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aming the Villainess RAW - Chapter (391)
EP.392)# 3
392 – 친구 # 3
아침 해가 떠올랐을 때.
나는 성채 중앙 쪽에 위치한 훈련장 공터를 향했다.
지난 밤 사이에 병력들이 우르르 빠져나간 성은 황량한 폐허 그 자체라 으스스한 구석이 있다.
“아무도 없습니까?”
훈련장에 가장 먼저 도착한 것은 나인가? 주위를 슥슥 둘러보았을 때는 그저 사람들이 버리고 간 허수아비나 샌드백, 지난 밤 타고 남은 장작만이 검게 그슬려 있을 뿐.
휘오오오-.
아직 새벽기운이 가시지 않은 가을바람이 불어와 조금 쌀쌀하다. 바로 그때 저기 멀리서 누군가 나를 향해 손을 흔드는 게 보였다.
“일찍 나왔네! 내가 1등인 줄 알았던 거야!”
녀석은 붉은 머리의 임프였다. 아침 햇살이 반사되는 머리에는 마치 천사의 고리처럼 윤기가 넘쳤다.
손을 붕붕 흔드는 그 모습이 담고 있는 생동감은 꽤 커서, 나는 녀석이 이미 이 세상 사람이 아닌 유령이라는 것이 도통 믿겨지질 않았다.
임프가 도착함과 동시에 저 멀리서 하나 둘 사람들이 모습을 나타냈다. 임프 다음으로 모습을 보인 것은 엘가다.
“뭐야, 태오 너 밖에 없냐? 다들 늦잠이라도 자는 건가.”
엘가에게는 내 옆에서 주변을 둘러보고 있는 임프가 보이지 않았다. 내가 옆으로 슬쩍 손바닥을 내어 보이자 “여기 그 임프도 있냐?”라고 은근한 목소리로 묻는다.
내가 고개를 가볍게 끄덕였을 때 저 멀리서 누군가 소리쳤다.
“태오야, 일찍 나왔구나!”
나르미다.
그 뒤에는 활동하기 좋은 가죽 경장을 입은 미르나 아가씨가 가볍게 몸을 스트레칭하며 하얀 입김을 만들어내고 있다.
“이제 겨우 시월의 초인데. 아침이 조금 쌀쌀하군요. 이런 날씨에 땀을 흘렸다간 자칫 감기가 걸릴 수 있겠어요.”
슥슥.
주변을 둘러보는 미르나와 나르미 아가씨들. 아마 엘가와 나 그리고 임프 외에 다른 사람은 오지 않은 건지 살피려는 것이겠지.
머지않아 스텔라 교수 역시 나타났다.
“뭐야, 다들 일찍 나와 있었네. 어제 그렇게 헤어져놓고. 사실은 다들 조금 의욕이 있었나 봐? 역시 아직 어린 애들이라니까.”
이제 남은 것은 아이라 정도인가. 슬슬 약속했던 아침 아홉시가 되어가고 있었다. 시간을 지키지 않으면 임프가 화를 낼 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조금 초조해진다.
이럴 줄 알았으면 아이라의 방을 들렸다 올 걸 그랬나?
지금이라도 찾아가 보는 게 낫지 않을까 생각할 즈음. 가벼운 가죽 바지에 재킷을 걸친 아이라가 마지막으로 훈련장에 모습을 드러냈다.
아이라가 저렇게까지 평범한 서민용 옷을 입은 건 오랜만이었기에 조금 낯선 기분을 느꼈던 것도 잠시, 미르나가 짝-손뼉을 친다.
“모두 아홉시 전에 다 모였네요. 이제 그럼 오늘 모인 본론에 대해 이야기하도록 하죠.”
모두의 이목이 미르나를 향해 모인 와중, 나는 슬쩍 사람들의 수를 살폈다. 나와 미르나르미 그리고 스텔라와 엘가와 아이라 마지막으로 임프.
