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angmun reincarnation RAW novel - Chapter 113
당문전생 (112)
월하노인(月下老人)의 의도
전생의 당찬일은 소년기부터 비천대원이었다.
모처에서 대기하다 일이 주어지면 해결하고, 다시 모처에서 대기하다 일이 주어지면 해결하고.
그렇기에 당찬일의 인간 관계는 단편적일 수밖에 없었다.
수직적이며 일방적인 관계.
그것이 당찬일의 대인 관계였다.
요점을 간추린 보고나 논리적인 설득은 특화되어 있었지만 타인을 구슬리거나 달래는 식의 심정적인 접근은 무지한 상태.
하여 당찬일은 진소운에게 다가설 수 없었던 거다.
당찬일이 진소운의 반응을 아직까지 받아들이지 못하는데 당인이 고개를 돌렸다.
“쾌풍아.”
“예, 지부장님!”
“죽을 좀 가져다주겠느냐?”
“얼른 가져올게요!”
눈썹이 휘날리도록 뛰어나간 당쾌픙이 죽이 담긴 그릇을 가져왔다.
“이것 좀 들자.”
달그락.
당인이 죽 한 숟갈을 떠서 내밀자 잠시 망설이던 진소운이 그것을 받아먹었다.
‘세상에!’
당호민과 당쾌풍이 깜짝 놀라서 서로를 쳐다보았다.
지금까지 진소운은 타인과의 접촉을 극도로 꺼려서 다른 사람의 손길이나 한 다리 건너서 오는 음식을 극도로 거부했었다.
그런 진소운이 당인의 죽은 마다하지 않는다니.
‘역시 지부장님!’
둘이 고개를 끄덕이는데 진소운은 놀랍게도 죽 한 그릇을 말끔히 비웠다.
“잘했다. 이제 물을 먹자.”
당인이 잔을 건네자 그것도 받아 든 진소운이 꼴깍꼴깍 들이켰다.
죽과 물을 먹자 조금은 편안해진 진소운이 까딱까딱 졸았다.
―우리 모두 잠시 나가자.
당찬일 들에게 눈짓하며 당인이 병상을 나갔다.
역시 애들은 뭘 좀 먹어야 한다.
무려 네 시진이 지난 후에 잠에서 깨어난 진소운이 구류소에서 벌어진 일을 더듬더듬 털어놨는데…….
“뭐가 ‘번쩍!’ 해서 기절했는데 ‘쿵!’ 해서 깨어나니까 주변 사람들이 모두 죽어 있었다고?”
당쾌풍이 입을 떡 벌렸다.
대체 번쩍은 무엇이고, 쿵은 또 무엇인가?
“좀 알아듣게…….”
답답해서 재차 물으려는 당쾌풍을 눈짓으로 제지한 당인이 고개를 끄덕였다.
“많이 놀랐겠구나. 무리하게 말하려고 들지 않아도 된다.”
당인이 부드럽게 대화를 이끌었다.
진소운은 그나마 자신과 나이가 엇비슷한 교관 소년들과 친했고, 큰아버지뻘인 당인을 어려워했다.
여기서 당찬일은 예외다.
그렇지만 지금은 당쾌풍을 비롯한 교관 소년들을 밀어내고 당인에게만 속내를 털어놓는다.
자식을 키워 본 사람만이 가지는 공감 능력.
당쾌풍을 비롯한 교관 소년들은 진소운을 진심으로 위하고 아꼈지만 그가 겪은 아픔과 설움을 함께하기엔 경험이 너무 부족했다.
이는 당찬일도 마찬가지.
그러나 당인은 부인과 사별하고 당찬일을 키웠기에 아이들의 심리를 어느 누구보다 잘 알았으며, 이해했다.
‘대단해!’
‘과연 지부장님!’
당쾌풍과 당호민이 당인의 공감 능력에 진심으로 감탄하며 서로를 응시했다.
역시 아버지는 위대하다.
잠시 자신들의 부친을 떠올리던 당쾌풍과 당호민이 진소운의 술회를 들었다.
“그러니까 구류소의 무인 아저씨들이 주는 유과를 먹는데 뭔가가 번쩍하고 기억을 잃었다는 것이로구나?”
끄덕끄덕.
“쿵 하는 소리와 함께 눈을 떴더니 마음씨 좋은 무인 아저씨들이 모조리 죽어 있었고?”
끄덕끄덕.
“그것참…….”
당인이 턱을 쓰다듬는데 곁에서 지켜보던 당찬일이 슬그머니 끼어들었다.
“달빛 할아버지는 언제 오셨니?”
“달빛 할아버지?”
당인이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당찬일과 진소운을 번갈아 바라보았다.
“달빛 할아버지라니, 그게 무슨 소리냐?”
당인이 의아함을 표시하다 당찬일의 굳은 얼굴을 보고 말문을 닫았다.
