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angmun reincarnation RAW novel - Chapter 122
당문전생 (121)
지부 봉문!
당쾌풍의 구호에 맞추어 힘차게 수련하는 젊은 교관들을 보면서 당인이 물었다.
“이만하면 되겠느냐?”
“아직 하나가 남았어요.”
당찬일의 눈이 심유(深幽)하게 일렁였다.
“우리 서안 지부에 가장 시급한 처방이.”
지부 봉문!
통상적으로 봉문은 본파에서 선언하는 것이지, 지파나 지부가 고하는 경우는 없다.
그렇지만 당문 서안 지부는 봉문을 선언해 버렸다.
당연히 본가에선 난리가 났고 곧 외당당주 당진이 이끄는 진상조사단이 서안 지부로 파견되었다.
“오셨습니까, 형님!”
“그래.”
언제나 사람 좋은 웃음으로 타인을 대하던 당진이었는데 오늘만큼은 달랐다.
당인의 인사를 짧게 받아넘긴 당진이 뒤를 돌아보았다.
“이 순간부터 외부인은 누구라도 구금해라. 반항하면 가법에 따라 엄히 처벌하도록.”
“존명!”
본가에서 이끌고 온 사십여 명의 특찰부원들에게 엄명을 내린 당진이 당인과 당찬일의 안내를 받으며 내실로 들어섰다.
“이게 다 무슨 일이냐?”
의자에 앉자마자 당진이 곧바로 물었다.
“지부를 연지 고작 두 달 만에 봉문이라니, 이게 말이 된다고 생각하느냐?”
입으로는 두 사람을 타박했지만 당진의 표정은 전혀 다른 걸 이야기하고 있었다.
―무슨 일로 나를 불렀느냐?
그렇다!
본가에서 진상조사단을 파견한 것이 아니라 서안 지부에서 본가의 수뇌부를 청했던 거다.
―잠시만.
당인이 주변의 인기척을 확인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역시 특찰부. 인근 삼 장엔 간자는커녕 개미 새끼 하나 기웃거리지 않는다.
당인이 고개를 끄덕이자 당찬일이 입을 열었다.
“외당주님께선 혈해지사라는 사건을 아시는지요?”
“그 녀석 참, 숙부라니까.”
당진이 쓰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대충은 알고 있다. 서안부에서 정체불명의 흉수가 살인극을 벌인다지?”
“그런데 어째서 무림맹이 나서지 않는 걸까요?”
“무림맹이 나서지 않는다니? 서안 지부에서 조사 중인 걸로 아는데?”
찻잔을 입에 가져가던 당진이 오른쪽 눈을 실룩거렸다.
“가만? 나를 청한 것이 혈해지사 때문이었어?”
당진이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혈해지사는 끔찍한 참극이긴 하지만 가문의 수뇌부들이 전부 알아야 할 만큼 엄중한 사안은 아니었다.
“외부에서 건드리지 않으면 우리도 밖의 일에 참견하지 않는다는 가훈을 그사이에 잊은 건 아니겠지?”
“물론이에요.”
“비록 혈해지사는 참혹한 사건이지만 우리가 나설 문제가 아니란다. 이런 사건은 오지랖 넓은 무림맹에 맡기면 돼.”
당찬일의 어깨를 두드리며 당진이 빙긋 웃었다.
“그러니 안심하고…….”
“혈해지사는 외부의 일이 아닐지도 몰라요.”
“음?”
당찬일이 불쑥 이야기하자 당진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며칠 전에 천마왜를 만났습니다.”
쿵!
“그게 정말이냐?”
깜짝 놀란 당진이 저도 모르게 당인을 바라보았다.
―이게 다 무슨 소리냐? 천마왜라니?
―찬일이에게 직접 들으세요, 형님.
당인의 투화를 들은 당진이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차근차근 설명해 다오.”
당찬일이 구류소에서 천마왜와 격돌했던 건에 관해서 이야기하자 당진이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 아이가 정말로 천마왜였다는 것이냐?”
“문헌에 기록된 바를 따르자면 백발의 아이들은 천마왜가 맞을 거예요.”
“그 아이들이 제갈진수 부녀를 공격하려 들었고?”
“예.”
