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aming the Villainess RAW - Chapter (365)
EP.366)제전 # 2
366 – 왕자의 제전 # 2
이 세상엔 마법사들을 대항해 싸우는 자들이 잔뜩 있었다.
그들 중 몇몇은 실제로 효과적인 기술과 재주를 개발하고 발전시켜 학파와 가문을 일으키기도 했다.
이를테면 드레이코 가문의 흑마술이 바로 그것이다. 내면과 대기 중의 마나를 다루는 마법에 비해 드레이코 가문의 흑마술은 혼과 영을 다룬다지.
봉인과 제압에 있어서 그들을 따라갈 자들은 이 세상이 많지 않을 터.
“그림자 속박술.”
나는 단검을 떨어트려 아이라의 그림자에 꽂았다. 나르미의 말에 따르면 그림자란 내리쬐는 햇볕에 드러나는 영혼의 단면이라고 했던가.
솔직히 이해는 잘 되지 않았지만, 그림자에 특별한 주술을 담아둔 단검을 꽂아 넣음으로서 아이라의 움직임과 마법을 봉쇄할 수 있다는 것만 알면 됐다.
효과가 있나?
스스스스스.
내 목과 팔 다리를 휘감고 있던 검은 팔들이 소멸했다. 덕분에 나는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는 몸으로 아이라를 향해 손을 뻗었다.
아이라를 쓰러트릴 것도 없이 왕관에 손을 대기만 하면 내가 이긴다. 그런 규칙이었지. 그래서 그녀의 머리 위에 얹어진 티아라에 손을 가져가 그것을 움켜쥐려던 때였다.
슥삭.
내 오른손의 손가락이 무언가 날카로운 것에 잘려 피를 흩뿌렸다. 순간 당황했지만 나는 곧 그것이 현실이 아님을 눈치 챌 수 있었다.
“…….”
내 손은 멀쩡했으니까.
하지만 그대로 아이라의 왕관을 쥐었다면 정말 손가락이 잘려도 이상하지 않았으리라는 예감이 들었다. 그렇다. 방금 내가 본 것은 일종의 ‘예지’라고 불러도 좋을 예감이었다.
그때 아이라가 말했다.
“너도 본 모양이구나.”
“본다고?”
“나와 같은 광경. 나의 눈을 더욱 자세히 봐봐.”
아이라의 말에 나는 그 새까만 눈동자를 더욱 들여다봤다. 그러자 내 머릿속에 그려지는 것은 손가락이 잘리는 광경뿐만이 아니었다.
아이라를 향해 마법을 영창 하는 내 모습과 그것에 대해 반격하는 아이라의 모습이 그려지기 시작했다.
특이한 것은 그것이 마치 다른 이의 눈으로 바라보는 광경처럼 조감(鳥瞰)되고 있다는 점이었다. 높은 곳에서 누군가 나를 내려다보는 시선이라니.
“이건….”
“투시의 눈을 가진 자들만이 볼 수 있는 풍경이지.”
“…투시?”
“벽과 상자를 넘는 투시. 더 나아가서, 미래와 과거라는 장벽마저 넘는 시선을 가진 자들에겐 이런 것도 가능해. 지금의 태오 너라면, 분명 초대받을 수 있겠지.”
우우우우우웅-.
아이라를 주변으로 주변 배경이 까맣게 물들기 시작했다. 그것은 마치 하얀 도화지를 향해 뿌려지는 먹물의 파도처럼 빠르게 모든 것을 뒤엎어 버린다.
나와 아이라는 어느새 비무제의 경기장이 아닌 허공에 부유하듯 서 있었다.
그 까만 공간이 어딘가 낯이 익다.
“여기는….”
그러다가 나의 예민한 감각이 최근 내가 이곳에 온 적이 있다는 걸 깨닫게 해주었다. 내 발목에 새겨진 멍 자국이라고 불러도 좋을 것이 욱신거리기 시작했으니까.
