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aming the Villainess RAW - Chapter (291)
EP.292)# 1
292 – 떨어지다 # 1
비룡 와이번.
입으로 불을 뿜고 석벽을 움켜 부순다는 괴물. 그러한 녀석이 마왕 솔로몬에 의해 개조되어 더욱 끔찍한 마물로 변질되었다나.
놈들이 갖는 위상은 현대의 전투기와 맞먹었다. 하늘 높은 곳으로부터 일방적인 재앙을 쏟아낸다는 점에서 둘의 본질은 아주 닮았으니까.
━━━━━───!!!
다시금 높은 포효가 울려 퍼졌을 때 우리들은 혼비백산했던 것도 잊고 잔뜩 긴장한 채 주변을 살폈다.
무슨 일이 벌어질지 예상할 수는 없었으나 무엇이든 해야만 한다는 건 나 역시 알 수가 있었다.
댕댕댕댕-.
━모두 무기를 챙겨! 적습이다! 적습!
━도시 산도라에 전령을 보내! 봉화를 울려! 와이번이 나타났다!!!!
사방에서 울리는 경종. 그 일정한 크기의 타종이 사람의 마음에 깃든 긴장감을 더욱 강하게 키운다.
호흡이 빨라지고 가슴이 흥분으로 가득 차는 상황에, 눈과 귀 그리고 코는 점점 더 의식을 선명하게 되찾는다.
아드레날린이라도 분비되고 있는지 모를 일. 아니면 침착한 사고 덕분일지도. 이유야 어찌되었든 나는 이 혼란 속에서 한결 선명해진 정신으로 주변을 바라볼 수 있었다.
━와, 와이번은 처음인데…!
━거기 병사! 놀고 있지 말고 발리스타를 더 가져와!
사방으로 뛰어다니는 병사들과 무어라 소리치는 여백작 레드니.
━나 타르타르는 무서운 것이다…!
━가르르르르, 가르르르…!
그리고 바닥에 고개를 쳐 박고 있는 임프들의 두려움과 사방으로 활을 조준하고 있는 스텔라 벨호크 그리고 당황한 것처럼 눈을 깜빡이고 있는 미르나까지-.
그때 누군가가 나의 팔을 확 붙잡았다.
“태, 태오 님. 할 말이 있습니다.”
그녀는 발란 교수였다.
발란 교수가 나와 미르나의 관계를 의식해서 의도적으로 나와 거리를 두고 있었던 것은 어렴풋이 눈치 채고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나의 팔을 붙잡고 이야기를 하려 한다니.
“이 급박한 상황에 무슨 일이십니까?”
“이, 이 울음소리. 익숙한 느낌이 듭니다. 불가능한 이야기지만, 이 날카로운 울음소리…아, 아마도 공포룡 나이트피어일 확률이….”
발란이 무어라 이야기를 하려할 즈음.
스르륵.
우리들의 머리 위로 생겨날 리 없는 그림자가 드리웠다. 고개를 올렸던 나는 커다란 날개를 펼친 채 빠른 속도로 창공을 가르는 그 거대한 물체를 목도할 수 있었다.
그 모습에 가장 크게 반응한 것은 여백작 레드니였다.
“까만 몸체…, 놈이다…! 솔로몬의 비룡이다…! 솔로몬의 비룡이 나타났다…! 밤의 공포가 나타났다!!!”
밤의 공포.
나는 그것이 놈의 이름을 말하는 것임을 알 수가 있었다. 놈은 그야말로 밤처럼 새까만 몸체에 무시무시한 울음소리를 내는 괴물이었으니까.
━━━━━───!!!
그런 녀석이 우리를 향해 일직선으로 하강한다.
“이쪽으로 온다! 모두 전투준비!”
레드니가 노련한 지휘관처럼 재빠르게 소리쳤다만, 그 문장이 미처 끝맺어지기도 전에 거대한 몸체가 성벽에 내려앉았다.
콰아아앙-!
트럭처럼 커다란 몸. 발리스타가 단박에 박살난다.
━Grrrrr….
신전 기둥처럼 굳건한 두 다리와 지붕처럼 넓은 날개. 날개에 연결되어 있는 앞발과 갈고리처럼 무시무시한 발톱.
그러나 가장 인상 깊은 것은 긴 꼬리와 마찬가지로 긴 목. 그 날렵한 얼굴에 달린 무수한 이빨과 네 개의 눈동자였다.
━…….
녀석이 나를 바라본다.
본능적으로, 나는 녀석이 나를 노리고 있다는 걸 알 수가 있었다. 녀석의 까만 네 눈동자에는 오직 나의 모습만이 비춰지고 있었으니까.
