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aming the Villainess RAW - Chapter (415)
EP.416)혼인잔치 # 3
416 – 왕국의 혼인잔치 # 3
내가 말했다.
결혼식 도중에 몰래 빠져나가자고 말이다. 다들 내가 이런 이야기를 꺼낼 것이라 예상하지 못했는지 눈만을 깜빡였다.
특히 미르나는 몹시 당황한 눈치였다.
“결혼식을 도중에 그만두자는 소리인가요? 피로연 마지막 날이 가장 중요한 거 알잖아요.”
미르나의 의견은 몹시도 타당했다. 이 앙그마르의 결혼식이라는 것은 며칠 간 계속되는데.
그 마지막 날의 밤에는 손님도 신랑과 신부도 타오르는 불꽃 주변을 빙글빙글 돌며 춤을 추며 몹시도 떠들썩하게 보낸다고 했다.
그러다 자정 정도가 되어 밤이 깊었을 무렵.
신랑과 신부가 모두의 앞에서 “앞으로 행복하게 오래오래 잘 살겠습니다…!”라는 선언을 해 긴 피로연과 결혼식이 끝을 맺는다고 들었다.
그 날의 밤은 곧 신혼의 첫날밤이 되고.
다음 날 아침 신혼 첫 아침을 맞이한 부부는 함께 여행을 떠나거나 혹은 신랑신부의 본가를 찾아가는 등의 일을 한다고 그랬다.
그것까지가 하나의 의식이다.
그 마무리 단계를 하지 않으면 신랑과 신부는 진정으로 결혼을 했다-라고 표현할 수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법.
그러니 내가 “도중에 식을 관두고 마법 융단을 통해 도망칩시다.”라고 말하는 모습에 미르나를 비롯한 다른 영애들이 당황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
나르미가 말했다.
“나는 재미있는 이야기 같아. 그런데 태오가 이렇게 일탈적인 이야기를 해올 거라고는 생각도 못했는데. 우리가 사라지면 다들 당황할 거야…!”
그건 그렇겠지.
결혼식의 주인공인 신랑과 신부들이 갑자기 사라진다면 큰 혼란이 일어날 거다. 확신한다. 굉장히 큰 일이 벌어질 거야.
스텔라가 말했다.
“태오 군을 알게 된 시간은 그리 길지 않지만. 태오 군이 의미 없는 이야기를 한 건 본적이 없어. 분명 이번 의견에는 뜻이 있을 거야. 그렇지?”
“그건….”
스텔라의 의견은 거의 정답에 근접했었다.
모두 내가 이 결혼식의 행사들이 귀찮아 도망치는 것이라 생각했을지 모르겠지만, 이번 대탈주에는 나름의 합당한 이유가 있다.
그것에 대해서는 아이라가 대신 답해준다.
“어떤 신랑신부도 결혼식 도중에 사라지진 않아. 다들 예상하지 못할 거야. 이렇게 허를 찌른다면 아무도 대비하지 못할 테지. 우리를 감시하는 사람들도.”
미간을 좁히는 엘가.
“역시 우리, 감시당하고 있었구나. 교단 쪽 사람들이지? 그라시아에서 왔다는 사제들이 우리 일거수일투족을 살피고 있긴 하더라.”
엘가는 역시 감이 좋았다. 사흘 정도 진행된 행사 동안 사람들의 이목이 주인공인 신랑신부에게 몰리는 것도 당연한 일이겠지만.
그라시아에서 파견된 사제들은 우리가 어디를 향하든 무슨 행동을 하든 과하게 반응하는 구석이 있었다. ‘감시’당하고 있다. 그렇게 느끼는 것도 당연한 일.
물론 자기들은 잘 숨기고 있다 생각했겠지만 예민한 내 반요정의 감이나 엘가의 본능적 직감을 피해갈 수는 없었다.
엘가가 물었다.
“왜 우리들을 감시하는 거지?”
그것에 대한 답은 미르나가 가벼운 침음과 함께 말했다.
