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aming the Villainess RAW - Chapter (420)
EP.421)이상한 신혼여행 # 5
421 – 조금 이상한 신혼여행 # 5
아이라는 예측 불가능한 점이 많았다. 엉뚱한 구석이 있다고 표현해도 좋다.
과거의 솔로몬이 아이라의 미래를 꿰뚫지 못하게 만들려면 즉흥적이고 기묘한 행동을 잔뜩 해야 했기 때문이라는 걸 이해하면서도.
한 편으로는 그것이 비단 마왕 때문만이 아닌 아이라 자신의 천성이거나 본성인 것은 아닐까 요즘 은근히 느끼고 있었다.
“아이라 님, 뭘 하고 계시나요?”
나는 아이라를 바라봤다. 아이라는 그저 의자에 앉아 벽에 걸려 있는 장난감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렇다, 그것은 장난감이었다.
“아이라 님?”
“…….”
심지어 내가 말을 몇 번이나 걸었음에도 대답하지 못할 정도로 푹 빠져 있었다.
그런 아이라의 까만 눈동자에 비춰지는 것은 벽에 걸린 장난감 마법봉.
저걸 표현하는 멋진 단어가 더 있을 것 같긴 했는데, 나의 부족한 어휘력으로는 저것을 ‘장난감 마법봉’이라는 말 밖에는 표현할 방도가 없었다.
━히오옹….
바엘, 왜 그런 거 있잖아. 다섯 살, 여섯 살쯤 되는 여자애들이 갖고 노는 거.
나는 손에 잡아본 적도 없지만, 내가 살던 보육원의 여동생들은 후원으로 들어오는 장난감을 서로 갖겠다고 으르릉 거리고는 했었지.
━히오옹…!
아, 요술봉이구나. 마법 완드에 익숙해져 있어서 요술봉이라는 단어가 팟-하고 떠오르질 않았다.
아무튼 아이라는 붙잡으면 공주-어쩌구가 되어 변신해 악당들을 물리칠 것 같은 요술봉을 한참 바라보고 있었다.
“…….”
대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걸까?
슥.
그때 팔렌 마을의 리더노이가 내 옆구리를 밀었다.
“우리는 어서 이 사업에 대해 더 이야기 하는 것입니닷…! 태오노이와 위대한 대통령 저 리더노이가 손을 잡는다면 세상을 뒤집을 수 있는 것입니닷…!”
그렇다는 모양이다.
나는 하는 수 없이 팔렌 마을 대통령의 집무실로 들어섰다. 거기에 마련되어 있는 테이블에 앉았을 때 리더노이가 말했다.
“그래서, 그 기묘한 양탄자에 대해서 말입니닷….”
“교환하죠. 그 반요정에 대한 정보랑. 또, 저기 몇 개 보이는 장난감들 더 합쳐서 교환할 수 있으면 좋겠네요.”
내 말에 리더노이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 정도는 충분히 가능한 것입니닷…!”
좋은 거래였다.
서로 악수를 나눈 나와 리더노이.
나는 이제 슬슬 어제부터 미뤄두었던 이야기를 해야 한다고 생각해, 리더노이에게 물어보기로 했다.
“그래서 예전에 이 마을에서 반요정을 봤다는 게 정말입니까?”
“그런 것입니닷…! 반요정은 희소한 족속. 그렇기에 한 번 보면 결코 잊어버릴 수가 없으니 지금도 잘 기억하고 있는 것입니닷…!”
리더노이의 말대로 반요정은 희소한 족속이었다. 지금의 나는 꽤 높은 자리에 앉아서 사람들을 굽어보고 있었지만 나와 같은 반요정을 본적이 한 번도 없었다.
물론 엘프들의 피를 타고난 반요정-하프 엘프들은 꽤 있는 듯했지만. 하프 님프는 나를 제외하고는 한 명도 없는 수준이 아닐까 싶을 정도였다.
그랬기 때문에 리더노이가 예전에 봤다던 반요정이 혹시 어린 시절의 나, 태오 가스펠이 아니었을까 괜히 기대하게 됐다.
