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aming the Villainess RAW - Chapter (433)
EP.434)하는 자 # 9
434 – 멈추게 하는 자 # 9
도시에 군림하고 있던 와이번이 쓰러진 것은 이번이 세 번째라고 했다.
처음은 젊은 청년이 와 기지를 발휘해 쓰러트렸고.
둘째로는 아름답고 강인한 요정이 찾아와 쓰러트렸다고. 그럴 때마다 와이번은 며칠이라는 시간의 텀을 두고 부활했다고 그랬다.
이야기를 듣던 엘가는 말도 안 된다는 것처럼 고개를 저었다.
“죽음에서 부활한다니? 그런 놈이 어딨어? 난 못 믿겠다.”
엘가의 말에 내 머릿속으로는 도시 위를 날아다니며 이것저것 불태우는 괴수의 모습이 그려졌다.
사람들이 지혜와 꾀를 발휘해 녀석을 쓰러트린다고 한들. 모종의 이유로 다시 부활해 활개를 친다면 정말 재앙이 따로 없겠지.
미르나가 말했다.
“불사의 저주…. 그런 게 있다고는 처음 들었지만. 만약 정말 존재한다면 제약이 있을 거에요. 제약이 강할수록 효과가 커지니까, 큰 조건이 있을 게 분명해요.”
제약인가.
그 말을 흘려들을 수 없던 건지 안내자가 흘흘흘-하고 가벼운 느낌으로 웃었다. 유령이 웃는 모습은 영 적응이 되지 않았지만 그의 말은 제법 도움이 되는 것이다.
━맞습니다, 아가씨. 와이번 시스는 이 도시에 묶여있어요. 이 도시를 떠나서는 살아갈 수가 없죠. 그건 저희도 마찬가지고.
유령들과 와이번 시스는 이 도시에 묶인 존재라고 했다. 이 도시 자체가 하나의 거대한 철창이자 목줄이 되어 그들의 몸을 붙잡고 있다나.
다만.
와이번의 부활이나 유령 등은 내게 있어서 그리 중요한 이야기도 아니었다. 그래서 나는 다시금 주제를 돌려 말했다.
“그래서, 와이번을 쓰러트렸다는 자들에 대한 이야기인데요. 그들이 저 부서진 하늘로 향했다고 했었죠. 그 이유는 모르나요?”
━모릅니다. 제가 아는 건 모두 저곳으로 가고 싶어하고. 저는 그들을 안내해주었다는 겁니다. 당신들도 저곳으로 가고 싶은 것 아닙니까?
그건 그랬다.
━당신들은 어째서 저곳으로 가고 싶어 하는 겁니까?
“그건….”
나는 잠깐 생각에 잠겼다. 내가 어째서 저곳으로 가고 싶어 하는 가. 그것은 저기에 내가 그토록 원하던 답이 있을 것이라 생각해서였다.
또 마왕 솔로몬이 살아있다면 저곳에 도사리고 있을 확률도 높을 터.
나와 아내들 그리고 앞으로 태어날 내 아이들의 안전을 위협할지 모르는 녀석이 세상 어딘가에 웅크린 채 발톱을 갈고 있다 생각하면 도무지 안심할 수가 없었다.
지금 그 존재를 확인하고 쓰러트려놓지 않는다면 언젠가 분명 내 발목을 강하게 붙잡겠지. 그때 가서 후회하긴 싫다.
* * *
복잡하게 꼬여있는 도시였다.
하지만 현지인의 안내를 받으니, 우리는 빙글빙글 돌던 미로 같은 구조를 벗어나 하늘로 향하는 계단에 도착할 수 있었다.
━제 안내는 여기까지입니다. 부디 원하는 바를 찾으실 수 있기를.
안내자와 헤어진 뒤 계단을 하나씩 오른다.
저벅, 저벅.
그 올라가는 길이 정말 높아서 아래를 바라보면 모든 것이 그야말로 까마득한 먼지나 점처럼 보였다.
