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angmun reincarnation RAW novel - Chapter 125
당문전생 (124)
전생의 마지막 임무
순간 작은 노파가 어처구니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걸 어째서 이녁한테 묻소?”
“그야…….”
잠시 말을 멈췄던 당찬일이 작은 노파를 바라보며 희미하게 웃었다.
“서안의 터줏대감은 누가 뭐래도 용파니까요.”
순간 파도처럼 밀려온 정적이 막다른 골목을 세차게 때렸다.
철썩!
쏴아아.
침묵의 포말이 방울방울 흩어지며 부서지자 그 자리를 메운 것은 귀에 익은 소리였다.
갸르릉― 갸르릉―.
검은 고양이의 기분 좋은 목울음이 막다른 골목을 차지하자 작은 노파가 고개를 숙였다.
“오늘은 참으로 신기한 날이야. 이 녀석이 이런 순간에도 갸르릉거리다니.”
검은 고양이의 목을 쓰다듬던 작은 노파가 금빛 비녀를 들어 보였다.
“이것은 누구에게서 얻었소?”
“용파께서 주신 사람에게서 얻었지요.”
“그는 공자가 태어나기도 전에 유명을 달리했는데?”
작은 노파의 송곳 같은 질문에도 당찬일은 여유를 잃지 않았다.
“강호에서는 반드시 면대면으로 주고받을 필요는 없지…….”
파박!
당찬일이 입을 여는 순간을 노려 작은 노파가 기습적으로 암기를 날렸다.
그녀가 날린 암기는 단 세 개.
하지만 그 하나하나가 무척이나 빠르고, 방위 또한 정확했다.
그러나 당찬일은 자신에게 날아드는 암기를 눈썹 하나 꿈틀거리지 않고 받아 냈다.
왜?
이 수법은 자신의 독문 절기와도 같으니까.
터텁!
“듣기로, 용파의 망향관석(望向觀石)은 방위나 각도는 나무랄 데 없지만 세기가 부족하다더군요.”
짤랑!
받아 든 암기를 허공으로 던졌다가 받으면서 당찬일이 덤덤하게 뇌까렸다.
“그런데 이렇게 대하니 그 전언은 잘못되었네요. 아주 훌륭한걸요?”
“이 늙은이의 망향관석(望向觀石)이 세기가 부족하다……. 허어, 참.”
언젠가 들었던 말을 곱씹던 용파가 고개를 모로 꼬면서 투덜거렸다.
“정말로 그의 유산을 이었다는 겐가?”
용파가 지나가듯 물었지만 당찬일은 아무런 답을 하지 않았다.
때론 침묵이 장광설보다 설득력을 지닌다.
그런 당찬일을 쳐다보지도 않고 무언가를 골똘히 생각하던 용파가 나지막이 한숨을 내쉬었다.
“그가 이승을 떠나면서 당문과는 더 이상 얽힐 일이 없다고 여겼거늘.”
노골적으로 귀찮다는 표정을 지으면서 용파가 몸을 돌렸다.
“따라오시구려.”
무림에는 수많은 변설자들과 이야기꾼들이 존재한다.
이들은 자신이 경험했던 수많은 일들뿐 아니라 건너 건너 전해 들은 다수의 이야기를 취합해서 다른 이들에게 들려주곤 한다.
하지만 변설자들과 이야기꾼이 떠드는 말들은 대부분 수박 겉핥기식의 소식일 수밖에 없다.
결국 변설자들이나 이야기꾼들은 무림에서 벌어지는 사건의 국외자들이니까.
그러나 기루에서 술 한 잔, 음식 한 접시로 타인의 무용담을 파는 변설자들과 달리 무림의 진짜배기 정보에 정통한 사람들이 있다.
무림팔자심(武林八资深).
일명 강호의 여덟 늙은이로 불리는 여덟 노인이 바로 그들인데 이들이 언제부터 무림의 대소사를 관찰하고 기록해 두었는지 아무도 모른다.
그중 서안을 중심으로 활동하는 노인이 골목길[埇]의 노파[婆], 용파였다.
