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aming the Villainess RAW - Chapter (65)
EP.66)드리우는 그림자 # 2
066 – 아크에 드리우는 그림자 # 2
월요일의 점심시간.
나는 엘가와 식당에서 적당히 끼니를 때웠다.
대가문의 영애인 엘가가 5천 코인짜리 돈까스를 먹는 모습이 꽤 신기했는데.
“음….”
사실 그녀는 식사에 입도 안 대고 침음하고 있는 중이었다. 그에 옆에 있던 마르마르가 말했다.
“먹지 않을 거면, 저 마르마르가 먹어도 되는 겁니까…?”
마르마르의 앞에 놓인 것은 겨우 2천 코인 하는 콩나물 수프 한 그릇 뿐. 그것만으로는 양이 차지 않았던 모양이다.
“먹지 않겠다면 저 마르마르가 먹도록 하는 것입니닷…!”
마르마르는 마침내 엘가의 앞에 놓인 돈까스를 자신의 앞으로 슥 가져와 허겁지겁 식사를 개시했다. 그 모습을 보고 있으니 나는 의구심이 들었다.
“마르마르. 내가 실버즈 콘데한테서 빼앗은 식권이랑 15만 코인 너 줬었잖아. 그건 어떻게 했어?”
“그것은 만일의 때를 대비해 아껴두어야 하는 것입니닷…!”
그렇다는 모양이다.
“그렇지만 꼬리를 다시 자라나게 하려면 영양분을 잔뜩 먹을 필요가 있는 것입니닷…!”
마르마르의 말에 나는 팔찌처럼 휘감겨 있는 임프 꼬리 완드를 바라봤다. 마르마르가 자기 꼬리를 때어내서 날 줄줄 어떻게 알았겠어.
“이 돈까스라는 것은 무척 임프 친화적으로 맛있는 것입니닷…. 가격도 싸고. 맛도 저렴하고 아주 맛있습니닷….”
5천 원짜리 돈까스를 고급 소고기처럼 감격해서 먹는 마르마르를 보고 있으려니 괜히 내가 미안하고 찜찜해졌다.
그래서 나는 그걸 좀 어떻게 해보려는 마음으로 마르마르에게 남은 만두 두 개를 내밀었다.
“이것도 먹어.”
“역시 동지는 마음의 그릇이 아주 넓은 것입니닷…! 먹을 것을 양보해주다니…! 과연 교단의 모범이 되는 것입니닷…!”
그런 마르마르의 시끄러움 때문일까? 깊은 생각에 잠겼던 것으로 보였던 엘가가 미간을 와락 찌푸렸다.
“시끄러워서 집중할 수가 없네. 대체 이 임프는 뭐야? 임프가 대체 여기 왜 있어?”
“저는 마르마르 마르노이인 것입니닷…!”
“마루 뭐? 태오, 얘는 뭔데 우리랑 같이 밥 먹고 있냐?”
엘가는 마르마르와 이렇게 만나는 게 처음인 모양이구나. 하긴 마르마르랑 같이 있을 때는 아이라가 계속 옆에 있었으니까.
그렇지만 이걸 어떻게 엘가에게 설명할지 조금 고민이 됐다.
“얘는 그, 뭐냐. 제 인턴 같은 겁니다.”
적당히 얼버무리니 엘가는 더 이해할 수 없다는 것처럼 눈썹 사이로 주름을 만들어 보인다.
“인턴이 뭔데?”
“인턴은 아주 훌륭하고 멋진 것입니닷…! 티타임도 있고, 월차도 있는 것입니닷…! 조교보다 몇 배는 나은 것입니닷…!”
“뭐라는 거야. 아무튼 됐다. 그보다 내 밥은 어디 갔어?”
엘가는 자신의 앞에 놓인 그릇이 텅텅 비어있다는 걸 눈치 챘다. 그에 옆에서 마르마르가 작게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답한다.
“이미 저 마르마르가 먹은 것입니닷….”
“뭐? 누구 맘대로 내 껄 먹어? 꿀밤 맞을래?”
“히에엑…!”
엘가의 으르릉거림에 오들오들 떠는 마르마르. 나랑 비슷한 비명을 내지르는 그 입에는 돈까스 소스가 잔뜩 묻어 있다.
이대로 가다간 마르마르가 엘가에게 꿀밤을 맞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해서 나는 얼른 이야기에 끼어들기로 마음먹었다.
“엘가 님이 먹어도 좋다고 했었습니다.”
“내가 그랬다고?”
“예. 딴 생각을 하시느라 기억이 나지 않는 모양이네요.”
“내가 그랬나.”