“아마도…, 저희가 장벽을 넘어가지 못하도록 감시하는 것 같네요. 성녀님께서는 저희가 장벽을 넘을까 싶어서 굉장히 걱정했거든요.”
미르나의 의견은 옳았다. 나 역시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라고 고개를 끄덕여서 미르나의 이야기에 동의해주었다.
성녀 프리가는 아마 내가 자신과의 구두 약속을 깨고 장벽을 넘어 문으로 향하지 못하도록 사람들을 파견한 듯 했다.
이 결혼식이 끝나더라도 그들의 감시는 멈추지 않겠지. 아니, 어쩌면 결혼식이 끝난 뒤에는 더욱 많은 감시가 따라붙을지도 모른다.
그때 손뼉을 짝-치는 나르미.
“나 알았다! 지금이 가장 경계심이 적어지는 적기라는 거구나? 누구도 신랑신부가 혼인잔치에서 도망칠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할 테니까. 감시를 돌파할 수 있는 기회인 거지!”
“맞습니다. 지금이 사실 남들 몰래 장벽을 넘어가기 가장 좋은 때에요. 물론, 결혼식을 도중에 중지해야하긴 하지만….”
일생에 단 한 번 뿐일 수도 있는 결혼식이다.
완벽하게 시작해서 완벽하게 끝내고 싶어 하는 것이 사람의 마음이겠지. 그래서 나는 내 이야기가 영애들에게 무리한 부탁이자 무례한 부탁으로 다가올 것임을 잘 알았다.
영애들의 시선이 서로를 향한다.
* * *
앙그마르에서 열린 전례 없는 혼인잔치.
신랑 하나에 신부가 다섯.
이 기이한 혼인잔치에서 가장 행복한 남자가 누굴까 꼽자면 첫째로는 당연히 신랑인 태오 가스펠을 말하겠지.
한 명 한 명 왕국에서 소문이 날 정도로 아름다운 여성들을 아내로 맞이하는 것이다. 오늘 하루만큼은 세상을 다 가진 것처럼 즐겁지 않을까?
그런 의미에서 오늘 가장 행복한 남자는 앙그마르의 태오 가스펠이었다. 여기에는 그 누구도 이견(異見)을 내지 않으리라.
그렇다면.
그렇다면 이 결혼식에서 두 번째로 행복한 남자는?
그것에 대해서는 많은 사람들의 이야기가 갈리겠지.
결혼식에 참가한 앙그마르의 미녀들로부터 많은 추파를 받는 투르키의 왕제 카심? 그것도 아니면 많은 사람들이 모인 김에 새로운 마법의 이론을 발표하게 된 대마법사 하이낙스?
아니, 여기 이 남자는 적어도 자신이 이 세상에서 두 번째로 행복한 남자라 믿어 의심치 않았다. 그의 이름은─.
“라인하르트 공, 따님의 결혼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내 친척 레오파드, 오랜만이군 그래. 자네 딸도 곧 결혼을 앞두고 있다 하지 않았나?”
“아, 제 딸이라면 앞으로 두 달 후, 남부의 귀족과….”
“그렇군 그래, 잘 됐어.”
라인하르트는 수많은 친척들과 인사를 나누면서도 근엄함을 잃지 않았다. 하지만 그는 자신이 결혼이라도 하는 것처럼 즐거웠다.
냉혹한 그의 입가에도 자꾸만 미소가 감 돌아서 참는 것에 힘을 써야할 정도였다.
자신의 남은 인생에 있어서 가장 큰 근심거리였던 딸이, 결혼 같은 것에 관심 없다고 소리치던 딸이 왕국에서 가장 대단한 남자를 남편으로 삼게 된 것이다.
아무리 라인하르트라도 미소를 짓게 되는 것이야 어쩔 수가 없지. 그래서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이 세상이 마치 아름다운 동화 속 이야기처럼 느껴졌다.
