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angmun reincarnation RAW novel - Chapter 107
당문전생 (106)
타초경사(打草驚蛇)
다시 일어선 당찬일이 그림을 열심히 들여다보면서 공터를 바삐 오가다 우뚝 걸음을 멈췄다.
“어디에도 진각의 흔적은 없다. 진각도 없이 내가중수법을 펼쳤다는 건가?”
내가중수법이란 물리적인 외력(外力)으로 적에게 상해를 입히는 일반적인 공격이 아니라 순수한 내공력만으로 상대방의 기혈이나 내부 장기를 파괴시키는 고등의 수법이다.
이때 놀라운 점은 적의 외피(外皮)엔 거의 상처를 주지 않으면서 몸속의 장기나 기혈만 건드린다는 점이다.
내가중수법의 초고수는 백보 밖의 적에게 주먹을 날리거나[百步神拳], 산을 격하며 소에게 상해를 가한다[隔山打牛]고도 한다.
내가중수법은 어마어마한 내공을 필요로 하기에 필연적으로 진각(震脚)이라는 발구름으로 발경(發勁), 즉 내공을 급속도로 끌어올려야 운용이 가능하다.
그런데 화전민들을 죽인 흉수는 이런 통상적인 절차도 거치지 않고 내가중수법을 사용했다.
“발경도 없이 내가중수법을 사용할 정도라면…….”
너무 놀라서일까?
당찬일이 부지불식간에 탄식을 터트렸다.
“없다!”
제아무리 무림사군자 급의 내공을 지닌 초고수라도 일체의 발경 행위를 거치치 않고 내가중수법을 구사할 수 없다.
그럼 주민들의 사인은 내가중수법이 아니라는 걸까?
아니.
단정 짓지는 말자.
이론적으로는 설명이 불가능하지만 희생자들의 시신 상태를 고려한다면 아무리 생각해도 사인은 내가중수법일 수밖에 없다.
물론 전혀 다른 원인 때문에 희생자들이 목숨을 잃었을지도 모른다.
가령…….
‘전설상의 무림십대병기(武林十代兵器)라든가.’
무림십대병기는 그 하나하나가 천하의 운명을 바꿀 수 있다는 천고의 무기를 일컫는다. 하지만 무림십대병기는 아직까지 모습을 드러낸 적이 없기에 정사(正邪)를 대표하는 두 개의 기보인 사옥정 그리고 삼부지동과 더불어 미구현의 보물이었다.
‘십대병기 중에서 외피에 손상을 입히지 않으면서 내부를 자르는 무기가 있다고 했지.’
눈동자를 위로 모으고 생각하던 당찬일이 곧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상상만으로 문제를 해결하려고 들면 안 되지. 아직까지 무림에 모습을 드러낸 적도 없는 신병(神兵)을 흉기로 단정 짓는 우를 범할 수는 없지 않은가.’
고개를 저은 당찬일이 또 하나의 원인을 떠올렸다.
‘실전되었다는 마공(魔功)이나 사공(邪功) 가운데 내력을 끌어올리지 않고서도 내가중수법에 준하는 위력을 발휘하는 수법도 있다.’
그러나 괜히 실전되었다는 말이 나온 게 아니다.
현 무림에서 사용하는 사람이 없으니 실전되었다는 말이 나온 것이다. 그러니 이 또한 허구의 영역이라 하겠다.
사인을 논리적으로 설명할 수 없어 탄식하던 당찬일이 고개를 들었다.
“정보가 부족해.”
넋을 놓고 중얼거리던 당찬일의 눈동자가 좌우로 움직였다.
‘오른쪽은 그쪽에서 보낸 녀석들일 테고, 왼쪽은 어디서 오셨을까나?’
놀랍게도 당찬일은 양쪽에서 자신의 일거수일투족을 주시하는 이들의 움직임을 손바닥 들여다보듯 알고 있었다.
‘오른쪽은 무림맹 서안 지부장이라는 작랑이란 작자의 수하일 테지.’
오른편을 곁눈질한 당찬일이 작랑을 떠올렸다.
무림맹 서안 지부는 관의 주요 업무인 치안을 대신하는 실정이라고 들었다. 그러니 범인을 색출하지 못한 혈겁의 현장을 주시하는 건 어쩌면 당연한 노릇이다.
‘혈해지사(血海之事)라던가?’
진소운의 까무잡잡한 얼굴을 떠올린 당찬일이 이번에는 자신의 왼편을 곁눈질했다.
‘작랑 지부장만큼이나 내 움직임을 신경 쓰는 당신들의 정체가 궁금하군.’
짐작 가는 쪽은 있지만 아무런 증거가 없다.
‘이럴 땐 아주 좋은 방법이 있지.’
타초경사(打草驚蛇)라는.
