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angmun reincarnation RAW novel - Chapter 105
당문전생 (104)
T3T
혈해아(血海兒)
약탕기에서 진이 다 빠진 약초를 건진 당호민이 킁킁 냄새를 맡았다.
“분명 다 우러났는데.”
끓는 약탕기 옆의 커다란 그릇을 가져온 당호민이 그것을 열어 보았다.
“어째서 두 약재가 섞이면 조화를 이루지 못하고, 어느 한쪽의 약성(藥性)만 발현되는 거지?”
툴툴거리던 당호민이 곧 당찬일을 쳐다보지도 않고 중얼거렸다.
“네가 말했던 때때로 혼절하는 증상, 아무리 약학서를 뒤져 봐도 나오지 않아.”
전백안의 사내가 앓고 있다는 증상에 관해서 당호민의 도움을 요청했지만 돌아온 대답은 예상대로였다.
“비슷한 병을 굳이 찾는다면 기면증(嗜眠症)이란 게 있어. 하지만 기면증은 기본적으로 수면이라 혼절과는 거리가 멀어.”
“그렇군.”
실망스럽지만 할 수 없다.
이토록 간단히 원인을 알아낼 정도라면 전백안의 사내를 보필하는 사람들도 진작 그가 앓는 병인(病因)을 밝혔을 것이다.
“증상을 들어 보면 너와 매우 유사하지만 결정적으로 너는 태어나면서부터 혼절 상태였고, 전백안의 사내는 어느 정도 자란 이후에 그런 증상이 발현되었다는 거지.”
“그래서?”
당찬일의 물음에 당호민이 고개를 돌렸다.
“이건 어디까지나 사견인데, 너는 내적인 요인으로 십 년 동안 혼절 상태였던 것 같고, 그는 외적 요인이 아닌가 싶다.”
어디까지나 사적인 견해니까 참고만 해, 하며 당호민이 콧잔등에 주름을 잡았다.
“그리고 네가 깨어나지 못한 동안 지근거리에서 일거수일투족을 관찰할 만한 사람을 알아봤어.”
당찬일의 병상일지를 작성하고 동모에게 유출한 이는 누구일까?
“결론부터 말한다면 용의자가 너무 많아.”
그럴 줄은 알고 있었다.
“셀 수도 없이 많은 용의자 가운데서 그나마 추린다면 이 정도야.”
당호민은 인명이 빼곡히 적힌 종이를 당찬일에게 내밀었다.
“정말로 너무 많군.”
종이에는 시비 여섯, 경비 무인 일곱, 당문패왕 당암, 당문낭군 당진을 비롯해서 당문군주 당숙정에 이르기까지 당문의 인물들 스물세 명의 이름이 적혀 있었다.
“그런데 이런 건 왜 알아봐 달라고 하는 건데? 태어나자마자 잠자듯 혼절한 너를 어떤 변태 놈이 지켜보기라도 했다는 거야? 무려 십삼 년 동안이나?”
당찬일이 입술을 꾹 깨물자 당호민이 눈을 가늘게 떴다.
“너랑 말을 섞다 보면 뭔가 거대한 일이 벌어지는 것 같은데 통 모르겠단 말이지.”
이때 밖에서 소란이 일었다.
“그놈을 내놓으시오!”
“당문에서 그놈을 이런 식으로 싸고돈다면 우리가 어떻게 당문의 행사를 지지할 수 있겠습니까!”
와글와글!
때아닌 소란이 일자 서로를 바라보던 당찬일과 당호민이 약재실 밖으로 급히 나왔다.
“무슨 일이야?”
당호민이 묻자 정문 앞에서 곤혹스러워하던 당쾌풍이 이들을 돌아보았다.
“아니, 그게…….”
몰려든 마을 주민들은 당문의 위세 때문에 정문을 넘지는 못했지만 입구의 한 치 앞에서 팔을 흔들면서 연신 목청을 돋우었다.
“당장 그놈을 쫓아내시오!”
웅성웅성!
어떤 이유 때문인지는 모르지만, 주민들은 대단히 성이 나 있었다. 누가 보면 당문에서 인륜을 저버린 파렴치범이라도 보호하고 있는 것 같은 말투에 당호민이 짜증을 부렸다.
“미적거리지 말고 대답해! 무슨 일이냐고!”
당호민의 닦달에도 당쾌풍은 그저 곤란한 표정만 지었다.
“소운이 때문이냐?”
당찬일이 나서자 당쾌풍이 고개를 끄덕였다.
“또 소운이 때문이라고?”
인상을 구긴 당호민이 당쾌풍을 따라서 어딘가로 시선을 급히 이동했다.
연무장 한구석에서 무릎 사이에 작은 고개를 처박고 오들오들 떨고 있는 아이 하나.
