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angmun reincarnation RAW novel - Chapter 116
당문전생 (115)
원한다면
반사적으로 진소운을 감싸면서 제갈청청이 전음을 보내자 제갈진수가 황급히 눈짓했다.
―막아라!
―존명!
촤라락.
반사적으로 몸을 날린 제가세가의 무인들이 백발 청년을 빙 둘러쌌다.
“뉘시오?”
제갈세가의 무인들에게 원형으로 둘러싸인 백발의 청년이 우뚝 걸음을 멈췄다.
“무림맹에서 나오셨소?”
백발 청년에게 포권하며 질문을 던진 이는 무인들의 수장인 제갈군이었다.
본래 제갈세가는 무공보다 지략과 역리 등으로 유명세를 떨쳤다.
그러나 제갈군은 이러한 가문의 특성을 거스르고 가전무공인 삼십육마라선법(三十六魔羅扇法)을 극성으로 깨우친 진짜배기 무인이었다.
제갈청청의 사촌 오라비이기도 한 제갈군이 정중하게 물었지만 인영은 아무런 대꾸를 내놓지 않았다.
백발 청년이 아무런 답변을 내놓지 않자 포권을 푼 제갈군이 눈살을 찌푸렸다.
‘뭐지, 이 녀석?’
고개를 숙이고 있기에 얼굴을 볼 수는 없지만 백발 청년의 연령은 십 대 후반에서 많아야 이십 대 초반일 터.
나이에 어울리지 않는 백발이 거슬리지만 고수의 풍모 따위는 눈곱만큼도 찾아볼 수 없는데 묻는 말에 답변을 하지 않는 이유가 무엇일까?
‘믿는 구석이라도 있다는 거야, 뭐야?’
제갈군은 스스로를 뼛속까지 무인이라고 자부하는 사람이다. 무인은 언제, 어느 곳에서든 당당해야 하고, 거리낌이 없어야 한다고 믿었다.
그런 견지에서 백발 청년의 소극적인 태도가 눈에 거슬릴 수밖에 없었다.
“이보시오, 소형제.”
결국 제갈군이 백발 청년을 꾸짖었다.
“무림맹 소속이냐고 묻는데 어째서 대답을 하지 않는 거요?”
제갈군이 다그쳤지만 백발 청년은 침묵으로 일관했다.
“허어.”
난감해진 제갈군이 제갈진수에게로 시선을 이동했다.
―답변하지 않는 걸 보니 무림맹 소속으로 보이진 않습니다.
―음.
―이자를 어찌할까요?
제갈진수도 난처하긴 마찬가지라서 눈썹을 바짝 세웠다.
이곳 서안부는 무림맹이 민간의 치안 업무까지 대리해서 본맹(本盟)이 위치한 하남만큼이나 입김이 센 지역이다.
거기다 자신들은 무림맹의 순찰 무인 열여섯을 몽초산으로 무력화시키지 않았는가.
가뜩이나 무림맹의 눈치를 보는 제갈진수의 입장에서 백발 청년이 그들에게 엉뚱한 소리를 떠벌리면 영 곤란해질 터.
―만약을 대비해서 일단 저자의 인신을 구속해라.
―예.
제갈진수의 명을 들은 제갈군이 몸을 빙글 돌렸다.
그렇지만 명색이 정파를 대표하는 오대세가의 일원이라서 아무런 이유 없이 백발 청년에게 손을 쓸 수는 없는 노릇.
“여러 차례 질문을 던졌음에도 불구하고 소형제가 우리를 무시하니 방법이 없구려.”
……라는 말로 명분을 축적한 제갈군이 백발 청년의 좌우에 있던 무인들에게 눈짓했다.
―잡아.
텁!
두 명의 무인이 백발 청년의 양쪽 팔을 끼었다.
“좋게 좋게 말했지만 사람 말을 말 같지 않게 들으니 우리로서도 어쩔 수 없소. 이해…….”
우연일까?
순간 어디선가 한 줄기의 돌풍이 밀려와서 어여쁜 백발을 심금(心琴) 타듯 건드리고 지나간 것은.
바람결에 나부끼는 백발 사이로 드러난 청년의 입매가 상큼 치솟으며 기이한 호선(弧線)을 그린 것은.
그리고 터져 나온 청년의 한마디.
“사람?”
백발 청년이 양팔을 자신의 입꼬리만큼이나 기묘하게 비틀었다.
스르륵.
뱀이 허물을 벗듯 무인들의 손아귀에서 빠져나가는 백발 청년의 팔.
텁! 텁!
백발 청년이 자유로워진 양손을 쭉 뻗어 자신의 팔을 꼈던 무인들의 가슴을 짚었다.
“어?”
서로를 바라보던 두 명의 무인이 곧 풀썩 주저앉았다.
워낙 창졸간에 벌어진 일이라 제갈군도, 그를 따르는 이십여 무인들도 백발 청년이 자신들의 동료를 처리하는 동안 아무런 행동도 하지 못했다.
