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aming the Villainess RAW - Chapter (493)
EP.494)– 세상의 어설픈 이야기들을 위해 # 11
외전 – 세상의 어설픈 이야기들을 위해 # 11
나르미와 나루 여사 그리고 용으로 변한 미르는 어디에 있는 걸까?
별빛이 반짝이는 밤하늘을 두리번거려도 그들의 모습이 보이질 않았다. 커다란 용과 구름을 탄 나르미 아가씨라면 밤하늘의 어디에서도 단연 돋보일 텐데 말이다.
“하는 수 없나.”
나는 두 손을 동그랗게 말아 쥐었다. 투명한 계란이 손 안에 담긴 것처럼 주먹을 쥐면 손가락 사이에 자그마한 구멍이 생겨나기 마련.
─님프비기, 엿보기 구멍!
그렇게 두 구멍을 쌍안경처럼 내 눈에 가져다 댄다. 이것은 내 님프비기, 엿보기 구멍.
내가 보고 싶은 것을 쌍안경으로 들여다보는 것처럼 바라보게 해주는 멋진 기술이었다.
주로 숙제를 안 하고 도망친 레오노이가 어디서 뭘 하고 있나 쳐다볼 때나, 아내들이 목욕하는 걸 몰래 훔쳐볼 때 사용하는 비기였다.
“다들 어디 있나.”
손으로 만든 쌍안경으로 사방을 비추어본다. 곧 내 눈에 저 먼 곳의 절벽 같은 장소에서 이리저리 몸을 꿈틀대는 거체를 발견할 수 있었다.
『포기해!』
길고 커다란 용-미르가 나루 여사의 몸을 칭칭 감고는 놓아줄 생각을 하지 않는다.
『너, 더 이상은 못 버텨! 이대로 있다간 정말 평범한 인간이 되고 말아! 평범. 그게 무슨 말인지 알아? 평범하다는 건 죽어간다는 거야…!』
“언니, 이, 이거 놔앗…!”
『못 놔! 너는 내 하나뿐인 동생이야. 적어도 네가 나를 언니라고 부르는 도중에는 놓아줄 수 없어! 나는 네가 죽어가는 걸 보고 싶지 않으니까!』
그렇구만.
상황이 대강 판단이 되었다. 이 도원의 리더 미르는 자신의 동생인 나루가 구슬을 잃고 평범한 인간이 되는 걸 무척이나 반대하고 있구나.
나로 따지면 레오노이가 “아빠 저는 평범한 인간이 될 것입니닷…!”이라 말하는 소리를 듣는 것과 비슷할까?
님프는 좋다. 오래 살고, 잘 먹고 햇볕만 잘 쬐어주면 평범한 인간의 배를 산다. 레오노이가 그런 가능성들을 버리고 평범한 인간으로 늙기를 선택한다면 나 역시 반대하겠지.
레오노이가 나보다 먼저 죽는 것은 보고 싶지 않을 테니까. 그렇게 생각하니 미르 여사의 마음도 이해가 됐다.
『나는 세상에서 그리고 이 도원에서 수많은 종과 생명들이 저물어가는 것을 봤어! 절멸하는 것을 봤어! 나루, 네가 절멸당하도록 남겨둘 수는 없어!』
“크으, 언니! 일단 이거 놔 봐!”
『Grrrrr-!』
용과 나루가 그렇게 한참 뒤엉켜 절벽에 부딪히거나 바닥에 떨어질 때, 나는 나르미의 모습을 찾기 위해 고개를 두리번거렸다.
그러자 저 멀리서 나름대로 커다란 구름 잉잉이를 타고 허공을 부유하고 있는 나르미를 찾을 수가 있었다.
“잉잉아! 조금만 더 속도를 내! 거의 다 왔어!”
━규이잉.
“공중에서는 너무 빠르게 날면 안 된다고?”
━잉.
“그래도! 저기, 엄마가 보여! 얼른 가서 싸움을 말려야 해!”
━잉잉야잉.
두둥실 날아간 나르미와 잉잉이. 그들은 곧 난장을 피우고 있는 쌍둥이 자매 앞에 섰다. 그리고는 호기로운 목소리로 크게 소리친다.
“더 이상 싸울 필요 없어! 구슬 다 고쳤으니까!”
『구슬을 다 고쳤다고…?』
“봐!”
나르미가 손을 내민다. 나르미의 손 안에는 큼직한 진주 같은 구슬이 정말 영롱한 광채로 빛을 번쩍번쩍 뿜어내고 있었다.
샤아아아아아-.