“대체 무슨 생각을 그리 하고 계시는 겁니까?”
나는 강의가 끝난 이후 마음이 다른 곳에 가 있는 듯한 엘가에게 넌지시 물었다. 사실 엘가가 무슨 생각을 하는 지는 알 것 같았다.
아마 생도들이 떠들어대던 도시 외곽의 언데드 준동과 사악한 강령술사에 대해 생각하고 있는 것이겠지.
“아직도 다른 사람들의 말을 신경쓰고 있는 겁니까?”
“내가 뭘 신경 쓴다고?”
“그 사악한 강령술사에 대해서 말입니다. 고위 리치를 다루는 강령술사요.”
“…….”
엘가는 내 말에 딱히 부정하지 않았다. 곧 그녀는 주변을 슥슥 둘러보더니 내 쪽으로 고개를 숙이고 조용히 몇 마디 답했다.
“네 생각도 그래?”
“뭐가요?”
“미르나 드레이코, 그 녀석이 교외를 돌아다니면서 무덤을 파고 시체를 훔치고 사람들을 습격해서 언데드로 만들고 있다고 생각 하냐는 거지.”
예전이라면 나도 그렇게 생각했을 거다.
이 아크의 생도 중에서 강령술과 흑마법으로 드레이코 가문의 영애만큼 유명한 녀석은 달리 없으니까.
고위 리치를 다루는 강령술사라니.
누가 봐도 드레이코의 영애 아닌가?
하지만 나는 엊그제 드레이코 가문의 별장에 초대받아서 그곳을 살피고 온 몸. 미르나 드레이코가 사실은 유령과 해골을 무서워하는 겁쟁이라는 것을 잘 안다.
그런 미르나 드레이코가 사악한 강령술사가 된다고?
불가능한 일이다.
“미르나 아가씨는 아닐 겁니다.”
“그럼 누가 그런 못된 짓을 저지른다는 거지? 미르나 드레이코, 그 계집애 말고 누가 그런 짓을 해?”
엘가의 질문에 나는 말문이 막혔다.
엘가는 드레이코의 쌍둥이 여동생인 나르미 드레이코에 대해 모르는 모양이구나. 그렇기에 용의 선상에는 들어가지 않는 것이겠지.
물론 그들 자매는 범인이 아니다. 나는 적어도 그렇게 생각했다만.
다른 사람들의 생각은 좀 다른 모양이다.
━들었어? 어젯밤에 강령술사에게 외곽 지역에 사는 시민들이 습격 받았다던데.
━나도 들었어. 쓰러진 망자들에게서 드레이코 가문의 인장이 발견됐다며?
━혹시 그 강령술사라는 게, 드레이코 가문의 영애 아냐? 싱글 넘버즈니까, 마음대로 교내와 교외 부지를 오갈 수 있잖아. 실제로 최근 매일 밤마다 교외로 나간다는 것 같고.
소문이라는 것은 금방 만들어진다.
대륙에서도 유명한 대가문의 영애가 매일 밤 사람들을 습격해 시체로 만들고 있다-라는 이야기가 어느덧 모두의 머리 위를 유령처럼 지나다니고 있는 것이다.
━금색 브로치 생도들도 몇 당했다는 것 같더만. 석차 100위권 이내의 금색 브로치 놈들이 당할 정도면 이 아크에서 손꼽히는 실력자라는 소리잖아.
━미르나 드레이코는 6위권 실력자니까 충분히 가능한 일이지.
사건 정황도 미르나 드레이코를 사악한 강령술사로 몰아가기 딱 좋았다.
드레이코 가문은 비밀이 많고 으스스한 저주를 몰고 다니는 가문이었으니까.
다만 나는 그 어두컴컴한 저택에서 매일 아침 해가 떠오르기만을 기다리고 있는 쌍둥이 자매가 뜬구름 같은 소문으로 욕을 먹는 게 맘에 들지 않았다.
앙그마르의 대가문을 욕하는 것은 곧 앙그마르 왕국을 욕한다는 것과 같고.
앙그마르 왕국을 욕하는 것은 곧 마왕의 후예인 내가 언젠가 마땅히 되돌려 받고 다스려야 할 모든 것들을 욕한다는 뜻이니까.
“그럼 저 마르마르는 이만 못된 벨호크 교수의 심부름 시간이라 먼저 일어나는 것입니닷…!”
“그래. 나중에 또 봐.”
나는 마르마르에게 손을 흔들어주며 나 역시 자리에서 일어났다.
“엘가 님, 그럼 저도 일이 있어서 먼저 좀 일어나보겠습니다.”