이곳은 그곳이었다.
내가 누군가에게 발목을 붙잡혔던 곳.
수명 100년 몫으로 폭발시켰던 마법 태오-노바. 그것으로 잠깐 정신이 날아갔을 때 마주할 수 있었던 공간 말이다.
그곳에 내가 다시 서 있다니, 이게 어떻게 된 일인지 의아했다. 아마 눈앞의 여왕은 이에 대해 답을 알고 있겠지. 내가 물었다.
“여기는…?”
“시간의 너머. 과거와 미래를 볼 수 있는 자들만이 이곳에 도달할 수 있지. 이곳에서는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가 같은 말이야. 시간의 흐름이 의미 없고, 그렇기에 변화도 없고.”
무슨 말인지 이해하기 위해 나는 《침착한 사고》를 굴려봤다. 내가 머리를 돌려 이해한 바로는 이곳이 흘러가는 시간과 상관없는 규칙의 공간이라는 것이었다.
아이라가 가진 《천리안》은 그런 눈이다.
단순히 손 안의 동전이나 컵 안에 들어 있는 물건을 꿰뚫어보는 것을 넘어, 시간이라는 벽을 꿰뚫고 그 너머에 존재하는 이 공간을 바라보고 인지할 수 있다고.
그것으로 이 괴이한 장소에 도달할 수 있다는 모양이다.
“나는 전망대라고 부르는 걸 좋아해.”
아이라가 손짓하자 우리 주변에 보이고 있던 까만 어둠이 맑게 개이기 시작했다. 곧 나와 아이라가 처음 만났던 날이나, 엘가에게 내가 눈이 긁혔던 날들이 재생되듯 보였다.
“내 눈은 자세한 과거를 보는 눈. 이 전망대에서 나는 만물의 과거를 볼 수 있지.”
아이라가 계속해서 말했다.
“하지만 보는 것만 가능해. 이곳에서 우리들은 영혼만이 존재하고 있을 뿐이니까. 과거에 개입하는 건 불가능하지. 아무리 노력해도 불가능했어.”
“그래도 이런 게 가능하다면….”
“무엇이든 가능하지 않냐고-. 태오, 너는 그렇게 말하고 싶은 것이겠지. 하지만 나는 이곳에 오는 걸 좋아하지 않아. 이곳에는 그가 있으니.”
“그…?”
“너도 만났을 거야, 앙그마르의 태오 가스펠. 네 발목을 붙잡는 남자가 이 시간도 공간도 의미 없는 영겁의 영원 속에 도사리고 있어.”
* * *
소녀는 어느 순간부터 기이한 것을 보았다.
처음 보는 꽃과 나무들.
커다란 짐승과 요정들.
현명하고 지혜로운 소녀는 그것이 오랜 옛날의 이야기들이라는 걸 알 수 있었다. 자신에게 과거를 들여다볼 수 있는 눈이 있다니.
소녀는 오랜 기억들을 뒤적여 그것이 일종의 투시이자 신령들의 은혜인 《천리안》이라 불리는 능력임을 스스로 알게 되었다.
━멋지네.
소녀는 옛것들을 바라보는 눈을 통해 많은 것을 배우고 단련했다. 곧 자신의 눈이 과거뿐만 아니라 아주 조금이라면 미래까지 볼 수 있는 것도 알아냈다.
물론 자신의 미래는 보이지 않았다.
그저 오늘 점심 이후 비가 내린다는 것을 알 수 있는 정도.
하지만 거울을 손에 쥔 사람이 자신의 얼굴을 들여 보고 싶어지는 게 당연하듯.
소녀는 자신의 눈으로 스스로의 미래를 보고 싶어 했다. 그래서 자신이 볼 수 있는 과거를 더욱 뒤적이며 방법을 찾다 마침내 누군가와 눈을 마주치고 말았다.
