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aming the Villainess RAW - Chapter (421)
EP.422)사소한 습관 # 1
422 – 작고 사소한 습관 # 1
팔렌 마을에 불법적 침입자들이 들이닥쳤다.
그들은 모두 무거운 갑옷과 무기로 무장을 하고 있었는데. 인상적인 점을 꼽아보라면 가슴의 휘장에 달린 십자가 문양이었다.
‘교단에서 온 추격자구나.’
세상 돌아가는 일에 대해 아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위와 같이 생각할 수 있겠지.
다만 그들이 우리를 이렇게나 빨리 쫓아올 것이라고는 생각하지도 못했기 때문에 의아함이 남는다.
스텔라가 말했다.
“분명 흔적들 다 지우면서 왔을 텐데. 대체 어떻게 우리가 여기에 있는 걸 안 거지? 말을 타고 왔다고 해도 쫓아오는 게 빨라도 너무 빠르잖아.”
스텔라의 지시에 따라 우리는 발자국을 지우거나 머물렀던 흔적들을 전부 흐트러뜨리며 이곳까지 왔다.
심지어 이 마을은 바위 산 사이에 숨겨져 있는 마을이라 교단의 추격자들이 알아낼 리 없었음에도 그들이 이렇게 들이닥쳤다고 함은 무언가 기묘한 수를 썼다는 말이 아닐까?
“이 리더노이가 돕도록 하는 것입니닷…!”
팔렌 마을의 대통령 리더노이는 저 교단의 추적자들이 우리를 쫓고 있는 사람들이라는 걸 금방 눈치 좋게 파악했다.
“어서 창고로 숨도록 하는 것입니닷…!”
그리고는 우리를 창고로 숨도록 안내해주었다. 지금 교단의 추격자들과 마주쳤다면 우리는 이대로 그들과 실랑이를 벌이거나 혹은 그들을 따라 왕국으로 돌아가야만 하겠지.
물론 나는 아직 돌아갈 생각이 없었기에 추격자들의 눈을 피해 근처 짚단 창고에 몸을 숨기기로 했다. 마른 짚단과 가죽이 쌓여 있는 창고였기에 조금 냄새가 났지만.
━크르릉….
━커허엉, 컹컹…!
추격자들이 목줄을 쥐고 있는 개들의 후각을 피하기에는 딱 좋은 곳이었다. 그렇게 우리는 창고 안에 들어서서 그 나무 벽 사이 뚫린 틈으로 바깥을 바라봤다.
바깥에서 무어라 소리치는 남자들이 서로 팽팽히 대치하며 금방이라도 무언가 일이 터질 것만 같은 상황을 만든다.
엘가가 말했다.
“어떻게 하지? 일이 벌어지면 우리도 싸워야 할까? 교단의 추적자들, 강해보이기는 하지만 우리를 이길 수 있을 정도는 아닌 것 같은데 말이야.”
그에 미르나가 핀잔을 주듯 입을 연다.
“그랬다간 정말 교단과 척을 지고 말게 되잖아요. 신앙인들이 많은 왕국도 함께 분열되고 말지도 몰라요.”
미르나의 판단은 옳았다.
교단의 추적자들이 무서워서 숨은 게 아니다. 그들과 싸운 이후 수습하지 못할 정도로 커질 일이 귀찮은 것뿐이지.
삐걱.
그때 누군가가 우리들이 숨어 있던 창고 문을 열었다. 그리고는 안으로 들어와 내 예민한 반요정 귀에만 겨우 들릴 정도의 작은 소리로 말했다.
“각하께서 뒷길을 열어주신다고 합니다. 이곳에 숨어 있어봤자 남쪽에서 온 추격자들이 당신들을 붙잡을 겁니다요. 얼른 저를 따라오시죠…!”
다급하면서도 진정성이 묻어나오는 음성이었다. 그래서 나는 지푸라기 안에서 빠져나와 그의 뒤를 따르기로 했다.
패딩을 입은 남자.
그는 창고 뒤편으로 능숙하게 빠져나온 후에 그대로 살금살금 움직이며 근처에 보이는 어느 평범해 보이는 오두막 안으로 들어갔다.