지금이라면 그 어느 누가 부탁을 해온다고 하더라도 전부 들어주고 싶은 기분이 들었다.
그걸 주변 사람들도 알아차린 건지 평소 라인하르트를 두려워 해 말조차 걸지 못했던 대신들이나 귀족들이 앞 다투어 그를 향해 다가와 고개를 숙였다.
“저, 라인하르트 공. 이번에 부탁드렸던 님프 구호재단의 연금 예산 말입니다만…. 아무래도 적자가 나서, 작년보다 2할 정도는 더 예산 확충을….”
“그리하게.”
“저는 님프 공룡 연구재단에서 나온 티라노이라고 합니닷…! 이번에 님프들이 발굴해낸 공룡 뼈…. 투자지원을 약속해주신다면 앙그마르 국립 박물관에 기증을….”
“흥미로운 이야기야. 그렇게 하게나.”
“나는 님프 당분섭취 재단의 슈가노이인 것이다…! 님프들의 올바른 성장을 위해 하루 한 개의 각설탕을 지급하는 정책의 청원을….”
“저는 님프 애호재단의….”
아니, 뭔 놈의 님프재단이 이렇게 많아? 아무리 기분이 좋다고 해도 이건 좀 아닌 것 같다고 생각해서 라인하르트가 주변에 바글바글 몰려든 님프들을 물러내려 할 때였다.
“라, 라인하르트.”
누군가 헐레벌떡 다급한 목소리로 뛰어왔다. 그는 오를레앙의 판테라 백작. 라인하르트의 친척이자 서부의 대도시 오를레앙을 다스리고 있는 맹주였다.
금빛 머리칼을 뒤로 넘기고 수염을 날렵하게 기른 것이 꼭 비겁한 책사처럼 보이기도 했다만, 그는 일찍이 라인하르트와 많은 전장을 거쳐 온 남자 중의 남자였다.
“판테라. 무슨 일인가?”
무슨 일이냐고 물어보면서도 라인하르트는 답을 알 것 같았다. 판테라나 자신-라인하르트 같은 남자가 당황할 때는 하나 뿐.
자신의 딸이 무언가 큰 문제를 일으켰을 때다.
판테라의 딸 아슬란이 사고라도 친 걸까? 아슬란도 결혼 적년기인 나이에 많은 사고를 치고 다닌다지.
딸 에르가네스를 키워본 라인하르트였기에 친척 판테라 백작이 앓고 있을 속앓이가 얼마나 클지 내심 공감이 갔다.
라인하르트가 말했다.
“판테라, 자네의 딸도 머지않아 좋은 혼사가 있을 걸세.”
“아니, 라인하르트. 지금 내 딸이 문제가 아냐. 에르가네스가…, 아니, 에르가네스 문제만이 아니지. 큰일 났네. 다들, 다들….”
라인하르트의 입가에서 웃음기가 사라진다. 대체 무슨 말을 하려는지 모르겠지만 이 남자가 이렇게 허둥거릴 정도면 보통 일은 아니리라.
라인하르트가 작게 물었다.
“혹시, 여명회가 움직였나? 놈들이 결혼식을 틈타 반란이라도 일으켰나?”
“차라리 그런 일이었으면 나았겠지…! 없어졌어…! 다들, 없어졌다고…! 신부, 신랑 모두 다…!”
그 믿기지 않는 이야기에 라인하르트는 온몸의 핏기가 싹 가시는 듯했다. 하지만 라인하르트는 사실을 확인하기 전까지 단언하지 않는 남자다.
그래서 “판테라, 자네가 무언가 오해하고 있는 모양이군.”이라 말하며 가볍게 친척의 어깨를 두드린 후 직접 딸을 찾아 나섰다.
‘아니, 진짜 없잖아…!’
온몸의 핏기가 싹 가시다 못해 아주 거꾸로 솟는 기분이었다. 신랑도 신부들도 모습 하나 보이질 않는다.
‘이 녀석들, 도망쳤다….’
