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aming the Villainess RAW - Chapter (57)
EP.58)태오 # 7
058 – 실버루키 태오 # 7
━뀌이이잉, 뀌이이잉
파란 새가 나의 팔을 움켜쥐고 앉아 날개를 퍼덕인다.
어린아이 한 명 쯤은 어깨를 움켜쥐고 날아갈 수 있을 정도로 커다란 새였기 때문일까?
그 퍼덕임은 주변에서 이를 보고 있던 사람들을 겁에 질려 뒷걸음질 치게 만들기 충분했다.
━무시무시하구만. 저런 새를 막 풀어놔도 되나? 목줄이라도 채워놔야 하는 거 아냐?
━새한테도 목줄을 채워놓을 수 있나?
━몰라! 아무튼! 그보다 저 사람은 누구야?
그런 그들의 겁에 질린 시선은 이제 내게로 향하는데. 괜한 소란과 소문이 불어나기 전에 나는 얼른 자리를 비우기로 마음먹었다.
그런 내 발걸음이 향하는 곳은 이 아크의 교수와 교관들의 연구실이 있는 연구동이다.
그곳으로 향하는 이유는 물론 스텔라 벨호크를 만나 그녀의 애완동물인 이 푸른 수리를 넘겨주기 위함.
아직 6시가 안 됐으니 자기 숙소로 퇴근하지는 않았을 것이라 생각하며 분주히 걸음을 옮기는데. 연구동은 또 처음 가는 것이라 길을 알기가 쉽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내 어깨에 앉아 있는 푸른 수리 트위티에게 말했다.
“스텔라 교수의 연구실로 안내해 줘.”
━뀌이이잉-!
그러자 푸른 새가 단박에 하늘로 날아올라 어딘가로 쏜살같이 향한다. 나는 그런 녀석을 부지런히 쫓아서 넝쿨이 가득한 건물을 발견할 수 있었다.
내가 생활하는 기숙사인 진리관 만큼이나 낡아 보이는 건물이다. 푸른 수리가 그 위에서 빙글빙글 돌고 있는 것을 보니 저기가 맞는 모양이다.
여기에 벨호크 가문의 영애가 교수로서 생활을 하고 있다 이거지.
나는 벨호크 교수를 만나 어떤 이야기를 나누면 좋을지 생각해봤다.
그녀가 엘프고 내가 하프 님프인 것을 언급하여 같은 요정끼리 나름의 공통분모를 만들까?
아니면 애완새를 키우는 입장에 대해 대화를 나눠볼까?
물론 나는 새를 키우지 않지만 최근 새를 다루는 방법을 좀 알게 됐으니 이야기는 어떻게든 진행할 수 있을 터.
그런 생각을 하며 나는 낡아 보이는 연구동 안으로 들어섰다.
그 안쪽 복도는 먼지와 거미줄이 가득하고 고장 난 가구와 곰팡이 핀 서류 그리고 두루마리들이 가득 쌓여있어서 폐건물 같은 느낌이 든다.
“정말 여기가 맞아?”
스텔라 폰 벨호크는 아이라나 엘가 그리고 미르나와 마찬가지로 거대한 가문의 영애다.
특히 벨호크 가문은 남쪽 평원의 유목민족과 떠돌이 상단들을 연합하였던 대족장 출신.
여러 상회를 운영하는 벨호크 가문은 단순한 부유함이라면 리오네스 가문을 상회한다고도 소문이 나 있을 정도였다.
그런 고귀한 여성이 이 낡아빠진 연구동에 거처를 틀고 있다는 게 나는 꽤 믿겨지질 않았다.
“인기척이 전혀 느껴지지 않는 건물인데.”
━뀌이잉.
그러나 푸른 수리 트위티는 내 어깨에 얌전히 앉아있을 뿐.
여기가 맞는 모양이다.
그리하여 나는 벨호크의 연구실이라고 쓰여 있는 2층 5호실을 찾아 낡은 가구들과 잔뜩 먼지쌓인 서류들을 넘었다.
