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aming the Villainess RAW - Chapter (211)
EP.212)# 2
212 – 예언자 # 2
아이라의 방은 대체적으로 밝았다.
천장에서 빛나고 있는 샹들리에를 비롯해서 활짝 열린 창문으로 여름의 뙤약볕이 숨길 것 없이 세어 들어오고 있었으니까.
하지만 필요 이상으로 공기가 서늘하고 조용했다.
“당신들, 누가 멋대로 들어오라고 했어? 여기는 여왕의 어전이야. 어서 물러나지 못해?”
까만 천을 얼굴에 드리운 시종, 릴리가 피부가 지릿지릿할 정도로 커다란 소리를 냈다.
바로 옆 침대에서 아이라가 누워있다고는 생각되지 않을 정도의 목소리 크기에 나는 의문을 느끼고야 만다.
슥.
그때 엘가가 앞으로 나서서 시종을 밀치고 침대로 다가갔다.
“뭐라는 거야, 꼬맹이가. 비켜 있어. 너 내가 누군지는 알지?”
곧 침대에서 나른한 표정으로 잠들어 있는 아이라의 어깨를 잡아 흔드는데, 저렇게 무식하게 아이라를 대할 수 있는 사람은 아마 이 세상에 엘가 정도뿐일 것이 분명했다.
“야, 일어나 봐. 뭔 하루 종일 자고 있냐? 오늘 있었던 행사 다 불참하고 말이야.”
“…….”
아이라의 반응은 없었다. 저렇게 흔들면서 이야기를 한다면 아무리 깊게 잠들어 있는 사람이라고 해도 눈썹을 움찔하거나 뒤척인다거나 하는 것이 정상일 텐데.
여왕은 마치 독이든 사과를 베어 문 공주처럼 그저 얌전히, 미동조차 않고 고른 숨소리를 내고 있을 뿐이다.
“얘가 왜 이렇게 안 일어나지?”
수상함을 느꼈는지 살짝 고개를 갸웃거리는 엘가에, 이를 가만히 지켜보고 있었던 미르나가 앞으로 나섰다.
그녀는 잠들어 있는 여왕 아이라의 이마에 자신의 손을 슥 만지더니 제법 심각한 표정을 지어 보인다.
“아무래도, 평범한 수면은 아닌 것 같네요. 다분히 주술적이에요.”
“이 잠이, 저주나 뭐 마법 같은 것이라도 된다는 말이야?”
“글쎄요. 타란테라 여왕의 마법과 주술에 대해서 저는 알지 못하는 부분이 있죠. 하지만 제가 확신할 수 있는 건, 단순히 물리적인 접촉만으로는 깨어나지 않을 것이라는 말입니다.”
“진짜로?”
엘가는 믿을 수 없다는 것처럼 인상을 찌푸렸다.
그러다가 무언가 결심하기라도 한 것처럼 손바닥으로 아이라의 얼굴을 짝-하고 때리는데. 그 모습에는 아무리 나라고 해도 숨을 집어삼킬 수밖에 없었다.
“야, 진짜 장난 할래? 일어나라니까?”
짝. 짝.
아무리 친척인 엘가라도 저것은 선을 넘는 행위가 아닌가? 아이라가 불같이 화를 낼지도 모른다고 생각해 긴장한 것도 잠시. 긴장은 곧 기묘한 걱정으로 변모하기 시작했다.
아이라가 일어나질 않았으니까.
“야, 이거 언제부터 이랬어.”
시종을 향해 묻는 엘가의 표정은 전에 본 적이 없을 정도로 진지했다. 그 서늘한 감각에 괜히 내가 다 등골이 오싹해질 정도였다.
마치 궁정에서 사람을 죽이고 피를 묻히던 때의 엘가가 다시금 떠오르는 듯했으니까. 이 아크에서야 얌전한 고양이처럼 지내고 있었지, 사실 엘가는 사람 죽이는 사자다.
그 박력에는 제 아무리 앙칼진 시종 릴리라고 해도 어쩔 수 없었던 것 같다. 녀석은 곧 까만 천 아래로 바들바들 떨며 작게 말했다.