당찬일이 저러는 데는 이유가 있을 터.
“달빛…… 할아버지?”
진소운이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당찬일을 응시했다.
이때.
“노래를 부르잖아.”
당찬일이 창밖을 보면서 중얼거렸다.
“달빛 할아버지는 핏물을 머금고서 노래를 부르잖아.”
눈을 동그랗게 뜨는 진소운을 곁눈질하면서 당찬일이 결정적인 한마디를 던졌다.
“그때처럼.”
쿵!
“으아아악!”
갑자기 제 머리를 쥐어뜯으면서 진소운이 발작했다.
“괜찮으냐!”
벌떡 일어선 당인이 사시나무처럼 몸을 떠는 진소운에게 다가서려 했다.
―잠깐만요!
눈짓으로 당인을 제지한 당찬일이 진소운을 직시했다.
“모씨상단에 갔던 날도 번쩍했지.”
“아아악!”
“그리고 쿵 하면서 깨어났어.”
“아악! 아아악!”
처절한 비명을 지르는 진소운이 딱해서 당쾌풍과 당호민이 못마땅한 표정을 지었다.
―뭔지 몰라도 그만해!
―이렇게 몰아붙이다가 애 잡겠다고!
하지만 당찬일은 물러서지 않았다. 그는 승기를 잡은 장수처럼 더욱 격렬하고 은밀하게 진소운을 압박했다.
“그때 달빛 할아버지가 나타났어.”
뚝!
순간 진소운이 발작을 멈췄다.
꿀꺽!
긴장한 당찬일이 부지불식간에 마른침을 삼켰다.
“이제 달빛 할아버지가 노래를 불러.”
뻐끔뻐끔.
당찬일의 말에 따라 진소운이 연못 속의 잉어처럼 입을 벌렸다.
“워…….”
진소운의 입에서 정체불명의 소리가 새어 나오기 시작하자 장내는 초긴장 상태가 되었다.
그렇지만 진소운의 음성은 옹알이 수준이라 뭐라고 하는지 알 길이 없었다.
파라락.
순간 당찬일이 달빛 아래 승무를 추는 비구니처럼 양팔을 벌렸다.
“노래를 불러.”
달빛을 머금은 당찬일이 살짝살짝 어깨를 흔들자 무엇에라도 홀린 사람처럼 진소운이 입을 열었다.
“…….”
‘뭐라고?!’
진소운이 읊은 시구 중에서 세 번째 구절에 집중하며 당찬일이 머리를 굴렸다.
‘이것이 여기서 나온다는 건가?’
당찬일의 눈동자가 회백색으로 물들어 갈 무렵, 마지막 시구까지 전부 읊은 진소운이 혼절했다.
“소운아! 소운아!”
다시 잠에 빠져든 진소운을 두고 병상을 벗어난 당찬일이 눈을 감았다.
“달빛 할아버지에 관해서는 누구에게 들었느냐?”
당인의 물음에 당찬일이 동성반점에서의 일을 설명했다.
“달빛 할아버지가 ‘또’ 노래를 부른다는 말을 했다고?”
“예. 그래서 모씨상단에서도 달빛 할아버지가 나타났을 거라고 짐작해서 소운이를 유도했어요.”
‘또’라는 한마디만으로 달빛 할아버지라는 존재가 혈겁의 현장에 최소 두 번 이상 출몰했을 거라고 짐작해서 진소운의 진술을 유도한 당찬일의 순발력은 놀라운 것이었다.
“일리가 있어. 훌륭한 추리였다.”
아들을 치하한 당인이 곧 눈살을 찌푸렸다.
“달빛 할아버지라, 대체 누구를 말하는 것일까?”
골똘히 생각하던 당인이 눈을 감았다.
진소운의 이야기를 있는 대로 받아들이면 참극의 현장이 경극의 무대로 변모한다. 그렇다고 비유적으로 접근하자면 의미가 지나치게 광범위해진다.
해석이 불가능할 정도로.
그렇다면 방법이 없다. 그나마 해석이 가능한 전자를 따를 수밖에.
“아이는 자신의 눈에 비친 그대로를 언급하니까 달빛 할아버지란 말 그대로 월광이 뚜렷한 밤에 모습을 드러낸 노인일 것이다.”
“월하노인(月下老人)이란 말씀이로군요.”
고개를 끄덕인 당찬일이 하나의 의문을 표시했다.
“월하노인이 공범일까요?”
“음?”
“월하노인은 혈해지사의 흉수들과 어떤 식으로든 관계가 있을 겁니다. 그러니 살해 현장에 관이나 무림맹보다 일찍 나타날 수 있었겠지요.”
“그것도 최소한 두 곳 이상에 모습을 드러냈지. 또한 그자가 흉수들의 일당일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 강호에는 기인이사(奇人異士)가 많으니까.”