아이의 이름은 진소운(眞素雲)이었다.
“진짜 저 인간들, 왜 저러냐?”
진소운에게 다가서며 당호민이 투덜거렸다.
“이 어린 녀석이 무슨 잘못을 저질렀다고.”
진소운의 앞에 쪼그려 앉은 당호민이 그의 어깨를 두드렸다.
“괜찮으니까 겁먹지 않아도 돼. 저 사람들은 여기까지 절대로 들어오지 못하니까 안심해.”
당호민이 진소운을 어르자 당쾌풍도 용기를 얻었는지 지금까지의 수세적인 태도를 버렸다.
“신성한 수련장에 아침부터 몰려와서 뭐 하자는 겁니까!”
버럭!
원래도 목청이 좋았던 녀석인데 적당한 분노까지 실으니 그의 목소리는 뇌성벽력이 따로 없었다.
움찔!
당쾌풍의 사자후에 기가 꺾인 태평로의 주민들이 어깨를 움츠렸다.
“똥 냄새 맡고 뒷간으로 몰려든 파리 새끼들처럼 왜 자꾸 앵앵거려요?”
쿠르릉!
당쾌풍의 기세는 자못 압도적이라 태평로의 주민들은 서로를 돌아볼 뿐, 입을 떼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이때…….
“우리가 온 이유를 당문에서는 진짜로 모르시나 봐요?”
사십 대의 호리호리한 사내가 위로 쭉 치켜 올라간 염소수염을 매만지며 앞으로 나섰다.
그는 태평로에서 정육점을 운영하는 추고(醜苦)란 사내였다.
“설마 그 아이가 누군지 몰라서 이러신다면 대당문(大唐門)의 위명을 초라하게 만드는 정보력 아닙니까?”
추고가 빈정거리자 당쾌풍의 입술이 파르르 떨렸다.
“왜요? 설마하니 그 아이가 누군지 알면서 비호하시는 건가요?”
추고의 말을 듣은 당쾌풍의 눈망울이 흔들렸다.
당연히 당문에선 진소운이 어떤 아이인지 알면서 감싸고 있었으니까.
“으음.”
당쾌풍이 번듯한 답변을 내놓지 못하자 추고의 간사하기 짝이 없는 미소가 더욱 짙어졌다.
“잘 모르시는 것 같아서 불초소생(不肖小生)이 감히 말씀드리자면…….”
“진소운.”
당찬일이 추고의 말을 딱 자르고 들어왔다.
“저 아이의 이름은 진소운이라고 하지요.”
기습을 당한 추고가 당찬일을 보며 허둥거렸다.
어쩐지 저 녀석은 껄끄럽다. 덩치만 크고 사람 좋은 당쾌풍이나 여느 계집아이보다 귀엽고 앙칼진 당호민이란 소년은 자신의 민활한 세 치 혀로 농락 가능하다.
아무리 당문 출신의 무림인이라지만 결국 둘 다 사회경험이 태부족한 아이들이니까.
그렇지만 저 녀석은 다르다.
당찬일이란 녀석은 나이에 걸맞지 않은 무게감과 연륜을 눈빛에 담아서 자신을 압박한다.
고작 십 대 중반의 소년인데!
‘지미럴.’
당찬일에게서 눈을 뗀 추고가 자신의 좌우에서 꿀 먹은 벙어리처럼 입만 헤 벌리고 있는 태평로 사람들을 죽일 듯 노려보았다.
‘아, 뭐 해? 내가 이만큼 했으면 알아서 받쳐 줘야지!’
추고가 눈짓으로 짜증을 부리자 사람들이 더듬더듬 입을 열었다.
“우, 우리가 저 아이의 이름을 몰라서 이, 이런답디까?”
“마, 맞소이다! 고, 공자께서도 진소운이가 어떤 녀석인지 훤히 아시지 않소?”
주변 사람들의 지원사격에 용기백배했을까?
당찬일의 박력을 이겨 내지 못하고 움츠러들었던 추고의 어깨가 슬그머니 올라갔다.
“그 아이는…….”
추고의 입꼬리가 기이한 호선을 그렸다.
세상에서 가장 재수 없는 각도로 입술을 비튼 추고가 툭 던지듯 내뱉었다.
“저주받은 아이라 이 말입니다.”
당문 사람들을 잔뜩 비꼬던 추고가 주변을 돌아보면서 물었다.
“여러분! 당문의 비호를 받는 저 새까만 아이가 누굽니까?”
“저놈은 제 어미를 잡아먹은 살모사(殺母蛇) 같은 놈이지요!”
살모사라…….
“아니, 아니지! 살모사는 제 어미만 잡아먹지. 저놈은 주변의 모든 사람들 죽여 버리니까 살모사보다도 흉악한 놈이야!”