일곱.
홀수로 떨어지는 건 꽤 애매한 숫자였다. 양 팀으로 나눌 때 문제가 생기긴 하겠네. 물론 엘가나 아이라 같은 경우는 아무래도 좋다는 것처럼 하품을 하고 있었지만.
“그래서, 우리가 이제 뭘 할 건데? 기대 된다!”
“그러게, 재미난 경험이 되겠어.”
나르미 아가씨나 스텔라 교수 같은 경우는 그 반대로 흥미에 눈을 반짝이고 있었다. 그때 미르나가 나를 바라봤다. 내게 설명을 대신 해달라는 걸까?
슥.
나는 임프의 눈치를 한 번 본 후에 사람들에게 말했다.
“그러니까, 저희는 오늘 여기 있는 임프와 함께 해가 저물 때까지 이것저것 할 겁니다. 무엇을 할지는 아마 그때그때 정하게 될 것 같네요. 그럼 우선….”
내가 무어라 말을 하려고 할 때 임프가 소리친다.
“우선, 간단하게 옥졸과 임프부터 하는 거야! 일곱 명이니까, 셋이랑 넷으로 팀을 나누면 될 것 같은 거야!”
옥졸과 임프?
낯선 명칭에 나는 잠깐 말문이 막혔다. 곧 나와 함께 이야기를 듣고 있던 미르나가 말했다.
“이단 사냥 놀이를 하자는 모양이네요.”
이단 사냥 놀이는 또 무엇인지 궁금해 할 때 잠이 부족했던 건지 계속해서 하품을 하고 있던 엘가가 입 꼬리를 슥 치켜 올린다.
“이단 사냥 놀이라면, 고양이와 쥐 말하는 거잖아. 고양이들이 쥐를 잡는 거. 어렸을 적에는 사촌들이랑 많이 했었지. 나는 쥐들 잘 잡거든.”
잘은 모르겠지만 누군가는 도망치고 누군가는 그것을 뒤따라 가 잡는 놀이를 뜻하는 모양이었다. 그때 스텔라가 흐응-하고 긴 콧소리를 냈다.
“지역마다 놀이 이름이 다 다른 모양이네. 내가 아직 갓 열 살도 안 된 유년기 엘프였던 시절에는 노비 잡기 놀이라 했는데. 도망친 노비들 잡는 놀이였거든.”
그에 나르미가 으엑 인상을 찌푸린다.
“노비 잡기 놀이라니. 완전 구식 영감님들 이야기 같다!”
“뭣? 으흠, 아무튼. 그래, 도망치는 상대를 잡는 다는 건 어린아이들이 할 수 있는 맨 몸 놀이의 기본이지. 기지와 협동력도 기르고.”
아는 것이 많고 연륜이 가장 깊은 스텔라가 손가락을 하나하나 펼치며 룰에 대해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룰은 양쪽이 나뉘어져서 한 쪽은 쫓고 한 쪽은 도주하는 추격 형식의 간단한 놀이였다.
쫓는 술래에게 잡힌 도망자는 감옥이라는 곳에 갇혀서, 같은 도망자가 구해주기 전까지는 움직일 수가 없다.
경찰과 도둑이네.
나는 이런 놀이를 잔뜩 해봤기 때문에 순식간에 파악이 됐다.
컴퓨터가 몇 대 없어서 바깥에서 뛰 놀기를 잔뜩 했던 내 어린 시절. 이런 놀이 정도야 수도 없이, 정말 셀 수도 없이 해왔기 때문에 척하면 척 알 수 있다.
어느 세상이든 맨 몸으로 하는 어린 아이들의 놀이는 다 비슷비슷한 모양이구나.
그때 나르미가 말했다.
“그럼, 도망치는 사람들을 다 잡으면 술래가 이긴다는 건 알겠어. 도망치는 사람들이 이기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데?”
