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aming the Villainess RAW - Chapter (355)
EP.356)# 1
356 – 주인공 # 1
━━━──!!!
커다란 포효와 함께 대지를 뚫고 거대한 앞발이 솟아났다. 그 앞발의 크기만 해도 건물 한 채를 짓누를 만큼 거대했기에 압도되어버리고 만다.
쿠우우웅-!
그 땅울림에 알리에셀이 본 적 없을 정도로 커다랗게 눈을 뜨며 말했다.
“무슨, 바보 같은!!! 사찰 지저에 봉해둔 고대룡의 사체를!? 영웅 유다스조차 굴복시키지 못했던 용의 사체를!? 불가능해!!!”
콰드드득.
대지에서 긴 꼬리가 솟아나 건물들을 무너뜨린다.
마침내 전부 모습을 드러낸 괴수. 그것을 목도했을 때.
나는 일찍이 이 세상이 아직 태고의 짐승과 요정들의 세계였을 때 인간들이 느껴야 했던 절망과 공포에 압도될 수밖에 없었다.
저것이 바로 일찍이 옛 하늘을 날아다녔다는 존재인가.
와이번이나 아류 드레이코와는 차원이 다른 최강의 생물.
녀석이 그 거대한 입을 벌리며 크게 포효한다.
━━━─━!!!
그것은 마치 내려치는 천둥 같았고.
그 붉게 빛나는 눈은 불타는 태양 같았다.
━부, 붉은 눈이야. 통제되고 있지 않아. 통제되고 있지 않다는 증거야! 막을 수 없어!
문제는 그들의 말처럼 되살아난 용이라고 부를 수 있을 만한 것이 전혀 통제되지 않고 있다는 점이었다.
죽음에서 부활한 자들이 으레 그렇듯, 놈은 증오만이 가득한 것처럼 앞발과 꼬리를 휘둘러 파괴를 일삼을 뿐이다.
그때 나르미가 몸을 바르르 떨며 소리쳤다.
“언니, 이제 언니 차례야!”
그에 미르나가 손으로 수인을 맺기 시작했다.
동시에 그녀가 내게 말했다.
“태오 경, 지금이에요. 차원문으로 도약하세요.”
“그렇지만, 미르나 아가씨. 저건 아무리 봐도 괴물입니다. 이대로 아가씨들만을 두고 가도 괜찮겠습니까…!?”
저 거대한 괴물은 마치 멸망과 공포라는 것을 뼈와 비늘로 구현해 둔 존재 같았다.
저런 괴물을 쓰러트리기 위해서는 나라고 해도 수명을 담보로 최대의 출력을 뿜어내야 할 각오를 해야만 할 터.
그것을 증명하듯 내 안에 도사린 거미 바엘이 신경을 곤두세우는 감각이 여실히 느껴졌다.
━크르릉…!!!
바엘이 이렇게나 적의를 드러내는 걸 보면 분명 만만한 상대는 아니리라. 다만 미르나는 읊던 진언을 멈추고 나를 가만히 바라봤다.
모든 것이 혼란스러운 상황에서 나를 마주해 오는 그 빨간 루비 눈동자가 어찌나 영롱하게 빛나는 지, 마치 이 모든 광경이 현실 같지 않은 기분이 들었다.
“태오 경, 이제부터는 저와 나르미의 싸움. 이곳은 드레이코 가문의 전장이에요. 당신은 가서 당신의 싸움을 하도록 하세요.”
“그렇지만….”
“…멍청아, 어서 가라고…!”
미르나의 호된 외침에 나는 정신이 번쩍 들었다. 미르나의 말대로 이곳은 그녀들의 전장이었다. 내가 싸워야할 곳은 이곳이 아닌 더 먼 곳에 있다.
━별당이 불탄다!
━모두 불을 꺼! 만신전 쪽에도 병력을 더 투입해서 지켜!
사람들이 거대한 괴물의 등장에 혼비백산 하는 사이 나는 차원문으로 힘껏 달렸다.
도중에 나를 막아오려는 자들이 있었지만 항마진이 파괴되었기 때문에 공격마법 파이몬을 사용하여 놈들을 모두 날려버릴 수 있었다.
“가동.”
시동어를 읊어 차원문을 가동시킨다.