“그래. 나도 일이 있으니까.”
* * *
내가 밥을 먹고 향한 곳은 교수들의 연구실이 위치한 곳이었다.
내가 찾는 사람은 고대 사어 강의를 담당하고 있는 고명한 흑마법사 발란 교수.
그녀라면 토요일 새벽에 내가 좀비의 혓바닥에서 발견했었던 인장을 알고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
꼭 그렇지 않아도 무엇이든 단서가 나올지도 모르고, 그러면 지금 교내에서 유행하고 있는 언데드 사태와 강령술사에 대한 소문을 밝혀낼 증거가 될 확률이 높으니까 말이다.
“계십니까.”
그리하여 나는 발란 교수의 연구실 앞에 멈춰서 똑똑 문을 두드렸다.
발란 교수의 연구실은 예전에 찾아갔던 벨호크 교수의 연구실보다 훨씬 호화롭고 화려한 연구동에 있었는데.
교수들 사이에도 학생들의 브로치처럼 알게 모르게 계급이 존재한다는 건 사실인 모양이었다.
복도에 열대어 수족관까지 있으면 말 다했지.
똑, 똑.
“계십니까.”
나는 연구실 문을 다시 한 번 두드렸다.
점심시간은 지났는데? 혹시 강의 중일까? 그렇게 한참 반응을 살피고 있을 때 무거운 짐을 잔뜩 든 여자가 내게로 다가와 말했다.
“발란 교수는 교수 회의에 나간 것이야…!”
발란 교수의 밑에서 조교로 일하고 있는 푸른 생머리 님프인 모양이다. 명찰에 적힌 ‘미리스’는 이름인 걸까?
“미리스 조교 님, 발란 교수 님은 언제 쯤 돌아오는 것입니까?”
“모르는 것이야…! 요새 여기저기 준동하고 있는 망자들 때문에 교수는 바쁜 것이야…! 결재할 서류가 산더미 같은데…!”
그렇구만.
흑마법과 강령술의 전문가니까 나 말고도 지금 상황에서 발란 교수를 찾는 사람은 많이 있을 터.
나는 하는 수 없이 걸음을 돌렸다.
어차피 내일이면 교수를 만날 수 있을 테지.
그리하여 시간이 지나 다음 날.
나는 화요일의 강의인 고대 사어를 듣기 위해 강의실을 향했다.
내가 드르륵 문을 열고 들어서자 한참 와글와글 떠들고 있었던 생도들이 입을 딱 다무는 데, 정말 따돌림이라도 당하는 것 같아서 조금 슬퍼졌다.
나는 저번에 앉았던 구석자리의 테이블에 짐을 내려놓고 강의가 시작하기만을 기다렸다.
미르나 드레이코는 아직 안 왔나?
주변을 슥슥 둘러보고 있자니 시간은 어느덧 9시 정각. 마침내 드르륵-문이 열리고 가슴이 꽤 큰 여성이 강의실 안으로 들어왔다.
검은 드레스에 짙은 남색 머리칼. 빨간 눈동자에 다크서클이 인상적인 여성, 발란 교수였다. 안색은 지난 번 보다 더욱 창백한 것 같은 느낌.
그녀가 주변을 슥슥 둘러보더니 교탁을 손바닥으로 탁탁 내리쳤다.
“자, 다, 다들 자리에 앉으세요. 강의, 시작 합니다….”
나는 유일하게 텅 비어있는 내 옆자리를 슬쩍 바라봤다. 미르나 드레이코가 아직 강의실에 안 왔는데.
지각하려는 건가?
“오, 오늘 강의는 실습. 그리고 과제도 있습니다. 실습과 과제는 도시, 그라시아 근처. 유적들을 탐사. 고대의 사어들. 이 두루마리. 적어오는 것이에요.”
결석자가 있든 없든 강의는 진행 됐다.
고대 사어의 두 번째 강의는 실습이라고 하는 것 같았는데. 이 아크를 벗어나서 고대 유적을 직접 답사하는 게 그 내용이었다.
누군가 손을 든다.
“교수님. 교외 유적지면, 언데드들이 나온다고 들었는데요. 괜찮을까요?”
“괘, 괜찮아요. 저희 교수들이. 그곳은. 모두 깨끗하게 정리했으니까. 좀 날뛰는 녀석들도 있었지만. 제가 지정해주는 장소로만 가면. 문제없어요.”
발란 교수는 칠판에 무언가를 슥슥 그리기 시작했다.
그건 일종의 지도였는데 아크의 북쪽 위로 존재하는 유적지 ‘옛 성터’의 넓은 부지를 그리는 것이라고 설명해줬다.
