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angmun reincarnation RAW novel - Chapter 132
당문전생 (131)
바지라도 내릴래요?
“꾸에엑!”
돼지 멱따는 소리를 지르며 매국동이 무릎을 꿇자 사람들이 서로를 보며 입을 떡 벌렸다.
지금 당찬일은 조금 전의 불미스러운 상황을 고스란히 재현해 냈다!
당찬일이 매국동의 방약무인한 짓거리를 그대로 되돌려 주었기에 피해자였던 조훈의 가슴에 뜨거운 무엇이 솟구쳐 올랐다.
불끈!
호기가 치밀어서 주먹을 쥐는 조훈과 달리 매국동의 싸가지 밥 말아 먹은 행동을 못 본 척했던 군웅들이 서로서로 눈을 피했다.
나만 아니면 된다는 생각으로 매국동의 방자한 행동을 외면했던 자신들의 비겁함이 부끄러웠기에.
‘당찬일!’
조훈이 당찬일이란 이름 석 자를 가슴에 새기는데 동생의 비참한 태도를 보고 매국은이 발끈해서 소리쳤다.
“이건 좀 심한 거 아니오?”
“음?”
매국동에게 다가서던 당찬일이 고개를 돌렸다.
“비록 우리 형제에게 초대장이 없다지만, 사해가 동도라는데 당문 같은 일류 가문이 이런 식으로 군소 방파를 업신여겨도 되는 거요?”
갑자기 약자 시늉.
조금 전까지만 해도 섬서 제일의 무관처럼 행동하더니, 동생이 얻어터지니까 군소 방파란다.
물론 창룡무관은 모든 면에서 당문에 비할 바가 아니다.
그러나 먼저 결례를 범한 쪽은 창룡무관이 아닌가?
군웅들이 질책 어린 눈빛을 던졌지만 매국은은 뻔뻔하게도 낯빛 하나 바꾸지 않고 따졌다.
“무림 동도끼리 서로 보듬어야지, 힘이 좀 세다고 약자를 이런 식으로 망신 줘서야 되겠냔 말입니다.”
적반하장의 진수를 보이며 매국은이 고개를 저었다.
“이건 아니지요. 이건 아니고말고요.”
“뭐가 아닌데요?”
당찬일이 입가에 잔잔한 미소를 머금었다.
그것은 조소, 혹은 야유.
“무인끼리 공정하게 무학을 견주었고, 귀하의 동생은 패했어요. 여기에 무엇이 더 끼어들어야 하나요?”
“당신들은 당문이잖소!”
이렇게 되면 우기기다.
“천하제일가의 적손을 우리 같은 군소 방파의 제자가 당해 내지 못함은 당연한 노릇! 그래 놓고 뭐가 아니냐니! 너무하지 않소!”
조금 전까지만 해도 화산파의 위세와 알량한 검초 몇 개로 난장을 부리던 자들답지 않게 앓는 소리를 내는 매국은 형제의 행태는 비난받아 마땅했다.
그러나 군웅들은 여전히 침묵했다.
패배주의란 이런 것이다.
한번 잠식당하면 좀처럼 빠져나오기 어려운 늪.
그것이 패배주의다.
“길가는 사람들 붙잡고 물어봅시다! 이번 비무가 공정했는지! 백이면 백 모두 말도 안 된다고 할 거요!”
매국은이 막무가내로 나서자 당찬일이 손뼉을 한 번 쳤다.
“아하, 선수가 문제였다?”
“뭐요?”
형제라서 말투도 닮는 것일까?
매국은이 고리눈을 뜨자 그의 인상은 몹시 더러워졌지만 당찬일에겐 하품 나오는 순간이었다.
인상으로 먹어 주는 시대는 갔다.
예전에.
“그럼 이렇게 하지요.”
당찬일이 눈동자를 반짝 빛냈다.
“우리 쪽의 선수를 교체하겠어요.”
“그래 봐야 무슨 소용이겠나!”
매국은이 양손을 들면서 콧김을 뿜었다.
“어전호위가 아니더라도 당문 사람이라면 저 무학을 닳도록 익혔을 텐데!”
“아……. 그게 문제였구나.”