만약 내가 아니었더라도 나 말고 다른 하프님프가 있다면 한 번 만나보고 싶었으니까 리더노이가 본 게 누구였든 내게는 큰 이득이었다.
다른 녀석이면 정말 한 번 만나보고 싶기는 하다. 하프님프는 남자들 밖에 없다고 그러지. 그렇다면 그 녀석도 나처럼 기묘한 모습으로 살아가고 있는 걸까?
“으음, 그래서 그 반요정을 봤던 때는….”
오랜 기억을 되짚는 듯이 미간을 엄지로 문지르며 슬슬 운을 떼는 리더노이.
“아직 이 마을에 8대 대통령이 취임하고 있었을 때였습니닷…. 그런 것입니닷…. 분명 8대 대통령인 이 리더노이가….”
그렇게 말하는 리더노이의 집무실에는 1대부터 13대까지의 대통령 사진들이 액자에 걸려 있었는데. 모두 리더노이의 얼굴이었다.
이 녀석…, 혼자서 굉장한 장기집권 독재를 하고 있었구나. 그렇지만 사람들의 얼굴에 불평불만이 없는 것처럼 보였던 것은 의외로 능력이 있어서 잘 해왔기 때문일까?
내가 물었다.
“대통령은 몇 년에 한 번씩 바뀝니까?”
“4년인 것입니닷…!”
그럼 지금이 13대인 것 같으니, 8대 대통령 연임 시절이면…. 12, 11, 10, 9…, 대략 스무해 전의 시기 같다.
리더노이가 말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때도 지금처럼 겨울이 일찍 찾아와, 생각지도 못하게 혹독한 시기를 보내고 있었던 것입니닷…!”
“그렇군요.”
“물론, 그때는 이 마을 근처에 마물도 가득해서 더욱 어려웠던 것입니닷…! 그렇게 어려운 겨울의 시작 즈음에, 님프가 우리를 찾아온 것입니닷…!”
“님프요?”
내 물음에 리더노이의 주홍빛 눈은 창문을 향했다.
“그렇습니닷…. 키가 어른들처럼 크고 무척 멋진 여성이었지만. 그녀는 틀림없이 님프가 분명했습니닷…! 그리고, 무척 강했던 것입니닷…!”
키가 큰 님프라. 나는 무언가 떠오르는 듯했다. 이를테면 얼마 전에 수도원에서 만났던 임프 나르나르였다. 녀석은 모델처럼 크고 길쭉한 체형이었지.
녀석이 어떻게 그리 크게 자라난 건지 모르겠지만. 임프가 가능하다면 그 원종(原種)이 되는 님프 또한 크게 자라날 수 있다는 말이었다.
“더 자세히 이야기해줄 수 있습니까? 혹시 그 여자의 이름 같은 건 모릅니까? 무슨 말을 했는지는?”
“님프끼리는 돕는거라고, 분명 그렇게 말했던 것 같습니닷…! 님프끼리는 니꺼 내꺼가 없다고도 그런 것입니닷…!”
어젯밤 리더노이가 내게 했던 말이었다. 리더노이도 원래 다른 님프에게 들었던 말이구나. 내가 신기함을 느끼고 있을 때 녀석이 몇 마디 덧붙였다.
“무척 멋진 님프였습니닷…. 하지만 더욱 눈을 끄는 것은 그 품에 안겨 있는 작은 아이였던 것입니닷…. 그것은 분명 반요정….”
리더노이의 눈이 점점 더 몽롱하게 번진다.
“하지만 무척 아파 보였습니닷…. 분명 님프혐오적인 독감 코로노이에 걸린 게 분명한 것입니닷…!”
다 자란 님프는 아픈 반요정을 구하기 위해 이 바위산에 둘러싸인 팔렌 마을을 찾아왔다고 했다.
하늘에서 떨어지는 신기한 물건들을 주워 생활하는 마을이라면, 분명 어린 반요정의 병을 낫게 하는 약 같은 게 있을 것이라고-그렇게 생각했을지 모르는 일이다.