살모사보다도 흉악한 아이…….
“저놈은…….”
누군가 목에 핏대를 팽팽히 세웠다.
“혈해아(血海兒)요!”
쿵!
피바다 속의 아이.
진소운의 별명이 바로 혈해아였다. 사람들의 외침을 들었을까?
진소운이 양 무릎 사이에 처박았던 얼굴을 들었다.
이제 예닐곱 정도일까?
까무잡잡한 피부는 햇빛을 받아 반짝였고, 커다란 두 눈은 세상 모든 걸 담을 것처럼 일렁였다.
오뚝한 코와 귀여운 입매가 어우러져 진소운은 너무도 사랑스러운 용모를 지닌 아이임에 틀림이 없었다.
그렇지만 태평로 사람들에게 진소운은 그저 혈해아,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들으셨지요?”
옆구리에 손을 척 얹은 추고가 당쾌풍을 직시했다.
“한시라도 빨리 혈해아를 손절하시는 것이 귀문을 위해서나, 우리를 위해서나 좋을 겁니다.”
진심으로 당문을 위하는 척 충고하는 추고의 태도는 가소롭기 짝이 없었지만 당쾌풍은 반박할 말을 찾지 못하고 입술을 깨물 뿐이었다.
분명 진소운은 혈해아라는 혐명(嫌名)으로 불리고 있었으니까.
“어서 저것을 내치시지요.”
으드득―.
“어서요!”
추고의 은근한 비꼼에 당쾌풍의 얼굴이 썩어 들어가는데 다시 한 번 당찬일이 끼어들었다.
“아무리 똥개라도 자기 집 앞에선 오십 먹고 들어간다지만 이건 좀 너무하는군.”
한심하다는 표정으로 팔짱을 낀 당찬일이 고개를 옆으로 비틀었다.
“아니면 텃세 하나로 백을 전부 먹겠다는 건가?”
“뭐, 뭐요?”
또다시 나선 당찬일 때문에 흐름이 끊긴 추고가 입술을 바들바들 떨었다.
“지금 나더러 똥개라고 하셨소?”
“그게 중요한가?”
추고를 무시하며 그를 지나친 당찬일이 태평로의 주민들 앞에 떡 버티고 섰다.
“진소운이 혈해아라는 거지요?”
끄덕끄덕.
추고뿐 아니라 태평로의 주민들도 당찬일이 거북하기는 마찬가지라서 그의 물음에 모두가 아무런 대꾸 없이 고개만 끄덕였다.
“그 이유인즉슨 석 달 전, 화전민(火田民) 군락에서 마을 사람들이 죽었는데 저 아이만 살아남았기 때문이고.”
사람들이 다시 고개를 끄덕였다.
“당시 소운이를 모씨상단(毛氏商團)에서 거두었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그들 또한 절멸했고 소운이만 또 목숨을 부지했다는 것도 사실이지요?”
모씨상단은 상단치고는 대단한 무력을 지녔기에 어지간한 산비적이나 수적들은 명함조차 내밀지 못했었다.
하지만 그들도 진소운을 거두고 한 달 만에 몰살당했다.
“뒤이어 섬서성에서 열 손가락 안에 꼽히는 표국인 금릉표국(金陵鏢局)의 주인인 이금척(李金尺)이 소운이를 어여삐 여겨 데려갔지만 역시 사달이 일어났다지요?”
표국은 타인의 물품을 운반하는 업무를 주로 맡는지라 상단과는 비교도 할 수 없는 무력을 지녔다.
운송하는 물품의 가치에 따라서 산비적이나 수적은 물론, 무림 문파를 비롯한 온갖 세력이 약탈하려 달려들기에 표국의 무력은 여느 무림 단체보다 고강하다.
그런 표국마저 몰살당했다면…….
그야말로 저주받은 아이가 아닌가!
“화전민 마을에 이어, 일정 규모를 자랑하는 상단, 섬서를 대표하는 표국까지. 소운이가 몸을 의탁한 집단은 하나같이 씨몰살을 면치 못했다.”
심각한 표정을 지으며 당찬일이 고개를 도리도리 저었다.
“알려진 대로라면 여러분들의 걱정이 이해가 안 가는 건 아닙니다.”
당찬일이 자신들의 우려에 공감을 표하자 태평로 사람들이 난리를 부렸다.
“그렇소이다!”
“자꾸만 죽는 사람이 늘어난다고요!”
“거기다 무공을 익힌 강호인들마저 죽어 나가는 실정 아닙니까!”
태평로 사람들이 열을 올리자 이에 고무된 추고가 몸을 비스듬히 틀었다.
“그러니 저주받은 아이를 어서 쫓아내…….”
추고가 입을 여는 순간 기다렸다는 듯 당찬일이 그의 말을 끊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