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aming the Villainess RAW - Chapter (344)
EP.345)# 2
345 – 거미 # 2
마왕 솔로몬의 두 눈은 별처럼 빛났다고 했다.
세상의 빛과 지혜를 담은 두 눈동자로 그는 머나먼 미래를 관조했다고.
네 개의 대주술 아르스 노바들을 창조해낸 것도 그가 목도했던 앞날을 위해 필요했기 때문이라고 그랬다.
첫째로 만들어진 것이 강령주술의 가미긴.
둘째로 만들어진 것이 예지분석의 바사고.
그리고 셋째로 만들어진 것이 성녀에게 깃든 미상의 능력 아가레스.
마지막으로 만들어진 1위의 주술이 바로 눈앞에 존재하는 바엘이다.
“네가 바엘이냐?”
휘몰아치는 정적에 내가 다시금 입을 열어 물었다. 마왕이 마지막으로 만들어낸 주술이니 분명 대화가 통하기는 할 터.
그러나 녀석은 그저 검은 오수의 폭포를 맞으며 가만히 웅크려있을 뿐. 딱히 우리들이 왔음에도 특별한 반응을 보이거나 하지 않았다.
혹시 이지(理智)라고 부를 만한 것이 없는 괴물 그 자체인가? 발란 교수나 요승 바사고를 떠올렸기에 대화를 먼저 시도했다만 어리석은 일이었던 것 같기도 하다.
참방.
그때 엘가가 나의 옆으로 다가왔다.
“뭐 저런 괴물이 다 있어. 생각했던 것보다 끔찍하잖아.”
“용맹한 엘가 님도 겁을 먹으실 때가 다 있네요.”
내 적당한 말에 엘가는 흥-가볍게 코웃음을 쳤다.
“겁을 먹었다곤 안 했어. 그냥 끔찍하게 생겼다고 했지. 물론 겁쟁이 드레이코 녀석은 겁을 먹은 것 같지만 말이야.”
스윽.
엘가의 푸른 눈동자가 미르나를 향했다.
미르나는 이 장소에 들어서서 바엘과 마주하자마자 마치 뱀을 목도하고 얼어붙은 생쥐같이 굳어버렸다.
엘가의 비아냥처럼 겁을 집어 먹은 건지는 모르겠지만 상태가 좋아 보이지 않는 건 사실.
자신에게 시선이 몰리고 있다는 걸 눈치 챈 것인지 미르나는 가벼운 한숨과 함께 말했다.
“잠깐 놀랐을 뿐이에요. 세상에 저런 존재가 있을 수 있구나 싶어서. 아주 대단한 녀석이에요. 마치 뭐라고 해야 할까…. 강령술과 고대주술 그리고 마법을 통해 만들어진 인공적….”
무어라 설명하던 미르나는 말을 아꼈다.
적절한 단어를 고르고 있는 것인지 아니면 갑작스럽게 말문이 막힌 것인지 나로서는 알 길이 없다.
하지만 한 가지 확실한 것은 그녀가 무엇을 말하고 싶어 하는 지 알 것 같다는 점이었다.
1위의 바엘.
녀석을 마주했을 때 처음 느낀 감상은 마치 거대한 지네 앙갈라를 마주했던 때와 아주 닮아 있었다.
태고부터 살아왔다 전해지는 영물(靈物).
저 괴기하고 끔찍한 거미는 앙갈라가 뿜어내고 있었던 영험함과는 꽤 거리가 있었다만 그럼에도 닮았다. 그것을 재현하려 했던 것이 아닐까 싶을 정도로.
인공적으로 만들어진 영물 같은 건가?
그때 엘가가 말했다.
“그래서 저 녀석은 왜 안 움직이는 거냐? 생긴 것은 지옥에서 기어 올라온 것 같이 생겨가지고 생각보다 얌전한 건가?”
당장 격전이 일어나도 이상하지 않은 상황. 하지만 엘가의 말처럼 바엘은 움직이지 않고 있었다. 그저 검은 물 쏟아지는 폭포 아래 웅크린 채 고요하게 앉아있을 뿐.
미르나가 한 마디 했다.
“어쩌면 먹이가 거미줄을 밟길 기다리고 있는 걸 수도 있어요. 거미들은 그렇게 행동하니까. 일정 거리 이상 가까이 가면 움직여올지도 모르죠.”
확실히 그럴지도 모르겠어.
미르나의 생각에 뒷받침해주듯 금발의 님프 녀석이 “제법이네.”라고 가볍게 칭찬을 해주었다. 그 뒤 덧붙는 설명.
“네 말대로 저 녀석은 일정거리 이상 다가가야 움직이더라. 그 전까지는 이렇게 시끄럽게 굴어도 꼼짝도 안 해. 그래서 다행이거든.”
슥.
손을 들어 올리는 금발 님프.
“그럼 저기 저 녀석 너머에 있는 곳을 봐봐. 단상 같은 게 보일 거야. 그 위에 얹어져 있는 상자도. 자물쇠가 엄청 많이 달려 있지? 저 상자가 바로 내가 노리는 거야.”