‘당연히 그게 문제지!’ 하는 표정을 지으며 매국은이 입술을 실룩거렸다.
조금 전의 초식이 뭔지는 몰라도 이십사수매화검법의 초반 여덟 초식을 익힌 자신의 동생이 힘 한번 써 보지 못하고 작살 났다.
그런데 또다시 망신을 당하라고?
절대 안 된다.
이때 당찬일이 뜻밖의 반응을 내놨다.
“당문 사람이 아니라면 되겠네요?”
이건 또 무슨 소리야?
기습당한 매국은이 눈을 금붕어가 입 벌리듯 끔뻑거렸다.
당문 사람이 아닌 선수라면?
“조 공자.”
당찬일이 빙글 몸을 돌렸다.
“나, 나 말씀이시오?”
“여기 조 공자 말고 다른 분이 어디 있어요?”
“그건 그렇지만……!”
“우리 쪽은 조훈 공자로 선수를 교체할게요.”
“아, 아니, 나는……!”
내 의견도 물어봐 달라고!
조훈의 눈동자가 파도처럼 출렁거렸지만 당찬일에겐 고려 대상이 아니었다.
“창룡무관은 어떡하시겠어요?”
당찬일이 매국은에게 묻자 조훈이 다급하게 그를 불렀다.
“이보시오, 어전호위…… 아니, 당 공자!”
서둘러 당찬일에게 다가선 조훈이 항의했다.
“왜 멋대로 결정하는 거요? 나도 의향이란 것이 있다고!”
조훈의 눈망울에는 당찬일에 대한 분노와 누군가에 대한 두려움이 혼재되어 있었다.
참으로 혼란한 눈빛.
조훈이 따지고 들어오자 그를 멀뚱히 쳐다보던 당찬일이 불쑥 물었다.
“그럼 안 할 거예요?”
“……!”
“하기 싫으면 말든가요.”
당찬일이 순순히 물러서자 조훈의 눈에 또 다른 혼란이 끼어들었다.
이때…….
“조훈이가 상대라고?”
빌빌거리던 매국동이 조훈이란 이름이 나오자마자 용수철처럼 튀어 올랐다.
“조훈이가 상대라면 무조건 나지!”
“훈아!”
“저 얼간이라면 제가 놀아 줘야 맞지요! 삼 년 전엔 바지는 남겨 주었지만 오늘은 그마저도 싹 벗겨 주마!”
망나니처럼 살던 조훈이 삼 년 전부터 개과천선했던 이유.
그것은 매국동에게 씻을 수 없는 치욕을 당했기 때문이다.
“오늘 아주 개망신을 당해 봐라.”
매국동이 씹어뱉듯 중얼거리자 조훈의 낯빛이 처절하게 썩어 들어갔다.
그리고 떠오르는 아스라한 기억.
―민 누이! 정말로 섬서이룡(陝西二龍)인지 섬서이인(陝西二蚓)인지 하는 자들에게 봉변을 당했어?
―신경 쓰지 말아요. 원래 창룡무관 사람들은 예의라는 것과 담을 쌓고 지내니까요.
―어찌 민 누이의 일에 내가 손 놓고 있을까?
―관둬요. 지금 조 가가의 실력으로는 매씨 형제를 어쩔 수 없다고요.
말리는 민여정을 무시하고 조훈이 기세 좋게 창룡무관의 문을 두드렸다.
일각 후…….
조훈은 바지 바람으로 쫓겨나야만 했다.
당시를 회고하던 조훈이 부끄러움을 이기지 못하고 저도 모르게 어깨를 부르르 떨었다.
‘됐어. 수모는 삼 년 전으로도 충분해.’
결심을 굳힌 조훈이 당찬일을 외면했다.
“미안하오. 오늘은 몸 상태가 별로라서.”
조훈이 거절했지만 당찬일은 그러시든가, 하는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뭐야, 이대로 튀는 거냐? 부끄럽지도 않냐?”
매국동이 혓바닥을 길게 잡아 뺐다.
“하긴, 그날은 민 누이가 눈물로 호소해서 바지는 남겨 줬지만 오늘은 인정사정 봐주지 않으려 했으니까.”
경멸 어린 시선으로 조훈을 곁눈질하며 매국동이 늘어지게 하품했다.
