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aming the Villainess RAW - Chapter (83)
EP.84)동아리 # 3
084 – 모험 동아리 # 3
“소망관은, 적어도 날이 밝거든 가는 게 좋을 거야. 여기 요정 숲은 밤과 낮이 전혀 다른 곳이라고 해도 좋거든.”
마르마르의 오두막이 위치한 요정 숲. 그곳의 저녁은 매우 빠르게 찾아왔다.
엇-하는 사이에 어느덧 해가 저 물어서 사방이 깜깜한 암흑으로 뒤덮이니까 조금 당황스러울 정도였다.
사르르 흔들리는 바람 소리만이 그림자에 가려진 잎새와 나뭇가지들을 잘각잘각 흔들고 있을 때.
━호우우우.
━메우우우.
━잉잉야잉.
━규이잉.
가만히 귀를 기울여보니 매우 기이한 소리들이 숲의 사방에서 들리고 있어서 나는 등 뒤로 그만 소름이 쭉 돋는 것 같았다.
━카르르륵.
대체 무슨 짐승들 울음소리가 저렇지?
울음소리만으로는 어떤 짐승인지 도대체 가늠이 안 된다. 분명 무시무시한 괴물일 게 분명했다. 전설의 마수 같은….
“동지, 오늘은 여기서 자고 가는 게 좋겠어.”
마르마르가 거의 다 떨어져가는 짤막한 몽땅 촛불에 불을 붙이며 깨진 창문 바깥을 조심스럽게 살폈다.
“요정 숲의 밤에는 흉폭한 짐승들이 돌아다니거든. 동지의 마법 실력이 꽤 훌륭하다는 건 알지만, 밤에 혼자 이 숲을 걷는 건 위험한 일이야.”
얼굴에 그늘을 드리운 마르마르가 이 요정숲에 사는 짐승들에 대해 간략히 설명해줬다.
용사들이 기르던 반려동물들이 이 숲에 자주 유기되기 때문에, 이미 이 요정 숲 자체는 하나의 위험한 생태계나 다를 바가 없다나.
“용사들이 동물을 유기해?”
“언젠가 데려갈 거라고 말하고. 데려가지 않는 동물들이 많다나 봐. 애초부터 다시 데려갈 생각 없이 버리고 도망치는 거지. 그것도 모르고, 짐승들은 여기서 기다리고 있고.”
“반려동물을 버린다니. 아주 못된 놈들이네.”
이 숲에는 지우에게 버려진 피존투들이 서로 생존을 위해 투쟁하고 있다는 소리구나.
파스스슥.
무언가가 수풀 사이에서 움직이는 소리가 들렸을 때 나는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이렇게 빨리 해가 저물 줄은 몰랐는데. 여기서 밤을 새야겠어. 마르마르, 그럼 네 오두막에서 하룻밤 신세 좀 질게.”
“내가 침대를 빌려줄게! 오늘은 내 침대에서 자!”
마르마르의 말에 나는 비좁은 1인용 침대를 바라봤다.
이제 보니 그것은 침대라기보다는 네모난 나무상자들을 블록처럼 깔아놓고 그 위에 이불을 덮어 놓은 간이 잠자리였다.
그래도 이 낡은 오두막에서 제일 그럴 듯 해 보이는 게 바로 저 침대인데. 그걸 내게 빌려준다니.
“마르마르, 넌 어디서 자려고?”
“난 바닥에서 자는 걸로도 충분해! 얼마 전에, 벨호크 교수 연구실에서 카펫도 하나 가져왔거든. 바닥에 카펫 깔면 괜찮아.”
집 주인을 바닥에 자게하고 나 혼자 편하게 침대에서 자라니. 조금 양심에 찔리는 행동이라서 괜히 좀 무안해졌다.
“나, 밤 샐 수도 있으니까. 마르마르, 네가 졸리면 침대에서 자도 돼.”
“그래도 될 까?”
“그래. 난, 뭐, 어차피 정리할 것도 많고. 연습해둬야 할 것도 있고.”
지금까지 알아낸 정보와 인물들의 관계. 앞으로 해야만 할 일들.
내가 사용할 수 있는 마법. 혹시 내 계획에 있어서 위험할지 모르는 변수들을 밤 세워서 정리할 시간이 필요하긴 했다.
일들이 많아서 뒤로 미루고 있었긴 하지만 이렇게 된 거 오늘 해야지.
“동지, 너 정말 착한 녀석이구나! 침대를 내게 준다니!”