“제 강의를 듣는 사람. 스, 스무 명. 2인 1개조로. 짝 지어서. 열 팀씩. 각각 열 개의 구역. 조사하고 와야 합니다. 제가 숨겨놓은 표식 있으니. 가져오면. 추가점수 드려요.”
2인 1개조?
그 말에 나는 간담이 서늘해지는 것 같았다.
조별 과제라니.
내 옆에는 아무도 없는데.
“태, 태오 군. 친구나, 짝이 없나요?”
결국 혼자 남게 된 나는 수치스러운 꼴을 겪어야만 했다.
나만 내 조가 없어.
하다못해 엘가나 아이라와 같이 듣는 강의였으면 좀 나았을 텐데. 이 강의에서 내가 아는 사람이라고는 미르나 드레이코 뿐.
“그, 그럼 드레이코 영애와 함께 짝을 맺으세요. 오늘 제가 말했던 것들. 대신 좀 알려주고.”
그리하여 나는 결국 강의를 결석한 미르나 드레이코와 짝을 맺게 됐다.
“그, 그럼 오늘 새벽까지. 모두 표식과 문양, 발견해서 제 연구실. 제출해주세요. 그럼 이만.”
강의가 끝나고 나는 일단 미르나 드레이코를 찾아 나서기로 했다. 나와 같은 조가 됐다는 건 알려줘야 했으니까.
그래서 그녀가 있을 호화로운 기숙사로 향해 그 방문을 똑똑 두드리는데.
“계십니까.”
━으으….
그 안쪽에서 심히 앓는 소리가 들려왔다.
“미르나 아가씨. 계십니까. 저 태오 가스펠입니다.”
덜컥, 기이익.
문은 잠겨있질 않았다.
서서히 열리는 문 안쪽으로 화려한 1인 기숙사의 내부 풍경과 푹신해 보이는 침대, 그리고 그 위에 누워서 슬슬 몸을 일으키고 있는 미르나 드레이코의 모습이 보였다.
귀족답지 않게 매우 흐트러진 모습이었다.
잠옷으로 보이는 긴 셔츠 아래로 맨 다리와 가슴이 보였지만 미르나 드레이코는 그런 걸 신경조차 쓰지 못하는 것 같았다.
“어디 아프십니까? 말씀이 없으셔서 그냥 들어왔습니다. 죄송합니다.”
“요새, 도통 잠을 못 자서…. 제 방엔 왜 온 거죠, 평민?”
“과제가 있다는 걸 알려드리려고 왔습니다. 오늘 저랑 같이 북쪽 유적인 옛 성터에서 같이 산책 좀 하셔야겠어요.”
“으….”
미르나 드레이코의 얼굴은 몹시도 붉었다. 만져보진 않았지만 이마와 볼은 펄펄 끓고 있지 않을까?
“제가 뭐 도와드릴 거 있습니까?”
그에 미르나 드레이코는 미간을 잔뜩 구긴 표정으로 무언가를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그것은 테이블 위에 올라가 있는 다시마 같은 것이었다. 마른 다시마?
“그걸, 주세요. 몸을 낫게 하는데. 매우 좋은 거니까….”
“그러죠 뭐.”
미르나 드레이코는 다시마를 입에 넣고 우물우물 거렸다. 그런데 몸에 힘이 없기 때문인지 질긴 다시마를 씹는 건 영 힘들어보였다.
“우윽.”
결국 미르나 드레이코는 그것을 뱉어내고 말았다.
딱딱한 다시마가 바닥에 뒹구는 것을 주워들으며 나는 넌지시 물었다.
“대체 왜 이렇게 몸이 망가지신거죠? 잠을 주무시지 못한 이유가….”
내 머릿속에 떠오르는 것은 학생들이 수군거리던 소문이었다.
지난 일요일 밤에 등장했다는 사악한 강령술사가 사람들을 습격하고 망자들을 무차별적으로 일으켜 문제를 벌이고 있다는 소문 말이다.
지금의 미르나는 꼭 밤에 잠을 자지 못한 강령술사처럼 보였다.
미르나 드레이코가 아주 뜨거운 숨결을 천천히 내뿜으며 말했다.
“죄송하지만, 정말, 저도 이런 말 하고 싶진 않지만. 달리 방법이 없네요. 평민, 제 몸을 좀, 차가운 수건으로, 닦아주실 수가 있는지….”
마침내 털썩 침대로 누워버리는 미르나 드레이코. 더 이상 정신을 유지하고 있을 수가 없는 듯했다.
나는 그녀의 옆에 놓인 세수 대야와 수건을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죠 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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