* * *
타초경사는 병법 36계 가운데 공전계(攻戰計) 중 하나로 뜻을 풀자면 ‘풀을 때려 뱀을 놀라게 한다’는 것이다.
당찬일이 타초경사의 계를 사용하려는 이유는 하나다.
상대방이 무슨 의도로 현장을 맴도는지 알 수 없으니 그들을 자극하여 본모습을 드러내도록 유도하는 것.
다행히 당찬일은 썩 괜찮은 미끼를 알고 있었다.
미끼라고 하면 그들은 기분이 언짢겠지만.
간만의 호출이라서일까?
대흉의 눈초리는 경계심, 그 자체라서 당찬일이 피식 웃었다.
“잘 지냈나?”
“인사는 됐고, 왜 불렀어?”
대흉이 조심스러운 태도를 보이자 당찬일은 도리어 친근한 표정으로 물었다.
“아니, 왜 그리 날을 세우는데?”
너랑 엮여서 좋은 꼴을 못 봤으니까!
대흉 패거리는 얼마 전에 당찬일이 일부러 떨어트린 미혼산으로 한탕 하려다 일이 틀어져서 죽다 살아났었다.
그렇지만 미혼산의 성능이 그때그때 달랐던 이유를 따져 물을 수도 없는 노릇이라 대흉은 잠자코 당찬일을 노려보기만 했다.
“왜 그러지? 내가 그쪽을 잡아먹기라도 했나?”
“잡아먹고 자시고 간에, 우리를 부른 이유나 말해!”
“아, 이유.”
당찬일이 대수롭지 않다는 듯 입을 열었다.
“부탁할 게 있어서.”
“부탁은 무슨 놈의 부탁! 안 해! 안 할 거니까 다른 놈 알아 봐!”
대흉이 질겁하자 당찬일이 그를 안심시키려는 듯 목소리를 낮췄다.
“아아, 진짜 별거 아니라니까? 일단 들어나 봐.”
당찬일이 눈을 동그랗게 뜨면서 양팔을 벌리자 대흉이 입을 삐죽였다. 지금의 당찬일을 보노라면 음습한 느낌을 전혀 받을 수 없다.
‘이번엔 정말로 간단한 일인가?’
살짝 회가 동해서 미적거리는 대흉에게로 당찬일이 다가섰다.
“별건 아니고, 그냥 이곳의 동정을 알아봐 줬으면 해.”
“이곳의 동정?”
들어 보니까 진짜 별거 아니라서 대흉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뭘 어떻게 알아봐 줄까? 서안 무림의 정세? 아니면 무림과 관료들의 결탁?”
대흉이 주절거리자 당찬일이 손을 내저었다.
“그리 번거로운 일이 아니야. 나는 그저 서안의 공기가 어떤가 알고 싶어.”
“서안의 공기?”
대흉이 뒷머리를 긁자 당찬일이 품을 뒤졌다.
“자.”
“이게 뭐야?”
당찬일이 내민 봉투를 열어 본 대흉의 눈매가 가늘어졌다.
“이건 전표잖아.”
당찬일이 건넨 봉투에는 무려 삼십 냥짜리 전표가 두 장이나 들어 있었다.
“이, 이걸로 뭐 하라고?”
눈먼 돈이라면 자다가도 벌떡 일어나는 대흉이지만, 하필 준 사람이 당찬일이었기에 꺼림칙한 마음이 드는 건 어쩔 수 없었다.
“그 돈으로 이곳에서 가장 유명한 주루에 가서 진탕 마시라고.”
“마시면서 뭘 하라는 건데?”
“주루에 어떤 인간들이 드나드는지, 혹 무림인과 관료들이 타인의 눈을 피해 합석하는지, 기타 여러 가지 정보를 취합하라는 거야.”
“할 일이 그게 전부라고?”
“그래.”
정말로 너무 쉽다!
‘아니야. 이 꼬마 능구렁이가 또 어떤 함정을 파 두었을지 몰라.’
의심이 잔뜩 낀 눈으로 당찬일의 위아래를 훑던 대흉이 고개를 돌렸다.
“삼웅!”
“예, 형님!”
당찬일의 눈치를 연신 살피면서 대흉이 하남팔흉 가운데 셋째에게 무언가를 속닥거렸다.
당찬일이 태연한 표정으로 팔짱을 끼고 그 모습을 지켜봤다. 일각 후에 모습을 드러낸 삼웅이 고개를 끄덕이자 대흉의 표정이 환해졌다.
‘전표의 진위 여부를 확인했군.’
사실 당찬일은 대흉을 속인 적이 없다.
단지 약효가 현저히 떨어지는 미혼산을 흘렸을 뿐이다. 대흉에게 그것을 사용하라고 권하지도 않았다. 약효가 형편없는 미혼산으로 한몫 잡으려다 경을 친 건 어디까지나 대흉의 선택이었다.
“어디로 가서 마시라고 했지?”