━Grrrrr…….
눈동자는 흰자위 하나 없이 새까맣다. 어디를 보고 있는지, 무슨 생각을 하는 것인지 이해할 수 없을 정도로 불가해한 점은 마치 아이라를 떠올리게 만든다.
다만 녀석은 흉포했다.
후우우웅, 쾅-!!!
━아악-!
━하, 한스-!
놈이 꼬리와 날개를 휘두르자 벽에 매달려 있던 병사들이 까마득한 아래로 떨어진다. 물론 병사들을 걱정하고 있을 틈이 없었다.
“와이번을 잡을 만한 도구는 안 가져 왔는데!”
스텔라는 자신의 파우치에 슬쩍 손을 가져가며 혀를 찼다.
장벽을 벗어나려면 곤돌라에 탑승해야 할 터. 하지만 놈이 곤돌라의 입구 쪽을 단단히 지키고 있어서 놈을 상대하는 것 외에는 답이 없어 보였다.
그때 내 뒤에 숨어있던 발란이 말했다.
“나이트피어와는 다른 개체 같아요. 마왕님께서 애지중지하셨던 비룡은 얼굴에 상처가 잔뜩 있었는데. 저, 저 녀석은 비늘이 아주 매끈한 것이….”
뭔지는 모르겠지만 좋은 상황은 아닌 것 같군.
“비룡은 얼마나 강합니까?”
“개. 개체마다 차이가 있지만 5위계의 마법사가 뿜어낼 수 있는 화염을, 쏟을 수 있어요. 저, 저 녀석이 만약 밤의 공포거나, 그 근연종이라면 7위계의 불꽃까지….”
7위계의 불꽃이라고?
내 6위계 마법 ‘빙결지대’가 인근 강을 전부 얼렸을 정도였다. 그것보다 한 단계 높은 위계의 불꽃을 뿜어내는 비룡이라니.
그 자체로 살아있는 화산이나 다를 바가 없지 않을까? 그런 존재가 왜 하필 오늘 내 앞에 나타나 포악질을 부리고 있는 건지 알 수 없었다만.
“…….”
아마도 나 때문일 확률이 높아보였다.
내가 가진 소마왕으로서의 비극적 카르마 때문이든, 앙그마르의 붉은 마력 때문이든 녀석이 날 노리고 있다는 건 확실해 보였으니까.
━━─!!!
쿵쾅, 쿵쾅.
놈이 찢어질 듯한 포효와 함께 내게로 쿵쾅거리며 돌진해왔다. 그 크기가 트럭처럼 거대하기 때문에 단순한 돌진으로도 그 압박감은 무시무시했다.
─마나쉴드!
나는 마력을 폭발적으로 쥐어짜내 마나의 벽을 만들었다. 열두 겹. 내가 만들어낸 마나 쉴드 중에서 가장 많은 수였다.
마법의 성취가 한층 더 강해졌구나 싶은 기쁨도 잠시. 놈의 머리통과 내 마나쉴드가 격돌해 큰 충격이 일었다.
콰아아앙-!
마나쉴드 덕에 어찌 살아남을 수 있었다만, 거대한 송곳니가 나의 마나쉴드를 가드득 깨무는 소리가 들렸다. 이대로 있다간 깨진다.
“…무시무시하네! 다들 괜찮으십니까!?”
나는 등 뒤에 숨어 오들오들 떨고 있는 임프들과 발란 교수 그리고 다른 이들의 존재감을 느끼며 재빠르게 마법의 영창을 준비했다.
이대로 공포에 떨고 있을 틈이 없었다.
“…영창 전개.”
지금부터 나의 모든 생각과 사고 그리고 행동은 모두 마법의 주문이 된다.
7위계의 불꽃을 내뿜는 용. 어쩌면 얼마 전 상대했던 테페르 양과는 차원이 다른 상대일 터.
마물이니까 봐주는 것 없이 처음부터 가장 강대한 마법을 때려 박는다. 테페르와의 대결 이후, 강대한 마법의 필요성을 느끼고 만들어낸 나의 비기.
내 마법 중 최초로 살상을 위해 만들어진 마법.
6위계.
─별 죽이기(星殺).
* * *
쨍그랑.
테이블에 나른히 앉아있던 여왕은 행동을 멈췄다. 자신의 찻잔이 갑작스럽게 깨져버렸기 때문이었다.
꽤 오랜 시간 사용했던 물건이었긴 했지만 이렇게나 갑자기 깨져버리는 건 모양새가 기이하다.
촤르르르르-.
깨진 잔에서 흘러나온 찻잔이 테이블과 종이들을 잔뜩 적셨다.