용파가 건넨 차를 받아 든 당찬일이 눈을 감았다.
‘전보다 경비가 삼엄해졌군.’
아직도 자신을 겨누는 칼날이 여전해서 당찬일의 눈이 침전되었다.
‘그만큼 상황이 좋지 않다는 건가.’
유평월이었던 시절, 용파를 만나러 왔을 때는 경비가 이처럼 삼엄하지 않았다.
무림에서 최고급의 정보를 다루는 사람인지라 용파는 언제나 최고의 경호를 받았다.
그녀가 취급하는 정보는 너무도 예민해서 함부로 유출되면 그 여파는 걷잡을 수 없을 지경에 이르니까.
그러나 이 정도까진 아니었다.
제아무리 외부 방문객이 찾아와도 신원이 확실하다고 판명 나면 경비들이 긴장을 풀곤 했다.
하지만 당찬일은 여전히 막대한 압박을 느껴야만 했다.
대체 서안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는 걸까?
“들구려.”
용파가 쌀쌀맞은 표정으로 차를 권했다.
“당문 사람에게 독이 든 차를 권할 정도로 바보는 아니니까.”
이 말로써 당찬일의 정체를 훤히 꿰뚫고 있다는 걸 넌지시 알린 용파가 차갑게 물었다.
“마교의 꿍꿍이속이라고 하셨소?”
“그래요.”
“무슨 꿍꿍이?”
용파가 단답형으로 묻자 당찬일도 단답형으로 답했다.
“알잖아요.”
찻잔을 탁자에 내려놓은 당찬일이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그들이 무엇을 꾸미는지 저는 알 도리가 없지만 용파께선 알고 있잖아요.”
당찬일이 훅 들어오자 용파가 인상을 찡그렸다.
말재주도 좋다.
낯선 장소에서 여유를 잃지 않는 평정심과 자신이 처한 상황을 순식간에 판단하고 그에 맞춰서 행동하는 결단력도 놀라운데 능수능란한 언변(言辯)까지 갖추었다.
이런 녀석이 고작 열다섯이라고?
당찬일을 차디찬 눈초리로 주시하던 용파가 금비녀를 다탁에 내려놓았다.
“이것을 가져온 이는 이녁에게 무엇이든 물어볼 수 있지요.”
어린아이 어르듯 봉황 금비녀를 눈으로 훑던 용파가 곧 한숨을 내쉬었다.
“그렇지만 마교의 정세는 이녁도 뭐라고 할 수 없는 노릇이구려.”
“듣기로 용파의 뱃심은 무림맹주 백리무극도 두려워하지 않는다던데?”
“두려워서가 아니요.”
용파가 금비녀를 손바닥으로 ‘탕!’ 쳤다.
“가까스로 유지되는 조화를 이녁이 깨트릴까 저어해서라오.”
가까스로 유지되는 조화라면?
“이곳은 무림맹과 천사련이 가장 가까이서 어깨를 맞대고 있는 곳이요. 하지만 겉으로 드러난 무림맹과 달리 천사련의 실체는 알려지지 않았거든.”
용파가 눈동자를 아래로 모았다.
“거기다 이제는 잊힌 마교까지 서안에 발을 뻗었다는 소문마저 들리는 실정이라오.”
여기까지는 혈적인의 적무연이 알려 준 정보대로다.
“그렇기에 이곳은 화약고나 다름이 없지요.”
탁자에 놓인 금비녀를 다시 잡으며 용파가 고개를 도리도리 저었다.
“이런 살얼음판에 이녁까지 입방아를 찧는다면 불안하게 유지되던 균형이 무너지는 건 일도 아니라오.”
용파가 금비녀를 품 안에 갈무리하려는데 당찬일이 문득 입을 열었다.
“구봉금차(九鳳金釵)의 값어치가 그 정도였나요?”
쿵!
당찬일이 입술을 달싹거렸다.
“구봉금차의 가격이 고작 그 정도였다는 걸 알면 그가 슬퍼하겠는데요.”
내용은 완연한 비꼼이다.