녀석의 설명처럼 거미 괴물 바엘의 너머에는 제법 넓은 발판 혹 단상이라고 부를 만한 곳이 있었다.
그 위에 올려 진 것은 해적들이 건져 올린 것처럼 보이는 궤짝. 두꺼운 쇠사슬이 칭칭 감겨 꽤 박력 있는 물건이었다.
저게 뭔지 정확하게 알 수는 없었지만 거미 괴물 바엘은 꼭 저것을 지키고 있는 파수꾼 같이 보였다. 과연 도둑인 님프가 궤짝에 눈독을 들이는 것도 당연한 일일지도 모르겠어.
무시무시한 괴물이 지키는 상자는 곧 어마어마한 보물일 확률이 높으니까.
엘가가 말했다.
“뭔 소린지 모르겠지만. 아무튼 저 녀석이 먼저 덤벼오지 않는다는 건 기회 아냐? 큰 마법을 한 방 후려 갈겨주고 시작할 수 있잖아. 굉장한 어드밴티지야.”
그것도 맞는 말이지.
하지만 아이라를 붙들고 있는 상황에서 큰 마법을 준비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아이라는 마치 나무에 붙은 매미처럼 내게 달라붙어 있었으니까.
나의 몸을 꽉 끌어안은 채 도무지 떨어질 생각을 안 한다.
바들바들.
그 몸이 무척이나 떨렸다.
두려운 것인가?
저 거미 괴물이?
그럴만도 하지.
저 녀석은 아이라의 마음속에 깃들어 그 삶을 피폐하고 무감동하게 만들고 있던 원인. 결국 처형대 앞까지 끌려가게 만들었을지 모르는 원흉이다.
자신의 삶을 억누르던 트라우마 그 자체와 마주하고 있으니 두려워할 수밖에 없을 거야. 나였어도 그랬을 테니까.
그런 생각에 이르자 아이라가 무척 불쌍하게 느껴지며 얼른 이 상황에서 해방시켜주는 게 좋겠다고 생각했다.
“아이라 님, 잠깐 내려가 계셔주세요. 금방 끝내겠습니다.”
“…으으.”
나는 수면에 둥둥 떠다니는 상자 하나를 붙잡아 그 위에 아이라를 앉혔다. 내게서 떨어지기 싫은 건지 칭얼거리는 그녀를 때어내는 게 조금 마음 아프긴 했지만 어쩔 수 없다.
“그럼 계획했던 대로 갑니다. 엘가 님이 전위를 맡아주시고. 미르나 아가씨께서 그에 대한 서포트. 그리고 제가 마법으로 큰 공격을 먹일 겁니다.”
머릿속에 떠올리는 것은 탱커와 서포터 그리고 딜러 삼위의 개념이다. 지금 파티는 꽤 균형과 역할분담이 좋기 때문에 안정감이라 부를 만한 게 있었다.
만약 걱정되는 게 하나 있다면 변수가 될지 모르는 아이라 여왕이다. 전투가 시작되면 상상도 할 수 없을 만큼 혼란스러워지겠지. 아이라를 신경 쓸 시간이 부족해질지도 모를 터.
그런 내 사고를 읽은 건지 금발의 님프가 말했다.
“이 녀석은 내가 지키고 있을게. 너희들은 저 괴물 처치하는 것에만 힘 써.”
이 님프 녀석의 실력을 정확히 가늠하기는 어렵지만 나름대로 듬직하다.
그럼 좋아, 해보는 거야.
처음부터 전력으로 때려 박는다.
─영창 전개.
나의 뇌리로부터 손끝과 사지 말단 부위까지 온 몸의 마력이 끓는 게 느껴졌다. 지금부터 내 육신은 하나의 포대가 된다. 마법이라는 포탄을 쏘는 대포 그 자체.
머리에 끓어오르는 복잡한 술식과 다양한 주문들을 최대한 병렬로 계산해….
아니, 가장 거대하고 화려한 마법을 떠올리고 있던 나는 스스로의 생각이 틀렸음을 깨닫고 빠르게 정정했다.
떠올리는 것은 단순한 것이다.
더욱 치명적이게.
더욱 파괴적이게.
불필요한 것을 지우고 깎아내.
오로지 상대를 죽이는 것에만 집중하는 거다.
“무시무시한 마력이에요. 이렇게나 순도 높은 마나의 응집은 저로서도 처음 보는 일입니다.”
“내 눈에도 보인다. 위험해 보이는─.”
미르나와 엘가의 목소리가 내 귓가에서 번진다. 이내 나는 눈을 닫고 시각을 비롯한 오감을 차단한 뒤 더욱 내면 깊은 곳으로 빠져들었다.
구상하는 것은 일점 돌파.
“마창.”
─궁니르!!!
내 몸에서 강렬한 마력이 빠져나가는 느낌과 함께 마법은 이내 일선의 섬광과도 같은 형태로 사출되어 거미에게로 향해 날아갔다.
콰직, 콰지지직.