하지만 여왕 아이라는 종이와 책들을 치우는 것 대신 테이블 아래로 뚝뚝 떨어지고 있는 방울들을 물끄러미 바라볼 뿐이다.
이를 보다 못한 리오네스의 장녀 엘가가 입을 열었다.
“뭐하고 있어? 자료들이 다 젖잖아. 그거 다시 작성하려면 비무제가 하루 정도 늦어질 텐데 괜찮겠냐?”
“…….”
아이라는 대답을 하지 않았다. 어차피 대답이 돌아올 것이라는 생각은 하지 않았기 때문에 엘가 역시 ‘별난 녀석.’하고 속으로 생각을 삼킬 뿐이다.
자신의 사촌이지만.
같은 피가 흐르고 있다는 게 믿겨지지 않을 정도로 여왕 아이라는 꿍꿍이속을 알 수 없는 여자애였다.
비유하자면….
어떤 비유가 좋을까?
반요정 녀석이라면 척척 비유 했을 텐데, 엘가는 이런 곳에 재주가 없다. 그래도 굳이 비유해보자면…, 그래, 마치 거미 같다. 거미줄을 펴 놓은 채 죽은 듯이 미동도 않는 거미.
스륵.
마침내 작은 입술이 열렸을 때. 엘가는 자신의 사촌인 여왕이 무어라 말을 할 생각인 걸 눈치챘다.
“도망쳤어….”
도망?
그 말에 떠오르는 바가 있다.
“혹시 얼마 전에 포획한 격투 님프들이 왕궁을 탈출한 것에 아직도 꿍해있는 거냐?”
“…….”
설마 님프들이 왕궁 경비들의 포획망을 뚫고 도망칠 것이라는 생각은 안 했기 때문에 방심했던 것도 사실. 엘가는 혹 자신의 탓을 해올까 싶어 먼저 선수를 치듯 다시 입을 열었다.
“야, 그 님프들 잡아서 어디다 쓰려고.”
“태오의 일행들로부터 연락은?”
“어?”
“태오의 일행들로부터 연락 온 것 있어?”
갑자기 웬 태오.
사촌의 질문에 엘가는 곰곰이 생각에 잠겨봤다.
“오늘 장벽으로 향한다고 하는 것 외에는 없었어. 지금쯤이면 산도라 대장벽 관광하고 있겠네. 나도 너도 어린 시절에 한 번 견학 가보지 않았었나?”
엘가는 아주 어린 시절을 떠올렸다.
높은 장벽에 올랐던 날.
산도라 성채는 그 어떤 장벽보다 높이가 웅장하기로 유명했었지. 산도라 장벽 너머에 있는 와이번들 때문이라고 들었다.
물론 와이번은 산도라 성채에 낙하한 개체를 마지막으로 전부 죽었다고 했었나.
흑사자와 대적할 만큼 강력한 짐승인 와이번을 볼 기대에 차 있었던 엘가로서는 아쉬움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그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였다.
아이라가 말했다.
“…떨어졌다.”
“뭐가 떨어져?”
“…….”
아이라는 대답하는 것 대신 눈을 감았다.
몹시도 피로해 보이는 모습이었다. 방금까지 차 마시면서 서류에 낙서하고 있었던 사람이라고는 생각지도 않을 정도로. 왜 아무것도 안했으면서 일한 것처럼 생색이지?
아주 이상한 녀석이다. 엘가는 새삼스럽게 사촌이 기이한 녀석인 걸 깨닫게 되었다.
‘이 녀석과 한 하렘에 들어가야 한다고?’
이런 녀석을 유혹하려고 마음먹는다는 것에서 반요정의 용기에는 칭찬을 해주고 싶어질 정도다. 그 왜, 흉포한 암컷 거미들은 수컷을 잡아먹는다 알려졌으니까.
작은 반요정 정도야 분명 한 입에 삼켜질 터.
물론,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게 엘가 자신이 잘 도와줄 것이지만.
* * *
내가 눈을 떴을 때.
모든 것이 깜깜했다.
이유는 별 것 아니고, 빛이 들지 않는 좁은 곳에 내가 갇혀있기 때문이었다. 손발을 옴짝달싹하기 힘들 정도로 좁은 장소였다.
관?
혹시 내가 죽어 관에 갇혔나? 그런 생각이 드는 게 당연할 정도로 좁았다.
“윽.”
그때 내 머리가 찌릿 울린다. 동시에 내가 어째서 이렇게 비좁은 장소에 갇혀 있는 건지 떠올리기 위해 애썼다.
마지막 기억이 뭐지?