“여기 출입구가 있소.”
바닥에 덮여 있던 카펫을 들추자 지하실 입구라고 불러도 좋을 네모난 문이 보였다. 그것을 열고는 우리를 향해 손짓하는 패딩 남자.
“자, 얼른 이 안으로 들어가시오.”
비밀 통로 같은 것이구나.
통로를 가느다란 눈으로 내려다 보며 아이라가 말했다.
“다들 능숙한 것 같구나.”
그에 남자가 답한다.
“누군가에게 쫓고, 쫓기고, 우리들에게 이런 일은 익숙하오.”
그런가. 리더노이에게 듣기로 이 팔렌 마을의 역사는 이런저런 이유로 세상에서 도망친 사람들이 모여 만든 곳이라 했었다.
그러니 언제든 다시 도망칠 수 있는 길을 마을 곳곳에 남겨두어도 이상하진 않았다. 그 덕분에 우리는 교단의 추격자들을 따돌릴 수 있었다.
“이 토굴을 따라 쭉 나가시오. 그리고, 각하께서 말씀하시기를 예전에 왔던 님프는 더욱 북쪽으로 향했다고 했소!”
더욱 북쪽인가. 나는 일단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도와주셔서 감사합니다.”
그 뒤로는 지하의 토굴을 한참 걸었다. 곧 앞을 막아서는 바위 하나가 나타나 그것을 힘껏 밀었을 때 우리는 다시 숲에 도달했다.
슥슥, 주변을 둘러보는 스텔라.
“근처에 추격자들은 없는 것 같아. 그래도 우리가 여기 있다는 것도 금방 알아차리고 들이닥친 놈들이야. 또 금방 우리를 쫓아올 지도 몰라.”
그 말에 우리는 긴장을 늦추지 않고 허둥지둥 더욱 북쪽으로 도주했다.
짧은 시간이지만 우리를 향해 친절과 호의를 베풀어 주었던 팔렌 마을 사람들과 작별 인사도 못했다는 게 무척 아쉽긴 했지만.
“저기, 돌아가는 길에 마을에 다시 한 번 들리자! 신기한 물건들 많았어! 다들 어떻게 생각해?”
나르미의 물음처럼 나 역시 돌아가는 길에 마을에 들려서 그들에게 제대로 된 감사인사를 표하는 게 좋겠다고 마음을 먹게 되었다.
* * *
“역시, 저는 죄 같은 건 짓지 못할 팔자인 모양이네요. 이렇게 도망치는 것만 해도 가슴이 두근거리고 떨려서 불편해요.”
엄청나게 뛰어 도망치기를 대략 한 시간 정도.
일단 잠깐 숨을 돌리기 위해 냇가 근처에서 우리들 몸에 베인 냄새 등을 지울 때 미르나가 위와 같이 말했다.
과연 미르나의 말처럼 남들에게 쫓기는 경험은 가슴이 터질 것 같고 다리가 후들거리는 게 당연한 일이었다. 나도 예전에 코로노이 소동으로 앙그마르 병사들에게 쫓겨봐서 잘 안다.
하물며 평생 남들에게 거릴 낄 것 없을 정도로 떳떳하게 살아왔던 미르나가 무척 큰 죄를 지은 사람처럼 이렇게 쫓기고 있으니.
그 가슴이 느끼고 있을 부담감이란 상당히 큰 것이리라. 물론 쌍둥이인 나르미 쪽은 다르게 생각한 모양이었다.
“나는 좀 재밌는 것 같아. 세상 살면서 누가 나를 찾으려고 이렇게 열심히인 건 처음이야! 물론, 잡혀줄 생각은 없지만.”
그리고는 흐흐-웃는다. 나르미의 천진한 성격 때문인지 우리들 모두 어깨를 무겁게 내리누르고 있던 긴장을 어느 정도 내려놓을 수 있었다.
우리들이 잡담을 나누고 있을 때 냇물로 수통에 물을 채운 스텔라가 허리를 펴며 말했다.
“그래도, 금방 쫓아올 것 같아. 이 숲에 지금 마물들이 하나도 없잖아. 우리가 여기까지 쉽게 올 수 있었던 것처럼 교단 심문관들도 마찬가지 일 거야.”