「스텔라 폰 벨호크 교수 연구실」
여기구만.
문을 똑똑-하고 두드리자 안쪽에서 기척이 났다.
“저기 스텔라 교수님 계십니까?”
━없어요.
“그럼 안에서 대답하시는 분은 누구시죠? 할 말이 있어서 왔는데요.”
기이익.
내가 문고리를 비틀 때였다.
━문 열지 마! 문 열면 안 돼!
안쪽에서 다급한 소리가 나더니 무언가가 구당탕, 콰당탕하고 넘어지는 소리가 들렸다.
여러 가지로 박살나는 소리가 한참 들려오고 호기심을 참지 못한 내가 문을 열었을 때.
나는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먼지와 바닥에 불규칙하게 널브러져 있는 책장 그리고 고서들과 온갖 잡동사니 쓰레기들을 발견할 수 있었다.
그리고 그런 중앙에는 먼지를 가득 뒤집어 쓴 채 머리에 난 혹을 매만지고 있는 보랏빛 머리칼의 엘프가 보인다.
“으, 아파라. 문 열지 말라니까.”
“죄송합니다. 이런 상황이었을 줄은 몰랐네요. 이게 대체 어떻게 된 일이죠?”
“몰라. 그보다 여기는 왜 왔어? 교수 연구실은 함부로 오면 안 되는 거 몰라?”
그때서야 스텔라는 방문자인 내게 관심을 보였다.
그녀의 호박빛 눈동자가 나를 위에서부터 아래로 빠르게 슥슥 훑더니 엘프 긴 귀가 위아래로 까닥거리기까지 한다.
“태오 가스펠. 별로 반가워 보이는 손님은 아니네.”
“안녕하십니까, 벨호크 아가씨. 바깥에서 아가씨의 애완새를 찾았습니다.”
내 어깨에 앉아 있었던 푸른 수리가 퍼덕, 퍼덕 날아서 천장에 매달려 있는 가로형 횃대 같은 곳에 얌전히 앉았다.
그 모습을 바라본 스텔라 벨호크가 매우 놀란 것처럼 입을 동그랗게 벌린다.
“오. 트위티를 데려왔다고? 쟤는 성격이 까칠해서 아무나 안 따르는 녀석인데. 어떻게 붙잡은 거야?”
“그야-.”
앙그마르의 마법으로 붙잡았다고 하면 상황이 좀 복잡해질 것 같아서 나는 적당히 뭉뚱그리는 게 좋다고 생각했다.
“그야 다 비법이 있죠. 그보다 완전 난장판이네요. 정리하는 걸 도와드릴까요?”
“그래야지. 네가 문을 열어서 이렇게 된 거니까.”
결국 나는 이 난장판 같은 공간을 정리하는 걸 도와주게 됐다.
아이라와 엘가의 하인으로 지내며 궂은일은 도맡아 했던 나였기 때문에 정리 같은 건 그다지 어렵지 않았다.
또 이런 일을 도와주면 당연히 나에 대한 벨호크 영애의 호감도가 오르지 않을까?
* * *
시간이 지나.
어느덧 먼지 묻은 서류들과 두루마리 그리고 박살난 가구들이 대충 치워지고 깨끗했을 본연의 연구실이 얼추 드러나게 됐다.
자신의 이마에서 땀을 닦는 벨호크 교수.
“이렇게 깨끗한 연구실을 보는 게 얼마만인지 모르겠네. 오랜만에 청소 열심히 했다.”
청소 때 아무것도 안했으면서 왜 자기가 생색내는 거지.
물론 그렇게 투덜거리는 것은 영애들의 시종 일을 얼마 하지 않아본 아마추어들이나 하는 짓이다.
나는 능숙한 시종답게 물었다.
“벨호크 아가씨. 더 도와드릴 건 없나요?”
“없어. 그보다, 나를 부를 때 벨호크 아가씨라고 부르는 건 좀 그만 두지 않을래? 여기서는 그냥 스텔라 교수로 통하거든.”