“크크크…….”
사이한 웃음이란 이런 것일까?
잔뜩 비틀린 미소를 지으며 백발 청년이 눈을 감은 채로 고개를 들었다.
한쪽 입꼬리가 귀에 걸렸음에도 불구하고 백발 청년의 용모는 너무나 아름다워서 입 모양의 부조화마저 전체적인 조화 속에 가두어 버렸다.
그리고…….
“컥!”
짚단처럼 쓰러진 두 무인이 새빨간 피를 토하자 넋을 놓고 있던 제갈군이 퍼뜩 정신을 차렸다.
“이, 이건!”
피뿐만이 아니었다!
무인들이 쏟아 낸 피에는 잘게 부서진 장기들도 포함되었기에 제갈군의 낯빛이 창백해졌다.
아무런 외상도 없이 적에게 타격을 주는 무학은 내가중수법밖에 없다.
상대방을 어루만지는 것만으로 내부 장기를 부술 정도라면 백발 청년의 내가중수법은 극상의 경지일 터.
아니, 그러한 내가중수법이 정말로 존재할까?
생각은 뒤로 미루고 제갈군이 백발 청년의 뒤편에 위치한 무인들에게 명했다.
“너희들은 가주님을 보호하라!”
그 말을 기다렸을까?
번쩍!
하늘에서 휘황찬란한 빛줄기가 떨어져 내리자 진소운의 목이 뒤로 젖혀졌다.
“얘! 얘!”
목을 뒤로 꺾고 혼절한 진소운을 안아 든 제갈청청이 다급하게 주변을 돌아보는 순간.
번쩍!
백발 청년이 감았던 눈을 뜨자 제갈군이 경악했다.
“저, 전백안!”
검은자위가 없는 눈동자. 아니, 검은자위마저도 하얘서 눈동자가 온통 옥진으로 뒤덮인 눈.
전각안과 더불어 강호삼대마안 중 하나로 알려진 전백안이 세상에 모습을 드러내자 제갈세가의 무인들이 두려움에 몸을 사시나무처럼 떨었다.
전각안이 헝클어진 실타래를 풀어내는 눈이라면 전백안은 헝클어진 실타래를 잘라 내는 눈이었으니까.
전자는 해결하려는 눈동자, 후자는 매듭지으려는 눈동자.
다시 말해서 전백안은 정리하는 눈이다.
모든 것을.
“크크크크.”
백발 청년이 손을 들었지만 제갈세가의 무인들은 고양이 앞의 쥐처럼 옴짝달싹하지 못했다.
스륵.
백발 청년이 아무렇지도 않게 손을 흔들자 그를 막아섰던 무인들이 털썩털썩 쓰러졌다.
“뒤로 빠져라!”
당황한 제갈군이 무인들에게 명하며 날아올랐다.
“타아앗!”
품에서 철로 만든 부채를 꺼낸 제갈군이 그것을 백발 청년에게 휘두르면서 뒤를 돌아보았다.
“너희들은 마라구궁영(魔羅九宮影)을 펴……!”
본래 제갈세가는 무학이 아니라 지력(知力)을 위주로 세를 불린 가문답게 진식에 일가견이 있다.
구류소를 찾은 세가원들은 무당의 최강 검진 가운데 하나인 구궁영을 변형한 마라구궁영을 익혔기에 제갈군은 그것으로 백발 청년을 상대하려 했다.
하지만 세가원들은 백발 청년의 기세를 감당하지 못하고 넋을 놔 버렸다.
“이런 요망한 자를 보았나! 썩 그 요사스러운 눈을 거두어라!”
분기탱천한 제갈군이 벼락처럼 외치며 달려들자 백발 청년이 그를 직시했다.
씨익.
또다시 백발 청년의 입가에 잔인한 사선이 아로새겨지자 위협을 느낀 제갈군이 허공에서 비룡번신의 수법으로 몸을 뒤집었다.
“마라이중(魔羅二衆)!”
제갈군이 철선으로 백발 청년의 좌우를 찔렀다……고 생각한 순간!
“마라일수(魔羅一手)!”
양쪽으로 나뉘었던 부채의 끝이 백발 청년의 정중앙을 향해서 활짝 펴졌다.
마치 자비로운 부처님의 손바닥처럼.
슥.
그러나 제갈군의 부채는 애먼 공기만 갈랐을 뿐이었다.
‘어떻게 이런 일이!’
분명 백발의 청년은 제갈군의 앞에, 더 정확히는 그가 휘두른 부채의 권역에 고스란히 노출되어 있었다.
하지만 제갈군의 손목엔 상대를 가격할 때 느껴지는 격타감이 조금도 전달되지 않았다.
“아아앗! 마라점멸(魔羅漸滅)! 마라투광(魔羅投光)! 마라삼혈(魔羅森血)!”
적이 다급하진 제갈군이 세 개의 절초를 거푸 펼쳤다.