“네가 그들을 구했고?”
“어쩌다 보니 그렇게 되었어요.”
당찬일이 차분하게 답하자 당진이 미심쩍은 눈으로 그를 훑었다.
“비록 제갈세가가 무학보단 지력으로 성가(聲價)를 올리다 보니 제갈진수 가주의 무공이 오대세가의 다른 이들에 비해서 쳐지는 감이 있다고 들었다.”
당진의 눈이 전에 없이 예리하게 빛났다.
“그렇다고 해서 제갈진수 가주가 너에게 구함을 받았다는 사실은 믿기 힘들구나.”
아무리 제갈진수가 약하다손 치더라도 너보다는 강할 것이다.
“또한 천마왜는 마교주의 분신과 다름이 없거늘 네가 무슨 수로 그를 패퇴시켰단 말이냐?”
당진의 의구심은 지극히 당연했다.
그가 지켜본 당찬일은 나이에 걸맞지 않게 노련했으며, 사리 분별이 확실했다.
또한 기발한 구상을 불쑥불쑥 내놓아서 주변 사람들을 놀라게 했다.
그렇다. 그게 전부였다.
당찬일의 두뇌가 명석하다는 건 모르는 이가 없었지만 무공은 다르다.
아무리 노련하고 기발하다고 해서 마교주의 꼭두각시인 천마왜를 감당할 수는 없다!
기연을 얻었으면 모를까?
“기연이 있었어요.”
“뭐?”
속내를 들킨 것만 같아서 당진이 입을 떡 벌렸다. 그런 그를 담담한 시선으로 응시하며 당찬일이 품에서 작은 방울을 꺼냈다.
“탈혼령이어요.”
“무엇이라고?”
탁자에 놓인 방울을 집어 든 당진이 그것과 당찬일을 번갈아 바라보았다.
“아니, 이게……!”
“그리고.”
‘아직 놀라긴 이릅니다.’라는 듯 당찬일이 바닥에 놓인 꾸러미를 풀었다.
“이것은 《활인요람(活人要覽)》이라고 해요.”
“《활인요람》? 제목 한번 거창하구나.”
당진이 당호민과 똑같은 반응을 보이자 당찬일이 이전처럼 답했다.
“《만초요람》도 있었지요.”
“하하하. 만초…… 뭣?”
헛웃음을 흘리던 당진이 의자를 박차고 일어섰다.
“지금 분명히 《만초요람》이라고 했느냐?”
“들으신 대로요.”
팍!
빠르게 《활인요람》을 넘기던 당진이 곧 고개를 쳐들었다.
“이건 진본이야. 이 책은 당거정 삼조가 남기신 서적이 맞아. 그렇다면 탈혼령도 진품이란 소리가 아니겠는가!”
의자에 털썩 앉으며 당진이 머리를 짚었다.
“그래. 그러면 말이 되지. 이것이 탈혼령이라면 천마왜를 상대할 수 있지. 거기에 당거정 삼조의 구명절초까지 더해진다면 그것을 꺾진 못할지라도 물러서게 할 수는 있었을 거야.”
감회 어린 얼굴로 《활인요람》을 쓸어내리던 당진이 고개를 돌렸다.
“이런 비밀을 내게 털어놓는 이유를 알고 싶구나.”
당찬일이 얻은 물건은 강호인이라면 눈에 불을 켜고 찾아다닐 만큼 대단한 것이다. 그래서 천고의 비급은 부자간에도 공유하지 않는다.
그러나 당찬일의 답변은 단순명쾌했다.
“필요한 사람이 따로 있으니까요.”
당찬일이 씨익 웃자 당진이 어이없다는 듯 입을 벌렸다.
“뭐?”
“저는 약초학이나 의술에 그다지 소질이 없어요. 그러니 《만초요람》이 별무소용이지요. 《활인요람》도 혼자서 독식하는 것보다 많은 사람이 익힐수록 위력이 배가될 거예요.”
당찬일의 설명이 끝나자 당인이 무공서 하나를 내밀었다.
“형님, 이것…….”
“오늘따라 참으로 많은 서적을 구경하는구나.”
당인이 건넨 무공서를 찬찬히 훑던 당진이 곧 당찬일에게 시선을 던졌다.