다만 리더노이는 고개를 저었다.
“하지만, 저 리더노이. 나름대로 의학을 공부한 것입니닷…. 작은 반요정이 앓고 있는 병은 이곳에서는 치료할 수 없는 병. 그래서, 님프 자매는 떠난 것입니닷…!”
“떠났다면, 어디로 갔다는 겁니까?”
“그건 저도 모릅니닷….”
리더노이가 기억하는 이야기는 여기까지가 끝이라고 했다. 몇 마디 대화를 나누지 못했지만 그래도 나름대로는 충분히 도움이 되는 대화였다.
마지막으로 하나만 더 물어보도록 할까?
슥.
나는 허리춤의 스크롤 《다람쥐 저장고》를 펼쳐서 그 안에 봉인해두었던 액자를 하나 꺼냈다.
거기에 그려져 있는 것은 갈색 머리를 우아하게 기른 여성과 그녀가 품에 안고 있는 아기의 모습이었다.
내가 물었다.
“혹시, 당신이 말한 그 여성이라는 분이 여기에 그려져 있는 님프와 같습니까?”
“으음-.”
기린처럼 턱을 앞으로 내밀고는 잠깐 생각에 잠긴 듯이 보이는 리더노이. 녀석은 한참 고민하는 것 같이 굴었다. 그 때문에 내 심장은 알게 모르게 점점 더 두근거렸다.
이렇게 두근거렸던 적이 언제였더라. 온몸의 혈류가 돌아 호흡이 더욱 생생하게 느껴지고 주변 사물들도 또렷이 보인다.
━야, 나르미, 그 안마기 좀 줘 봐. 어깨가 결려서.
━스텔라 교수, 그 기묘한 물건은 뭐죠?
━아, 이건 사진기라는 건데….
집무실 바깥에서 떠드는 영애들의 목소리가 유난히 선명하게 들려올 무렵 마침내 님프가 입술을 열었다.
“이 여자는 아니었던 것 같습니닷…!”
그리고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덕분에 내 머리 끝까지 치솟았던 피가 착 가라앉는 기분이 들었다. 어딘가 후려하면서도 아쉬운 기분이 드는 건 어째서일까.
그때 님프가 말을 덧붙인다.
“하지만 무척 닮은 것입니닷…! 여기 그림에 그려진 님프 자매가 조금 더 어른스럽게 변하고 키가 커진다면 똑같을 것 같은 것입니닷…!”
파직.
내 머리에 번개가 치는 것 같았다. 약간의 충격을 느끼고 있을 때 리더노이가 자신의 서랍을 열어 무언가를 뒤적뒤적 뒤지기 시작하더니 마침내 하나를 꺼내든다.
“여기, 그 날 함께 찍었던 사진이라는 것이 남아있는 것입니닷…! 마을 사람들 다 같이 찍은 사진이기에 아직 잘 간직하고 있던 것입니닷…!”
슥.
님프가 내게 네모난 종이를 내밀어왔다.
* * *
어린 시절을 생각하면.
나는 잔병치례가 꽤 많았던 것 같은 기분이 든다. 온몸이 불덩이처럼 뜨거워져서 호흡마저 힘들었던 기억들.
그런 때에 잠이 들면 어김없이 기분 나쁜 악몽을 꾸었다.
귀신이나 괴물 같은 것들이 잔뜩 나와서 내 다리를 쑥 붙잡는 꿈. 그럼 나는 깜짝 놀라 잠에서 깨어나고 말았지.
악몽을 꿀 까봐 무서워져서 다시 잠드는 걸 무서워했다.
그럴 때면 누군가 서늘한 손으로 내 이마나 볼을 만져주었다. 그럼 나는 악몽을 꾸었던 것도 잊고 다시 편안하게 잠을 잘 수가 있었지.
그게 어린 시절에 대한 내 몇 없는 기억 중 하나다. 사진을 들여다보았을 때, 어째선지 나는 그 기억이 떠올랐다.
