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aming the Villainess RAW - Chapter (425)
EP.426)하는 자 # 1
426 – 멈추게 하는 자 # 1
더욱 북쪽으로 올라갈수록 더욱 괴상한 마물 무리가 우리 앞에 나타났다.
그 몸은 마치 어린 아이가 장난으로 찌그러트린 곤충 같기도 하고. 혹은 형태라고 부를 만한 것 자체가 뭉쳐진 진흙처럼 뭉뚱그려진 에너지 덩어리 같은 놈들도 있었다.
“반월 베기!”
샤아악!
미르나의 날카로운 칼날이 공중으로 튀어 오른 진흙덩이의 몸을 정확히 반으로 베어냈다. 하지만 바닥에 철푸덕 양단 되어 떨어진 진흙덩이는 꿈틀꿈틀 몸을 붙여 서로 재생할 뿐.
그때 사냥꾼이 허리춤에서 단검을 뽑아 요령 좋은 솜씨로 진흙덩이를 향해 투척했다. 슥. 공기를 가르며 날아간 단검이 서로 뭉쳐지고 있는 진흙에 적중하고.
━귀이이익…!
괴상한 비명과 함께 진흙은 녹아내린다. 바닥에 남은 단검 자루를 쥔 사냥꾼. 그는 자신의 소매로 진흙을 가볍게 닦아낸 후 말했다.
“놈들의 몸 안에는 새끼 손톱만한 핵이 있다. 그걸 파괴하면 쓰러트릴 수 있다.”
짧고 간결한 설명이었다. 그렇지만 충분히 도움 되는 이야기였다. 곧 우리들 또한 요령 좋게 진흙 마물들을 상대할 수 있었다.
슥.
━귀이이익!
“요령을 아니까 쉽네.”
스텔라가 마물의 몸통에서 화살을 빼며 말했다.
“그렇지만 나도 이런 마물들은 처음 보는데. 이곳에서 독자적으로 진화한 종류인가?”
그 질문에는 철퇴를 닦아내고 있던 여사제 미리암이 답했다.
“저 하늘에서 떨어진 생물들도 있다고 해요. 저 하늘 너머의 균열에서 이렇게─.”
콰직.
━끼이이익…!
“끔찍한 괴물들이 떨어지고 있는 거죠. 아무리 쓰러트려봤자 끝도 없을 걸요. 다른 세상에서 계속 이 세상을 향해 떨어지고 있는 중이니까.”
사제 미리암의 말에 나르미가 물었다.
“다른 세상?”
“아, 방금 건 못들은 걸로.”
미리암은 자신이 말실수를 했다 생각하는 모양이었다. 하지만 말이라는 것은 주워담을 수가 없는 법이다. 이미 흥미를 느낀 나르미는 결코 물러나는 법이 없었다.
“저 하늘 너머에 역시 다른 세상이 있어? 천국 같은 거?”
나르미의 질문에 여사제 미리암은 제법 난처한 표정을 지었다. 그녀가 무어라 답하기 위해 입술을 뗄 때-.
“그건….”
“천국 같은 건 없다. 저 너머에 있는 건 오직 고통뿐이다.”
과묵한 사냥꾼이 대신 입을 열었다.
고통뿐이라니.
무척 단정적인 태도였다. 마치 저 너머에 다녀와 본 적이 있기라도 한 것처럼 단호한 말씨였기 때문에 우리들 모두 잠깐 입을 다물고 말았다.
어차피 그게 무슨 의미냐고 물어봤자 저 과묵한 남자는 말을 아끼겠지. 자기가 말하고 싶을 때 말하고. 입을 다물고 싶으면 다물고. 정말 인생 살고 싶은 대로 사는구만.
그래도 쓸데없는 말은 하지 않는 남자였다. 마치 에너지를 절약하려는 것처럼 중요한 말만 한다. 그랬기에 우리는 사냥꾼의 말을 결코 흘려듣거나 하질 않았다.
그렇게 하나 둘, 각자의 역할을 다 하며 나아가다보니 어느덧 우리는 큰 절벽에 도달할 수 있었다.
그 아래로 보이는 것은 야구공에 맞아 박살이 난 유리창처럼 생긴 하늘과 그 아래로 보이는 고장난 도시였다.
고장난 도시.
그곳에 고장 난 도시라는 별명을 붙인 건 대체 누구였을까?
누군지 모르겠지만 제법 표현력 있는 사람이었다. 그 광경은 문자 그대로 고장 났다고 밖에 표현이 안 됐으니까.
절벽 아래로 작게 보이는 도시를 바라보며 엘가가 가볍게 운을 뗐다.
“저기가 최후의 도시 가르가타…. 이 세상 같지가 않네. 온통 뒤죽박죽이잖아.”
엘가의 말에 답하진 않았지만 나 역시 그 뜻에는 동의했다. 뒤죽박죽이다. 마치 도시라는 이름의 6면체 큐브를 만든 뒤에. 그것들을 모두 뒤죽박죽 섞은 듯한 모습이었으니까.