주변이 한낮처럼 밝아질 광명에 나는 엿보고 있던 것을 포기하며 눈살을 찌푸릴 수밖에 없었다.
“으, 눈부시네. 뭐, 됐다. 다들 저쪽인 것 같네요!”
가족들을 이끌고 나르미가 있는 곳으로 달렸다. 내가 아까 엿보고 있던 때에서 상황은 그리 변한 게 없어보였다.
다만 미르의 몸에 칭칭 감겨 있던 나루 여사는 금방 풀려나와 바닥에서 숨을 헐떡이고 있었다. 어느 정도 오해가 풀린 걸까?
“정말 고쳐졌네…!?”
나루 여사는 나르미로부터 구슬을 받아들었다. 까만 면사포에 얼굴이 가려져 있어서 표정은 읽을 수 없었다만 아마 대단히 놀라하고 있지 않을까?
나루 여사가 말했다.
“언니, 구슬이 고쳐졌어. 그럼, 나도 더 이상 이 괴상한 수행을 할 필요 없다는 소리 아니겠어?”
『Grrrrr….』
용이 무언가 맘에 들지 않는 것처럼 으르릉거렸다.
곧 파아앗-하는 빛이 용의 몸을 감싸더니 정신을 차렸을 때는 나루 여사와 똑같이 까만 옷을 몸에 칭칭 두르고 있는 미르가 팔짱을 끼고 있었다.
“안 돼. 고쳐졌다고 해봤자 나루 너라면 금방 또 부숴 트릴거야. 너는 구슬을 험하게 다루니까. 그럼 결국 우리들은 또 도돌이표야.”
“…….”
“수행은 멈추게 해줄게. 하지만, 이 도원에서 나갈 생각은 하지 마. 용인은 너와 나 단 둘 뿐이야. 우리 둘밖에 없어. 너랑 나는 가족이잖아.”
미르는 방금까지 으르릉거렸던 것이 거짓말처럼 감정에 호소하고 있었다. 제 아무리 냉철한 가슴을 지닌 사람이라도 저렇게 애타는 호소에는 마음이 움직이겠지.
그것은 나루 여사 역시 마찬가지였는지, 그녀는 자신의 구슬을 손에 꼭 쥔 채 가만히 굳어 있었다. 생각이 많은 것이겠지.
그렇게 상황이 고착되고 있던 때에 나선 것은 오늘 이곳에 와 얌전히 있기만 했던 아이라였다.
“그 구슬, 무척 빛나는 광채야. 내가 좀 확인해 보고 싶은데. 건네주지 않겠어?”
그러자 미르가 면사포와 옷깃을 털처럼 곤두세웠다.
“외부인! 용인의 구슬을 노리다니! 역시 본색을 드러내는군요!”
“나는 옥석을 가려낼 수 있는 탁월한 눈이 있지. 내가 보기에, 그 구슬이야 말로 우리가 찾아오고 있던 마지막 하나인 것 같구나.”
아이라의 말에 나는 번뜩 깨달을 수 있었다. 아이라가 말하는 마지막 하나. 그것이 의미하는 것은 우리가 만들고 있던 불로장생 단약의 재료를 뜻했으니까.
그렇다는 말은, 결국 나루 여사나 미르 여사의 구슬을 내가 받아야만 한다는 말인가? 하지만 호락호락하게 줄 리가 없다.
빼앗아야만 하겠지.
다만 눈앞이 아찔해지는 것도 어쩔 수 없었다.
내 가족의 오랜 행복을 위해 다른 가족의 오랜 행복을 빼앗아야만 한다니. 그렇게 해서 얻은 영원과 건강이 의미 있을까? 꿈자리가 뒤숭숭해지고 말 거야.
고민이 깊어진다.
그때, 누군가 후후후후-하고 웃기 시작했다. 가벼운 웃음소리로 시작했던 웃음은 마침내 큰 바람처럼 사람들의 귓가를 울린다.
그렇게 한참 웃던 나루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아니, 그냥 뭔가 우습게 느껴지기 시작했어. 오늘 처음 보는 사람들끼리 얼굴 붉히면서 소리 지르고 말이야. 그래, 세상은 원래 이렇게 시끌벅적했었지.”
슥.
나루 여사는 자신의 머리에 쓰여 진 면사포를 손바닥으로 스르륵 잡아당겼다. 그러자 푸른빛 감도는 은빛 머리칼이 달빛에 멋진 느낌으로 빛났다.