마치 수학여행 때 카메라 앞에 몰려들어 찍는 사진처럼 사람들과 함께 웃고 있는 여자. 그 작은 얼굴을 내 손가락으로 슥 훑어본다.
“…….”
그러자 어딘가 애틋한 기분이 들었다. 살짝 울적해질 것 같아서 나는 고개를 들어올렸다. 나르미가 눈밭에서 아이들과 함께 눈사람을 만드는 모습이 보인다.
━언니, 내 눈사람도 움직이게 해줘!
━누나, 내 눈사람도!
이 팔렌 마을에도 아이들은 있었다. 저 아이들 또한 언젠가 자신의 어린 시절을 떠올리며 울적한 기분을 느끼고는 할까?
슥.
바로 그때 누군가가 내 옆에 앉았다.
“얼굴이 몹시도 빨갛구나. 우울해 보이기도 하고. 혹시 열이라도 있는 거니? 님프 독감에 걸렸다거나?”
그녀의 가느다랗고 서늘한 손가락이 내 볼이나 얼굴을 슥슥 쓰다듬는다. 지금 생각해보면 아이라는 이렇게 나를 쓰다듬기를 좋아했던 것 같다.
그 손길이 어린 시절을 떠올리게 하는 구석이 있어서 나 역시 아이라에게 쓰다듬어지는 걸 좋아했던 것 같기도 하다.
둘의 손길은 닮았구나.
내가 아이라를 향해 바라고 있던 것은 결핍되어 있던 모성이었을지도. 물론, 단순히 그것 때문에 내가 아이라에게 끌리는 건 또 아니겠지만 말이야.
그런 느낌으로 나는 아이라를 향해 무언가를 하나 내밀었다.
“여기요.”
“이건…?”
“요술봉이에요. 마법 카펫에 대한 거래 대금의 추가금으로 받아왔어요. 아까 전에, 아이라 님이 이걸 계속 보고 있었잖아요.”
슥.
아이라는 내게서 장난감 요술봉을 받아들었다.
어린 유아들이 갖고 놀 만한 장난감이었지만 의외로 아이라와 무척 잘 어울렸다. 가느다란 손가락으로 능숙하게 요술봉을 빙그르르 돌린 아이라.
“어린 시절에 이런 걸 곧잘 갖고 놀았거든. 요술봉을 휘둘러서 악당을 물리치거나, 곤란한 사람들을 돕거나 하는 내 모습을 상상하면서 말이야.”
“아이라 님도 그런 시절이 있을 줄은 몰랐네요.”
“물론, 지금 나는 요술 공주보다 어린 시절 내가 상상했던 악당 마녀에 더 가깝겠지. 어린 시절의 내가 지금 날 보면 어떤 생각을 할지 궁금하구나.”
어린 시절의 나인가.
궁금하긴 했다.
“그래서 태오야, 원하는 이야기는 들은 거니?”
아이라가 말머리를 돌리는 것에 나 역시 능숙하게 탑승했다.
“대강은요. 역시 저희 목적지는 변함이 없어요. 저 깨진 유리창 같은 곳으로 가서 남은 단서들을 찾고 뭐, 그러는 거죠.”
“그렇구나.”
아이라 역시 적당히 고개를 끄덕일 때였다. 저 멀리서 허겁지겁 스텔라가 뛰어오는 모습이 보였다.
“모두 큰일 났어! 지금 여기서 이러고 있을 때가 아냐! 근처에, 교단에서 보낸 추격자들이 따라 붙었다니까? 어떻게 벌써 여기까지 왔는지─.”
그에 팔렌 마을의 대통령 리더노이가 자신만만하게 가슴을 폈다.
“이 마을은 천연의 은신처, 숨겨진 것입니닷…! 누구도 우리들이 초대하기 전까지는 이 마을에 들어오지…!”
“각하! 입구에 웬 낯선 사람들이…!”
“아앗-! 외부인들이 마음대로 들어오는 것입니닷…! 외부의 침략인 것입니닷…! 자유님프 체제를 방해하는 공산 임프당의 침입이 틀림없는 것입니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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