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aming the Villainess RAW - Chapter (503)
EP.504)– 완결? 메가 완결! # 3
외전 – 완결? 메가 완결! # 3
죽순은 변화하는 것이 눈에 보일 정도로 빠르게 자라난다고 들었다.
그게 진짜인지 아닌지는 모르겠지만, 죽순을 제외하면 대부분의 식물은 아주 느릿하고 천천히 성장하는 게 기본이었다.
매일 물을 주며 가꿔줄 때는 모르지만 어느새 보면 훌쩍 커져있는 게 식물이었으니까. 마치 아이들 같다. 아이들도 매일 보면 모르지만 언젠가 돌아보면 훌쩍 자라나 있지.
다만.
우적, 우저저적.
“이건 대체 뭐냐.”
내가 심은 씨앗은 상상하는 것 이상으로 빠르고 크게 자라나고 있었다. 자란다? 성장한다? 아니, 그것보다는 팽창(膨脹)한다는 표현이 옳을 것 같다.
사방으로 뻗는 뿌리는 마치 두족류의 촉수처럼 꿈틀거렸고 그 가지는 배고픈 사람이 빵 바구니를 향해 손을 뻗는 것처럼 마구 뻗어 나간다.
“히에엑…! 매우 확장주의적인 나무인 것이다…! 이 타르타르는 이런 나무를 본적이 없는 것이다…!”
“도망치는 것이야…!”
타르타르와 모르모르 같은 임프들이 나무의 성장을 피해 도망쳤다. 몇몇 임프들은 팽창하는 나뭇가지에 옷이 걸려서 공중에 떠올라 바둥바둥거린다.
“가르르, 가르르르…!”
“가르가르.”
─윈드 커터.
나는 옷가지가 걸려 있던 가르가르를 돕기 위해 바람을 쏘아냈다. 날카로운 삭풍이 불어 가르가르를 매달고 있었던 가지를 휙 잘라낸다.
“가르르르…!”
가르가르가 바닥으로 떨어지고, 잘려나갔던 나무에서는 금방 여린 새순 같은 것이 자라나더니 더욱 더 많은 곳으로 뻗어나갔다.
대체 왜 이렇게 빨리 자라나는 거지?
대체 언제까지 자라나는 거고?
이대로 있다간 이 괴상한 나무에 앙그마르 컴퍼니의 정원이 전부 뒤덮이고 말 것이라 생각이 들자 가만히 있을 수가 없었다.
스멀스멀.
나무는 이제 정원을 넘어서 앙그마르 컴퍼니의 본관 마천루를 덩굴처럼 타고 오르는 상황. 건물 안에 있던 임프들은 창밖에서 우글거리는 나뭇가지들을 보며 바들바들 떤다.
이 광경을 바라보던 펀치노이가 소리쳤다.
“나무의 습격인 것입니닷…! 무분별한 발전에 자연이 분노하고 있는 것입니닷…! 이 나무는 이대로 더 커져서 모나크 시티와 앙그마르 왕국을 파멸시키고야 말 것입니닷…!”
두 손을 높이 들고 파멸적인 예언을 내뱉는 펀치노이는 반쯤 미쳐있다고 해도 좋았다. 이렇게 나무에게 도시의 지배권을 내주어야하는 것인가 생각했던 찰나.
스스스스.
계속해서 팽창하고 있었던 나무가 앙그마르 컴퍼니의 옥상을 휘감고는 움직임을 멈췄다. 모든 나무들이 그러한 것처럼 고요해졌다.
“멈췄나?”
나는 가까이 다가가 굵은 뿌리나 코끼리 몸통처럼 굵은 나무기둥을 손으로 두드려보았다. 속이 꽉 찬 느낌은 들지만 더 이상 움직일 것 같지는 않았다.
“일단 멈췄나보네.”
그때서야 나와 임프들은 안심할 수 있었다. 일단 나무가 도시를 멸망시키는 재앙은 막을 수 있었으니 다행이었다.
