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aming the Villainess RAW - Chapter (247)
EP.248)속의 새 # 3
248 – 새장 속의 새 # 3
때때로 세상은 불공평하다.
악당에게 유리한 쪽으로.
내가 이런 명제를 내린 것에는 나름대로 합리적인 이유가 있었다.
평소 나쁜 짓을 일삼았던 사람이 있다고 해보자.
만약 그 사람이 돌연 개과천선을 하든, 아니면 갑작스럽게 불어오는 바람에 멜랑콜리한 기분이 들었든지 아무튼 착한 일을 하나 했을 때.
━사실 그렇게 나쁜 사람이 아닌 거 아냐?
━저런 면모가 있었다니 몰랐어!
같은 말을 들으며 재평가를 받을 때가 많다.
과장된 표현이라고 누군가 지적해줄 수 있지만 실제로 세상엔 위와 같은 재평가가 빈번히 일어나고 있다. 한때 세상에 유행했던 ‘나쁜 남자’라는 것도 비슷한 맥락이고.
그리고 지금 아이라에 대한 것도 마찬가지였다.
━아닛…! 여왕님께서 오전이 지나가는 와중에도 시녀들의 뺨을 한 번도 때리지 않으셨어!
━아까 물을 엎질렀던 시녀들도 그냥 풀어줬다더구만!
━이, 이건 사기야! 가짜다! 가짜 여왕이 분명해!
다른 사람이라면 평범하게 ‘그럴 수 있지.’라고 평범하게 평가받았을 일들이 아이라에게서 행해지면 그것만으로도 커다란 호응을 받는다.
━뭐어엇-! 여왕님께서 직접 화환을 만들어주신다고…!? 믿을 수가 없닷…!
아이라가 만들어준 화환을 받은 신하 한 명은 이 놀라운 변화를 감당하지 못했는지 바들바들 떨다가 눈물까지 흘릴 정도였다.
엘가는 그 모습을 보며 “흥, 아부 떨기는.”이라고 코웃음을 쳤지만. 나는 사람들의 반응을 십분 이해할 수 있었다.
궁정에 있을 때의 아이라는 마치 잔뜩 가시털을 세운 고슴도치 같아서 조금만 맘에 들지 않아도 이빨과 발톱을 세우며 위협을 가했다.
어떤 일을 할지 전혀 예측할 수도 없었지.
하지만 타지에서 생활하며 나름의 여유를 되찾은 아이라는 그때와 달리 인간의 상식이라는 선을 지키고 있었다.
애초부터 기대치가 낮았던 사람들은 아이라가 평범한 사람 정도만 되어도 눈물을 줄줄 흘리는 것이 당연지사.
“이곳은 변함없이 시끄럽고, 궁상맞구나.”
물론 아이라 본인은 지친 것처럼 사람들을 물린 후 왕좌에 털썩 주저앉았지만 말이다. 아이라를 만나기 위해 몰려왔던 신하들이 빠져나간 궁정의 안은 제법 조용했다.
내 목소리나 걸음을 걸을 때마다 나는 발걸음이 기둥과 바닥 사이로 작게 메아리 칠 정도로. 그 고요함을 틈타 나는 아이라에게 말했다.
“그래도 사람들이 좋아했습니다.”
“태오야, 사람들은 언제나 여왕인 나를 사랑했단다.”
그건 아닌 것 같은데.
아무튼.
오랜만에 돌아온 궁정은 약 두세 달 정도의 전에 비해 바뀐 곳도 있었고 그대로인 부분도 있었다.
아이라가 없는 와중에도 왕좌는 시녀들의 관리를 받아 반짝반짝.
궁정이 자랑하는 정원은 한참 여름 꽃들이 만개해서 보기 좋았고 얼굴에 분을 칠한 시녀들의 젊음도 한창 싱그러워서 좋다.
시간이 흘러 저녁.
광대와 악사들이 몰려와 궁정의 정원을 장식하고. 많은 사람들이 음식이 잔뜩 널브러진 테이블에 앉아 하하호호 웃는 연회.
“여왕님, 소신에게도 화환을 하나 만들어주실 수 있는지…. 저는, 가시 없는 장미와 튤립으로 변주를 좀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나쁠 것 없지.”
아이라는 자신에게 화환을 받기 위해 줄을 선 신하들에게 능숙하게 꽃을 엮어 목걸이나 관 따위를 만들어 엮어주었다.
그것을 받은 신하들은 저기 저쪽 먼 발치에서 서로가 받은 꽃들을 비교해보며 각각 감상을 말한다.
━확실히 얼굴에 기품이 넘치시더구먼.
━아크의 교육이 확실히 효과가 있긴 했나 봐. 나는 무의미한 일이라고 생각했는데.
━태오 놈…, 아니, 태오 경의 의견이 맞았을 줄이야. 이렇게 사고만 치지 않고 평범하게 살기만 해준다면 걱정이 없을 것 같은데.
그들의 이야기를 나의 예민한 반요정의 귀로 하나씩 주워 담아 듣고 있을 때. 어떤 거대한 기척 같은 것이 내게 다가오는 것이 느껴졌다.