고개를 돌려보니 마르마르가 무척 감동을 받은 사람처럼 몸을 떨고 있었다. 내가 자신에게 침대를 양보해준 게 녀석의 마음을 울린 모양이다.
대체 왜?
원래 네 침대잖아.
“그럼, 같이 저녁 먹자! 저녁은 내가 대접해줄게!”
마르마르가 힘차게 얘기하며 오두막 바깥으로 나가버렸다.
무서운 짐승들이 돌아다니는 숲으로 나서는 게 조금 두렵긴 했지만, 마르마르가 혼자 저렇게 바깥에 나가는 걸 보면 괜찮다는 뜻이겠지.
꽈악.
그래도 혹시 몰라서 꼬리 완드를 손에 쥐어 본다.
나의 마법은 강력한 흑마법사인 발란 교수에게도 통했을 정도니, 어지간한 짐승 정도는 제압할 수 있으리라고 본다.
* * *
화르르륵.
오두막 앞으로 나온 마르마르가 가장 먼저 한 것은 웬 마른 잎새들을 잔뜩 모아놓은 곳에 불을 피우는 것이었다.
모락모락.
하얀 김이 뿜어져 올라오기 시작하는데 몹시 목이 컬컬하고 눈과 코가 화끈거려서 눈물과 콧물이 주르륵 흘러내리는 기분이었다.
“켁, 으엑, 마르마르. 이게 대체 뭐야?”
“고통스러워도 조금만 참으면 괜찮아 질 거야. 이렇게, 벌레 쫓기 풀을 피워놓아야 벌레들이나 짐승들이 몰려오지 않거든!”
과연 짐승들이 도망칠 만한 수준이긴 했다. 나까지도 눈물이 줄줄 흐를 정도였으니.
“그럼, 모처럼 손님이 왔으니까. 저녁을 한 번 대접해 줄게! 내가 아껴먹으려고 했던 말린 고기랑, 마늘이랑, 숲에서 캔 버섯이랑….”
슥슥.
모닥불을 피운 마르마르가 오두막 바깥에 널어둔 마른 육포와 약재 같은 것들을 파글파글 끓는 냄비에 집어넣었다.
그러다가 앗-하는 느낌으로 난처한 듯이 묻는 마르마르.
“혹시 동지는 매운 거 잘 먹어? 토끼고기는 맛이 좀 밋밋해서, 맵게 먹으면 좋거든.”
“괜찮아. 나도 매운 거 좋아하니까.”
사실 이 세상에서 매운 요리라고 해 봐야, 한국인이었던 내 입맛에는 약간 칼칼한 정도 뿐. 그래서 오랜만에 칼칼한 요리를 먹을 수 있다고 생각하니까 나는 약간 기대감이 들었다.
아이라나 엘가는 서양인들 비슷한 외모답게 매운 요리, 별로 안 좋아하니까. 미르나도 그럴려나?
풍덩, 풍덩.
마른 고추 같은 것을 냄비에 퐁당퐁당 집어넣으며 마르마르가 몹시도 기분 좋은 것처럼 소리쳤다.
“역시 동지랑 나랑 통하는 게 있어! 나는 빨간색 좋아해. 임프 친화적이고 혁명적인 색깔이라서!”
“그…, 뭐냐, 그렇구나.”
“다 됐다!”
“벌써?”
“벌써라니, 30분은 끓였는데!”
시간이 언제 그렇게 지났지.
낯선 곳에서, 풀벌레와 밤짐승들이 우는 소리를 듣고 있다보니 시간 감각이 좀 평소와 같지 않은 듯했다.
팔팔팔-끓고 있는 빨간 스튜를 낡은 나무그릇에 담아 내게 건네는 마르마르.
“더 있으니까, 더 먹어도 돼!”
양이 상당히 푸짐했다. 들어있는 버섯과 야채들도 딱 알맞은 느낌으로 물에 불어서 부풀어 올랐고.
고기도 맛있어 보인다. 애초에 영국 같은 데에서 토끼고기는 고급품으로 친다는 말도 들었으니까. 주변에 토끼덫이 있는 걸 보면 직접 사냥한 고기겠지.
힘들게 잡은 고기랑 식량들일 텐데.
내가 먹어도 되는 가 싶었지만 마르마르가 “빨리 먹어 봐! 맛이 어떤지!”라고 나를 재촉해와서 나는 나무 스푼으로 빨간 국물을 한 입 떠먹었다.