심지어 그들은 말까지 타고 있었다.
두 다리로 이동하는 사람과 말을 타고 오는 추격자들.
언젠가는 따라잡히고 말겠지. 시간문제다.
엘가가 묻는다.
“그래서 어떻게 할 거야? 만약 정 일이 그르쳤다고 할 경우에는 싸울 거냐? 아니면 그냥 심문관들 따라 국내로 귀환할 거냐?”
그에 후후-하고 웃는 아이라.
“나는 놈들을 상대해줘도 좋다고 생각한다만. 새로 생긴 완드의 위력을 조금 조정해보고 싶어서 말이야.”
아이라는 아무것도 없는 허공에서 내가 선물해준 요술봉을 꺼내 손가락을 빙글빙글 돌렸다. 여왕이 저걸로 교단의 심문관을 향해 마법을 발사하는 모습을 상상해봤는데.
생각보다 잘 그려지지 않아서 그만 뒀다.
이런저런 잡념들을 물리치기 위해 내가 말했다.
“일단 더 북쪽으로 향하죠.”
이곳보다 더 북쪽.
그것이 말하는 의미는 명확했다. 본디 똑똑하고 머리 좋은 사람들이니까 내가 무엇을 말하고자 하는 건지 이해했겠지.
스텔라가 말한다.
“역시, 태오 군은 최후의 도시까지 가려는 생각이구나.”
“최후의 도시가 뭔데?”
나르미의 질문에 스텔라는 북쪽 하늘을 바라봤다.
“저기, 저 하늘에 뚫린 구멍 아래에 도시가 있잖아. 위대한 영웅들이 솔로몬의 몸을 갈기갈기 찢었다는 도시 가르가타 말이야.”
가르가타라는 이름에 나르미는 더욱 이해할 수 없어진 것처럼 미간을 좁혔다.
“가르가타라면 우리가 점령했던 성 이름 아냐? 태오가 마법으로 불태웠잖아.”
나르미의 질문은 합리적이었다. 다만 스텔라는 슥슥 고개를 젓는다.
“그건 가르가타 성채였고. 저 아래 있는 건 가르가타라는 이름의 도시야. 둘 이름이 같아서 종종 헷갈려 하기도 하더라. 애초에 도시 이름을 본 따서 축조한 성채니까.”
가르가타의 성채를 지키던 마왕 솔로몬은 연합군과 영웅들의 공세에 밀려 최후의 도시까지 후퇴했다고 전해진다.
그러다가 마왕성의 정문을 뚫고 돌파한 영웅들의 손에 쓰러졌다지. 물론, 그를 향해 ‘쓰러졌다’라고 표현하는 건 사실 정확하지 않을 터다.
그는 죽었다기 보다는 과거에서 끊임없이 살아 있었으니까.
나는 모두를 향해 말했다.
“우리는 더 북쪽으로 갈 거에요. 지금까지와는 차원이 다른 여정이 될 겁니다. 어쩌면 지금이 돌아갈 수 있는 마지막 기회일지도 몰라요.”
우리를 뒤에서 쫓고 있는 교단의 추격자들을 따라 남쪽으로 돌아가는 것이 오히려 현명한 일일 수도 있었다.
이곳보다 더욱 북쪽으로 향한다면 우리 앞에 어떤 것이 도사리고 있을지 전혀 예측할 수도 없었으니까. 그러니 아내들에게 마지막으로 선택권을 주고 싶다.
* * *
님프들은 기묘한 특징을 지니고 있다고 했다. 그건 바로 기묘한 진화체계다. 그렇다. 님프들은 어린 시절 내가 좋아하던 캐릭터들처럼 진화(進化)를 했다.
어린 님프들은 모두 다들 도랑물의 님프라는 것부터 시작한다지.
그런 도랑물의 님프들이 살면서 여러 경험을 통하거나 특정한 조건을 만족하게 되면 다른 님프로 진화한다고 그러던가.
벌과 친한 꿀물의 님프나 먹물의 님프, 혹은 님프 치고는 정신적으로 성숙한 개울물의 님프 등등이 있다고 그랬다.
