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aming the Villainess RAW - Chapter (323)
EP.324) 셋 그리고 둘 마침내 하나 # 4
324 – 셋 그리고 둘 마침내 하나 # 4
솔직히 인정하자면.
나는 하렘이라고 하는 단어에서 여러 명이 한 침대에서 뒹구는 상황을 상상한 적이 있었다.
이를테면 엘가와 미르나가 한 침대에서 나를 유혹하거나, 서로 얼굴을 붉히며 수줍어하는 상황 같은 것 말이다.
물론 말도 안 되는 이야기일 수도 있다.
미르나와 엘가의 사이에는 바다처럼 깊은 골이 잠겨 있어서, 두 여성이 발가벗은 알몸으로 한 침대에 올라가 있을 확률이란 매우 낮을 테니까.
그래서 그냥.
마음 한 구석에 ‘그런 해프닝이 언젠가는 있을 수도 있지 않을까-.’라는 가능성으로만 남겨 놓은 상황이었는데.
일이 이렇게 될 줄이야.
“으음.”
나는 지금 제법 초조한 느낌으로 침대 위에 앉아 있다.
마녀들의 도시, 산도라 시내에 위치한 고급 식당가의 근처 호텔. 하룻밤에 은화 다섯 닢이나 하는 비싼 곳이지만 샤워실이 한 방에 두 개나 있다.
그 두 개의 샤워실은 각각의 여성들로 차 있어서 촤르르르르-하고 물이 쏟아지는 소리가 시끄럽게 들리고 있는 상황.
“…….”
그것을 듣는 나는 다리를 떨거나 혹은 주변을 둘러보며 인테리어와 가구 등을 살펴보거나 할 뿐이다. 옷이라도 벗어 놓는 게 좋은가? 아니면 그냥 기다려야 하나?
모르겠다.
이런 경험이 있어 봐야지.
그러다가 마침내 누군가가 샤워실 안에서 수도꼭지를 비걱비걱 잠그는 소리가 들렸다.
강했던 물줄기 하나가 아주 사그라진 후. 수건으로 슥슥 몸을 닦은 후 긴 샤워 타올을 몸에 걸치고 바깥으로 나온 그녀.
나르미? 아니, 미르나인가?
구분이 순간 잘 안 됐는데. 모락모락 뿜어지는 김에서 느껴지는 애플민트 향기를 느껴보니 아마 미르나인 듯했다.
“…태오 경, 나르미는 아직인가요?”
그 목소리는 떨리고 있었다.
샤워를 하던 미르나의 마음이 얼마나 뒤숭숭했을지 조금 상상이 간다. 굉장히 우물쭈물 하는 미르나에게 나는 침대 옆쪽을 슥슥 두드렸다.
“일단 여기에 앉아 계세요. 나르미 아가씨께서 나오려면 조금 시간이 걸릴 것 같으니까.”
“으응….”
앓는 강아지 같은 소리를 낸 미르나가 마침내 내 옆에 슥 앉는다.
씻고 나오니 무척 예쁘고 귀엽다-같은 감상이 느껴졌지만. 딱히 그것을 소리 내어 말하진 않았다. 도무지 말을 걸 만한 분위기가 아니었으니까.
“아무리 생각해도, 미친 짓 같아요. 당장 뛰쳐나가고 싶어요.”
“하지만 이 방법 말고는 없다 하지 않았습니까? 서로를 위한 일이라고 생각하시는 게 편할 겁니다. 자신의 정신을 컨트롤 하는 거죠.”
내가 적당히 대답했을 때 나르미가 씻고 있던 샤워실의 물소리가 끊겼다. 슥슥 타올로 몸을 닦는 소리가 들려오니 한층 더 긴장이 커진다.
“후으으.”
그것은 미르나 역시 마찬가지였던 모양이다. 난생 처음으로 이성과 하룻밤을 보내는 사람이 씻고 나올 연인을 기다리는 모습이 딱 이런 느낌일까?
덜컥, 기이익.
마침내 닫혀 있던 샤워실 문이 열린다.
그 너머로 모락모락한 김과 함께 모습을 드러내는 나르미. 그녀는 이미 나와 미르나가 침대에 앉아 있는 걸 보더니 흠칫 놀란 것처럼 몸을 떨었다.
덕분에 발걸음이 멈췄던 것도 잠시.
“다들, 먼저 기다리고 있었네…!”
애써 명랑하게 말한 것 같은 티를 내고는 내 옆으로 와서 앉는다. 그 결과 우리는 다 같이 한 침대에 앉았다.
양 자매들 사이에 낀 나는 갑자기 현실감이 와 닿아서 몹시도 부끄러워지기 시작했는데. 그 이유는 아마 아래와 같은 이유 때문이었지 않을까 싶다.
─이제 어떻게 해야 하는 거지?
최근 내가 겪은 남녀 간의 관계라고 하면, 무릇 서로간의 신호와 야릇함이 교차하는 템포라는 게 있었다. 무드나 흥분되는 상황 같은 것 말이다.