그가 자신과 동류라는 것을 소녀-아이라는 단 한 번에 알아볼 수 있었다.
차이점이 있다면 아이라의 눈은 과거를 바라보고 있지만 그의 눈은 올곧게 미래만을 보고 있었다는 점이다.
━좌표. 찾았다.
그것은 오싹하기 그지없는 존재였다.
“그날부터 나는 그 남자의 공격을 받았어. 그는 과거로부터 내게 많은 암살자를 보냈고, 나를 무너뜨리기 위해 모든 노력을 아끼지 않았지.”
남자, 솔로몬은 미래를 볼 수 있는 눈을 가졌다고 했다.
“효과적이었어. 나를 침몰직전까지 몰았고. 나는 가라앉기 직전이었지.”
마왕은 과거를 들여 보고 있던 아이라와 시선을 마주쳤고. 방대한 시간 속에서 아이라가 있는 세계의 좌표를 정확하게 얻어낼 수 있다고 그랬다.
“나는 태오, 너 역시 그가 보낸 과거의 망령 중 하나일 줄 알았어. 태오 가스펠, 분명 그런 이름의 암살자가 내게 다가올 건 알고 있었거든.”
아이라의 말을 듣고 떠올린 것은 요승 바사고였다.
어쩌면 본디 ‘태오 가스펠’이라는 이름으로 활약해야 했을 그는 아이라의 말대로 과거의 마왕 솔로몬이 미래로 보낸 암살자일 수도 있었을 터.
“하지만 태오, 네게서는 아무것도 볼 수 없었어. 네 마음에서는 목소리도 들려오지 않고. 보고 싶지 않은 과거가 보여 지지도 않았지. 그래서 아주 잠깐, 나도 오랜 꿈들에 빠져버리고 만 거야. 너와 함께한다면 나 역시 평범한 사람처럼 살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아이라의 새까만 눈은 아주 약간이지만 쓸쓸해보였다.
“태오, 너를 읽을 수 없는 까닭은 누군가 너를 숨기려 한 것이겠지. 나와 같은 자들로부터. 그 남자와 같은 자들로부터. 하지만, 이제 그도 너를 알아.”
슥.
아이라의 손이 내 발목을 가리켰다.
“영혼에 표식을 새겨두었지. 이제 네게도 과거로부터 추격자가 따라 붙을 거야. 어쩌면 이미 만났었을 수도 있고.”
“안드로말리인가….”
머릿속에 얽혀 있던 실타래들이 하나 둘 풀리는 기분이었다. 그들은 문자 그대로 과거로부터 미래를 향해 보내지고 있었던 암살자 그 자체였던 것이구나.
“그 남자는 파괴를 원해. 자신의 모든 것을 대가로 지불하고도 부족해 미래영겁을 제물로 내걸었으니까.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의 모든 것이 파괴되었을 때. 그는 비로소 원하는 걸 얻을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하거든.”
긴 이야기들에 하나의 질문이 불쑥 입 박으로 튀어나왔다.
“아이라, 어째서 이런 일이 벌어지고 있다는 걸 말 안 해준 거야?”
“누구도 믿지 못할 테니까. 그리고 여러 사정들이 있어. 이해하기 힘들겠지만.”
확실히.
이 광경을 직접 목도하고 있는 나조차도 아직 현실감이 느껴지지 않는 부분이 있었다. 만약 이런 이야기를 아이라가 사람들에게 말해봤자 미친 여왕의 헛소리로밖에 들리지 않았겠지.
나도 그렇게 들었을 것 같다.
“그래서 태오야, 네게 더 이상 이 일에 대해 관여시키고 싶은 마음은 없어. 마왕이 노리는 건 나겠지. 내가 죽는다면 장벽이 무너질 테니까.”
“장벽이 무너지면 미래도 없어질 테고?”
“그래, 역시 왕국에서 두 번째로 똑똑한 남자야. 그러니, 내게 너무 가까이 접근하지 마. 위험해 질뿐이야.”