“언니, 정말 높다. 다리가 후들거려!”
“밑에 보지 마, 나르미.”
고소공포증이 없는 사람이라도 이 수 백 미터의 상공은 공포로 와 닿겠지. 그건 영애들도 마찬가지였는지 그녀들은 가능하면 바닥을 내려다보지 않도록 주의했다.
여기서 발 삐끗하면 시체도 못 찾겠네. 그럼 나도 저 도시의 유령인지 뭔지가 되는 걸까? 물론 그런 일은 일어나서는 안 된다. 여기까지 와서 실족사라니. 부끄러운 일이야.
그런 느낌으로 한 걸음 한 걸음에 힘을 담아 잘 걸었다. 다행히 높은 고지에 세찬 바람이 불어온다거나 발밑의 발판들이 부서진다거나 하는 변수는 일어나질 않았다.
그렇게 얼마를 걸었을까.
우리들은 마침내 균열의 앞에 도착할 수 있었다.
블랙홀의 입구에 선 자들의 느낌이 딱 이러할까? 모든 것이 빙글빙글 소용돌이치는 그 입구에 서자 머리칼이 쭈뼛 곤두선다.
슥.
나는 근처에 떨어져 있는 돌멩이 파편 같은 것을 주워서 균열에 집어 던져보았다. 그러자 파편은 마치 다른 차원으로 사라진 것처럼 그 모습의 편린조차 보이질 않고 사라졌다.
누구나 직감할 수 있었을 것이다.
이곳을 넘어가면 정말 별세계(別世界)가 있을 것 같다─라고.
다이빙이나 번지점프에도 큰 각오가 필요한 마당에 다른 세계로 들어서는 것은 정말 큰 용기를 필요로 했다. 덕분에 우리는 입구에 멈춰선 채 각자 서로의 얼굴을 바라봤다.
“…….”
“…….”
다들 말은 하지 않았지만 그 표정은 어딘가 결연해 보인다. 그 진지한 침묵 속에서 가장 먼저 웃음을 터뜨린 것은 역시 명랑한 나르미였다.
“우리 완전 웃긴다. 그거 같아. 그거. 태어난 날은 다르지만, 죽을 때는 같은 날 같은 때에 죽겠다-같은 거 있잖아. 의형제라고 하던가?”
긴장된 상황에서 쾌활한 웃음이라는 건 상당히 활력을 불어넣는 것이었다. 그 나르미의 철 없어 보이는 미소 때문인지 모두 딱딱하게 굳어져 있던 표정을 느슨히 푼다.
엘가가 말했다.
“난 너희들이랑 같은 때에 죽고 싶은 생각 없거든. 난 말이야, 손자손녀들에게 둘러싸여서 평화롭게 갈 거야. 모든 리오네스들이 그랬던 것처럼.”
엘가의 말에 나는 자그마한 쿼터님프들에게 둘러싸인 엘가를 떠올려봤다. 할머니가 된 엘가의 모습이라니, 솔직히 잘 상상이 되질 않았다.
당장 내일의 내가 뭘 하고 있을지도 모르겠는데. 머나먼 미래의 일을 떠올리는 게 마치 꿈같은 이야기처럼 느껴진다고 해야 할까.
또 엘가는 내게 청춘의 여신과도 같아서, 언제나 젊고 싱그러운 모습으로 그 자리에 있을 것만 같은 기분도 들었다.
엘가가 계속해서 말했다.
“우리끼리 다 합쳐서 30명은 낳아야 하니까 그 손자들은 한 백 명 쯤 되겠지. 생각해 봐. 쿼터 님프들이 백 명 정도 바글바글 거리는 거야.”
쿼터 님프들이 백 명이나 있다니. 각자 한 마디씩 떠들어도 100마디다. 엄청나게 시끄럽고 재미있는 모습이겠지.