길은 하늘로 솟아있거나 땅으로 꺼져있고. 건물들은 바닥에서 위로 돋아난 게 아니라, 위부터 바닥으로 돋아난 것들도 있었다.
허공에 떠다니고 있는 도로와 건축물을 보고 있노라면 마치 이 세상의 물리법칙이 적용되지 않고 있는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그렇지만 우리들의 신경을 가장 긁는 것은….
으아아아악━!!!
━게르으야악━──!!!
마치 개미떼처럼 도시 성벽에 달라붙어 울부짖고 있는 마물들이겠지. 이 북쪽 너머에서 사라진 마물들이 모두 저 하늘 아래 모여 아우성치고 있는 모습은 마치 지옥 같았다.
그 수는 만, 아니 족히 수만은 넘어 보인다. 우리들끼리 저곳을 돌파하는 것은 그야말로 미친 짓이었겠지. 이대로 발걸음을 돌리는 게 현명한 일일 터다.
슥, 기릭기릭.
가방에서 꺼낸 망원경으로 성벽 쪽을 바라본 스텔라.
“너무 많아. 그리고 오거에…, 트롤에…. 끔찍한 괴물들이 잔뜩 있어.”
그 말에 미르나가 인상을 찌푸렸다.
“트롤은, 마왕과의 전쟁 중에 전부 멸절시켰다고 하지 않았나요?”
“전부는 아니었나 봐. 이대로 정면 돌파하는 건 확실히 무리가 있겠어.”
물론 우리는 지름길로 갈 생각이었다. 사냥꾼 파티의 여사제 미리암에 따르면 자신들은 저 오랜 도시 가르가타로 진입할 수 있는 비밀 통로를 안다고 그랬으니까.
그럼 저 성벽을 억지로 돌파할 필요도 없을 것이고. 저 마물의 군세에 우리를 내던질 필요도 없겠지.
“…….”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이들을 장벽 너머에서 만난 것이 얼마나 행운인지 몰랐다. 내가 결투재판을 통해 그들을 장벽 너머로 보내둔 게 이렇게 안배처럼 작용하게 될 줄이야.
내게도 행운이 따르고 있어.
“간다.”
슥. 그때 사냥꾼이 걸음을 돌려 어디론가 향했다. 하나 둘 그의 뒤를 따라가기 위해 등을 돌릴 즈음, 나는 아이라가 절벽에서 좀처럼 발걸음을 떼지 못한다는 걸 알아차렸다.
아이라의 눈은 망가진 도시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저, 아이라 님?”
“저 도시, 보이는 게 다가 아니구나.”
“보이는 게 다가 아니라니요?”
“보이는 것보다 훨씬 커. 정말 거대하구나. 그렇지만, 나는 느낄 수 있어. 저 거대한 도시 어딘가에 그 남자가 있어.”
그 말을 끝으로 아이라는 휙 등을 돌려버렸다.
* * *
고장 난 도시 근처에는 산이 있었다.
원래부터 있던 산은 아니고.
마왕과 그 반대 세력이 한참 전쟁을 하고 있을 때, 마왕의 강대한 지각변화 마법에 의해 만들어진 산이라고 그랬다.
마법으로 산을 만들어낸다니. 과연 10위계에 달했던 초월자라는 생각에 오싹한 기분이 든다. 높이는 대략 500m정도.
바위는 이빨처럼 뾰족하고 자라난 나무들 또한 아카시아처럼 가시투성이. 그 경사도 제법 험준했기 때문에 오르는 게 여간 힘든 게 아니었다.
하지만 아무리 험준한 산이라 하더라도 정문에 도사리고 있는 마물들을 돌파하는 것보다는 훨씬 나을 터. 그래서 모두 불평없이 산을 오르고 있던 도중이었다.
“여기다.”
사냥꾼이 기묘한 동굴 앞에서 걸음을 멈췄다.
“이곳으로 들어가면 도시로 향할 수 있다.”
그는 산에 뚫린 동굴이 도시로 향하는 지름길이라 단언하고 있었다.
대체 이 동굴을 통해 어떻게 도시로 들어간다는 걸까? 혹시 도시의 지하수로 같은 것과 연결이 되어 있어서 몰래 하수를 통해 들어가기라도 한다는 건가?
당장 내가 추측할 수 있는 건 그 정도였다.
그때 여사제 미리암이 몸을 부르르 떨었다.
“보통 길이 아니라고는 들었지만…. 이곳으로 들어가는 건 보통 위험한 게 아니겠어요. 사냥꾼 씨, 정말 이곳 밖에 없는 건가요?”
그 말에 미르나 역시 고개를 끄덕였다.
“저도 이 동굴로 들어가는 건 좀….”
내가 물었다.
“왜 그러시죠?”
“태오 경은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나요? 이 동굴, 아니, 동굴이라기보다는…. 마치 살아있는 괴물의 내장 같은 곳이에요.”