분명 성벽에 올라온 와이번이라는 놈과 싸우다가, 내가 필살의 마법 ‘별 죽이기’를 영창 해 발사했던 것까진 기억한다. 그것이 놈의 몸에 적중하고….
그 뒤로 어떻게 된 거지?
딱히 기억이 없다.
이런 걸 보고 필름이 끊겼다고 하는 것일까? 술이라고는 평소 한 방울도 입에 대지 않는 내가 필름이 끊기는 걸 경험해본다니.
텁텁.
나는 손바닥으로 주변을 만져봤다. 그런 내 손에 닿는 것은 제법 까칠까칠하면서도 울퉁불퉁하고 딱딱한 감촉이다. 동시에 차갑다.
돌 벽?
돌로 만들어진 벽 같았다. 동굴 벽이라고 표현해도 좋을 것 같다. 그러다가 나는 마침내 손가락을 튕겨서 1위계의 기초마법의 불빛을 밝힐 수 있었다.
화아아아.
밝아진 나의 시야에 차가운 돌 벽이 보였다. 내가 생각했던 것처럼 나는 비좁은 동굴 같은 곳에 누워 있었던 모양이다.
내가 왜 여기 있지.
그런 느낌으로 나는 발쪽에 위치한 동굴 입구를 향해 몸을 돌려 엉금엉금 기어나갔다. 비좁고 어두웠던 동굴을 벗어나니 탁 트이는 세상에 제법 기분이 좋다.
물론 탁 트였다고 해봤자 높이 솟아오른 나무들이 가득한 숲일 뿐이었지만 그래도 답답한 동굴보다는 나았다.
“후.”
그래서 다들 어디에 있는 걸까.
고개를 두리번거린 나는 근처의 그루터기에 앉아 있었던 발란 교수와 눈을 마주칠 수 있었다. 의외로 가까운 곳에 있었구나.
“태, 태오 님, 드디어 눈을 뜨셨군요!”
그녀는 나를 보자마자 몹시도 반색했다. 당장 상황을 파악하고 싶었던 나는 발란 교수에게 이것저것 물어보기로 했다.
“이게 대체 어떻게 된 일입니까? 제가 왜 저 비좁은 동굴에 누워 있었던 겁니까?”
“기억이 아, 안 나시는 것인가요…? 마력외상에 의한 기억상실은 흔한 일…. 혹시, 가장 마지막으로 기억하시는 점이 무엇인가요…?”
“비룡을 쓰러뜨리기 위해 마법을 썼던 것까지는 기억이 나는데요.”
“아아-.”
내 이야기를 들은 발란은 고개를 끄덕이더니 손가락을 들어보였다.
“그 뒤로, 치명상을 입은 비룡이 날뛰어서, 장벽 일부가 무너져서 저, 저 장벽 위에서 떨어지셨습니다. 제가 붙잡은 덕에 살으셨어요. 물론 스텔라 교수도 도움을 주기는 해, 했지만….”
떨어졌다니.
저 아찔한 장벽에서 떨어졌는데 내가 살아 있는 건가. 어떤 일이 벌어졌는지 자세히는 알 수가 없다만 말만 들어봐도 정말 아찔한 이야기였다.
그게 이틀 전이라고 그랬다.
내가 정신을 차린 건 이틀만이라고.
“더, 덕분에 저도 손이 이렇게 부러졌고, 스텔라 교수도 조금 다치긴 했지만…. 그래도 무, 무엇보다 태오 님이 무사하셔서 다행입니다….”
이제 보니 발란 교수의 손에는 부목이 칭칭 감겨 있었다. 아르스 노바로서 회복이 빠른 발란 교수가 손에 부목을 하고 있을 정도면 부상이 컸다는 소리겠지.
떨어질 때 나를 감싸 안았던 건가.
“발란 교수님께 목숨을 빚졌네요.”
내 감사 인사에 발란은 고개를 가볍게 숙였다.
“저, 저는 마땅히 해야 할 일을 했을 뿐…. 도움이 되, 될 수 있어서 좋았습니다….”
“그래서, 다들 어디에 있는 겁니까? 떨어진 건 떨어진 것이지만, 스텔라 교수나 다른 사람들의 모습이 보이질 않는 것 같네요.”
“스텔라 교수라면, 근처에서 식수 조, 조달을….”
발란 교수가 무어라 설명할 때, 주변을 두리번거리고 있었던 나는 기묘한 점을 깨달을 수 있었다. 내 방향감각이라고 해야 할지 모를 것이 기이함을 알려온 것이다.
“그런데, 어째서 장벽이 저희의 남쪽 방향에 있습니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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