다만 그대로 격돌할 줄 알았던 내 마법은 보이지 않는 벽 같은 것에 가로 막혔다. 마법 방호? 괴물 주제에 그런 것도 사용할 줄 안다고?
이제 보니 불가시의 마법 방어막이 거미의 주변을 지키고 있었다. 이런 상태였다면 어떤 공격도 통하지 않았겠지. 하지만 솔직히 아무래도 상관없다.
내 풀 컨디션의 전심전력(全心全力).
내가 결합한 속성은 총 세 가지.
쏘아 낸다.
꿰뚫는다.
죽인다.
이 세 가지의 것을 하나로 묶어 심플하게 만들어낸 마법 궁니르는 거미가 상상하고 있는 ‘방어 한다’라는 개념을 훨씬 상회하는 것이니까.
쨍그랑-!!!
그 강렬한 마법은 거미의 두꺼운 마법 방호를 깨트리고 마침내 흉측한 뼈로 구성된 몸통을 꿰뚫었다.
━━━──!!!!
그것으로 웅크려 있던 거미가 눈동자 대신 달려 있는 여덟 개의 얼굴로 큰 비명을 내질렀다. 마치 천둥이 떨어지는 것처럼 끔찍한 비명에 모두 어깨를 움츠린다.
한 번에 절명시키려고 했는데.
마법 방호에 의해 위력이 제법 반감 됐나?
어쨌든 내가 쏘아낸 마법이 효과적으로 먹혀 들어갔다는 것은 확실해 보였다. 그럴 수밖에 없겠지. 생명력을 깎아 강화시킨 7위계 마법 궁니르다.
통하지 않을 리 없다.
━G’rrrrrr!!!!
문제는 그것으로 거미 괴물 녀석의 분노가 순식간에 최대로 치솟았다는 점일까. 녀석은 수많은 뼈로 만들어진 앞다리를 높이 들어올렸다.
거미에 대해서는 잘 모르겠지만 그것이 나타내는 게 단순한 위협이 아님을 잘 알고 있다. 그때 엘가가 허공에서 거대한 도끼를 뽑아들며 외쳤다.
“온다!!! 모두 충격에 대비해!!!”
열 개의 다리가 물살을 가르며 덤벼오는 모습이 보였다. 그 날카로운 앞발의 끝이 마침내 단두대처럼 엘가의 몸을 향해 떨어진다.
카가가각-!
금속과 금속이 서로 격돌하는 파열음이 날카롭게 들리고. 폭발하듯 비산한 검은 물보라가 비교적 잠잠해졌을 때 내 눈 앞에는 도끼를 높이 들어 올린 채 짓눌리고 있는 엘가가 보였다.
“그으읏, 드럽게, 무겁네에!!!”
버티고 있는 것이 용해보일 정도. 하지만 괴물 거미의 다리는 열 개나 있어서 엘가의 옆구리나 다리 쪽을 노려올 지도 모르는 일이다.
“태오 경! 제가 가세할 테니 다음 마법의 준비를!”
그때 미르나가 수면을 박차고 뛰쳐나갔다. 그녀의 손에서 던져지는 노란색 부적들이 거미의 몸에 닿으며 스파크를 일으킨다.
─마비 부적!
파직, 파지직.
━━Kr-r!!!
그게 꽤 효과 있었는지 거미는 괴상한 비명을 내지르며 몇 걸음 물러섰다. 동시에 짓눌려 있던 엘가가 스프링처럼 뛰쳐나가 거미의 머리 중앙에 도끼날을 꽂아버린다.
─용 사냥!
카강-!
거미의 단단한 몸체에 엘가의 도끼가 크게 튕긴다.
그 반동으로 엘가 역시 튕겨나가긴 했다만 거미의 앞다리 하나가 뚝 떨어져 바닥을 뒹구는 걸 보니 꽤 공격의 효과가 꽤 있어 보였다.
“리오네스 영애, 용 사냥이라니. 무척 불쾌한 명칭의 기술이네요!”
“지금 그런 거 따질 때냐!?”
좋아, 엘가와 미르나가 상상 이상으로 잘 교전하고 있다.
애초에 만전의 아르스 노바를 쓰러트렸던 것은 그녀들의 조부였던 영웅들.
그 후예인 그녀들이 대주술을 상대로 선전하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언제나 변수는 존재하는 법.
방심과 오만은 패망의 앞잡이나 다름이 없다.
얼른 나 또한 다음 마법을 준비해야 해.
처음 먹였던 공격에 제법 많은 기력과 마나가 뭉텅 뽑혀나갔지만 그것에 대해 징징거리고 있을 틈이 없었다.
그리하여 전선에서 고생하고 있을 여성들을 위해 재빨리 다음 마법에 대해 구상하고 있을 즈음이었다.
슥.
누군가 내 바지 옷깃을 잡아당기는 게 느껴졌다. 고개를 돌려보니 아이라가 나를 바라보며 거친 숨을 몰아쉬고 있다.
“저 녀석, 쓰러트리면 안 돼…. 저 녀석을…. 쓰러트리면…. 돌이킬 수 없는 일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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