“만화루(萬花樓). 그곳이 여기서 제일 잘나가는 홍루잖아.”
“만화루!”
눈을 부릅뜨며 홍루의 이름을 갈아 마실 기세로 반복하던 대흉이 당찬일의 곁으로 다가왔다.
“거기 소저들이 예쁘대?”
새끼손가락을 까딱거리면서 대흉이 묻자 당찬일이 지나가는 투로 답했다.
“아름다운 여인의 술 시중을 받고 싶나?”
미친 듯이 고개를 끄덕이면서 대흉이 목소리를 높였다.
“기왕이면 다홍치마지! 이렇게 큰돈을 쓰면서 예쁜 소저를 앉히지 못하면 고액권에 대한 예의가 아니라고!”
열변이긴 한데, 내용인즉슨 개소리다.
대흉이 일갈하자 당찬일이 그의 귀를 잡고 속삭였다.
“최고의 대접을 받고 싶으면 무조건 소교(小巧)의 가락을 듣겠다고 해라.”
대교는 더 이상 술 시중을 들지 않는다고 했다.
“그 소저라면 나도 이름 정도는 들어 봤지! 장안 최고의 미인이라더군!”
쾌재의 빛을 숨기지 않는 대흉에게 당찬일이 또 하나의 봉서를 주었다.
“이건 또 뭐야?”
대흉이 봉서를 찢으려고 하자 당찬일이 그의 손등을 찰싹 때렸다.
“이건 별도의 지시가 있을 때까지 열지 마.”
“아니, 그러니까 이게 뭐냐고?”
“내용물에 관한 호기심도 금물이다. 때가 되면 알게 된다고만 생각해.”
당찬일이 엄중하게 경고하자 봉서의 앞뒤를 살피던 대흉이 불만 어린 표정으로 그것을 갈무리했다.
“내 진짜 더러워서…… 알았다! 알았으니까 이만 가 볼게!”
“그래.”
훌쩍 사라지는 대흉 패거리의 뒷모습을 보던 당찬일이 중얼거렸다.
“육십 냥은 많다면 많지만 적다면 한없이 적은 액수지.”
* * *
“크아! 좋구나!”
만화루에서 신나게 먹고 마시던 대흉과 하남팔흉이 취기가 오르자 허리춤을 풀고 본격적으로 놀 준비를 했다.
“대형! 이 주루에 기가 막힌 꽃이 한 송이 있다면서요?”
“소교 소저를 말하는 것이렷다? 물론 나도 일찍이 소교 소저의 염명(艶名)을 전해 들었느니라!”
“듣기만 해서 뭐 합니까? 머나먼 만화루까지 왔으니 직접 만나 봐야지요!”
“과연 네 말이 일리가 있구나!”
일흉의 청에 대흉이 임금 흉내를 내면서 만화루의 점소이를 불렀다.
“게 아무도 없느냐?”
대흉이 점잔을 빼면서 자신을 부르자 터져 나오는 웃음을 가까스로 참으면서 점소이가 장단을 맞추었다.
“예이.”
“이곳에 소교라고 하는 천상지화(天上之花)가 있다고 들었느니라.”
“그렇습니다.”
“그 꽃은 사람의 말을 알아듣는 일명 해어화(解語花)라지?”
대흉의 꼴 같지 않은 짓거리에 속이 매스꺼웠지만 매상이 제일이니 점소이가 열심히 호응해 주었다.
“정확합니다!”
“그 꽃의 이름이 소교라고 했지?”
“예이.”
“그 꽃의 춤과 노래를 들어 볼까?”
잠시 후에 대흉 패거리가 노는 방으로 소교가 들어서자 아홉 명의 사내들은 앉은 자리에서 녹아 버렸다.
소교는 그들이 그동안 보아 온 어떤 여인네보다도 고왔으니까.
해파리처럼 흐물거리는 대흉과 하남팔흉을 곁눈질한 소교가 아쟁을 타면서 노래를 부르자 그들은 그녀의 포로가 되었다.
‘사, 사람이 아니야!’
‘어찌 인간이 저리도 아름다울 수가!’
대흉과 팔흉의 넋이 만화루의 언저리를 빙글빙글 돌아다닐 무렵, 점소이가 헤실헤실 웃으며 방으로 들어섰다.
“저, 저기…… 대협님들.”
“뭐냐?”
귀찮다는 듯 대흉이 눈을 부라렸지만 점소이는 개의치 않고 그에게 다가섰다.
“술하고 안주가 떨어졌다고 소교 소저께서 말씀하시네요.”
“더 가져오면 되잖아!”
“아, 그게…… 돈을 주셔야…….”
“뭔 소리 하는 거야? 조금 전에 줬는데!”
대흉이 짜증을 부리자 점소이가 손바닥을 비볐다.
“그 돈이야 다 쓰셨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