과오오오오.
내 몸에서 뿜어지는 마력.
동시에 거대한 용의 공허하고 붉은 안광이 나를 향하는 게 보였다. 어째서인지는 모르겠지만 놈은 나와 이 차원문을 타겟으로 잡은 듯이 보였다.
쩌어억.
동굴 입구 같은 입을 크게 벌린 고대룡.
놈의 입가에 붉은 기운 같은 것이 일렁이는 게 보였다. 무슨 일이 벌어질지 확실히 말할 수는 없으나 이대로 가만히 있을 수도 없는 일.
마나 쉴드를 사용해야하나?
아니, 이미 발동한 차원문 개방 마법에 잠시라도 집중하지 못했다간 좌표 값이 오류가 나 큰 사고를 당하게 될지 모른다.
바엘, 어떻게 좀 해 봐.
━크르릉…!!!
내 도우미 바엘은 용의 등장에 도무지 진정을 하지 못하고 있었다. 거미와 용은 사이가 좋지 않은 건가? 아무래도 좋으니까 좀 도와 봐. 내가 죽으면 너도 죽어!
━히오옹….
즈우우우웅.
됐다.
바엘의 도움으로 차원문이 온전히 가동하기 시작한다. 동시에 나는 마나 쉴드를 펼쳐 혹시 모를 공격에 대비했다. 바로 그때였다.
“─오랜 고대의 지배자여. 노여움을 풀라. 춤과 노래로 그대를 기리니.”
이 혼란 속에서 미르나의 목소리가 선명히 들렸다. 시 같기도 하고, 어딘가 노래 같기도 한 신비로운 음율. 그것이 사람들 사이로 은은하게 퍼져 나간다.
“타천한 자여, 옛 뱀이여. 뿜는 진노를 삼켜라. 발톱을 집어넣고 이빨을 숨겨라.”
그 특이한 진언에 용의 공허한 붉은 안광이 불안하게 일렁였다.
스스스스.
그 동굴 같은 입안에 보이고 있던 기운도 조금은 느슨해졌다. 용이 움직임을 멈춘 것에 모두들 행동을 멈추고 하늘을 올려다봤다.
━멈췄어.
━저거 봐. 눈이 푸른빛으로 변하고 있다.
━옛날이야기랑 똑같아. 정말 이 본당 아래에 용의 사체가 있었을 줄이야….
━두 아가씨께서 용을 부리고 있어.
사람들의 말처럼 아마 미르나가 저 거대한 고대룡의 사체를 통제한 것 같았다. 미르나와 눈이 마주쳤을 때 그녀가 입술을 벙끗거렸다.
“어서 가요, 이것도 오래가지는 않을 거에요.”
소리는 들리지 않았지만.
분명 그렇게 말한 것 같았다.
* * *
째깍, 째깍.
엘가는 흘러가는 시간을 보며 점점 초조해졌다.
다리를 덜덜 떨고 있는 그녀를 향해 같은 테이블에 앉아 있던 스텔라가 한 마디 했다.
“엘가 양, 뭘 그렇게 초조해 하고 있어? 이번 비무제에 돈이라도 건 거야?”
“…….”
스텔라는 아직 상황을 잘 모른다. 그녀를 온전히 자신들의 편으로 끌어들이지 않았기 때문이겠지. 바보 같다고 생각하면서도 한 편으로 엘가는 스텔라가 부러워졌다.
자신도 차라리 아무것도 몰랐다면 이렇게 속 편하게 있었을 텐데 말이다.
어느덧 개막식이 예정된 정오가 다 되어 가는 와중에 아직 반요정과 드레이코 자매의 모습이 보이지 않음에 엘가는 큰 스트레스를 받았다.
레오노이가 없었다면 한 바탕 날뛰었을 지도.
그런 면에서 엘가는 문득 자신이 정말 이것저것 절제할 수 있는 어른이 되었구나 싶어서 놀랍기도 했다. 어쩌다 이렇게 됐지? 모르겠다. 어느새 정신을 차려보니 이랬지.
“미간 사이에 주름 생기는 건, 아버지인 라인하르트랑 꼭 닮았구나? 무슨 생각이 그리 많아? 내게 털어놔 봐.”
스텔라가 다시금 말을 걸어왔다.