“그럼 스텔라 교수님이라고 부르도록 하죠.”
나는 근처에 보이는 싱크대에서 찻주전자를 씻어 작은 삼발이와 램프로 차를 끓여 스텔라 교수에게 건넸다.
팔팔팔팔.
“뜨거울 겁니다.”
“으음-. 냄새 좋네.”
그것을 받아 든 교수는 자신의 푹신해 보이는 의자에 앉으며 고개를 끄덕인다.
“차도 잘 끓이고. 조교 해볼 생각 없어? 새로 들어온 조교가 있는데. 걔는 영 못써먹겠어서 말이야.”
새로운 조교라면 마르마르를 말하는 것이겠지.
“그 임프 말인가요?”
“그래. 임프와 님프의 상관관계에 대한 논문을 작성중이거든. 그래서 고용했는데 애가 좀 어딘가 이상해. 보통 임프랑도 좀 다르게 맹하고.”
마르마르가 어떤 식으로 여기 조교로 채용됐는지도 머릿속에 대충 그려지는 것 같다.
문득 나는 그녀가 요정 탐구에 대한 강의를 맡고 있고, 그녀 자신도 요정 중에 하나인 엘프라는 것을 떠올릴 수 있었다.
“스텔라 교수님은 혹시 하프 님프가 어떤 종족인지 아십니까?”
“하프 님프?”
“네. 혹시 종족적인 특성이라든가. 종족 특유의 약점이나. 장점 같은 것들이 있을 거 아니에요. 특징 같은 것이나.”
“하프 님프인가. 그런 녀석들이 있다는 걸 옛날 어느 논문에서 본적 있는 것 같기도 한데. 근데 그건 왜 묻지?”
스텔라 교수의 물음에 내 눈 앞으로 선택지가 떠오르는 것 같았다.
내가 하프 님프라고 밝히는 것.
그리고 적당히 대답을 뭉뚱그리는 것.
“제가 하프 님프라서요.”
“푸흡!”
그때 스텔라 교수가 자신이 먹던 차를 위로 뿜어냈다. 덕분에 그 위에 얌전히 앉아 있었던 푸른 수리는 열린 창문 바깥으로 푸드닥 날개짓하며 도망 가버렸다.
그러나 스텔라 교수는 자신의 애완동물이 도망치든 말든 신경조차 쓰지 않는지 근처에 보이는 두루마리로 아무렇게나 자신의 입술을 닦아내며 물었다.
“네가 하프 님프라니. 그게 진짜야?”
반응이 상당히 격렬하다. 그렇게 놀랄 일인가?
덕분에 내가 살짝 움찔하여 뒷걸음질 치자니 의자를 드르륵 밀고 일어난 스텔라 교수가 나의 어깨를 강하게 붙들었다.
원래 나보다 머리 하나 정도 큰 여자였기 때문에 그 박력이 상당하다.
“빨리 사실대로 말해! 진짜냐고!”
“네, 네. 맞는데요. 진짜입니다.”
“세상에, 신비의 존재가 제 발로 날 찾아오다니! 세상은 아직 이 스텔라를 버리지 않았구나! 이럴 때가 아니야. 표본을 채집해야 해! 여기 앉아!”
나를 낡은 소파에 앉힌 스텔라. 그녀는 곧 서랍을 뒤적여 가위와 주사기 그리고 톱 같은 것을 꺼내기 시작했다.
그 모습이 흉흉하기 짝이 없어서 나는 겁을 집어먹게 됐다. 하프 님프라는 걸 괜히 밝혔나 싶은 후회가 감도는 것도 어쩔 수 없는 일.
내가 물었다.
“대체 무슨 일이죠? 무슨 문제라도 있습니까?”
“하프 님프잖아! 네 존재를 연구할 수 있다면. 님프들의 개체수를 늘리는 방법을 알아내는 것도 시간문제야! 올해의 논문상도 내거라고! 논문상만 있으면 나는….”
스텔라 교수가 거친 숨을 내쉬며 말을 멈췄다.