하지만 임프들이 몇 년 동안 열심히 가꾸었던 정원은 엉망이 되었고 꾸준히 높이 쌓아올린 컴퍼니 건물도 나무에 잡아먹히다시피 해서 처참했다.
이걸 어쩌면 좋을지 쓴침을 삼키고 있을 때 모르모르가 말했다.
“매번 큰 나무를 하나 심자고 건의했었는데 으뜸 임프 마르마르가 듣지 않았던 것이야…! 이제 큰 나무가 생겼으니 여름에 그늘에서 더위를 피할 수 있게 된 것이야…!”
별 모양 꼬리를 붕붕 흔들며 말하는 모르모르의 이야기에 먼지 묻은 주황색 완장을 손수건으로 열심히 닦고 있던 타르타르도 말했다.
“무척 멋진 나무인 것이다…! 가을에는 새들의 집이 되고, 몇몇 가지에 구멍을 뚫으면 임프들의 혁명적인 아지트가 되는 것이다…! 해먹을 걸어도 좋은 것이다…!”
“가르르르, 가르르르…!”
가르가르도 정원을 가득 채우다 못해 높게 솟아난 나무를 보며 매우 기뻐했다.
임프들의 감수성은 특이해서, 이 커다란 나무가 자신들이 가꿔오던 것들을 망가트렸음에도 기분이 좋은 것 같다. 그때 저 멀리서 마르마르가 뛰어왔다.
“이게 뭐야!”
“그게….”
“엄청 큰 나무네! 건물을 휘감고 있잖아! 엄청 멋지다! 안 그래도 요새 임프 자매들이 큰 나무를 정원에 심어달라고 말했었는데!”
마르마르도 이 커다란 나무가 몹시도 마음에 들은 것 같았다. 나 혼자만 심각했던 건가? 그런 생각에 이르자 아무래도 좋아졌다.
그때 마르마르가 손으로 높은 곳을 가리켰다.
“아앗-! 저걸 봐, 동지!”
마르마르가 손으로 가리키고 있는 곳에는 커다란 나무에 어울리는 큼지막한 봉오리가 있었다.
꽃봉오리 말이다.
단단한 껍질들로 둘러싸인 꽃봉오리는 미처 피어나지 못한 채 몸을 웅크리고 있었다.
* * *
다음날.
“그러니까 이게 그 나무라는 거지?”
엘가는 두꺼운 나무기둥을 손으로 툭툭 두드려보았다.
“엄청 튼튼하네. 하루 만에 이런 나무가 자라다니. 우리가 같이 지내면서 아직까지 더 놀랄 일이 있다는 것도 신기하다.”
나무를 손으로 두드려보던 엘가는 이제 다리로 뿌리나 기둥을 힘껏 걷어 차보기까지 했다.
팍-! 팟-!
어지간한 갑옷도 알루미늄 깡통처럼 찌그러트리는 엘가의 발차기를 맞았음에도 나무는 꿈쩍하지 않는다.
엘가가 말했다.
“그래서, 우리가 만들었던 것이 정말로 진짜 씨앗이었던 거잖아. 만약 그걸 뱃속으로 삼켰으면 어쩔 뻔했어?”
엘가의 말대로 만약 씨앗을 그냥 입에 삼켜버렸다면 끔찍한 일이 벌어졌을 게 분명했다.
뱃속에서 씨앗이 발아할지 어떨지는 모르겠지만, 만약 정말 자라났다면 나는 반요정이 아니라 나무인간이 되었겠지.
그렇게 생각하니 씨앗을 땅에다 심은 것이 올해 내가 결정한 일 중 가장 훌륭하고 정확한 일처리가 아니었나 싶었다.
자칫 나무가 자라났을지도 모르는 배를 슥슥 만지며 주변을 둘러본다.
슥삭슥삭.
곳곳에서 톱과 도끼 그리고 여러 공구들을 들고 나온 임프들이 나뭇가지나 나무기둥을 파내며 그 안에 자그마한 방들을 만들어내고 있는 게 보였다.
“이 모르모르의 꼬리처럼 별모양으로 입구를 내는 것이 좋은 것이야…!”
