까?
그런 걸 내가 만져볼 수 있다.
무려 5초 동안.
이 남성성을 채워주는 기회에 자연스럽게 하반신으로 피가 몰려 물건이 벌떡벌떡 서게 된다.
“오늘, 이번 일로. 지금까지 있었던 앙금들. 다 털어버리는 거야. 알겠냐?”
스윽.
자신의 가슴을 앞으로 내미는 엘가.
위쪽이 파인 드레스 때문인지 박력이 대단하다. 그 모양은 몹시도 보암직스러워서 입 안으로 군침이 감돌 정도였다.
그것을 이제 내가 만진다.
스르륵.
나는 천천히 엘가를 향해 다가갔다.
“아, 잠깐만.”
그런 나를 멈춰 세우더니, 후-하고 크게 심호흡을 내쉬는 엘가.
“이제 됐어. 5초. 정확하게 내가 셀 거야. 그 이상 만지면, 너 진짜 죽을 줄 알아.”
“알겠습니다.”
“그럼-.”
스윽, 뒷짐을 지고 눈을 감는 엘가.
나는 그런 엘가의 가슴을 향해 천천히 손을 뻗는다.
사실 여자의 가슴을 만져본 경험은 세 번 정도 있었다. 만졌다기보다는 핥았다는 표현이 맞겠지. 비누 맛 나는 아이라의 가슴이었다.
그러나, 손으로, 이렇게 5초뿐이라고 하더라도 자유롭게 만져보는 기회를 얻는 것은 단연 처음이었다.
남자로서 여자에게 가슴을 허락을 받았다-라는 행위의 원초적인 에로틱함과 정복감이 내 머리를 파직파직 튀길 것처럼 울린다.
“그럼, 만집니다.”
“그, 그러든가.”
스윽. 말캉-.
내 두 손이 마침내 엘가의 메론 만큼 커다란 가슴에 닿았다.
“…이, 일.”
처음으로 느껴지는 것은 손가락에 닿는 드레스의 부드러운 옷감과 말로 형용할 수 없는 말랑함이었다.
“이-.”
몰캉. 몰캉.
내 손가락 사이로 부드럽고 탄력 있는 것들이 빠져나오기 위해 버둥거리는 기분이다.
생각했던 것보다는 살짝 더 무게감 있었지만. 이것은 몹시도 님프적 올바름이 풍부한 감각이라고 감히 단언할 수 있었다.
“…삼.”
벌써 3초라고?
나는 가슴의 마력에 내 소중한 시간의 절반 이상을 빼앗겼다는 것에 분개했다. 그래서, 이번에는 그 분노를 풀 겸 손아귀에 힘을 꽉 쥐어본다.
“…앙…!”
그러자 엘가의 입에서는 엘가의 것이라고는 생각지도 못할 만큼 귀여운 소리가 터졌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였다.
“…야, 너, 주, 죽을래? 누가 그렇게 강하게 잡으래-!”
눈을 뜨며 버럭 화를 내는 엘가.
그렇지만 나의 손은 마치 이 말랑한 가슴덩이에 빨려 들어가는 것처럼 그녀의 몸에서 떨어질 수가 없었다.
그러다 내 손이 발견한 것은 드레스 너머로도 알 수 있을 만큼 딱딱하게 솟기 시작하는 돌기였다.
엘가의 젖꼭지가 단단히 솟아있다-.
그것을 깨달았을 때 나는 그걸 만지기 위해 내 마지막 남은 1초를 아낌없이 투자하리라고 마음먹었다.
그러나 그것은 내 손바닥을 탁-치는 엘가의 손에 저지되고 만다.
“5초 다 됐어! 이, 이제 끝!”
그리고는 자신의 앞섬을 팔짱껴서 가리는 엘가.
“이제, 아무 일도 없었던 거다…? 네 눈 다친 것도, 다 사과 끝낸 거야. 너, 남들한테는 암말 마라!”
휙.
그리고는 저 멀리 뛰어가 혼자 사라졌다.
“…….”
자리에 남겨진 나는 아직 내 손에 남아있는 그 풍만하고 탄력 있고 말랑말랑한 것의 여운을 느껴야만 했다.
* * *
“하루 더 머물러도 좋을 텐데 말입니다.”
다음 날 아침.
리오네스 가문의 가주 라인하르트는 아침 일찍 저택을 나서는 아이라를 배웅했다. 저택의 많은 사람들이 여왕이 떠나가는 것을 마중하고 있는 가운데.
아이라는 주변을 슥슥 둘러보고는 살짝 미간을 찌푸리며 스쳐지나가듯 말했다.
“엘가는 보이지 않는군요.”
“늦잠이라도 자는 모양입니다. 시종의 말에 따르면 어젯밤에 늦도록 잠을 안잤다고 하는데. 나중에 혼쭐을 내 줄 테니, 너무 신경 쓰지 않으셨으면 좋겠습니다.”
