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angmun reincarnation RAW novel - Chapter 128
당문전생 (127)
당문은 정상적이었다, 너무나
조훈은 부친을 이해할 수 없었다.
“거긴 무엇 하러 가세요?”
“무엇 하러 가다니? 이렇게 좋은 기회를 날릴 수야 없지 않느냐?”
천천히 말을 몰며 조훈의 부친인 조항탁이 고개를 주억거렸다.
“바늘로 찔러도 피 한 방울 나오지 않는다는 당문에서 이런 친절을 베풀 줄이야. 이건 기사(奇事) 중에서 기사다.”
다각다각―.
“바로 그거예요! 당문은 아버지 말씀처럼 큰 바늘로 쑤셔도 피 한 방울 나오지 않는 짠돌이들이라고요! 그런 인간들이 갑자기 이러는 게 이상하지 않으세요?”
조훈의 지적은 제법 날카로운 것이라서 조항탁이 순간 말문을 닫았다.
‘그 점은 나도 이상하게 생각해.’
하지만 자신의 의구심을 이야기했다간 투덜이 아들 녀석이 당장 말 머리를 돌리자고 성화를 부릴 것이기에 조항탁이 딴청을 부렸다.
“벌써 공기가 차구나. 올해도 끝물 같다.”
“아직 십이월도 안 됐는데 무슨 끝물 타령이세요? 그리고 당문 말이에요.”
아, 시끄러.
아들 녀석이 끈질긴 성격이라는 건 익히 알았지만 이 정도로 찰거머리일 줄이야.
“분명 뭔가 있다니까요!”
그건 나도 동의해.
“보나 마나 이건 덫이라고요, 덫!”
글쎄다.
조훈이 계속해서 경계심을 드러내자 조항탁이 말을 멈췄다.
“훈아.”
조항탁이 묵직한 음성으로 입을 열었다.
“우리 비조문(飛鳥門)은 섬서에서 제법 유명한 무관이지만 딱 그 정도의 문파다. 알아듣겠느냐? 섬서성에서‘만’ 유명한 문파란 말이야.”
비조문은 섬서성에서 조법으로 성가(聲價)를 올리는 문파다. 문주 조항탁의 비류조법은 무림을 떨쳐 울리는 정도까진 아니지만 능히 섬서 일절 소리는 듣는다.
“그런 우리 문파에 천하제일가에서 손을 뻗었으니 어찌 응하지 않겠느냐?”
“당문은 우리 문파만 초대하지 않았잖습니까?”
그건 사실이다. 당문은 섬서 지방의 열세 개 무가를 서안 지부로 불렀다.
“그들의 제안은 분명 매력적입니다. 무림의 으뜸 가문에서 자신들의 무학을 공유하자고 한다면 어느 누가 마다하겠습니까?”
조훈의 눈이 날카롭게 빛났다.
“하지만 그들의 저의를 생각하셔야지요. 당문의 현임 가주인 당과로는 손해 보는 행동을 일절 하지 않는다고 정평이 나 있습니다.”
그건 인정.
“또한 당문에서 문외불출의 비기를 전수할 리도 없지요.”
그 또한 인정.
“결정적으로 우리 문파만 불렀으면 모르지만 섬서의 열세 개 군소 방파를 초정했으니 그들이 쓸 만한 무학을 내놓을 리가 있겠어요?”
순간 조항탁의 기분이 매우 좋아졌다.
‘이 녀석이 언제 이리 컸지?’
조훈은 소싯적에 말썽꾸러기였다.
알량한 가문의 위세를 믿고 사고란 사고는 모조리 치고 다녔다.
그러던 조훈이 정신을 차린 건 불과 삼 년 전이었다.
삼 년 전, 무슨 일을 겪었는지 몰라도 조훈은 건달패 친구들과의 관계를 싹 정리하고 가문의 무학에 매달렸다.
‘그저 몸만 키우나 싶었는데 이제 보니 세상을 보는 눈도 밝혔구나.’