그렇게 만들어지는 방들의 모습이 마치 동화에 나오는 요정들의 집 같았다. 아니, 진짜 사실 그대로인가? 이곳은 동화 같은 세상이고 임프들은 사실 요정들이니까.
“근데 저 봉오리는 안 피어났네.”
엘가의 말에 나는 임프들 구경하기를 멈추고 고개를 높이 들어올렸다. 높은 가지에 튼튼하게 매달려 있는 봉오리가 유독 눈에 띈다.
“아마 나무를 잘 가꾸면 피어나지 않을까 싶네요. 분명 굉장한 꽃이 피어나겠죠. 꽃이 지면 또 굉장한 열매가 자랄 테구요.”
“그건 좀 기대되네.”
엘가는 정말 기대된다는 것처럼 팔짱을 끼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우리는 이 커다란 나무의 커다란 꽃을 피워내기 위해 날마다 정성과 시간을 투자했다.
“이 모르모르와 자매들이 열심히 길어온 우물물인 것이야…!”
촤르르르-.
“이 타르타르는 나무를 위해 비료를 준비한 것이다…!”
슥슥.
“이 펀치노이는 어제 먹다 남은 아이스크림콘의 초콜릿 과자 부분을 가져온 것입니닷…! 이것을 녹여 나무에게 먹이면 분명 꽃이 피어나는 것입니닷…!”
“아니, 그걸 왜 나무에 버려.”
아무튼.
임프와 님프들은 지극정성을 다해 큰 나무를 가꾸었다. 나도 아내들이나 레오노이, 작은 미르나, 스타노이, 아이라의 쌍둥이들이나 빅터를 데리고 나무를 구경하러 매일 찾아갔다.
시간이 하루에서 이틀이 지나고, 이틀에서 어느덧 일주일이 지나 한 달 정도가 되었을 때.
나는 굳게 닫혀 있던 봉오리가 서서히 열리고 있다는 걸 요정의 미세한 감각으로 알아차릴 수가 있었다.
스르륵.
살짝 열린 틈에서 뿜어지는 아득한 꽃향기란, 그 어디에서도 맡아본 적 없을 정도로 달콤하고 향긋했다.
그것은 몹시도 님프친화적인 향기였기 때문에 마르마르를 비롯한 임프들도, 레오노이를 비롯한 펀치노이 등의 님프들도 나무 근처에서 지내기를 좋아할 정도였다.
어느덧 큰 나무와 봉오리는 모나크 시티의 랜드마크가 되어 있었다. 먼 땅에서 나무와 꽃봉오리를 보기 위해 찾아오는 순례자들이 있을 정도로 유명해졌다.
“모나크시티의 명물, 봉오리 과자를 사는 것입니닷…! 지금 과자를 사면 추가로 봉오리 빵도 파는 것입니닷…!”
“나무 잎사귀로 만든 차도 파는 것이야…!”
임프와 님프들은 나무와 꽃봉오리를 따온 특산품도 만들었다. 그리하여 우리들 사이에 이 낯선 나무가 일상처럼 녹아들기 시작한 어느 봄날의 따스한 오후.
콰드득, 콰득.
무언가 딱딱한 껍질이 깨지는 듯한 소리가 낮잠 자고 있던 내 귀를 간질였다. 고개를 드니 내 옆에서 얌전히 누워 자고 있던 아이라의 쌍둥이들도 천천히 몸을 일으킨다.
“이리스, 아르케. 너희도 방금 그 소리 들었니?”
나는 쌍둥이들의 손을 붙잡고 바깥으로 나섰다.
내 발은 마치 아주 오래 전부터 계획해두었던 것처럼 어느 곳을 향했다. 앙그마르 왕궁에서 일하고 있던 임프와 님프들도 나와 함께 어딘가로 향한다.
우리들이 향한 곳에는 이미 많은 임프나 님프들이 몰려와 고개를 들어올리고 있었다. 나 역시 시선을 높이자, 은은한 빛을 발하고 있는 봉오리가 보였다.