라인하르트는 현실을 믿을 수가 없었다. 이게 현실? 아무리 막 나가는 녀석들이었다고 해도 보통 결혼식 도중에 사람들 몰래 도망치는 게 과연 인간인가?
‘이 놈들이….’
분노가 끓어오른다.
오늘 세상에서 두 번째로 행복했던 남자였던 라인하르트는 지금 순간, 세상에서 가장 불행하고도 화가 넘치는 사람으로 변했다.
다만 그는 아버지이고 재상이었다.
━신랑이랑 신부가, 아까부터 안 보이지 않아?
━뭐야, 뭐야. 요즘 애들은 빠르다더니. 결혼식 끝나기도 전에 벌써?
━아니, 그런 것 치고는 너무 안보이지 않아? 혹시 뭐 잘못 되었다거나 그런 거 아냐?
조금씩 웅성거리는 사람들을 보면 이 느닷없는 실종이 얼마나 큰 영향을 끼치게 될지 잘 알았기 때문에 그는 자신을 내려놓을 수밖에 없었다.
일단 혼란이 퍼지기 전에 사람들의 이목을 끌고, 그 뒤 은밀하게 진상을 조사하는 게 옳겠지.
그래서 라인하르트는 근처에 보이는 작은 임프-아마 타르타르라는 이름을 가진 녀석에게 작게 속삭였다.
속닥속닥.
그러자 빨간 머리의 임프는 화악 얼굴을 폈다.
“여기, 앙그마르의 재상 라인하르트 폰 리오네스 공이 이 자리에 찾아온 손님들을 위해 섹소폰 연주를…, 선보인다고 하는 것이다…!”
그에 사람들이 더욱 크게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아니, 그 라인하르트가 색소폰 연주를?
━갑자기? 그보다 엄청 안 어울린다.
━근데 보고 싶긴 해.
그 큰 웅성거림에 신랑과 신부의 실종에 대한 수군거림을 덮는다. 라인하르트는 악단이 건네주는 색소폰을 부끄러움 무릅쓰고 받아들었다.
“참고로 임프 아가씨, 섹소폰이 아니라 색소폰이라네. 나는 그 민감한 발음 차이를 알아들을 수 있거든. 아무튼. 별로, 썩 자랑할 재주는 아니지만….”
또 오늘을 위해 연습한 건 아니지만, 심심할 때마다 하루 몇 시간씩 연주했던 악기의 솜씨를.
지금 모두의 이목을 끌기 위해 뽐낸다.
숨을 크게 들이 마시고, 그 차가운 금속으로 만들어진 악기를 향해 생명의 숨결을 불어 넣었을 때였다.
부우━━───.
댄디한 중년의 남성과 어울리는 중후한 음색이 사람들 사이를 퍼져나갔다.
철혈의 재상이 어울리지 않게 악기를 연주하는 모습에 사람들 모두 하던 것을 멈추고 입을 반쯤 벌린다.
━ …생각보다 잘하는데?
━그러게, 아니, 생각 보다가 아니라 굉장히….
━이, 이 노래는…. 꿀벌의 비행이다…! 궁정의 악사인 나는 알 수 있어. 이 빠른 곡조를 이렇게나 즉석에서 연주한다니…!
━으아앗, 이, 이 펀치노이의 귀를 울리는 아름다운 소리는 대체 무엇입니까…!? 자꾸만 뜨거운 것이 눈에서 뿜어지는 것입니닷…!
━세션, 세션을 울려라…! 빈 공간에 반주를 채워 넣어…!
훗날.
이 날의 일은 위대한 궁정의 음악가 라인하르트로서의 첫 걸음이라 평가되는 전설의 합주회로 기록되었다. 하지만 그것은 조금 먼 미래의 이야기.
지금의 라인하르트는 그저 어딘가로 향했을 딸의 행복과 안전을 바래줄 뿐이다.
‘어디서 뭘 하든, 네가 행복하면 그걸로 됐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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