빨간 눈동자에 얼굴은 나르미와 미르나 자매를 꼭 빼닮았다. 엄마니까 당연한 것이겠지만. 유전자란 이렇게나 크게 작용할 수 있는 것이구나 놀라울 정도였다.
“너….”
미르는 얼굴을 드러낸 나루 여사를 보며 파르르 몸을 떨었다.
하지만 나루 여사의 표정은 제법 밝고 결의를 담고 있었다.
“언니, 사실 갇혀 지내다시피한 시간 많이 생각해봤어. 이렇게 살아가는 긴 삶이 의미 있는 것일까 말이야. 그런데, 오늘 역시 내 딸을 만나고 이야기를 나눠보니 알겠어.”
“너, 지금 무슨….”
“나는 백일의 밤을 차가운 용인으로 살기보다, 하루라도 좋으니 내 딸들의 엄마로 있고 싶어. 내 생각은 그래.”
“…….”
미르도 더 이상은 말을 아꼈다. 결심을 굳힌 자매를 설득하지 못한다는 걸 알아차린 것이겠지. 억지로 붙잡고 있어봤자 서로 의만 더 상할 뿐이다.
그것으로 자매들의 이야기는 끝이었다.
나루는 구슬을 아이라에게 넘겼다. 하지만 역시 아쉬움이 묻어나오는 건 어쩔 수 없었던 모양이다.
“남에게 넘길 것을 위해 딸들이 성장하는 것도, 결혼하는 것도, 남편이 떠나가는 것도 보지 못하고 시간을 허비하다니.”
그에 대해서 아이라는 “원래 삶이란 모두가 어리석은 선택을 하는 거야. 나는 아니지만.”이라고 농담처럼 말했다.
* * *
어지러운 상황은 새벽이 지나고 아침의 해가 떠오르고 나서야 조금 수습되었다. 부서진 곳이나 파손된 곳을 고치거나, 부상자들을 치료한다.
사망자 없이 다들 가벼운 경상이었기 때문에 분위기를 최악으로 만드는 건 다행히 피할 수가 있었다. 사실 죽이는 것보다 가볍게 기절만 시키는 게 더 어렵단 말이지.
역시 아내들은 실력이 좋아.
“그래서 말이지, 내가 잉잉이를 향해 말했어! 날아! 그러니까 잉잉이가 막 잉잉야잉-하고 하늘을 날아서 엄마를 찾는데…!”
내 눈에는 아침 식탁에 앉아 조잘거리는 나르미가 보였다. 나르미는 자신의 어머니인 나루에게 어젯밤 자신이 무슨 일을 겪었는지 설명하기 바빴다.
엄마와 딸이란 저런 걸까? 고개를 더욱 돌려보니 엘가와 레오노이도 무어라 서로 대화를 나누고 있다.
“콩은 먹기 싫은 것입니닷…. 대자연의 맛이 난단 말입니닷….”
“콩 안 먹으면 이따가 사탕 안 줄 거야.”
“히애액…!”
“어렸을 적에는 말도 잘 들었는데 말이야. 왜 갈수록 뺀질뺀질해져.”
“이 레오노이는 아빠를 닮은 것입니닷…!”
레오노이와 엘가는 언제나 똑같네. 이제 나의 눈은 스텔라와 스타노이에게로 향했다.
스텔라는 스타노이의 입에 음식을 떠먹여주고 있었는데, 스타노이는 의외로 제법 독립심이 있어서 고개를 저은 뒤 혼자 스프를 열심히 떠먹었다.
스타노이는 귀엽네. 하지만 다섯 살이 되면 레오노이처럼 뺀질거리려나.
“미르나.”
그때 누군가 이름을 불러 시선이 그쪽으로 향한다.
“나이프와 포크를 쥐는 방법이 잘못 되었어요. 그리고 나이프로 음식을 자를 때에는 그릇을 시끄럽게 긁지 않도록 주의해야 해요.”
“포-크.”
미르나가 자신을 꼭 닮은 작은 미르나를 향해 이것저것 알려주고 있었다. 다만 그 분위기가 제법 딱딱하고 경직되어 있다. 미르나가 예의를 중시하는 것은 언제나와 마찬가지지만.
우리들 모두 그것만이 전부가 아니라는 걸 모르지 않았다. 미르나는 자신의 어머니인 나루를 일부러 의식하고 있지 않았다. 시선을 마주치지도 않고 대화도 나누지 않는다.
나는 알고 있었다.
자신의 어머니에 대해 관심 없어보였던 미르나가, 사실은 자신들을 버리고 떠난 어머니에 대해 상당히 반감을 지니고 있었다는 걸 말이다.