“오, 오늘 아침부터 깨워보려고 말을 했는데 일어나지 않았어요….”
“그게 무슨 말이야. 오늘 아침부터? 왜 이런 급한 일을 말해주지 않았던 거냐?”
“…….”
시종은 입을 다물었다. 다만 참을 수 없었던 건지 엘가는 그대로 손을 올려붙여서 시종의 뺨을 후려 갈겼다.
팍-.
사람의 뺨을 때렸다는 소리 같지 않게 둔탁한 소리가 난다. 다만 시종 릴리는 바닥에 날아가 쓰러지면서도 비명조차 지르질 않았다.
“…….”
그저 바들바들 떨 뿐. 그런 릴리의 멱살을 엘가가 붙잡아 올렸다.
“아이라는 앙그마르의 여왕이야. 얘한테 무슨 일이 벌어지면, 왕국의 존립 자체가 위험해지는 거 모르냐? 일개 시종이 이런 큰일을 비밀로 하려고 해?”
엘가의 분노는 정당했다.
단순히 사촌을 떠나서, 아이라는 한 나라의 여왕. 여왕이 원인 모를 정도로 깊은 잠에 빠져서 일어나지 못하고 있는데. 그걸 일개 시종 선에서 통제하려고 한다니.
아마 그 사실을 숨긴 것이 나라고 했어도 엘가는 저렇게 뺨을 올려붙이고 폭력을 행사했을 게 분명하겠지. 그만큼 정말 중대한 사안이니까.
저런 분노 상태의 엘가에게 이견을 제시할 수 있는 자가 있을까?
“리오네스 영애, 지금 중요한 건 그것보다 타란테라 여왕의 상태를 파악하는 쪽이에요. 일단은 진정하는 게 좋겠습니다. 그리고, 일을 비밀로 한 게 오히려 다행일 수도 있습니다.”
있었다.
“미르나, 이런 상황에서도 꼭 반대를 위한 반대를 해야겠어?”
“제가 지금 한 말을 그런 뜻으로 알아듣는다면, 리오네스 영애, 이번에는 당신에게 정말 실망할 것 같네요.”
흥분한 엘가, 그리고 차분한 미르나. 둘의 태도는 명확했다.
엘가는 무언가 할 말이 있는 것처럼 입술을 달싹거리다가, 이내 멱살을 붙잡고 있던 시종을 힘껏 팽개쳤다. 시종 릴리는 그대로 구석에 넘어져서 쥐죽은 듯한 고요함을 유지할 뿐.
미르나가 시종 릴리에게 말했다.
“이 일을 알고 있는 자가 얼마나 있죠?”
“여기 있는 사람들 밖에 몰라요. 타란테라 님이 일어나고 계시지 않는다는 걸, 모두에게 말할 필요는 없잖아요. 여왕님은, 언제나 완벽한 모습으로 계셔야하니까….”
“이유야 어찌되었든 이 일이 퍼져나간다면 걷잡을 수 없이 패닉이겠죠. 일단, 저희가 통제할 수 있는 선에서 묻어두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미르나의 의견은 나름 합리적이었다. 아이라의 상태가 세상에 퍼져나가면 어떤 영향을 미칠지 모르니까. 말하자면 엠바고 같은 것이다.
“일단, 저희 선에서 해결해보도록 하는 거죠. 그럼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모든 것이 원래대로 돌아갈 것이랍니다.”
다만 미르나의 의견에 엘가가 반발했다.
“땅에 묻기 좋아하는 드레이코놈들 다운 의견이네. 그렇게 비밀로 하고 있다가 아주 큰일 나면? 우리 손에서 해결할 선을 벗어나는 문제였다면?”
엘가의 의견도 어찌 보면 맞는 이야기였다. 묻어두고 있다가 골든타임을 놓칠 수 있을지도 모르는 일. 덮어두는 게 능사는 아닌 일도 많지.
“미르나, 네 말은 틀렸어.”
“아뇨-.”
곧 첨예한 의견대립이 일었다.