“맞습니다. 매사록(賣事錄) 유희라는 작자는 무림의 모든 기록을 거래하는 걸 업으로 삼았기에 자신의 눈앞에서 사람이 죽어 가도 지필묵부터 들었다지요. 또 십여 년 전에 활동하다 홀연히 자취를 감추었다는 만박자(萬博子) 기사흔은 소위 말하는 ‘중립병’에 사로잡혀서 강호에서 벌어지는 여하한의 사건에도 관여하지 않는 걸 원칙으로…….”
진중한 표정으로 중얼거리던 당찬일이 곧 어색한 표정을 지었다.
네가 그런 걸 어찌 다 아느냐.
……하는 표정으로 당인이 자신을 바라보고 있었으니까.
“아하하, 얼마 전에 《무림기인록》을 너무 재미있게 봐서요.”
조금 전의 말을 대충 얼버무린 당찬일이 빠르게 말을 이었다.
“아무튼 월하노인이 혈해지사를 일으킨 자들과 공범이라면 그자들이 소운이를 의도적으로 살려 두었다는 가정이 성립됩니다.”
“월하노인이 소운이가 살아 있었다는 걸 목격했으니까?”
“예.”
공손하게 대답한 당찬일이 당인의 눈을 피하려 고개를 돌렸다.
파앗!
또다시 빛을 발하는 당찬일의 전각안!
전각안을 통해서 진소운의 진술을 시각화하며 당찬일이 모씨상단의 최후를 재현했다.
“소운이는 번쩍해서 기절했다가 쿵 해서 깨어났다고 했지요.”
잠시 숨을 고른 당찬일이 말을 이었다.
“번쩍했다는 건 시각적인 자극을 의미하고 쿵 했다는 건 물리적인 충격을 말하는 것이니 소운이는 혼절했다가 정신을 차리면서 ‘죽은 척’을 할 기회가 없었을 겁니다.”
당찬일의 예리한 분석에 당인이 절로 터져 나오는 감탄을 가까스로 틀어막았다.
대량 살인이 벌어진 현장에서 피를 묻히고 시체들 속에 몸을 숨기는 식의 임기응변을 진소운은 할 사이가 없었다는 당찬일의 분석은 설득력이 충분했다.
‘번쩍!’ 해서 기절했던 진소운은 ‘쿵!’ 하는 물리적인 충격 때문에 억지로 깨어났다는 말이니까.
그렇다면 흉수들이 진소운만을 살려 둔 이유가 무엇일까?
“첫 번째 가정은 소운이를 목격자, 또는 증언자로 활용했을 경우예요.”
당찬일이 잘라 말했다.
“흉수는 소운이의 이목을 빌어서 자신들의 행위를 알리려던 거지요. 거기다가…….”
말꼬리를 길게 끌던 당찬일이 짧게 숨을 내쉬었다.
“의미를 파악하기 어려운 시구까지 첨언해서 자신들의 의사를 전했다고 봐요.”
잠시 숨을 멈춘 당찬일이 눈동자를 아래로 모았다.
“물론 이 모두는 월하노인이 흉수와 한패라는 가정하에서의 추측이에요.”
“충분히 고려할 만한 추론이다.”
팔짱을 낀 당인이 심각한 표정으로 고심하다 문득 아들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월하노인이 흉수와 한패가 아니라면?”
“그렇다면 상황이 한층 복잡해져요.”
곧 마흔을 바라보는 아버지가 열다섯 아들에게 의견을 구하는 건 분명 상식적이지 않은 광경이다.
하지만 언제부터인가 당인은 당찬일을 열다섯 소년으로 대하지 않았다. 자신의 아들은 또래의 소년과 차원이 다른 지식과 경륜을 지니고 있었으니까.
“월하노인이 흉수와 한 패거리가 아니라면 그의 입장을 크게 두 갈래로 나누어 생각해 봐야겠지요.”
첫째는 월하노인이 앞서 언급한 기인이사들처럼 모든 사안을 돈벌이나 유흥으로 치부하는 괴짜였을 때.
“그런 경우라면 시구도 단순히 재미 차원에서 지었거나 혈겁의 상황을 건조하게 묘사한 결과물이겠지요.”
“음…….”
당인이 탄식했다.
누가 보더라도 월하노인이 읊은 시구에는 어마어마한 비밀이 감추어져 있으리라고 생각했을 터.
하지만 노인이 흉수와 한 패거리가 아니라면 시구도 아무런 의미 없는 넋두리에 불과할 수 있다.
“뭔가 기운이 빠지는구나.”
당인이 힘없이 뇌까렸지만 해결사 본연의 자세로 돌아간 당찬일은 지극히 냉정한 분석을 풀어내기에 여념이 없었다.
“둘째는 월하노인이 흉수들을 견제하는 경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