생각보다 괜찮다. 끈덕지지 않고 깔끔하게 얼큰한 것이 스튜라기보다는 찌개에 가까운 느낌.
“맛있네.”
“그럼 나도 이제 먹어야지!”
나와 마르마르는 그렇게 식사를 했다.
마르마르가 생각보다 요리를 잘한 다는 것이 의외였다. 애초에 이렇게 혼자 야생에서 생존할 정도면 생활력이 강한 건 당연한 일이려나.
“다 먹은 그릇, 치워줄게! 얼른 씻지 않으면 벌레나 짐승들이 몰려오거든! 특히 여긴 개다람쥐들이 많아서 조심해야 해.”
“그래. 내가 뭐 도와줄 건 없어?”
“없어! 그냥 앉아있어도 돼!”
“그래 뭐, 그러지 뭐.”
씩씩한 마르마르의 모습을 보니, 문득 내 여동생들이 떠올랐다.
이제 보니 마르마르는 내 여동생들과 어딘가 풍기는 분위기가 닮아 있었다.
설명은 잘 못하겠지만, 사회와 세상으로부터 버려졌음에도 꿋꿋하게 살아가려고 노력한다는 점이….
가능하면 원래 세상의 일은 떠올리지 않고 싶었는데.
이렇게 시간이 많고 아름다운 자연 풍경 속에서 하나가 되어 있다 보면 떠오르고야 만다. 내 어린 시절과 친구들, 선생님들.
슥.
그때 뒷정리를 끝낸 마르마르가 내게 무언가를 내밀어왔다. 그것은 얇고 가느다란 꽃잎을 가진 꽃이었다.
푸른색 원통형의 꽃잎은 꼭 긴 부리나 주둥이처럼 보이기도 했는데. 이게 뭐지 나는 알 수가 없었다.
“이게 뭐냐?”
“요정 꿀 꽃! 이렇게, 꽃잎에 입을 대고 빨아먹으면 꿀이 나와.”
마르마르가 시범을 보이듯 꽃잎에 입을 대고 그걸 쭉 빨아들였다.
나도 그대로 따라해 봤더니, 기대하지 않았던 꽃잎들 사이에서 정말 생각도 못했던 단 맛이 났다.
「맛있습니닷…!!!
직업 ‘반요정’ 레벨 1 상승!
Lv. 6 → Lv. 7
이제 당신도 어엿한 한 명의 요정입니닷…!」
“맛있네.”
레벨도 올랐다.
문득 나는 궁금해졌던 걸 마르마르에게 물어보기로 했다.
“이런 건 다 어디서 알아낸 거야? 이렇게, 밖에서 살아가는 법이나. 사냥하는 법. 약초 따는 법 같은 거 말이야.”
마르마르라는 녀석에 대해 궁금해졌다. 그러자 통나무 그루터기에 걸터앉은 마르마르가 자신의 낡은 머리수건을 매만진다.
“나는 숲 속의 수녀원에서 길러졌거든. 거기서 이것저것 배웠어.”
“수녀원이면, 광염 교단의?”
“그래!”
아하, 그래서 마르마르가 수녀복을 입고 다니는 것이었구나.
수녀원에 길러졌다는 말은 마르마르를 길러주는 부모나 형제가 없었다는 말이기도 하겠지.
나랑 닮은 점이 많았다.
태오 가스펠 말고, 나 이성음도 교회의 재단이 운영하는 보육시설에서 자랐으니까.
마르마르에게 은근히 정감이 가는 것은, 또 마르마르가 내게 친근감을 느끼는 것은 서로 은연중으로 닮았다는 걸 눈치 채서 그런 거 아닐까?
“그치만, 수녀원, 없어졌어. 남작 볼테르가 숲에 사냥터 만든다고 숲에 사는 사람들 다 내쫓았거든. 다들 뿔뿔이 흩어지고. 이제는 다들 어디서 사는지도 몰라.”
추욱.
마르마르의 자랑스러운 다이아몬드 꼬리가 바닥으로 늘어졌다. 그것으로 나는 마르마르가 어째서 높은 사람들을 싫어하는 지 좀 알 것 같았다.
“동지는 어떤데? 가스펠이면. 교단의 위탁아들 성씨잖아. 동지도 나랑 같이 수도원에서 자라거나 했어?”
마르마르는 옛날 생각을 하는 걸 그만두고 싶었는지 오히려 내게 물었다.
순간 나의 머릿속으로 많은 기억들이 스쳐지나갔다.