모두 눈치 챘겠지만 끝에 전부 ‘물’자가 붙는다. 그만큼 물과 님프는 떼어낼 수 없는 존재라는 걸 뜻하는 게 아닐까?
그래서 그런지 반요정인 나도 냇가 근처에서 잠깐 휴식을 취한 것으로 지쳤던 몸이 상쾌히 회복되어 기분이 좋았다.
그런 내 눈에는 찬물에 발을 담구고 있는 스텔라가 보였다.
계속 달려서 부어오른 발을 식혀주려는 걸까? 어쩐지 장난기가 발동해 살금살금 그 뒤를 밟을 때였다.
“태오 군, 물가에서 씻으려고?”
“어떻게 저인 걸 아셨나요? 완전히 기척 죽였는데.”
“내가 태오 군의 심박을 모를 리가 없잖아.”
심박이면 심장소리 아닌가? 세상에, 스텔라의 예민한 감은 발소리를 알아 듣는다거나 하는 정도의 수준이 아니었다. 농담인지 진짜인지 모르겠지만.
내가 물었다.
“그래서, 스텔라 님. 다들 의견은 정했나요? 저희가 아직 집으로 돌아갈 수 있는 마지막 기회에요.”
“결정이야 이미 예전에 내렸지. 우리들 선택에 변함은 없어. 다들 말하지 않았지만 그렇게 생각할 걸. 그러는 태오 군은 어떤데?”
갑자기 대화 화살의 방향이 내게로 왔다. 덕분에 살짝 당황했을 때 스텔라가 말을 덧붙였다.
“태오 군은 확실히 결심한 거 맞아? 우리가 보기엔, 오히려 우리보다 태오 군이 저곳으로 가는 걸 망설이고 있는 것 같은데 말이야.”
“그건….”
그건 맞는 말이었다. 성녀가 내게 말했었지. 나는 선택을 해야만 할 거라고. 앞으로 내가 가질 수 있는 것과, 내가 갖고 있는 것 사이의 선택.
나는 그게 지금의 안락하고 평화로운 생활과 앞으로 얻게 될지 모르는 행복 사이의 줄타기라고 생각했다.
만약 내가 저곳을 향한다면.
지금까지 얻어왔던 이 모든 걸 잃어버릴 수도 있다.
그게 사실 나는 겁이 났다. 지금 이 순간, 이 세상에서 오직 그녀들과 나만이 존재하고 있는 이 순간이 영원하다면 얼마나 좋을까.
“저는 지금까지 가진 게 없어서 잃는 것도 두렵지 않았어요. 기껏 잃는 것이라고 해 봐야 제 목숨뿐이었으니까. 이것저것 미친 짓도 할 수 있었죠.”
하지만 지금은 잃을 게 너무나도 많다.
그래서 나는 망설였다.
그에 슥 자리에서 일어나는 스텔라.
곧 그녀는 내 손바닥을 중앙으로 기도하듯 모으게 한 뒤 양쪽에서 찰싹 때렸다. 매우 따끔하고 아팠기에 정신이 번쩍 든다.
“어때? 정신이 좀 들어?”
“…….”
“이사야가 내게 알려준 거야. 생각이 많을 때, 이것저것 정리할 때는 이렇게 큰 소리로 박수를 치는 것만 한 게 없다더라.”
“…마치 무슨 주문 같네요.”
이사야의 습관이었나.
흐흐-웃는 스텔라.
“주문? 그런 것보다는 그냥 작고 사소한 습관 하나지 뭐. 그래도 태오 군, 네게만 알려주는 거니까. 남들한테는 알려주면 안 돼.”
스텔라의 응원 덕분에 나는 조금 힘이 솟았다.
그래서 커다란 박수소리에 하나 둘 내 주변으로 모이는 영애들을 향해 결단을 말하기 위해 입을 열 때였다.
“그럼─.”
그때 무언가 풀숲을 뒤흔들었다. 짐승이 그르릉거리는 소리도 들린다. 혹시 교단 추적자들의 사냥개가 여기까지 온 건가? 아니, 그런 건 아닌 듯했다.
숨소리는 조금 더 굵고 무겁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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