콰득, 콰드득.
봉오리에서는 마치 껍질이 깨지는 듯한 소리가 들렸다. 또 소리가 들릴 때마다 그 안쪽 너머에서 눈부시게 밝은 빛이 스며 나오기 시작하는 게 아무래도 보통 상황은 아닌 듯했다.
“꽃이 피어나려는 모양인 것이야…!”
모르모르가 소리치자 모든 사람들이 동의하는 것처럼 고개를 끄덕였다. 다만 나는 꽃이 피어난다기보다는 무언가가 알을 깨고 태어나는 것에 더 가깝지 않은가 생각했다.
콰득, 으직, 으지지직.
껍질이 깨지는 소리가 요란하게 들리고.
마침내 겉 표면에 붙어있던 껍질이 아주 깨졌을 때 파아앗-하는 강렬한 빛과 함께 찬란한 광채를 띈 꽃잎들이 활짝 펼쳐졌다.
수많은 꽃잎들이 포개진 그 모습은 장미 같기도 하고, 배추 같기도 했다.
무척 멋지다는 것만은 확실해서 이 광경을 구경하고 있던 우리들 모두 입을 반쯤 열고 그저 멍하니 바라보는 것 외에는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
만개한 꽃의 아찔한 꽃향기가 우리의 코를 찌르르 뒤흔들고, 꿈을 꾸는 것처럼 황홀한 내음에 젖어 있을 때. 무언가가 꽃 안에서 빙그르르 굴러 떨어졌다.
꿀?
모르겠다.
그 빛은 황금빛으로 번쩍였고 올리브기름처럼 반들거렸다.
끈적이지 않고 산뜻함마저 느껴지는 모습으로 꽃잎을 굴러 떨어진 그 한 방울은 마침내 그 아래에 정확히 서 있던 누군가의 두 손바닥 안에 조르르 고였다.
“아앗-! 동지! 굉장하다! 그거 꿀이야? 뭐야? 뭐지?”
마르마르는 내 손바닥 안에 고인 금빛 물을 보며 매우 놀란 것 같았다. 이게 무엇인지 물어오고 있었지만 나도 도통 알 수가 없었다.
이게 뭐지?
꿀?
아니, 평범한 꿀은 아니다. 이건…, 이건 그냥 꿀이 아니라 굉장하고 엄청난 꿀이 분명했다!
이게 정확히 어떤 효과를 지녔는지는 모르겠지만 무척 맛이 있어보였다. 요정의 본능이 이대로 후르릅 마셔버리라 재촉하고 있다.
“도, 동지, 나도 한 입만 줘…. 한 입이 안 되면 한 방울이라도. 한 방울이 안 되면 이쑤시개에 살짝 찍어줘도 돼…!”
웬만해서는 내게 부탁조차 안하는 마르마르도 이 금빛 꿀의 물욕에는 이겨내지 못한 건지 반쯤 홀린 사람처럼 눈을 번뜩이고 있었다. 다른 임프들도 마찬가지였다.
“이 모르모르도 한 입 먹어보고 싶은 것이야…!”
“아빠는 어서 이 레오노이에게 그 황금빛 꿀을 가져다주는 것입니닷…! 그 기묘한 꿀을 먹기 위해 아크의 강의를 재끼고 온 것입니닷…!”
임프와 님프들이 내 손에 든 꿀을 향해 좀비처럼 몰려들기 시작했다. 아무래도 그들은 제 정신이 아닌 것 같았다. 정신력 강한 나조차도 아찔한 현기증이 날 정도였으니까.
이대로 이걸 내가 삼켜버리면 모두 맨 정신으로 돌아올까?
“…….”
하지만 나는 손바닥에 담긴 꿀을 차마 마실 수가 없었다. 이렇게 맛있는 건 모두가 함께 나눠먹으면 좋을 것 같았으니까.
━님프비기, 대탈출…!
“아앗-! 동지가 도망친다!”
“모두 붙잡아 꿀을 마구 빼앗아 먹는 것입니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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