“이 무학들은……!”
당인이 건넨 무공서에는 세 개의 수법과 세 개의 보법이 수록되어 있었다.
“이것으로 지부의 교관 아이들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당인이 설명하자 당진이 당찬일에게로 시선을 이동시켰다.
“비록 천고 제일의 수법이나 보법은 아니야. 그렇지만 그 하나하나가 매우 실용적이다. 그야말로 구명절초 중의 구명절초라고 할 수 있어. 그런데…….”
당진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이건 《활인요람》이지만 《활인요람》이 아닌데?”
수법은 《활인요람》에 수록된 구명절초를 공격형으로 둔갑시킨 형태였다. 뿐인가, 보법은 《활인요람》의 회피기에 다변(多變)을 가미했다.
“나무랄 데가 없군.”
진지하게 무공서를 살피던 당진이 지나가듯 물었다.
“전부 몇 명의 습격을 대비하는 게냐?”
역시 당진. 당찬일이 새로운 무공서로 젊은 교관들을 교육시키는 의도를 벌써 간파해 냈다.
“넷입니다.”
“네 명이라. 한꺼번에 네 명의 천마왜가 지부를 급습하는 경우를 가정했다니, 당시의 상황이 어땠기에?”
당찬일이 구류소에서 만났던 두 명의 천마왜를 묘사하자 당진이 눈을 감았다.
“그래서, 진소운이란 아이는 무림맹 서안 지부에서 보호 중이라는 거냐?”
“보호랄 것도 없어요. 가사 상태에 빠졌거든요.”
“편리하군. 그 사달이 났는데 혼자서 꿈결의 세계로 도피라니.”
당진이 헛웃음을 흘리자 당찬일이 다시 한 번 누군가를 떠올렸다.
―꿈결 속으로 가라앉아 버린 내 기억을 끌어올리는 데 도움을 주지 않겠습니까?
당찬일이 복잡미묘한 표정을 짓자 그를 주시하던 당진이 돌연 화제를 틀었다.
“두 명의 천마왜와 그런 식으로 조우했으니 언제가 될지 모를 그들의 기습에 대비하는 건 좋다. 봉문을 가장해서 수련 기간을 번 것도 이해할 수 있어.”
인상을 찡그리며 당진이 고개를 저었다.
“그 부분은 십분 이해하겠는데, 힘을 키우고 싶다면 본가로 철수해서 체계적으로 수련하는 편이 더 낫지 않겠느냐?”
“그건 아니지요.”
이번에는 당인이 나섰다.
“본가에서 지부 설립을 허락하면서 세 가지 원칙을 걸었잖습니까?”
“그랬지.”
“내용은 전부 다르지만 그것들의 공통점은 하나였지요.”
당인이 묵직한 어조로 말했다.
“홀로 서라!”
자신의 찻잔을 내려놓은 당인이 본가가 위치한 성도부를 향해 포권했다.
“도래하지도 않은 위협 때문에 피신하듯 본가로 돌아간다면 우리 당문은 뭇 군웅들의 비웃음을 살 겁니다.”
“하지만 그 아이들이 천마왜라면 이곳의 아이들로는 당할 수가 없어.”
“당문은…….”
당인이 잘라 말했다.
“무학만이 전부가 아니니까요.”
서안 지부 뒤편에 위치한 야산을 오르며 당진이 입을 열었다.
“당거정 삼조가 남기신 유급과 유물은 당분간 비밀로 하자꾸나. 서안 지부 아이들의 손에 비급이 익숙해지면 고하는 방향으로 가자.”
“고맙습니다, 외당주님.”
“외당주가 아니라 숙부래도.”
당찬일의 어깨를 툭툭 두드리며 너털웃음을 터트린 당진이 우연처럼 뒤를 돌아보았다.
“저곳이 용담호혈이라니.”
서안을 내려다보며 침음하던 당진이 돌연 바꾸었다.
“이제 모두의 이목을 따돌렸으니 나를 서안으로 부른 진정한 이유를 말해 보아라.”
당진이 구태여 야산에 오른 까닭은 당문 최강의 전무 조직인 특찰부의 눈과 귀를 피하기 위함이었다.