조항탁이 굳은 표정을 풀자 자신의 말이 먹힌다고 판단한 조훈이 첨언했다.
“무엇보다 우리 비조문을 화산파가 좋게 보고 있잖아요.”
무림의 맹주가 무림맹이라면 섬서성의 맹주는 누가 뭐라고 해도 화산파다.
또한 화산파는 구파일방 중에서 소림과 무당과 더불어 가장 강한 세 개의 문파가 아닌가.
실질적인 정파삼지존(正派三至尊) 가운데 하나가 화산파란 소리다.
“화산파에서 우리에게 호의적으로 나오는 시점인데 굳이 당문과 불필요한 교류를 할 필요가 있을까 싶어요.”
조훈의 정세 분석은 매우 정확했다.
비조문이 섬서성에서 힘을 키우려면 화산파의 지원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마침 화산파가 좋은 관계를 맺으려고 하는 판국에 정사 중간이란 평가를 받는 당문과 어울리는 것이 과연 비조문에 이득일까?
‘하나만 알고 둘은 모르는구나.’
조항탁이 쓰게 웃었다.
화산파가 비조문에 호의적으로 나오는 건 사실이지만 그들과 필요 이상으로 가까이 지낼 필요는 없다.
“너는 평생토록 화산의 그늘 아래 지내고 싶으냐?”
“그게 무슨 말씀이신…….”
“화산처럼 초거대 문파의 도움을 받는다면 그 순간은 좋겠지만 그들의 입김이 작용하는 순간부터 우리 비조문의 정체성은 사라진다.”
“그건…… 그렇겠지요.”
“조법의 기본이 무엇이더냐? 다른 수법(手法)에 비해서 격정적이기 때문에 다소 독랄하다고 평가받지 않느냐?”
조법은 손톱으로 상대방의 약점을 찌르거나 꿰뚫는 형식이라서 여타의 권각술에 비해 잔인한 감이 없지 않다.
“우리 비조문에 도가의 색깔이 덧씌워진다면 비류조법이 어떤 형태로 바뀌겠느냐?”
잠시 침음하던 조훈이 무겁게 답했다.
“독랄함이 지워지겠지요.”
“그들은 우리의 발톱을 뽑으려 들 것이다.”
조훈을 응시하며 조항탁이 충격적인 진단을 내놓았다.
“발톱이 없는 매는 사냥을 하지 못한다.”
쿵!
“화산파의 입장에선 우리가 비조문이란 사실이 중요하지 않았을 것이다. 섬서성에서 활동하는 일정 규모 이상의 문파면 족했을 테지.”
그건 사실이다.
화산파는 섬서성을 기반으로 하는 군소 방파를 도우면서 그들에게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한다.
그렇게 하나둘 넘어간 군소 방파의 수는 물경 삼십여 개를 헤아린다.
“사실 화산이 내미는 도움의 손길은 좀처럼 뿌리치기 힘들다. 외적으로는 권유지만 내적으로는 강제적이니까.”
억지로 도움을 받게끔 만들고 자신들의 입김을 불어넣는 방식.
서민을 울리는 고리대금업자들의 수법과 일맥상통한다.
“그렇다면 당문도 같은 이치로 우리에게 손을 뻗지 않았겠습니까?”
조훈이 반발하자 조항탁이 피식 웃었다.
“외견상으로는 비슷해 보이지만 둘은 완전히 다르다.”
“화산파나 당문이나 거대 무가라는 사실은 매한가지인데 무엇이 다릅니까?”
“화산이 근거지를 어디에 두었느냐?”
“그야 이곳이지요.”
“당문은?”
“사천성 성도부입니다. 하지만 근거지가 다르다고 해서 둘의 꿍꿍이속마저 다르다는 보장은 없습니다.”
“아니지. 근거지는 두 문파의 속내가 완전히 갈리는 이유가 된다.”
조항탁이 수통을 꺼내 물을 마셨다.