상상은 잘 안되지만 그래도 좀 보고 싶긴 하네.
“그러니까 얼른 이 웃기지도 않는 일 끝내고, 돌아가서 결혼식도 끝내고. 못했던 일도 다 마무리 하고 다시 지지고 볶고 하는 거야.”
엘가는 이미 결의를 끝낸 듯이 보였다. 무언가를 마음에 안고 끙끙 앓는 것은 엘가답지 않긴 하지. 그 결단 덕분인지 다들 표정에 힘이 실리는 게 보인다.
아이라가 말했다.
“여기까지 오는 것도 재미있었어. 왕좌에 앉아있기만 했으면 이런 일은 하지도 못했겠지. 엘가의 성질머리나, 쌍둥이의 투덜거림이나, 스텔라의 하소연 듣는 건 재미없었지만.”
그에 미간을 좁히는 미르나.
“저도, 언제 터질지 모르는 당신 변덕 맞춰주느라 힘들었거든요? 특히 저번 가르가타 성채에서는 방에 틀어박혀서 얼마나 억지를 부렸는지 몰라서 그래요?”
“나는 억지를 부려도 돼. 여왕이니까.”
“지금에서야 묻는 건데, 타란테라 여왕. 당신의 머릿속에 여왕이란 대체 어떤 건지 그 왕도(王道)가 좀 궁금해지네요.”
그건 그래.
나도 아이라의 머릿속에 여왕이란 대체 어떤 존재인 걸까 항상 궁금했다. 다만 아이라는 대답하는 것 대신 후후-하고 웃었다.
“후후.”
어쩌면 왕도라는 것에 대해 별로 생각 안 해둔 게 아닐까. 예전부터 느끼는 것이지만 아이라는 아무 생각이 없을 때가 잔뜩 있었다.
그때 스텔라가 말했다.
“자, 이제 그만 이야기하고. 이 안으로 어떻게 들어갈지 정하는 게 좋다고 생각하는데.”
나르미가 손을 번쩍 든다.
“나이 순서로 가자! 일단 스텔라 교수님이 먼저 들어가 보고 괜찮은 지 괜찮지 않은 지 우리한테 알려주는 거야!”
“왜 너희들은 항상 이런 궂은 일 할 때 만 나이순으로 가자고 그래? 태오 군, 얘네들 좀 봐. 나 나이 많다고 괴롭혀!”
나이순서로 하면 스텔라가 불리하긴 하지. 그런 것치고는 딱히 어른스럽다는 점은 느껴지지 않지만 말이다. 오히려 그것은 다행이었다.
스텔라가 어른스럽지 못한 덕분에 나이가 한참 더 어린 영애들과 잘 녹아들어 어울렸으니까. 영애들이 한 마디씩 서로 투덜거리는 걸 보고 있으니 문득 웃음이 나왔다.
“다들 많이 친해지셨네요. 친한 친구 같아요.”
그러자 우리들 중 가장 깐깐하고 어른스러운 미르나가 인상을 구겼다.
“제가 이 막무가내인 여자들과 친구라니. 말도 안 되는 이야기에요. 다들 제멋대로에 자기들밖에 모르잖아요.”
“그래, 나도 미르나 너랑 친구 하고 싶은 마음 없어.”
베-하고 엘가는 개구쟁이처럼 혓바닥을 내밀었다. 역시 의견이 좁혀지질 않네. 그러나 예전 같았으면 모를까 지금 내 마음에는 약간의 평화로움이 자리 잡고 있었다.
싸워도 좋고, 얼굴을 붉혀도 좋다.
그녀들이 이 자리에 함께 존재하고 있다는 것 그 자체만으로 나는 내 할 일을 다 했다고 느꼈다. 지금 이 자리에 이르기까지 얼마나 많은 시간과 이야기들이 오갔던가.
많은 이야기들이었다.
내 안에서 그녀들에 대한 생각이 바뀌기에 충분할 정도로 많은 이야기들.