“숙부님도 특찰부를 신경 쓰시는군요.”
“물론이지. 특찰부는 당문 사람이라면 누구라도 경계하지 않을 도리가 없단다.”
잠시 숨을 들이켠 당진이 뜻밖의 이야기를 털어놨다.
“고인 물이라고 했다. 어떤 조직이든 오래 묵으면 설립 취지와 상관없이 스스로의 의지를 가지고 굴러가기 마련이거든. 조직 자체가 신념을 가지게 되는 거지.”
조직이 의지를 품으면 구성원이 조직을 이끄는 것이 아니라 조직이 구성원의 멱살을 잡아서 끌고 가는 경우가 발생한다.
“특찰부가 그런 형태란 말씀이로군요?”
“그렇지.”
곰 같은 동생에게서 어찌 저런 여우가 나왔을까, 하며 고개를 저은 당진이 평평한 돌을 찾아 궁둥이를 붙였다.
“내가 무엇을 해 줄까?”
당진이 고개를 돌려 자신을 바라보자 당찬일이 숨을 내쉬었다.
“지부 식구들이 무학을 익힐 시간을 벌기 위해서 임시방편으로 봉문을 택했지만 숙부님의 말씀처럼 좋은 선택은 아니었어요.”
“물론이다.”
“그래서 말인데…….”
뜸을 들이던 당찬일이 슬그머니 한마디를 던졌다.
“봉문은 봉문이지만 봉문 같지 않은 봉문을 택하면 어떨까요?”
“그게 무슨 말이냐?”
“봉문 상태니까 드러내 놓고 외부 활동은 못 하지만 살짝 돌려서 우리의 영향력을 키우는 거지요.”
“그것이 어찌 가능해?”
당찬일이 계속해서 엉뚱한 소리를 늘어놓자 당진이 팔짱을 꼈다.
당최 무슨 말인지.
“당거정 삼조께서 남기신 구명절초를 기초로 만든 무학서의 이름을 《삼수삼보(三手三步)》라고 칭했어요.”
“세 가지 수법과 세 가지 보법이라. 간결해서 좋구나. 그런데?”
“숙부님께서도 일독하셔서 아시겠지만 당거정 삼조님의 구명절초는 난이도가 있는 편이라서 한 번에 들어가기 힘들거든요. 해서…….”
“기초편과 심화편으로 나누었겠지?”
당진은 당찬일과 한 번 작업했기에 자신의의 숙질이 어떤 방식으로 일을 진행하는지 훤히 알고 있었다.
“예.”
“지부의 아이들은 언제부터 기초편을 익히기 시작했고?”
“대략 내일로 한 달째예요.”
“그럼 언제부터 심화편으로 들어갈 수 있겠느냐?”
“보름 정도 후면 가능하리라 생각해요. 원래 몸 쓰는 거라면 죽고 못 사는 이들이라서 배움이 남다르네요.”
“좋아. 그런데 《삼수삼보》를 가지고 무슨 수로 영향력을 키우겠다는 거냐?”
의아해하던 당진이 곧 어처구니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설마, 너…….”
“식구들이 심화편으로 진입하면 기초편을 풀어 버릴까 합니다. 우리 당문과 친소 관계가 있는 섬서성의 무가들과 광범위한 연합전선을 구축하는 거지요.”
쿵!
“천마왜를 대비하려는 목적으로?”
“대외적으로는요.”
고개를 끄덕인 당찬일이 부연 설명 했다.
“숙부님의 말씀처럼 《삼수삼보》는 천고 제일의 무학은 아니지만 매우 실용적이고 유용한 무공이라서 무가의 자제들이라면 반색을 하겠지요.”
“또한 네가 아는 몇 가지의 무학을 가미시켜서 문외불출의 가전 절기가 아니게 되었고?”
대답 없이 당찬일이 빙그레 웃자 당진이 심각한 표정으로 턱을 어루만졌다.
“《삼수삼보》는 구명절초로는 손색이 없는 무학이야. 또한 암기나 독을 철저하게 배제한 탓에 우리 당문의 색채가 거의 없어.”
숙고하던 당진이 희미하게 웃으면서 고개를 돌렸다.
“그럼 이렇게 하자꾸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