나이 많은 사람 특유의 오지랖을 발휘했는지 모를 일이다만 제법 신경 쓰이는 소리였기에 엘가 역시 반응하게 된다.
“내 아버님이?”
“그래, 역시 닮는 모양이야. 그래서, 이번 경기에 네 아버지도 온대? 아니면, 왕성을 비우기 좀 그러니까 안 오려나?”
“글쎄. 그건 나도 몰라.”
와도 이상하지 않고 안 와도 이상하지 않다. 엘가가 신경 쓰고 있는 건 아버지가 아닌 다른 남자였으니까. 그놈이 지금쯤 와야 하는 데 안 오고 있다.
파아앙-!
그때 콜로세움의 천장 너머로 폭죽이 터져나가는 소리가 요란히 들리기 시작했다. 그것이 의미하는 것은 하나. 개막식이 시작했다는 것이겠지.
벌써 정오인가.
“…….”
엘가의 초조함은 이제 어느 한계를 넘어서고 있었다. 무슨 일이 생긴 건가? 창고의 보물을 갖고 다시 돌아오기만 하면 되는 간단한 일을 이렇게 시간 끌고 있다니.
와━─!
그때 사람들의 환호와 함성이 크게 들렸다. 여성의 가느다란 목소리가 무어라 확대되어 웅얼거리는 걸 보니 아이라가 크리스탈 마이크에 대고 연설이라도 하고 있는 지도 모를 일.
사람들의 이목을 받으며 도도하게 굴고 있을 그 희멀건한 얼굴을 떠올리니까 엘가는 갑자기 머리끝까지 화가 났다.
‘망할 계집애, 그냥 좀 적당히 못이기는 척 꼬셔지면 덧나? 왜 자기만 비싸게 굴어. 누구는 튕길 줄 몰라서 안 하는 줄 아나.’
엘가에게 이제 아이라는 밉살맞기 짝이 없는 사촌이 되었다. 자신에게서 반요정을 빼앗아갈 때는 언제고, 이제는 마치 관심 없는 것처럼 내치려고 한다니.
마음 같아서는 매몰차게 버려지고 뒤늦게 후회해 엉엉 우는 꼴을 보고 싶을 정도였다.
‘그보다 왜 이렇게 안와?’
초조함에 다리가 더욱 달달 떨린다.
‘역시 내가 같이 갔어야 했어.’
그런 후회로 손에 쥐고 있는 가짜 신분증을 꽈악 쥐어본다.
‘진짜 오기만 해 봐. 존나 때릴 거야.’
하지만 그런 마음은 시간이 지나가며 점점 비굴한 타협 같이 변했다.
‘제발 오기만 해. 소원이든 뭐든 다 들어줄 테니까. 얼른 와. 진짜 시간 없어.’
이제 정말 첫 경기의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첫 경기는 모든 참가자들이 무대에 나서서 몇 개 없는 깃발을 뺏는 서바이벌. 그랬기에 모든 참가자가 자리에 있어야 했다.
남은 시간은 대략 5분.
5분 이내에 반요정이 나타나지 않는다면 실격패 된다.
‘빨리 와라!’
엘가는 신실함과 거리가 먼 사람이었다. 가끔 행사에 의해 참여한 예배 시간에는 졸기 일쑤였고, 흔한 기도문 한 줄 외우고 있지 않았다.
하지만 오늘은 난생 처음으로 스스로의 의지를 담아 신 앞에 기도를 하게 되었다. 만약 이 5분 이내로 반요정이 도착한다면 감사함을 담아 큰돈을 헌금하리라.
그런 느낌으로 째깍째깍 흘러가는 시계를 바라보고 있을 때였다. 저 멀리서 누군가가 저벅저벅 다가오고 있는 기척이 느껴졌다.
혹시 아직 경기장에 입장하지 못한 관람객? 아니면 볼 일을 보고 온 선수? 그것도 아니면, 어쩌면….
희망으로 고개를 들어 올린 엘가는 저 멀리서 복도를 걸어오고 있는 남자를 발견할 수 있었다.
검은 로브를 눌러 쓰고 얼굴을 밋밋한 나무 가면으로 가리고 있었지만 남자라는 걸 안 것은 넓게 벌어진 어깨나 높이 솟은 키가 남성 특유의 그것이었기 때문이다.