고개를 돌리자 검은 망토를 걸친 백금발의 거한이 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외모는 어떠한 여성을 떠올리게 만들지만 눈동자는 붉고 충혈이 심하다.
“좋아 보이십니다, 라인하르트 공.”
내가 먼저 입을 열며 고개를 가볍게 숙였다. 그러자 남자는 자신이 쥐고 있었던 잔을 하나 내게 내밀어온다.
“알콜이 아니니 받아도 좋소. 급하게 오느라 목이 탔을 것 같은데?”
왜 말도 없이 덜컥 귀국했냐 말하는 것이겠지. 만약 반대의 입장이었으면 나도 혼비백산 했을 테니 그냥 가만히 있기로 했다.
“잘 마시겠습니다.”
포도주스였다. 생각보다 달지 않고 매우 셨지만 얼음이 담겨 있어서 계속된 대화로 혹사당했던 입안을 축이기에는 딱 좋았다.
서로 잠깐의 침묵.
딸인 엘가는 빈틈이 있고 나름대로 말랑말랑 한 아가씨지만, 그 아버지인 라인하르트는 타고난 무골에 철혈의 재상이라 불릴 만큼 냉철한 남자라 무시무시하다.
감히 내 딸을-!
그런 느낌으로 내 모가지를 뽑아버리는 건 아닐지 혼자서 살짝 긴장하고 있을 때, 그가 마지못한 느낌으로 입을 먼저 연다.
“인정하도록 하지. 태오 경, 그대의 의견은 옳았던 것 같으니.”
“여왕을 아크에 집어넣는다는 일요?”
“그래. 난 불가능하다고 생각했거든. 불과 몇 달 만에 다른 사람처럼 여유를 찾은 것을 보니 참 신기하군 그래. 이제 아무도 그대를 비웃지 못하겠지.”
맞는 말이었다.
내가 없는 동안 왕궁에서 어떤 변화가 일었는지 모르겠지만. 오늘 내게 접근해오는 사람들은 대부분 내게 호의를 보이고 있었다.
그때 모든 사람들에게 화환을 만들어준 아이라가 잔을 들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럼, 앙그마르의 무궁한 영광을 위해 축배를 들도록 하지. 또, 이 자리를 빌어 오랫동안 비어 있었던 궁정 마법사를 지정할까 하는데….”
스르르.
아이라의 게슴츠레하게 뜨인 눈이 나를 바라봤다.
“축배사는 앙그마르의 정원사 겸 오락담당관 겸 감찰관을 겸하고 있는 태오 가스펠. 앞으로 궁정 마법사의 직책을 짊어질 태오 경이 하도록 하지.”
이럴 줄 알았지.
궁정 마법사는 문자 그대로 궁정에 고용된 마법사를 뜻한다.
주로 왕들에게 조언을 해주거나 마법적인 일을 행하여 길흉을 점치거나 하는 일인데. 한 나라의 궁정에서 일하는 일인 만큼 적어도 5위계에 달한 대마법사들이 그 일을 한다고.
다만 아이라는 본인 스스로가 뛰어난 7위계의 대마법사였던지라 사실 궁정 마법사라는 직책을 옆에 둘 필요가 없었다. 그러다가 이번에 나를 그 자리에 앉히려는 모양이다.
슥.
나는 라인하르트가 건넸던 포도주스를 높이 들었다.
“앙그마르에 영광이 있으라.”
* * *
━태오 경, 결투재판에 대한 일, 수정 구슬을 통해 다 봤소. 언제 그렇게 뛰어난 마법실력을 기른 것이오?
━이번에 내 아들이 아크에 입학하려고 하는데. 혹시 어떤 강좌를 들어야 그렇게 뛰어난 솜씨를 갖게 될 수 있을지….
새로이 궁정 마법사가 된 내게 사람들이 우르르 몰려와 말을 걸어댔다. 그들은 내가 어떻게 그리 실력을 기른 것인지 호기심을 느끼는 듯했다.
━아닛…! 그것은 임프 꼬리 완드가 아니오! 구하기 엄청 어렵다는 것인데…!
━혹시 그 여왕 콘테스트에서 3위를 했던 마르마르라는 임프는 데려오질 않은 것이오? 우리 딸이 임프 인형을 갖고 싶다고 난리인데 어떻게 하나만….
━요새 없어서 못 산다고 하지 않소. 우리 딸도 갖고 싶다고 성화인데….
존나 귀찮군.
나는 누군가 도움을 요청할 수 있는 사람이 있을까 싶어서 고개를 두리번거렸다. 그러다가 나를 향해 다가오고 있는 누군가를 발견할 수가 있었다.
그녀가 오자 사람들이 한 걸음 물러섰다.
“태오 경, 궁정 마법사가 된 것 축하드려요. 정원사에서, 단박에 궁정의 서열 8위까지 뛰어오르셨군요. 태오 경에게 그만한 자격이 충분히 있음을 제가 잘 알죠.”
“축하에 감사드립니다, 미르나 아가씨.”