그런데 그건 어디까지나 남자와 여자. 연인과 연인 사이의 일이었다. 일대 일. 서로의 눈동자가 오롯이 상대를 바라보고 있을 때 생겨나는 헤프닝들이란 말이다.
그에 비해 지금은 다르다.
어디서부터 어떻게 시작하면 좋을지 모르겠다.
그래도 이럴 때에는 내가 먼저 용기를 내는 게 좋겠지 싶어서, 천천히 두 손을 올려서 여성들의 허리를 각각 끌어안듯 붙잡아 본다.
“…….”
“…….”
내게 허리를 붙잡힌 미르나와 나르미.
그녀들은 같은 느낌으로 오들오들 떨고 있었다. 거대한 맹금을 앞에 둔 다람쥐들이 이렇게 떨지 않을까 싶을 정도로.
그 가운에 너머로 느껴지는 옆구리의 잘록함을 감상하며 내가 손을 천천히 올렸을 때였다. 나르미와 미르나가 거의 동시라고 해도 좋을 정도로 나의 팔을 붙잡아 막았다.
“자, 잠깐.”
“…잠깐만요!”
서로 텔레파시라도 나누고 있는 걸까?
나르미가 먼저 말했다.
“저기, 그, 일단 그 약부터 먹는 게 좋겠어. 감각을 예민하게 만드는 약을 먹어야, 효과가 좋을 수도 있으니까.”
그 말에 미르나가 얼른 한 마디 끼어든다.
“술도 조금, 마셔야 할 것 같아요. 맨 정신으로는 도저히….”
그녀들은 어디선가 가져온 수상쩍은 가루약을 입에 털어놓고는, 도수 높은 포도주를 병째로 벌컥벌컥 들이마셨다.
알싸한 알콜 냄새가 확 느껴지는 게, 내가 다 취할 것 같은 기분이다.
“나르미, 나도 좀 더 줘.”
“이제 다 마셨어. 절반씩, 끅-. 마시기로 했잖아.”
빈 병을 흔드는 나르미. 딸꾹질을 하는 걸 보니 갑작스럽게 잔뜩 마신 술 때문에 정신이 없어진 모양이다. 급성 알콜 중독이라도 오는 건 아니겠지.
“으, 갑자기 너무 덥지 않아? 방금 씻고 왔는데. 벌써부터 몸에 다시 땀나는 게…. 더워 죽겠어…!”
그때 나르미가 더위를 호소했다. 방 온도는 딱 서늘한 정도로 좋았지만 방금 먹었던 약 때문인지 아니면 술 때문인지 체온조절이 힘든 모양이다.
스륵, 스륵.
마침내 나르미는 허리에 묶인 가운의 매듭을 풀었다. 덕분에 사르르 흘러내려가는 가운 아래로 나르미의 뽀얀 옆 가슴이 보인다.
“나르미, 가슴을 그렇게 드러내면 어떻게 해…!”
물론 그 모습에 미르나는 경악했다. 하지만 나르미는 미르나의 말을 무시한 채 내 팔을 스윽 끌어당기고는 나를 자신 쪽으로 이끌었다.
“태오에게서, 좋은 냄새 난다. 요정 냄새나. 향긋한, 과일, 냄새….”
그리고는 내 팔이나 어깨에 자신의 얼굴을 묻고 킁킁 냄새를 맡기까지 했다. 고급 비누 냄새가 좋긴 하겠지.
내 냄새를 한참 여기저기 맡던 나르미가 마침내 내 몸에 자신의 얼굴을 마구 부비기 시작했다.
“태오야, 내 머리, 쓰다듬어 줘. 얼른-.”
완전히 취했구나.
하긴, 냄새만으로도 취할 것 같이 도수 높은 포도주였다. 그걸 병째로 들이마셨으니 제 정신을 유지 못해도 어쩔 수 없다.
이렇게 취한 나르미를 보는 건 처음 아닌가?
“얼른!”
나르미의 재촉에 나는 손을 움직여서, 그 부드러운 머리를 쓰다듬어야만 했다.
슥슥슥.
내 손이 닿자 몹시도 불편해보였던 얼굴이 조금 느슨하게 풀리는 게 퍽 보기는 좋다.
바로 그때였다.
“그으으….”
어딘가에서 끓는 주전자 같은 소리가 들렸다. 고개를 돌려보니 얼굴을 몹시도 붉게 물들인 미르나가 나를 잔뜩 원망하는 표정으로 노려보고 있는 게 아닌가?
“태오 경, 너무해요.”
“아. 이거는….”
“매번 그렇게, 다른 여자에게만 잘해주고. 제게는 이해만 바라잖아요. 나쁜 새끼.”
“네?”
“못 된 바람둥이 님프새끼! 호색한! 거짓말쟁이!”
생각지도 못한 욕설들이 내 가슴에 돌멩이처럼 날아와 마음을 퍽퍽 때린다.