나는 그때서야 벨호크가 아이라 처형 이후 2막으로 넘어가는 중간 단계의 보스였다는 걸 떠올리게 됐다.
헤드 헌터 벨호크. 그게 그녀의 별명이었지.
그렇게 생각되니 나의 눈에는 여기저기 보이는 박제들과 표본이 매우 흉흉하게 보인다.
스르륵.
“아니.”
여러 도구들을 챙기던 스텔라 교수는 이내 그것들을 다시 서랍에 집어넣고 고개를 저었다.
“학생에게 손을 대서는 교수 실격이겠지. 여기서마저 쫓겨나면 나는 정말 아무것도 아니게 되거든.”
그리고는 후-하고 작게 한숨을 내쉬는 스텔라 벨호크였다.
나는 그런 그녀를 향해 말했다.
“벨호크 상회에서 쫓겨났다는 말은 진짜인 모양이죠?”
“그걸 어디서 들었어?”
“저는 앙그마르의 서기관이니까요. 듣는 귀가 많죠.”
사실 소설에서 본 것이다.
“이사진들과의 지분 싸움에서 밀려 여러모로 자격을 박탈당했다고 들었거든요.”
“그래. 맞아. 쫓겨났지. 내 자격을 증명하기 전까지는 가문으로 돌아갈 수가 없어.”
아하, 그래서 논문상인지 뭔지를 받으려고 하는 것이었구나.
그게 뭔지 확실히는 알 수 없으나 ‘올해의 논문상’이라는 이름을 보면 꽤 영광스럽고 중요한 것 같으니까 말이다.
“그래서 하프 님프에 대해 논문을 쓰고 싶다는 겁니까?”
“그래. 그렇지만 아크 생도의 동의 없이 학생을 연구대상으로 삼는 건 윤리위원회에 올라갈 수도 있을 만큼 금기된 일이라서 말이야. 나는 2번째 옐로카드야. 경고 한 번 더 받으면 여기서도 쫓겨날 걸.”
“생도의 동의가 있다면요?”
“동의? 네가 동의 해주겠다는 거니?”
스텔라 교수의 눈에 생기가 돌기 시작했다.
아니, 생기를 넘어서 흉흉한 빛을 뿜었기에 소름이 돋았지만 무서움을 꾹 참고 말했다.
“대신 조건이 있습니다. 교수님이 담당하고 계시는 강의에 A학점을 약속해줘요. 그리고 매주 한 번씩은 이렇게 연구실에서 만나도록 하죠.”
“고마워!”
스텔라 교수는 나를 와락 끌어안았다.
나보다 머리 하나 정도 큰 키 때문에 내 얼굴은 그녀의 탱크탑 안에 갇혀 있는 가슴에 문질러지게 된다.
몰캉, 몰캉.
무척 말랑말랑하고 부드럽고, 그러면서도 알싸한 포도주 냄새가 나는 가슴이었다. 혹시 벌써 여자 가슴에 대한 반요정의 반응실험 같은 연구를 시작한 걸까.
그때 누군가가 교수실의 문을 똑똑 두드렸다.
━스텔라 교수. 약속했던 시간이 다 됐습니다. 회의실로 가셔야 해요.
“내 정신 좀 봐. 오늘은 바쁘니까. 다음에 보도록 해. 내가 먼저 트위티를 통해 연락을 할 테니까. 알았어? 그리고 이건 선물로 줄게! 푸른 수리 깃털! 고급 재료야!”
스텔라는 그대로 이것저것 챙겨 방문을 나가버렸다.
뭐야.
좀 당황스럽긴 했지만 벨호크 가문과 접점을 만든 것은 좋은 일이다.
생각 이상으로 일이 잘 풀려서 오히려 무슨 함정에 빠지는 건 아닐까 싶을 느낌이 든다고 해야 할까?
저 자유분방한 영애를 어떻게 복속시키고 가문부흥에 이용할지 생각하니, 절로 앙그마르 제조기가 웅장해지는 기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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