나는 미르나 드레이코에게 가볍게 인사했다. 이미 술을 조금 마신 것인지 미르나의 얼굴은 홍조로 붉고 눈빛은 우수에 차 있었다.
━드레이코 가의 젊은 가주로군. 생각했던 것보다 더 어린데?
━궁정을 박차고 나간 드레이코 가의 사람까지 다시 들여올 줄이야.
미르나 역시 이 자리의 주인공 중 하나. 사람들은 오랫동안 은거하고 있던 드레이코 가문이 다시금 궁정으로 모습을 드러낸 것에 호기심을 느끼며 구름처럼 몰려 이것저것 물었으리라.
“드레이코의 젊은 여군주로군. 이렇게 보는 건 매우 오랜만인데. 그간 내 딸로부터 이야기 잘 들었소.”
내 옆에서 사람들을 상대하고 있었던 라인하르트가 미르나를 향해 가볍게 고개를 숙인다. 그에 미르나 역시 궁정의 예법대로 가볍게 고개와 치마 끝을 잡아당겨 인사한다.
“만나서 반갑네요, 라인하르트 공. 그치만 리오네스 영애로부터 이야기를 들었다면 좋은 이야기는 없었을 것 같은데요.”
“뭐, 그렇다고 볼 수도 있고. 또래 친구라는 게 그런 것 아니겠나 싶군. 그보다, 알레이스터 경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소. 애도를 표하리다.”
“아.”
“그와 나는 친구였지. 악우였고. 깐깐한 녀석이었지만 그래도 등을 맡길 수 있는 몇 없는 사람이었거든.”
내가 알기로 엘가의 아버지인 라인하르트와 미르나의 아버지인 알레이스터는 아크에서 함께 생활하며 학창시절을 보냈다. 스텔라가 끼어 있던 모험 동아리의 창립 멤버들이니 뭐.
아마 딱 지금의 엘가와 미르나 같은 사이였겠지.
티격태격하는 친구.
“아무튼 궁정에 온 것을 환영하지. 무슨 일로 왔는지는 모르겠지만. 머무르는 동안 불편한 점이 있다면 내게 말해주도록 하고.”
그 말을 끝으로 라인하르트는 밀린 업무를 처리하기 위해 어딘가로 휙 가버렸다. 원래 재상이라는 것은 바쁜 자리다.
덕분에 내가 편했다.
원래는 내가 다 했어야 했겠지.
여유로운 시간을 가질 수 있는 김에 앞으로 어떻게 해볼지 계획이나 좀 잡아 둘까?
벨호크 가문에 어떻게 하면 쉽게 접근할 수 있을지 생각해두는 게 좋을 것 같아 나는 주변을 둘러보며 생각에 잠겼다.
일단 스텔라 벨호크와 다시 연락을 취하는 게 좋을 것 같은데.
그때 아이라가 사람들에게 말했다.
“얼마 있을 비무제에 대한 사실은 다 들었을 것이라고 본다. 그런데. 알다시피 비무제를 열기 위해 꽤 커다란 돈이 들어간단 말이지.”
아이라가 입을 열자 방금까지 시끄러웠던 연회장이 잠잠해졌다. 작은 기침소리 하나 들리지 않을 때. 아이라는 나긋나긋한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그래서 그 돈을 벨호크 가문에서 빌리기로 결정했지. 그들의 은행에는 황금이 잔뜩 쌓여있다고 하니까. 그런 의미에서 내일은 벨호크 가문에 찾아 가도록 하겠어.”
느닷없이 정면 돌파인가.
내가 다 당황스럽군.
그때 몇몇 남성 엘프가 아이라의 앞에 황급히 고개를 조아렸다.
“그게, 여왕님을 모시게 되어서 영광입니다만. 아무래도 미리 이야기 되어 있지 않았던 이상 일정이라는 것이….”
“엘프야, 나는 앙그마르의 적법한 여왕이다. 왕국의 모든 집은 내 집과 마찬가지. 나는 어떠한 집을 들어갈 때에도 미리 이야기를 할 필요가 없다.”
“…….”
“그것도 아니면. 내게 숨겨두고 싶은 것이라도 있는 것인가?”
“그럴 리가 있겠습니까. 하지만 위대하신 여왕님을 모시는 데에 준비가 미흡하다면 아무래도 이런저런 문제가 생길 수 있는 일….”
“벨호크의 권세가 창공의 매처럼 드높다는 건 이미 유명한 이야기지. 겸손할 것 없다. 그것도 아니면, 내가 모두의 앞에서 한 이야기를 번복시키도록 할 생각인가?”
구깃.
아이라가 미간을 찌푸렸다.
단지 그것만으로 회장의 공기가 얼어붙는다. 왕궁의 신하들의 눈동자에는 벌써 오랜 옛날의 트라우마가 도지는 듯 거품을 물기 직전.
그들은 눈빛으로 엘프를 타박하기 시작했다. 마치 “고집 부리지 말고 수락해!”라고 말하는 듯한 태도다.
결국 엘프들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다만 아이라의 말은 아직 끝난 게 아니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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