둘 다 맞는 말이기에 누구 하나 굽힐 생각이 없어 보인다. 나는 그저 평화롭게 누워있는 아이라를 바라봤다. 시끄러운 세상을 잊은 것처럼 잘도 자는구만.
새근, 새근.
일어나고 싶지 않을 만큼 좋은 꿈이라도 꾸고 있는 건가. 이제 보니 아주 살짝이지만 입 꼬리를 올리는 게 미소라도 짓는 것 같았다.
“…….”
하긴, 세상은 이렇게나 시끄럽게 언성을 높이며 얼굴 찌푸릴 일이 많잖아. 이대로 일어나지 않는 게 아이라에게 있어서는 행복일지도 모르지.
혹시 나 때문인가? 내가 그만둔다는 이야기를 해서…, 아니, 그건 너무 자의식 과잉이려나.
“둘 다 그만.”
나는 일단 시끄럽게 구는 영애들을 진정시켜야겠다고 마음먹었다.
“이제 그만하세요.”
오랫동안 입을 다물고 있었던 내가 입을 열자 미르나도 엘가도 눈을 끔뻑이다가 마지못한 느낌으로 서로에게서 고개를 돌려버렸다.
나는 우선 미르나에게 말했다.
“미르나 님, 혹시 이 잠이 어떻게 된 건지, 또 깨울 수 있는 방법이 있는 건지 좀 알아내주실 수 있겠습니까?”
미르나는 암흑 사제다.
내가 아는 사람 중에서 정신과 관련된 일을 하기에 그녀보다 적합한 자가 또 있을까?
“이대로 아이라 님이 일어나지 않게 된다면, 드레이코 가문에 어떤 여파가 미칠지 누구도 모르는 일이니까요. 이 기회에 빚을 만들어두는 것도 좋죠.”
내 말에 미르나는 “정말이지, 타란테라 여왕이 사람 번거롭게 하는 데에는 도가 텄네요.”라고 말하면서 마지못해 고개를 끄덕였다.
“태오 경, 당신에게 미리 말해두지만 이번 일의 대가는 크게 받을 거에요.”
“그리고 엘가 님.”
“나는 왜. 나는 저런 거 못해. 너도 잘 알잖아.”
“엘가님은, 저와 함께 좀 가주셔야 할 곳이 있을 거 같습니다. 엘가님이 잘하시는 일을 하셔야 할 때가 올 수도 있어요. 오지 않는 게 좋지만.”
내 말에 벽에 등을 기대고 있던 엘가가 한쪽 눈썹을 치켜 올린다.
“뭔데?”
“일단 사람을 한 명 찾아야 합니다.”
* * *
아이라는 이 아크에 온 뒤로 잠이 급격히 많아졌었다. 그 모습에 의아함과 의문을 느끼고 있었지만, 한 편으로는 이렇게 생각한 적도 있었다.
원래 아이라는 잠이 많은 체질이고, 궁정에서 벗어나 여유로운 아크에 도착하고 나서야 비로소 밀렸던 잠들을 몰아서 자는 건 아닐까-라고.
궁정에선 이런저런 활동 때문에 잠을 못 자니까.
다만 그런 생각도 아이라가 급성 수면으로 정신을 잃은 때에서는 고쳐먹게 되었다. 뭐가 됐든 아이라에게는 문제가 있었다.
“이대로 영원히 일어나지 못하는 것은 아니겠지?”
함께 길을 걷고 있던 엘가가 기어이 그 단어를 입에 머금었다. 그런 우리들의 옆으로는 어둑어둑 해진 밤하늘에 무언가가 팡팡 피어오른다.
폭죽이구나.
이제 정말 축제 같긴 하구만.
살짝 감상에 잠길 틈도 없이 엘가가 말했다.
“언니 오빠들을 죽였던 저주가, 이제 아이라에게 온 거야. 아이라도 이대로 깨어나지 못할 게 틀림없어.”
“그럴 수도 있죠. 하지만, 아직 늦지 않았을지도 모릅니다.”
내가 향한 곳은 아크의 외곽 구석, 손님들을 위해 만들어진 게스트 하우스였다. 발란의 전해주었던 약도에 따르면 여기가 맞는데….