미르나도 취했나.
하긴, 나르미가 취했을 정도의 약과 술이다.
똑같은 양을 마신 미르나가 그것을 견딜 수는 없다. 둘의 신체는 비슷하다 못해서 아주 똑같다고 볼 수가 있으니까.
한참 욕을 하던 미르나는 아주 침대로 드러누워버렸다. 그리고는 엉엉 눈물을 흘리기 시작하는데. 마치 둑이 터진 것 같은 울음이었다.
아, 이건 일종의 주사구나. 술주정 말이야.
“으, 서러워.”
나르미와 미르나의 술버릇은 꽤 다른 것 같다.
당황도 당황이지만 쌍둥이 자매의 차이를 알아가는 게 꽤 재미는 있다. 그래서 나는 일단 미르나를 달래줄 겸 손을 뻗었다. 하지만 나르미가 좀처럼 용납하질 않는다.
“…안 돼! 계속 내 머리 쓰다듬어 줘!”
“서러워-, 눈물이 막 나.”
난장판이구나.
이미 이것은 관계고 뭐고의 문제가 아닐까?
그때 미르나가 내 품으로 와락 안겨들었다.
“내가 우는 데도, 위로해주지 않다니. 너무해요…!”
그리고는 내 가운에 얼굴을 문지르며 눈물을 닦기 시작하는데. 그게 퍽 간지러워서, 이 긴급하고 위급한 상황이지만 웃음이 나올 것 같았다.
“태오야, 나한테 집중해야지!”
그때 나르미가 내 얼굴을 휙 붙잡아 당겼다. 내가 미르나에게 관심을 갖는 게 맘에 들지 않았던 모양이다.
그래서 내가 다시 나르미 쪽을 바라보고 있을 때, 미르나 역시 내 얼굴을 휙 잡아당긴다.
“…진짜 못된 님프새끼! 내가 울고 있다니까아아!”
왼쪽 오른쪽으로 당겨지는 나의 고개에 내 볼은 두 자매의 손바닥에 으깨진 찐빵처럼 짜부러지고 있었다.
바로 그때였다.
“츕.”
무언가 내 입술에 닿는 감각이 느껴졌다. 나르미가 내게 막무가내로 입을 맞춰온 것이다. 쌉싸름한 알콜 냄새가 잔뜩 나는 키스.
“앗, 나르미, 지금 뭐하는 짓이야! 얼른 떨어져!”
“츄릅, 츱.”
“그으으!!!!”
주전자 끓는 소리를 내고 있던 미르나 역시 내 몸에 와락 가까이 달라붙으며 내 얼굴 가까이 자신의 얼굴을 들이밀었다.
“저, 저리 비켜!”
나르미를 밀어내고는, 겨우 쉴 틈이 생겨서 호흡을 몰아쉬고 있는 내게 자신의 입술을 가져다 대고는 막무가내로 혀를 집어넣는다.
“츠릅.”
술 취한 미르나에게 이런 박력이 있었을 줄이야. 처녀인척 하기로 했던 것은 취기에 아주 날아가 버린 건가?
미르나가 포도주를 즐기긴 했어도 단 한 번도 취할 정도로 마신 적은 없었던 터라 이런 경험은 나도 처음이었다. 무엇보다 계속되는 키스에 숨이 좀 막힌다.
“미르나 아가씨, 잠깐 숨을 좀….”
“이제 내 차례야!”
미르나를 때어내면 나르미가.
나르미를 때어내면 미르나가 서로 교차하듯 입술을 내밀어 와서, 나는 정말 숨이 막혔다. 나를 향해 우르르 몰려 온 강아지들이 와글와글한 느낌.
귀엽긴 한데.
이대로 있다간 저번처럼 팔이 뽑혀나가는 것으로는 끝나지 않을지도 모른다. 나는 어쩌면 이 일을 너무 낙관적으로만 생각했던 것일지도 모르겠어.
「침착한 상황 판단!
재능 《침착한 사고》에 의해 경험치를 획득합니다.
모든 직업 경험치 + 5」
이대로 있을 수만은 없다.
이대로 취한 자매들에게 휘둘린다면, 영애들을 내 발 아래 두겠다고 생각하고 결심했던 것이 모두 거품처럼 터져버릴 것만 같은 기분이 든다.
그래서 나는 두 손을 뻗어, 여성들의 허리를 하나씩 휘감음과 동시에 각각의 가슴을 한 부분씩 꽉 움켜쥐었다. 가운 너머로도 알 수 있을 만큼 단단하게 솟은 젖꼭지들.
그것을 살짝 꼬집듯 하자 알기 쉬울 정도로 짧은 반응을 보인다.
“응…!”
“앗…!”
나는 부들부들 떠는 그녀들에게 능숙한 조교사처럼.
혹은 군림하는 왕처럼 당당히 말했다.
“자, 이제부터는 서로 걸친 것 하나도 없이 다 벗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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