그리고 그 반감은 우리가 어떻게 해줄 수 있는 것도 아니었다. 그래서 이 아침식사의 불편함을 감내할 따름. 불편한 점은 또 있었다.
“내가 마지막 남은 용인이라니.”
도원의 주인 미르 여사는 동생 나루에게 큰 불만이 가득해보였다. 나는 내가 아는 유일한 반요정으로, 세상에 혼자 남게 되어버린 종의 마음을 이해했다.
쓸쓸하겠지.
그때였다.
“브에에.”
“미르나, 콩 먹기 싫다고 뱉어내면 안 된다고 했죠?”
“콩. 싫-어.”
“엄마한테, 말대꾸…!? 빨리, 남기지 말고 다 먹어요.”
“…히애액.”
작은 미르나는 엄마에게 꾸중을 들으며 오들오들 떨었다. 그 모습이 퍽 불쌍해 보이지만 미르나는 단호한 어머니였다.
“미르나, 엄마 말은 잘 들어야 해요. 다 미르나를 위해서 하는 말들이니까.”
바로 그때였다.
“푸흐흡.”
누군가 웃음을 터뜨렸다. 우리 모두 그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곳에는 나르미가 흐르는 눈물을 손가락으로 슥 닦아놓고 있었다.
“아니, 그냥 웃겨서. 미르나, 엄마 말은 잘 들어야 한다니. 정작 언니는 엄마랑 얘기도 안하고 있으면서.”
“…뭐?”
“언니도 엄마 말은 잘 들어야지! 모처럼, 수십 년 만에 드디어 엄마를 찾았는데. 언니는 지금 뭐야. 토라져서 한 마디도 안 하고!”
“내가 토라져?”
미르나가 인상을 와락 찌푸린다. 파지직-쌍둥이 자매의 눈에서 튀는 불꽃. 그 분위기를 반전시킨 것은 작은 미르나였다.
“겍, 게액-!”
작은 미르나가 서너 살 어린아이와는 어울리지 않는 소리를 냈다. 마치 무언가가 목구멍에 걸려서 어찌할 줄 모르는 모습이었다.
“미르나!”
그 모습에 큰 미르나가 당황했다. 팔다리를 버둥거리는 작은 미르나. 나도 당황해서 머리털이 쭈뼛 곤두설 즈음, 무언가가 팟-하고 튀어나와 작은 미르나를 붙잡았다.
그녀는 나루였다.
나루가 작은 미르나를 뒤에서 붙잡고 능숙한 솜씨로 흡-손을 밀어 올렸을 때였다.
“브에에-.”
작은 미르나가 입에서 무언가를 뱉어냈다. 데구르르르-. 바닥을 구르는 무언가. 곧 작은 미르나는 “히이이….”하고 앓는 소리를 낸다.
뭔 진 몰라도 잘 해결 된 모양이다.
나루 여사가 말했다.
“너희들이 아직 어릴 때에도 이렇게 목에 걸린 걸 빼준 적이 있지. 고맙다는 말은 안 해도 돼. 다 미르나를 위해서 하는 일들이니까. 엄마란 그런 거잖아?”
“…….”
미르나는 딸을 품에 안아들며 입술을 굳게 다물었다. 그렇게 잠깐 침묵이 감도는가 싶더니, 그녀가 무어라 입을 열려던 때였다.
“엄마─.”
“모두들, 이것을 보는 것입니닷…!”
“야, 레오노이! 콩 먹다 어디가!”
“엄마, 지금 콩을 먹을 때가 아닌 것입니닷…! 작은 미르나가 뱉어낸 이것을 보는 것입니닷…! 이 영롱한 구슬의 디테일을 보는 것입니닷…!”
레오노이가 바닥에 떨어진 무언가를 주워들었다. 그것은 작은 미르나의 목에 걸려있던 것으로, 매우 번쩍번쩍하고 멋진 무지개빛의 구슬이었다.
왜 구슬이 작은 미르나의 목에서 나온 거지.
우리 모두 의아함을 느낄 때 식사시간 내내 툴툴거리고 있던 미르 여사가 먼저 반응했다.
“아니, 그건…!? 용의 구슬이잖아요…?”
미르 여사의 반응이 의미하는 것은 확실했다. 용의 구슬을 뱉어낸다는 것. 그것은 용인이라는 증거였으니까.
내 작은 딸 미르나는 님프이면서 동시에 용인이었다!
“제가 마지막 용인이 아니게 되었군요! 아니, 잘하면 수를 더 늘릴 수도 있겠어요!”
미르 여사는 무척이나 기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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