나쁜 악당들이라고만 생각했던 그녀들이, 사실은 가녀리고 연약한 부분 잔뜩 있는 아가씨들이라는 걸 알 수 있는 시간이었지.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정말 힘들었지만.
정말 죽을만큼 힘들었지만.
죽지 않았다.
그렇다.
나는 살아남은 것이다.
또, 나름의 즐거운 추억들도 있었다. 되돌아보면 꼭 나쁜 일만 있었던 것도 아닌 기분이 든다.
━크르릉…!
그래, 바엘. 네게는 거짓말해선 안 되겠지. 솔직히 말해서 꽤 즐거운 시간이 많았어. 재미있는 삶이었다고 표현해도 좋아.
━히오옹.
맞아. 이번에도 마찬가지겠지. 언젠가 이 모든 일이 끝나고. 흔들의자에 앉아 나른한 오후의 따스한 봄바람을 즐기며 우리들은 오늘 날을 회상할 것이다.
‘그때 그런 일이 있었지─.’라고.
그런 나날을 생각하며 나는 입을 열었다.
“다들, 조금만 더 제 어리광에 함께해주세요. 모든 것이 다 해결되고 고향으로 돌아가게 된다면, 그만큼 저 역시 어리광을 들어드릴 테니까.”
하고 싶은 말이 잔뜩 있었다.
해야만 하는 말도 잔뜩 있었다.
하지만 지금까지 내 삶을 잔뜩 구해온 나의 혓바닥은, 멋지고 장황한 고백을 늘어놓아야 하는 이 순간에 나를 배신한 듯이 멈췄다.
혀끝에 무거운 납이라도 달아놓은 것 같다.
그래서 내 멋진 포부는 어색함으로 끝이 났다. 물론 엘가는 이미 다 알고 있었다는 것처럼 으휴-하고 큰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너는 언제나 너무 복잡하게 생각해. 그냥 남자답게, 고맙다! 사랑한다! 같은 말 한 마디면 되는 거야. 다들 그 말을 듣고 싶어서 여기 있는 거니까.”
“리오네스 영애답지 않게 옳은 말을 다 하네요.”
미르나와 엘가의 의견이 모처럼 일치했다. 그때 아이라가 양 눈썹 사이에 주름을 만들더니 턱에 손을 가져다대며 음-침음했다.
“음, 그러고 보면, 태오로부터는 사랑한다는 말을 들어본 적이 별로 없는 것 같구나. 물론 가장 아름다운 여왕인 나를 사랑하지 않을 리는 없지만.”
확실히….
나는 너무 어렵게 생각하고 있었던 것 같다.
좋은 가문에서 태어나, 좋은 것을 입고 좋은 것을 먹고 좋은 것만을 보고 자라온 그녀들이었기에. 나는 그에 걸 맞는 대단한 것으로 그녀들에게 보답해주어야 한다고만 생각했다.
하지만.
영애들의 마음은 의외로 검소했다.
태어날 때부터 모든 걸 손에 쥐고 살아온 사람들이기에, 사실 그 작은 들꽃 같은 마음 의외의 것은 필요가 없었을지도 모르겠다.
나는 아직도 영애들에 대해 모르는 게 많았구나.
더 많은 이야기를 나누고, 더 많은 시간을 함께 보내고 싶다.
그런 마음으로.
나는 입술을 뗐다.
“━━──.”
일순 세상이 멈춘 것처럼 조용해졌다.
방금 내가 무슨 말을 한 거지?
내가 무어라 말했는지는 나도 잘 모르겠다.
하지만 내 가슴의 뜨거운 응어리 같은 것이 탁 풀려가는 기분이 들었고. 이야기를 들은 영애들의 표정은 몹시도 부끄러운 듯이 붉어졌다.
그들은 각자 부끄러운 마음을 감추듯 균열 안으로 걸음을 옮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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