쾅! 쾅! 쾅!
제갈군의 철선은 얄쌍한 생김새와 달리 삼관(三貫)이 넘는 무게를 자랑했다. 그래서 철선이 일으키는 파공성도 귀신이 울부짖는 소리에 버금갔다.
‘악귀 같은 녀석! 죽어라!’
정신 나간 사람처럼 철선을 휘두르던 제갈군이 뭔가 잘못되었다는 걸 느끼고 고개를 천천히 옆으로 틀었다.
그곳에는…….
스르륵.
“컥!”
스르륵.
“컥!”
백발 청년이 기계적으로 이동하며 얼음처럼 굳어 있는 동료들을 어루만지고 있지 않은가!
문제는 자신의 눈앞!
“너, 너는……!”
분명 자신의 면전에도 백발의 청년이 희미한 조소를 흘리고 있었기에 제갈군이 입을 떡 벌렸다.
‘그렇다면 이것은 악귀 놈의 잔상(殘像)이란 말인가!’
한 사람이 다른 지역을 동시에 점할 수는 없다.
신이 아닌 이상.
그러나 백발의 청년은 같은 시간에 두 곳, 아니, 서너 곳에서 모습을 드러냈다.
하면 백발 청년은 신이란 말인가!
“커헉!”
백발 청년을 둘러쌌던 마지막 세가원마저 피를 토하고 쓰러지자 숨이 턱 막힌 제갈군이 부채를 바들바들 떨었다.
“이, 이익!”
텁!
놀랍게도 백발의 청년은 손을 쭉 뻗어서 제갈군의 얼굴을 감싸 쥐었다.
“으으으!”
아무것도 할 수 없다!
진정한 공포 앞에서 무방비가 되어 버린 제갈군이 눈을 치떴다.
그것이 그가 할 수 있는 최선이었다.
“이 악귀! 오라버니를 놔줘!”
진소운을 뒤로 돌린 제갈청청이 울부짖었다.
스르륵.
소리치는 제갈청청에게로 고개를 돌린 백발 청년이 전백안을 빛냈다.
파앗!
두 눈동자에서 실과도 같은 하얀 기운을 뿜어내던 백발 청년이 턱을 치켜올렸다.
“원한다면.”
불컥불컥!
백발 청년이 입을 열자 제갈군의 혈관들이 마구 팽창하기 시작했다.
꾸물꾸물!
동맥이며 신경 그리고 근육까지.
전신의 모든 기관이 부풀어 올라 바람을 잔뜩 집어넣은 돼지 방광처럼 팽팽해진 제갈군의 몸이 어느 순간 확장을 멈췄다.
그리고…….
퍽!
수박처럼 산산이 터져 버린 제갈군의 몸.
후두둑.
조금 전까지 제갈군을 이루었던 육편들이 사방으로 비산하자 제갈청청이 눈을 부릅떴다.
“네, 네 이노옴!”
앙칼진 교갈을 내지른 제갈청청이 품에서 독문 무기를 찾는데, 피로 얼룩진 자신의 손을 내려다보던 백발의 청년이 지나가듯 중얼거렸다.
“찾았나?”
스르륵.
백발 청년이 유령처럼 다가오자 제갈진수 부녀를 보호하던 무인들이 칼을 빼 들었다.
파앗!
또다시 고양이 앞에 쥐의 신세가 되어 버린 무인들.
백발 청년은 쳐다보는 것만으로 무인들의 전의를 단숨에 꺾어 버렸음은 물론 그들의 행동까지 통제했다.
단지 이들을 응시하는 것만으로.
“아아아!”
무슨 일어 벌어지는지 짐작했지만 아무것도 할 수 없기에 제갈청청이 발만 동동 굴렀다.
너무 놀라거나 무서우면 입 밖으로 말을 토해 내지 못한다. 지금의 제갈청청이 그런 경우라서 그녀는 세가원들을 향해 안타까운 눈초리를 보내는 것이 전부였다.
실 같은 기운을 사방으로 흘리며 몸을 돌린 백발 청년이 이번에는 귀찮았는지 제갈세가의 무인들을 슬며시 스치고 지나갔다.
“컥!”
“컥!”
고목나무처럼 허무하게 쓰러지는 제갈세가의 무인들을 뒤로하고 제갈진수 부녀의 앞에 이른 백발 청년이 오른손을 들어 올렸다.
이때…….
“합(合)!”
바닥에 무언가를 열심히 새기던 제갈진수가 몸을 일으키며 돌을 내던졌다.
휘르릉!
수결을 맺은 제갈진수가 한 걸음 뒤로 물러서자 그의 앞으로 보랏빛 안개가 피어났다.
“이제는……!”
품에서 여덟 개의 마조(馬弔) 패를 꺼낸 제갈진수가 이 중 네 개를 동서남북으로 힘차게 뿌렸다.
“사상(四象)의 기운을 빌어 천지간의 빗장을 여나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