“우리 보르자에서는 치즈를 숨겨 놨었어. 그걸 쥐들이 꺼내 먹으면 쥐들이 이기는 걸로 해주었지. 물론, 나는 한 번도 쥐들이 치즈 꺼내먹는 걸 용납지 않았지만.”
그렇게 말하며 자신만만하게 가슴을 내미는 엘가. 그때 나는 편안한 원피스를 입은 엘가의 배가 생각보다 조금 불러 있다는 걸 눈치 챌 수 있었다.
“음….”
쫓고 쫓기는 것은 꽤 과격한 놀이가 될 거다.
경우에 따라서는 몸싸움이 발생할지 모른다. 평범한 어린아이들도 다치는 경우가 있는 와중에, 혈기 넘치는 영애들이라면….
그래서 나는 룰을 하나 추가하기로 했다.
“술래의 손이 도주자의 몸에 닿기만 해도 잡힌 걸로 하죠. 또 마법이나 주술 같은 능력을 쓰는 건 금지하도록 하겠습니다. 어린아이들처럼 몸으로만 움직이는 거죠.”
그에 미르나가 미간을 좁힌다.
“그럼 리오네스 영애가 너무 유리하지….”
무어라 말하려는 것 같다가 입을 다무는 미르나. 몸을 쓰는 것에 있어서 엘가가 유리하다고는 하나 그녀의 뱃속에 아이가 있기에 꼭 그렇지도 않다는 걸 알게 된 것이리라.
내가 말했다.
“그럼 스텔라 교수님의 행동을 제약하도록 하죠. 스텔라 님은 술래가 되었든지 도망자가 되었든지 한 발로만 뛰세요.”
“흐응, 균형을 맞추겠다는 거지? 하긴, 어린 시절에는 곧잘 이런저런 제약들을 걸며 놀았었지. 좋아, 난 한 발로도 충분히 잘 해.”
스텔라가 의외로 순순히 고개를 끄덕여줄 때 나의 눈은 이제 이야기를 가만히 듣기만 하고 있는 아이라에게로 향했다.
“아이라 님, 여기까지 전부 이해 하셨나요?”
“개미잡기 놀이잖아. 어렸을 적, 언니 오빠들과 했던 기억이 나. 내가 이걸 다시 하게 될 줄은 몰랐지만. 꽤 즐거운 시간이었지.”
그렇구만.
온실 속의 화초로 고상하게 자라온 줄로만 알았던 영애들이었으나, 의외로 어린 시절에는 이곳저곳 뛰어다닌 적이 있는 듯했다.
미르나가 말했다.
“그럼 이제 팀을 나누도록 하죠. 간단하고 공평하게 위아래로 정하도록 할까요?”
슥, 손바닥을 내미는 미르나. 그에 엘가가 말했다.
“위아래? 우리는 앞뒤라고 했는데.”
손바닥을 내밀어서, 손등과 손바닥을 하늘로 보인 쪽끼리 편을 나누는 단계인 듯하다. 이것에 대해서도 각자 아는 바가 있는 듯 한 마디 하던 우리는-.
“그럼, 나랑 태오랑 타란테라 여왕이 팀이네!”
“그럼 저와 스텔라 교수와 리오네스 영애가 팀이네요. 쯧.”
“뭐야, 너 혀 왜 차? 나도 미르나, 너랑 편 하는 거 싫거든? 너 이런 놀이 엄청 못할 것 같단 말이지. 집에서 귀하게 자란 아가씨 아니냐?”
서로 하나 둘 이야기를 할 때 나는 임프를 바라봤다.
“너는 어느 쪽으로 가고 싶어?”
내 물음에 임프가 말했다.
“나는 도망치는 것보다는, 잡는 쪽이 좋아!”
그럼 나랑 같은 편을 하면 되겠네.
그것으로 우리들의 하루는 시작 됐다.
* * *
“언니 또 잡았다! 이리 와! 이 도둑 년!”