“신분증.”
남자는 엘가에게로 다가와 손바닥을 펼쳤다. 엘가의 손바닥을 폭 덮을 수 있을 만큼 커다란 손바닥에 엘가는 몹시도 당황했다. 신분증?
그때 여유롭게 차를 마시고 있던 스텔라가 미간을 좁혔다.
“…당신은?”
무슨 상황인지 엘가는 적응하기 힘들었다. 하지만 곧 자신이 해야만 하는 일이 무엇인지 깨달을 수 있었다. 그래서 손에 쥐고 있던 가짜 신분증을 남자의 큰 손에 건네주었다.
“…지면 가만 안 둬. 너한테 모든 재산, 내 인생. 전부 배팅했으니까.”
그에 남자가 말했다.
“알아.”
“알아? 안다고? 그런 사람이 이렇게 늦게 와?”
엘가는 짜증을 부렸다.
가면의 남자는 그저 여유롭게 말할 뿐.
“엘가, 원래 주인공은 늦게 등장하는 법이야.”
주인공이라니.
웃기고 있어.
엘가는 말하는 것 대신 남자의 등을 손바닥으로 강하게 쳤다.
팡-!
평소 같았으면 꼴사나운 비명을 내질렀겠지만 키가 컸기 때문인지 어른이 되었기 때문인지, 그는 마치 단단히 뿌리를 박은 나무처럼 듬직했다.
그것으로 남자는 저 기나긴 복도를 넘어 모든 사람들이 크게 환호하고 있는 경기장 안으로 들어섰다. 엘가도 이제는 자리에서 일어나 특별히 마련된 VIP 관람석으로 향한다.
그때 스텔라가 옆구리를 쿡 찔렀다.
“이게 어떻게 된 일이야? 저 사람, 뭐라고 해야 할까. 내가 아는 사람 같은데 동시에 아는 사람 같지 않았어. 뭐라고 해야 하나….”
“몰라. 이제, 보면 알 거야.”
* * *
하아, 하아.
가면을 썼기 때문인지 호흡이 잘 빠져나가지 않아 내 숨소리가 더욱 크게 들렸다. 잔뜩 성난 엔진 같이 두근거리는 심장 소리와 숨소리.
━도나텔로, 힘내!
━아, 해설진으로서 이번에 주목해야 할 선수가 있다면 등번호 12번의 펀치노이 선수와….
여기저기 떠드는 관중들의 환호와 해설자들의 목소리가 경기장을 가득 매우고 있다. 몇 명이나 있을까? 만? 십 만? 알 수 없다.
본디 10만 명까지 수용 가능하도록 경기장을 넓혔는데 생각보다 더 많은 인원이 몰려와서 경기장 바깥까지 인산 인해였었지.
━히오옹…!
나도 알아.
관중들의 숫자는 중요하지 않다는 것.
그들은 어디까지나 관중.
엑스트라.
나 또한 그랬었다.
나 또한 본디 이 이야기의 관중에 불과했다만 이제는 다르다.
스슥.
“당신.”
마침내 경기장으로 들어서는 내 앞에 누군가 말을 걸어왔다. 안경을 쓴 남성으로 아마 이 행사를 담당하고 있는 산도라 시청 직원이 아닐까.
“당신은 누구십니까? 참가선수라면 신분증을 보여주십시오.”
신분증.
그 말에 나는 손에 쥐고 있던 종이를 그에게 내밀었다. 그것을 한참 읽어 내려가고 있던 남자가 물어왔다.
“참가번호 1432번 ──선수.”
내 이름이 이상하다고 생각한 건지 내 복장이 맘에 들지 않는 건지, 그는 내 모습을 슥슥 훑어보더니 곧 입구를 열어주었다.
“첫 경기 시작까지 얼마 남지 않았으니 얼른 경기장 위로 올라가십시오.”
슥.
그가 내게 번호적인 스티커 같은 것을 등에 붙여주었다. 그것으로 나는 무대 위로 올라가 수많은 참가와 관중들 앞에 섰다.
땅을 흔드는 환호와 함성.
여기저기 설치되어 있는 발광 조명들과 강렬한 햇살 아래.
모든 것이 아찔한 빛으로 번진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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