“화산파는 창건 이래 한눈을 팔지 않고 섬서 땅을 굳건히 지켰다. 반면 당문은 지부를 설립하겠다며 육백 년 만에 성도부를 벗어났지.”
조항탁이 길게 설명하자 잠시 숙고하던 조훈이 고개를 저었다.
“그것과 속내가 무슨 상관인지…….”
“수성(守城)하려면 내부의 민심부터 단속해야 하고, 성 밖으로 진군하려면 외부의 조력이 필수다.”
조훈에게 수통을 건넨 조항탁이 부연 설명 했다.
“화산파는 도문이면서 지역의 패자라는 양면성을 지닌 문파다. 하여 그들은 겉으로는 속사(俗事)에 초연한 척하지만 실질적으로 섬서 땅을 지배한다.”
“섬서의 지배자…….”
“물론 그들은 속인(俗人)이 아니라서 드러내 놓고 섬서를 통제할 수 없기에 우리 같은 군소 방파를 통해서 자신들의 영향력을 행사한다.”
“아…….”
“하지만 당문은 다르지. 그들은 화산파와 달리 우리를 지배할 이유가 없다. 당문이란 거조(巨鳥)는 그저 성도부라는 둥지가 갑갑했을 뿐이다.”
단어 선택에서부터 당문에 대한 호의를 가감 없이 드러내며 조항탁이 길게 설명하자 조훈이 고개를 옆으로 돌렸다.
“당문낭군께서 그리 말씀하셨습니까?”
“뭐, 그렇지.”
“그분께서 무학을 공유하겠노라고 선언하셨고요?”
“그래.”
아들을 바라보며 조항탁이 못을 박았다.
“이제 우리가 왜 당문의 제안을 받아들여야 하는지 알겠느냐?”
“예…….”
조훈이 입으로는 수긍을 했지만 여전히 납득 못 하는 기색이라서 조항탁이 고개를 저었다.
선입견이다.
화산파라고 하면 때깔이 좋고, 당문이라고 하면 어딘지 모르게 우중충한 건 사실이다.
한 자루 검을 비껴 차고 구름을 벗 삼아 무도를 닦는 도인!
그림 나오지 않는가!
반면 당문이라고 하면?
멀리서 치사하게 암기나 찍찍 뿌려 대고 붙으면 냅다 초록색 독병을 투척하는 간사한 인물부터 떠오른다.
이 모두가 잘못된 정보로 만들어진 오해인 것을.
‘화산은 그렇게 고고하지 않아! 당문도 그렇게 비겁하지 않고!’
아들을 향해 버럭 고함이라도 지르고 싶었지만 꾹 눌러 참은 조항탁이 말고삐를 쥐었다.
“됐다. 백만 번을 이야기해야 와닿지 않겠지. 일단 당문 서안 지부로 가자꾸나.”
‘이럴 수가!’
선입견이 박살 난다!
당문 서안 지부로 발을 들이는 순간부터 평소에 자신이 그렸던 그림들이 와장창 깨져 나가서 조훈이 숨을 들이켜야만 했다.
“우리는 비조문의 조항탁 부자라고 하네.”
“조 대협을 환영합니다.”
정중히 포권하는 소년을 보라!
우중충한 텁석부리가 맞이할 거란 예상을 보기 좋게 깨트려 버리지 않는가!
“저는 당문의 당호민이라고 해요.”
당호민이 인사하자 조훈이 주춤 뒤로 물러섰다.
‘나, 남장 여자 아냐?’
아니다.
귀엽고 예쁘지만 당호민은 완벽한 사내다.
티 없이 맑은 웃음으로 조항탁 부자를 맞이한 당호민이 이들을 연무장으로 안내했다.
“준비를 많이 했구먼.”
또한 손님맞이를 보라!
연무장엔 거대한 차양막과 정갈한 다탁 그리고 의자가 마련되어 있었다.
다탁에는 따뜻한 차와 다기가 준비되어 있었고.
너무나 정상적이지 않은가!