그러나 어조가 고즈넉하다 보니 당찬일의 빈정거림은 기이한 울림이 되어서 좁은 방안을 수놓았다.
툭.
서늘한 시선으로 당찬일을 주시하던 용파가 품에서 목함을 꺼냈다.
목함은 직사각형의 형태라서 젓가락을 담아 두는 용기처럼 보였다.
딸깍!
용파가 목함을 열자 그곳에는 금빛 비녀들이 가지런히 꽂혀 있었다.
“이 녀석이 돌아왔으니 앞으로 하나만 더 회수하면 모두 모이는구나.”
용파가 아홉 번째 칸에 금비녀를 꽂자 당찬일이 비어 있는 여덟 번째 공간에 눈길을 던졌다.
“팔봉금차(八鳳金釵)가 아직 돌아오지 않았군요?”
그렇다. 용파의 목함에 담겨 있는 비녀들은 봉황이 하나 양각된 일봉금차부터 아홉 개가 새겨진 구봉금차까지 순서대로 놓여 있었다.
그중 비어 있는 부분은 봉황이 여덟 개가 양각되었을 팔봉금차의 자리였고.
“눈썰미가 좋구려.”
딸깍!
다시 목함을 닫은 용파가 그것을 한쪽으로 치웠다.
“이녁이 공자님에게 하나만 물읍시다.”
용파의 입이 가만히 열렸다.
“그의 마지막 임무가 무엇이었소?”
질문을 받은 당찬일의 눈매가 살짝 떨리자 용파가 추격이라도 하듯 재차 물었다.
“공자님에게 구봉금차를 넘긴 이가 마지막으로 수행했던 임무의 내용을 알고 싶구려.”
용파의 눈동자는 너무도 엄중해서 어떠한 격랑이 온다고 하더라도 절대 흔들리지 않을 것만 같았다.
그런 그녀를 물끄러미 응시하던 당찬일이 짧은 한숨을 내쉬었다.
“몰라요.”
쿵!
이게 무슨 말인가?
그렇다면 당찬일 본인도 전생의 자신이 마지막으로 행했던 임무를 기억하지 못한다는 건가?
그래서 아직까지 자신을 죽인 진범을 모르는 걸까?
당찬일의 무거운 답변을 들은 용파가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이녁이 공자님에게 요구 하나 합시다.”
용파가 입을 열기도 전에 당찬일이 곧바로 답했다.
“그의 마지막 임무가 무엇이었는지 알게 되면 가장 먼저 알려 드릴게요.”
당찬일이 상체를 용파에게로 기울였다.
“약속하지요.”
씨익.
악의 없는 당찬일의 웃음을 쌀쌀맞은 눈길로 관찰하듯 보던 용파가 고개를 모로 틀며 콧방귀를 날렸다.
“십삼 년 만에 깨어난 당문의 후예가 괴짜라더니.”
미야옹―.
용파의 무릎에 앉아 있던 검은 고양이가 길게 울음을 터트렸다.
“참으로 신기한 날이로군.”
검은 고양이의 턱을 쓰다듬으며 용파가 투덜거렸다.
“이 녀석이 오늘따라 치마에 바람 든 처녀처럼 왜 이러는 게야? 저 도깨비 같은 공자님과 너는 초면이라고.”
검은 고양이를 타박하던 용파가 단언하듯 중얼거렸다.
“저 공자님은 네가 그토록 기다리던 비천삼대장 유평월이 아니란 말이다.”
‘그는 더 이상 못 와.’라는 말을 용파가 뱉으려는데 검은 고양이가 벌떡 몸을 일으켰다.
캬악!
순간 검은 고양이가 날카로운 소리를 내며 풀쩍 뛰어올랐다.
그렇게 용파의 무릎에서 벗어난 검은 고양이가 당찬일의 발치로 와서 제 머리를 그의 정강이에 비볐다.
그르륵― 그르륵―.
제 머리를 당찬일의 정강이에 비비는 것으로도 모자랐는지 검은 고양이가 그의 다리 사이를 통과하며 꼬리를 발딱 세우자 용파가 어처구니없다는 듯 탄식을 터트렸다.