“나르미, 언니보고 도둑 년이라니 말이 너무 심한 거 아니니?”
“어디 간수님께 말대꾸야!”
“…….”
미르나가 포졸 나르미에게 붙잡혀 감옥으로 들어왔다.
그에 멀리서 이 모습을 지켜보고 있던 엘가가 분통을 터뜨린다.
“야, 간신히 풀어줬더니 또 잡히면 어떻게 해? 네가 우리 중에서 가장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으니까 조심해야 한다니까!”
아침의 쌀쌀함도 가시고 정오를 향해 태양이 높이 솟기 시작했을 때, 우리는 어느덧 땀을 뻘뻘 흘리고 있었다.
여러모로 문제도 많았고 도중에 멈춰서 규칙을 다시 정하는 경우도 잔뜩 있었지만 생각했던 것보다 다들 의욕이 있었다.
“후-.”
감옥에 앉아 숨을 돌리는 미르나 그녀가 어울리지 않게 땀을 잔뜩 흘리고 있기에 내가 허리춤에서 물통을 꺼내 건내주려할 때였다.
“태오야, 도둑한테 물을 주면 어떻게 해!”
나르미가 내 행동을 제지했다. 나르미는 어느덧 완벽한 간수로 빙의해서, 자신의 언니가 진짜 물건을 훔친 도둑이라 생각하고 있는 모양이었다.
“내가 다 잡을 거야! 잉잉아, 가자!”
━잉잉야잉.
두 팔을 와락 들어 올린 후 엘가나 스텔라를 잡으러 출발하는 나르미. 생각보다 더 열정적인 그 뒷모습을 바라보고 있으려니 미르나가 한 마디 작게 말했다.
“나르미는 이런 걸 해본 적이 없거든요. 밤에는 보통 아이들이 잘 시간이니까.”
“아, 그렇긴 하겠네요.”
본디 나르미는 드레이코 자매 중 저녁과 밤의 영역을 담당하고 있었다. 그리고 보통 저녁이 되면 어린아이들은 각자 부모님의 손을 잡고 뿔뿔이 흩어지기 마련이다.
나르미로서는, 모두가 뛰 놀다가 집으로 돌아가 쓸쓸하고 어두운 공터를 바라보기만 했을 뿐이겠지.
“아직 어렸던 때에 나르미와 이렇게 같이 놀 수 있었다면 좋았을 텐데. 지금은, 이제는 이렇게 특별한 일이 없다면 함께 놀거나 웃거나 할 일도 없겠죠.”
“…….”
나는 저 멀리 사뿐사뿐 걸어 다니고 있는 아이라를 바라봤다. 그런 아이라에게 쫓기며 한 발로 뛰어다니고 있는 스텔라나, 그 옆에서 허둥거리고 있는 엘가를 본다.
━엘가 양, 도망쳐!
━아니, 아이라. 너는 왜 걸어다니냐?
━나는 여왕이야. 고상하지 못하게 뛰어다닐 수는 없지.
그녀들의 어린 시절은 어땠을까. 무척 귀엽고 앙증맞았겠지. 혹시 그 시절을 기록해둔 사진 같은 건 없을까? 아무래도 없겠지. 초상화는 좀 있으려나.
그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 엘가가 소리쳤다.
“꺅! 방금 누가 내 엉덩이를 꼬집었어!”
그 옆에는 임프가 와락 손을 들어 올리고 있다.
“와! 내가 도둑을 붙잡은 거야! 주인님의 보물을 지켰어!”
그렇게 말하는 임프의 몸은 어쩐지 전보다 흐릿했다. 그것이 정오의 태양에 이글거리는 아지랑이 때문인지 그것도 아니면 어떤 다른 이유 때문인지 나는 알 수 없었지만.
이대로 저녁이 온다면 이 즐거운 시간도 혹시 전부 끝나버리는 건 아니겠지-라고. 문득 아쉬움을 느끼고 말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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