‘그럴 리 없어.’
조훈이 어금니를 깨물었다.
‘상다리가 부러질 정도로 뻑적지근하게 차려진 술상을 찾아야 해!’
주변을 돌아보는 조훈의 눈은 매의 그것처럼 빛났다.
무공을 공유하긴 개뿔.
당문은 무학 교류라는 허울 좋은 명분을 앞세우고, 뒤로는 섬서 무림의 환심을 사려는 수작일 것이다!
술과 여자라는 고리타분한 방식으로!
‘사파에 가까운 인간들이 벌이는 짓거리가 그렇지, 뭐!’
하지만 어디에서도 주안상을 찾을 수 없어서 조훈이 당황했다.
‘술상을 아직 보지 않았나? 좋아, 그렇다면 요사스러운 여인!’
이번에는 색기(色氣)를 민들레 홀씨처럼 날리는 요희(妖姬)들을 찾으려고 조훈이 고개를 마구 돌렸다.
“왜 그러느냐?”
조항탁이 묻자 조훈이 속삭였다.
“당문 같은 정사 중간의 비열한 무가라면 화려한 주안상과 아름다운 여인들을…….”
“없어요.”
조훈 부자를 안내하던 당호민이 딱 잘랐다.
“우리 당문 서안 지부에서는 손님들께 간소한 다과(茶菓) 이외의 어떠한 음식도 제공하지 않아요.”
찔끔!
속내를 들킨 조훈이 고개를 뒤로 젖혔다.
아따, 귀도 밝지.
“그리고 지부에 여인은 있지만 그다지 아름답지는 않네요.”
당호민이 야무지게 못 박았지만 조훈은 그의 말을 받아들이지 못했다.
‘이럴 리가 없는데!’
본래 잘못된 선입견일수록 틀렸다는 걸 인정하기 힘들다.
자신의 그릇된 고정관념이 박살 나서 당황한 조훈과 달리 조항탁은 적이 만족했다.
십일월이라서 볕이 뜨겁지는 않았지만 눈이 부실 정도는 되는지라 차양막으로 손님들의 눈을 보호하는 당문의 배려는 칭찬받아 마땅했으니까.
“이런 기회를 제공하신 당문낭군도 뵙고 싶었는데, 참으로 아쉽구먼.”
당진은 서안 지부의 식구들이 《삼수삼보》의 기초편을 떼자 당인에게 지부를 맡기고 본가로 돌아갔다.
조항탁이 아쉬움을 표하는데 서안 지부로 일군의 사람들이 들어섰다.
“조 동생, 일찍 왔구먼!”
“강 형님! 이제 오셨소이까?”
쾌도방(快刀幇)의 강만호가 인사하자 조항탁이 그를 반갑게 맞이했다.
“강 숙! 반갑습니다!”
“너도 오랜만이다.”
조훈의 인사를 받으며 강만호가 넉넉한 웃음을 지었다.
뒤이어 섬서성에 적을 둔 군소 방파의 문주들이 속속 도착했다. 물론 이들 모두는 당진이 불렀다.
“조 형도 당문낭군의 제안을 받아들인 거요?”
“뭐, 그렇지요. 민 아우도 그런가?”
조훈의 질문을 받은 묵검파(墨劍派)의 민종구가 묵직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입니다, 형님.”
대답하는 민종구의 뒤로 십칠 세가량의 소녀가 예쁘장한 미소를 지었다.
“민여정이 조 숙부님을 뵈어요.”
“오오, 여정아, 먼 길 오느라 수고 많았다.”
조항탁이 민여정에게 덕담을 늘어놓자 그의 옆에 있던 조훈이 어색한 웃음을 지었다.
“미, 민 누이, 오랜만…….”
쌩―.
조훈의 인사를 야멸차게 씹어 먹은 민여정이 민종구를 따라 사라졌다.
추욱.
어깨를 늘어트린 조훈이 탄식했다.
‘민 누이는 그때의 일을 아직까지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