“당문 사람이라고 다 같지는 않은 것을.”
혀를 끌끌 차던 용파가 검은 고양이에게서 눈을 뗐다.
“맞소. 구봉금차의 가격이라면 이녁의 흉금을 전부 바쳐도 부족하지 않지. 한순간이나마 그에게 큰 실례를 범했군.”
입술을 우그러트리던 용파가 쌀쌀맞게 내뱉었다.
“피차 시간이 많지도 않으니 단도직입적으로 말씀드리지요.”
양손을 무릎 위에 얹은 용파가 짧고 간단하게 입을 열었다.
“정말로 이녁은 마교의 동태를 모르오. 마교에 대해서 십 전 어치의 관심도 없고. 대신 마교가 수상한 동향을 보이면 가장 먼저 공자님에게 알려 드리리다.”
잠시 숨을 멈췄던 용파가 덧붙였다.
“구봉금차에 맹세코.”
용파의 눈동자는 호수처럼 담담하고 한밤처럼 고요했다.
“그렇군요.”
당찬일이 순순히 고개를 끄덕이자 용파가 검은 고양이를 안으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이녁의 답변이 기대에 못 미쳤다면 사과하리다. 그럼.”
“잠깐만요.”
당찬일이 골목과 하나가 되려는 용파를 잡았다.
슥.
고개를 돌린 용파가 살포시 인상을 구겼다.
“십삼 년 만에 깨어난 당문의 후예는 비록 어디로 튈지 모르는 괴짜지만 성품 하나만큼은 담백하다고 들었거늘, 어찌 이리 질척거리시는고?”
용파가 투정 부리는 손자를 나무라듯 당찬일을 타박했다. 하지만 당찬일은 용파의 꾸지람을 대수롭지 않게 넘겼다.
“그런 게 아니라 부탁을 받아서요.”
품을 뒤지던 당찬일이 여기 있다, 하며 무언가를 꺼냈다.
“받으세요.”
당찬일이 작은 보자기 하나를 불쑥 내밀자 용파가 눈썹을 찡그렸다.
“뭐요?”
“구봉금차의 주인이 부탁한 거예요.”
구봉금차의 주인이란 말이 당찬일의 입에서 나오자 그를 빤히 쳐다보던 용파가 보자기를 낚아챘다.
“이건?”
“한빙탄(寒氷嘆)이에요.”
쿵!
한빙탄은 독이다. 그것도 당문에만 존재하는 천고의 극독이다.
하면 당찬일은 어째서 용파에게 극독을 건넨 것일까?
먹고 죽으라고?
“용파에게 이것이 꼭 필요하다더라고요.”
오래전, 용파는 정체불명의 인물에게 중독되었다. 가까스로 목숨을 건진 그녀는 독을 풀기 위해서 사방을 돌아다녔지만 해독할 방법을 찾지 못했다.
무림신의 이군생조차 임시변통으로 독의 발작을 억눌렀을 뿐, 그녀의 독을 완전히 몰아낼 수는 없었다.
“내가 당한 독은 극양의 열독(熱毒)이라서 극음의 한독(寒毒)으로 중화시키지 않으면 완전한 치료가 어렵다고 했지.”
하지만 그만한 한독을 찾기란 난망한 노릇이었다.
그때 유평월이 이야기했다.
―용파, 당문에는 한빙탄이란 천고의 한독이 있어요. 한빙탄은 당문의 직계들만 다룰 수 있는 가전비방(家傳秘方)의 극독이지만 기회가 닿는다면 반드시 가져다줄게요.
그 말을 끝으로 유평월은 더 이상 골목길을 출입할 수 없는 사람이 되었다.
“그렇게 십삼 년이란 세월이 흘렀는데, 그 녀석이 아니라 공자께서 오셨구려.”
보자기를 꼭 껴안은 용파가 모종의 결심을 한 듯 입술을 깨물었다.
“다시 말하지만 나는 정말로 마교의 동향을 몰라요. 하지만 그쪽에 관심이 유독 많은 인간을 알고 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