나는 잘 모르겠는데.
그러나 미르나는 영육의 감이 뛰어난 여성이었다.
그것은 사냥꾼 파티의 사제인 미리암 또한 마찬가지. 그녀들이 거부감을 느끼고 있다면 분명 무언가 좋지 못한 게 있을 확률이 높았다.
그때, 지금까지 이 비밀 길에 대해 아무말 않고 있었던 사냥꾼이 말했다.
“포기할 사람은 포기해라. 돌아가서, 가족들의 품에서 삶을 마감해라. 이 길을 통과하면 예전의 삶으론 돌아가지 못한다.”
그 무거운 말에는 제법 힘이 담겨 있었다. 아까도 말했다시피 그는 허풍을 친다거나 혹은 괜히 겁을 주기 위해 말하는 사람이 아니었다.
그렇기에 그가 말한 이야기를 잠잠히 나는 곱씹어볼 수밖에 없었다.
이곳으로 들어가면 예전의 삶으론 돌아갈 수 없는 걸까. 그게 무슨 의미인지 이해하기는 어려웠지만 그만큼 위험하다는 말이 아닐지 적당히 추측해본다.
바로 그때였다.
━━─!
산 아래 쪽에서 제법 큰 인기척이 느껴졌다. 고개를 내리자 저 멀리 우리가 지나왔던 산길 너머 몇몇 횃불들이 불타고 있는 게 보였다.
여전사 르네가 말했다.
“뭐야, 너희들. 꼬리를 잔뜩 붙이고 왔잖아? 교단에서 온 추적자들 같네.”
르네의 야만적 직감은 정확했다. 저 횃불은 틀림없는 교단 추적자들의 그것이다.
대체 여기까지는 어떻게 쫓아온 거냐? 추격과 도주에 능숙한 스텔라와 사냥꾼이 흔적들을 다 지우고 왔을 텐데. 내 몸에 GPS장치 같은 거라도 달아놨나.
아니, 그런 걸 신경 쓸 틈이 없다.
우리는 괴물의 입 같은 동굴 안으로 뛰어들지, 아니면 뒤에 쫓아오는 교단의 추적자들과 대적해야할지 선택을 해야만 했다.
그때 사냥꾼이 말했다.
“지금도 늦지 않았다. 태오 가스펠, 돌아가라.”
“…….”
“─라고 말해봤자. 돌아갈 위인이 되지 못하지. 유약하지만, 한 번 마음먹은 것은 굽히지 않는다. 너는 그런 남자다.”
그의 말대로였다.
돌아가고 싶지 않았다. 이미 많은 것들을 포기하면서 이곳까지 왔다. 이제 와서 뒤로 돌아가 아무것도 없었던 것처럼 행복하게 살아갈 수는 없단 말이다.
나는 정말 알고 싶었다.
내가 왜 이런 일들을 겪고 있는지.
사실 내 머릿속엔 오직 그 생각뿐이었다.
답을 구하는 것.
수많은 문제들을 풀어본 결과 답을 구하는 수식은 전부 이곳을 향하고 있었다. 이제 답안을 확인만하면 끝인 일. 이제 와서 돌아갈 수는 없다.
내가 말했다.
“모두들─.”
다만 내가 말을 끝맺을 순간도 없이 누군가가 슥 앞서서 걷는다. 그녀는 엘가였다. 동굴 안으로 먼저 몇 걸음 앞서나간 엘가가 우리를 향해 말했다.
“뭣들 하고 있어? 이대로 있다간 추격자들한테 붙잡힐 걸. 이번에 붙잡히면 천 일 새벽기도 같은 걸 해야 할 지도 몰라.”
몸을 바르르 떠는 나르미.
“새벽기도는 질색인데!”
나르미 역시 엘가를 따라 동굴을 걷는다. 그 당연한 듯한 행동에 탄력을 받은 것처럼 우리들은 하나 둘 동굴 안으로 걸음을 옮겼다.
나 역시 무거운 걸음을 천천히 내딛는다.
바로 그때.
지리리릿.
무언가 내 발목을 강하게 붙잡는 듯한 기분이 들어서 멈칫하고 만다. 마치 누군가 이 안으로 들어가지 못하도록 막는 기분이었다.
그 잠깐의 멈칫함 때문인지 내 안에서는 수많은 잡념 같은 것들이 휘몰아 닥쳤다. 이대로 뒤를 돌아 포근한 침대에 눕고 싶다는 기분들.
집에 두고 온 개다람쥐 컹컹이나 언제나 나를 반겨주는 마르마르와 임프친구들의 살랑거리는 꼬리도 생각난다.
이 앞으로 향한다면-.
내가 갖고 있던 모든 걸 잃게 될지도 몰라.
하지만 이미 결심을 굳힌 나는 한 걸음 더 내디뎠다.
쨍그랑.
그러자 내 몸을 가로막고 있던 무언가가 깨지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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