라인하르트의 이야기에 아이라는 슥슥-하고 손을 흔든다. 아무래도 좋다는 뜻의 제스쳐였다. 하긴 뭐, 아이라가 엘가 얼굴을 보려고 이곳에 온 것도 아니고.
내게 있어서도 다행이었다.
어제 그런 일이 있고 나서, 곰곰이 생각해보니 이제 엘가를 어떤 얼굴로 보면 좋을지 조금 감이 안 잡혔는데. 안 보여서 솔직히 조금 다행이었다.
라인하르트가 고개를 숙였다.
“그럼, 살펴 가시지요, 폐하. 저는 오늘 오후부터 궁정으로 출근해보도록 하겠습니다.”
“전임 재상 파르가스가 이것저것 잘 설명해줄 것입니다. 그럼, 가자꾸나, 태오.”
“예, 폐하.”
나와 아이라는 저택의 입구에서 걸음을 돌렸다.
리오네스 저택의 모든 것이 점점 더 멀어지기 시작할 즈음, 나는 또각, 또각하고 구두소리를 내고 있는 아이라를 향해 물었다.
“마차를 타시지 않아도 괜찮겠습니까?”
“괜찮아. 그것 좀 안탄다고 죽는 것도 아니니까.”
“과연, 그렇군요. 그럼 오늘은 궁정으로 바로 돌아가시는 겁니까?”
내 물음에 아이라는 고개를 들어 하늘을 쳐다봤다.
그리고 하늘 아래로 천천히 시선을 내려 주변에 보이고 있는 사물과 거리들을 가느다란 눈으로 살피더니 이렇게 말한다.
“오늘은 나도 모처럼의 휴일이니, 조금 산책을 하고 싶은데. 이 모나크 시티를 벗어나서. 외곽의 교각을 돌아가도 좋고.”
아이라가 도시를 벗어나려고 한다고?
1년 만에 처음 있는 일 아닌가?
내가 기억하기로 아이라는 수도 모나크 시티에서 벗어난 적이 없었다. 애초에 궁정 바깥으로도 잘 나가지 않으니 당연한 일이다.
그래서 아이라가 뜬금없이 도시 밖을 향하려고 하는 것에 나는 약간의 긴장감이라고 해야 할지, 성취감이라고 불러야할지 모를 감각을 찌릿찌릿 느꼈다.
아이라가 바뀌고 있다.
베드엔딩이 멀어지고 있다는 것이 확연히 와 닿았기 때문이다.
그래, 아이라가 아카데미에 가게 된다면 고향을 떠나 다른 사람과 어울리는 법도 배워야할 터. 그 전에 미리 예행연습을 해두어서 나쁠 것이 없다.
그래서 도시 외곽에 아이라가 산책을 해볼 만한 곳이 어디가 있더라?
나는 황급히 머리를 굴려 모나크 시티 근처에 있는 아름다운 호수와 그 사이에 놓인 성을 하나 떠올렸다.
“근처에 아인리히 성이 있습니다. 한 세기 전, 마왕 앙그마르 토벌 때에 세워졌던 요새인데. 지금은 관광지로 쓰이고 있다죠. 그곳으로 모시겠습니다.”
“좋아.”
기분 탓인지 몰라도 아이라 역시 조금은 들 떠있는 것처럼 보였다.
나도 기분이 좋았다.
좋은 풍경을 보면, 아이라의 심신도 안정되고 인성도 좋아질지 모르는 일. 그럼 선한 여왕으로서의 길이 멀리 있는 게 아니게 될 터.
그런 아이라를 데리고 마침내 도시를 벗어나 외곽지역, 아인리히 성에 도착했을 때.
━나. 고르고르. 정당한 권리. 주장한다. 아인리히 성. 고르고르의 것. 호수. 고르고르의 것. 침입자. 죽인다! 이곳은, 고르고르의 영토! 이몸. 이제 왕이다!
━끄아악-!
웬 거대한 거인이 성벽 위에 올라가서, 기사와 말들을 닭 가슴살 찢듯이 잡아 찢고 있는 것이 보였다.
벌컥, 벌컥, 벌컥-.
한 손으로 말의 상체를 잡아 비튼 거인이, 그 피를 받아 마시다 필요 없는 캔을 버리듯 말의 거죽을 휙-하고 바닥에 내동댕이쳤다.
━성의 왕. 앞에 무릎 꿇어라!
그것은 아이라가 있는 방향을 향해 날아와.
아이라의 하얀 얼굴에 촤아-하고 피를 튀도록 만든다.
“…….”
피에 묻은 아이라의 얼굴에서 나는 도무지 표정을 읽을 수가 없었다.
이게 뭔 일이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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