운동회 때, 부모님을 모셔왔던 아이들을 부러워했던 기억이나. 보육원에 몇 대 없는 낡은 컴퓨터를 서로 차지하기 위해 싸웠던 친구들의 얼굴.
무서웠지만 그래도 친절했던 선생님들.
이것은 태오 가스펠이 아닌, 나 인간 이성음의 기억이다.
여기서 문득 궁금한 게 생겨난다.
태오의 머리에는 이런 기억이 전혀 없을 텐데. 어째서 나는 이러한 기억들을 바로 어제의 일처럼 생생히 떠올릴 수 있는 걸까?
기억이란 두뇌속 뉴런인지 뭔지 하는 곳에 저장되는 게 아닌가? 그렇지만 태오의 뉴런과 나 이성음의 뉴런은 아주 다른 것일 텐데.
어쩌면 기억이라는 것은 몸과 머리가 아닌 가슴 속 영혼에 깊숙이 새겨지는 것은 아닐까?
영혼이라니.
매일 식사 전, 잠들기 전 마다 의무적으로 기도를 해야만 했던 나였지만 사실 영혼이나 신앙 같은 건 그리 진지하게 고민했던 적이 없었다.
그것 말고도 신경 쓸 게 많았으니까.
그렇지만 지금 와서는 정말 궁금해지는 것이다.
나는 왜 여기서 이러고 있는 거지?
나의 영혼이 태오 가스펠에 들어온 것이 우연일까? 또 이 몸의 주인이었을 태오 가스펠의 영혼은 대체 어디로 간 것이지…?
그러다가 혹시 내가 미르나나 나르미 드레이코처럼, 하나의 몸을 두 개의 영혼으로 공유하고 있는 건 아닐지 떠올려 봤다.
내 내면 어딘가에 태오 가스펠의 영혼이 깊게 잠들어 있는 건 아닐까-.
가끔 이 녀석의 인격이 깨어나고 마는 건 아닐까 종종 걱정했던 때가 있었지만.
나는 나의 내면 어디서도 다른 누군가의 기억이나 영혼 같은 것을 편린조차 느낄 수 없었다.
오히려 누구의 흔적조차 찾을 수 없이 나 혼자만이 온전하게 존재해서 오히려 외로움을 느낄 정도였다.
“내가 괜한 걸 물어봤나보네…!”
내가 한참 대답 않고 있자 마르마르는 난처한 것처럼 좌우로 꼬리를 붕붕 흔들었다. 나는 마르마르가 혹여 오해나 의심을 할까 봐 적당히 둘러대기로 했다.
“그냥 뭐, 내 어린 시절은 재미가 없었으니까. 딱딱한 교리. 무서운 선생님들.”
“그렇지만, 태오 가스펠. 내가 듣기로 너는 노예로 팔렸다고 들었는데. 대체 왜 노예까지 굴러 떨어진 거야? 지금 널 보면, 절대 노예가 될 만한 사람은 아닌 것 같은데.”
“그러게.”
나도 궁금했다.
하아암-.
그때 마르마르가 커다랗게 하품을 했다.
“난 졸린데. 그럼 먼저 자도 될까?”
“그래. 자. 저녁 맛있었어.”
“그럼 내일은 소망관으로 안내해주면 돼?”
“그래.”
“어차피 벨호크 교수, 내일도 휴강이니까. 내일 바로 여기서 소망관으로 출발하면 되겠다.”
마르마르의 이야기에 나는 미간이 절로 찌푸려졌다.
“아니, 뭔 휴강을 그렇게 많이해?”
“몰라! 왜 이번에 흑마법사부터 교외에 일어나는 망자사건까지 이것저것 바빴잖아. 그것 때문인가 봐.”
마르마르의 말에 나는 내가 겪었던 사건을 떠올렸다. 발란 교수와 싸웠던 당사자가 나기는 했었지.
“근데 그거랑 벨호크 교수가 바쁜 건 무슨 상관인데?”
“이번에, 아크 경비를 더욱 강화시키기 위해 무슨, 사냥꾼들을 접선해서 아크로 데려온다고. 그거 때문에 바쁘다고 그러던데?”
“사냥꾼?”
내가 되묻자 마르마르가 물어보지도 않은 것을 조잘조잘 설명했다.
“요새 변방에서 유명한 용사 파티라나 봐. 전사, 사제, 사냥꾼. 길잡이. 이렇게 네 명이라고 했나.”
설마-.
내 등 뒤로 오싹한 소름이 돋는 사이에 바람이 스산하게 불어 숲을 뒤흔들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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