아이라의 표정은 어딘가 쓸쓸해 보였다.
내가 답했다.
“그럴 수 없다는 거 잘 알잖아.”
그것은 나 자신에게 하는 말이기도 했다. 아주 오랜 예전에는 아이라를 두고 떠나면 어떨까 몇 번 고민하기도 했었다.
그러나 그러지 못한 까닭은 내가 없는 곳에서, 그녀가 홀로 수많은 사람들의 사이에 외롭게 앉아 있을 모습이 떠올랐기 때문이었다.
“나도 그럴 수 있었으면 삶이 몇 배는 편했을 거야. 하지만 나는 미래 같은 걸 볼 수 없어도, 내가 평생을 걸쳐도 너를 두고 갈 수 없다는 걸 알아.”
“태오야, 너는 역시 왕국에서 가장 바보 같은 남자야.”
“알아. 하지만, 이곳에 나를 초대해주고 이런 이야기를 설명해주었던 데에는 이유가 있던 것이겠지. 아이라, 너도 살고 싶은 거잖아.”
내 말에 아이라는 내게서 고개를 휙 돌려 뒤를 돌아버렸다.
“네가 자꾸만 나를 귀찮게 하니까. 덕분에, 나도 기대고 싶어져버려. 너는 나를 약하게 만들어, 태오 가스펠. 너는 나를 말랑하게 만들고 말아.”
“약해지는 효과가 있었다니 다행이네. 그러지 않고서는 내가 이 비무제에서 우승하는 건 힘들었을 테니까. 이제 슬슬 아이라 네게 걸린 자동 방호주문도 풀렸겠지.”
딱.
내가 손가락을 튕기자 주변에 보이는 모든 것들이 물에 씻겨나는 비누처럼 사라졌다. 이제 보이는 것은 혼잡스러운 경기장과 군중들 또 바닥에 널브러져있는 사람들이었다.
“윽.”
그때 나의 눈이 고춧가루라도 맞은 것처럼 맵고 욱신거렸다.
눈이 지나치게 혹사당했다는 느낌은 어렴풋이 있었다. 눈에 담을 수 없는 것을 억지로 다 담아내려고 하다 보니 과부하가 온 것이겠지.
하지만 나는 멈출 것 없이 눈을 부릅떴다. 내 눈에는 그림자에 단검이 꽂힌 채 가만히 멈춰 서 있는 아이라의 모습이 보였다.
“이건 받아가겠어.”
슥. 내 손이 향하고 있는 것은 아이라의 머리에 올려진 승자의 왕관이었다. 마침내 그 얇은 보석들에 손끝이 닿았을 때 아이라가 작게 말했다.
“돌이킬 수 없어질 거야.”
나는 그 물음에 간단히 답해줄 뿐이다.
“돌이킬 필요 없어.”
꽈아악.
마침내 아이라의 왕관이 내 손에 붙잡혔다. 그것은 가볍고 얇으면서도 동시에 내가 들어본 물건들 중에서 가장 무거웠다.
“내가 했던 일들 중 무엇 하나 돌이킬 필요가 없다.”
이렇게 무거운 것을 머리에 얹고 다니니 사람들이 이상해지는 거야. 아이라도 솔로몬도. 어쩌면 나도 이상해질 지도 모르지.
슥.
나는 그 무거운 왕관을 머리 위로 천천히 들어올렸다.
“─나는.”
어딘가에서 시선이 느껴졌다. 고개를 돌리자 많은 눈동자가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모두 내가 입술을 벌리길 고대하고 있다.
그들이 바라보는 나는 무엇으로 보일까.
무엇이 되었든.
오늘로 나를 바라보는 시선들이 크게 변하리라.
“만민이여 귀를 열고 들으라! 솔로몬 앙그마르의 손자이자 이사야 가스펠의 아들, 앙그마르의 태오 가스펠! 내가 여기에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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