설마 저건가?
파란 양철지붕에 녹슨 콘크리트 벽이 인상 깊은 낡은 건물. 간판이 있었던 것 같은데 떨어져서 알아볼 수가 없다.
그래도 내가 찾던 「행복의 집」이 맞는 것 같다.
낙관적인 이름과는 다르게 냉난방이 지독히도 안 되는 싸구려 건물이기에 이곳에서는 가난한 노동자들도 머무르지 않는다고 했나.
주변에는 빈 그릇이 잔뜩 놓여 있었는데. 아마 짐승의 먹이를 담아두었떤 것이 아닐까 싶었다. 곳곳에서 빛나고 있는 안광들은 고양이인가?
“여긴 왜 온 거냐? 어쩐지 으스스하구만.”
자신의 양 팔을 서로 슥슥 문지르는 엘가의 물음에 나는 간단히 답했다.
“만날 사람이 있어서요. 이렇게 빠른 시일 내에 만나게 될 것이라고는 생각했지 않았지만요.”
총 8가구의 집에서 사람이 들어있는 것은 2층 맨 왼쪽 구석 방 하나뿐이다. 삐걱삐걱 녹슨 계단을 타고 올라가 구석에 도착한 나는 문을 두드렸다.
“길잡이, 당신 여기 있는 거 알고 있습니다. 할 이야기가 있으니 잠깐만 이야기를 좀 나눕시다.”
“길잡이?”
엘가는 이 녀석이 누군지 모르나. 하긴, 이 녀석이 접근했었던 것은 아이라 뿐이었지. 이 남자는 아이라에게 접근하여 이렇게 말했던 적이 있었다.
어째서 아이라의 가족들이 하나 둘 목숨을 잃었는지 그 이유를 알고 있다고.
만약 지금 아이라가 앓고 있는 기묘한 수면이 만약 그것과 연관되어 있다면─.
이 남자는 그것에 대해 알고 있을 것이고, 어쩌면 그것을 해결할 수 있는 해결책도 숙지하고 있을 게 분명했다.
다만 한 가지 걸리는 게 있다면 이 남자는 변수가 너무 많았다는 점이다. 좀 더 만반의 준비를 갖춘 후에 접근하고 싶었는데. 상황이 상황인지라 어쩔 수가 없다.
내가 그를 통제할 수 있나?
물론 나는 그의 ‘약점’이라고 할 만한 것을 쥐고 있었다. 그럼에도 변수가 많아 확실히 단언은 못할 테지. 그래서 말했다.
“엘가 님, 만약 대처할 수 없는 일이 벌어지면 도망치세요.”
일단 엘가를 데려오긴 했다만 엘가의 뱃속에는 나의 아이가 있었다. 만약 위험한 일이 벌어진다면, 나는 주저하지 않고 엘가와 함께 도주를 택할 거다.
엘가는 나의 소극적이고 방어적인 태도를 이해할 수 없다는 것처럼 문을 발로 툭툭 건드렸다.
“날더러 도망까지 치라고? 대체 이 안에 뭐가 있기에 그러는 거냐?”
“그걸 저도 모릅니다. 이제 확인해 봐야 해요.”
그렇게 한참 안쪽에서 들려오는 반응을 기다리고 있을 때였다.
“이게 누구십니까? 아주 귀한 손님들께서 오셨군요. 온 세상이 여름밤의 축제로 바쁜 날, 이런 보잘 것 없는 남자를 다 찾아와주시다니.”
목소리가 뒤의 아래쪽에서 들려왔다. 황급히 고개를 돌려보자 화단에서 풍선을 잔뜩 들고 있는 남자의 모습이 보였다.
얼굴은 로브로 가리고 있었으나, 그의 머리에는 어울리지 않는 뿔 모양의 장식이 쓰여 있었다. 축제를 한껏 즐기고 온 여행객 같은 모습이라니.
“하실 말씀이 많아 보이는군요. 바깥에서 이야기하기도 그래 보이니, 일단 안으로 들어오시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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