“순간의 쪽팔림으로 평생을 망칠 수는 없겠지, 암.”
매국동의 조소는 인간이라면 감당할 수 없을 정도였지만 조훈은 무던히도 참았다.
우연일까, 당찬일에게 자신의 의사를 전달하고 돌아서는 조훈의 망막에 민여정의 초상이 맺힌 것은?
―전 괜찮아요.
민여정은 아무런 말을 하지 않았다. 전음을 보내지도 않았다. 하지만 그녀의 음성이 가슴으로 전달되었기에 조훈이 입술을 깨물었다.
―제가 저들에게 무릎 한 번 꿇어서 조 가가가 정신을 차렸으니 그걸로 만족해요.
‘민 누이.’
―아직 힘이 부치면 도망가세요. 때가 아니라고 판단한다면 저들에게 절대로 맞서지 마세요.
민여정의 눈에 어떤 ‘확신’이 어렸다.
―그렇지만 삼 년 전의 두려움 때문이라면 떨치고 일어나세요.
순간 민여정의 입술이 움직였다.
―당, 당, 히.
쿵!
“하겠소!”
왈칵 몸을 돌린 조훈이 당찬일에게 포권했다.
“비조문의 조훈이 당문의 당찬일 공자에게 지도를 청하오!”
착각일까, 납덩이처럼 굳었던 민여정의 얼굴이 봄 햇살에 녹아내리는 고드름처럼 풀어지는 것은?
“히야! 갑자기 저 얼간이가 왜 저런대?”
머리를 벅벅 긁으며 매국동이 매국은을 응시했다.
“그러게 말이다.”
매국은도 어이없기는 마찬가지라서 팔짱을 꼈다.
삼 년 전, 창룡무관에서 조헌을 상대했던 건 매국동이었다. 하지만 매국은도 동석했었기에 조헌의 실력을 알 수 있었다.
‘거기다 비조문의 무학으로는 백날 천날을 수련해 봐야 우리 창룡무관의 발끝도 따르지 못할 텐데?’
돌아가는 상황을 이해할 수 없어서 고개를 갸웃거리던 매국은이 당찬일과 눈이 마주쳤다.
매국은을 바라보며 당찬일은 그저 웃었다.
씨익―.
단지 미소 지었을 뿐인데도 한기가 밀려와서 매국은이 주춤 뒤로 물러섰다.
“왜 그러세요, 형님?”
“아, 아니다.”
당찬일이 발산하는 무형의 기세에 움츠러들었던 자신이 부끄러워서 매국은이 이를 악물었다.
‘빌어먹을, 내가 저깟 꼬마에게 겁이라도 집어먹었다는 건가!’
왈칵 짜증이 치민 매국은이 매국동에게 신신당부했다.
“정말로 오늘은 조훈이의 바지까지 벗겨 버려라. 창룡무관이란 말이 나오면 오줌부터 지릴 정도로 밟아 버리란 말이야.”
“물론이지요.”
쾌재를 부르며 매국동이 오른 주먹을 왼쪽 손바닥에 팡팡 두드렸다.
하지만 어쩐지 찜찜해서 매국은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분명 말도 안 되는 승부인데 왜 이리 께름칙하지?’
인상을 찌푸리는 매국은을 뒤로하고 매국동이 냉큼 나섰다.
“좋소! 우리 창룡무관은 이 시합을 받아들이겠소이다!”
“선수는?”
“나요!”
당찬일의 물음에 매국동이 제 가슴을 탕탕 두드렸다.
“좋아요. 일각(一刻)만 기다리세요.”
당찬일이 조훈을 데리고 몸을 돌리려는데 매국동이 그의 발목을 잡았다.
“잠깐!”
매국동이 또다시 이죽거렸다.
“조훈이가 나한테 패하면 어쩌시겠소?”
“음?”
“무학을 공유하네 어쩌네 하면서 선량한 군웅들을 혼란에 빠트린 것으로도 모자라 대리인을 내세워 우리끼리의 싸움을 조장했으니 책임은 지셔야지요.”
“아하! 책임.”
매국동의 말이 일리가 있다는 듯 고개를 끄덕인 당찬일이 명쾌한 답을 내놨다.
“그땐 짐 싸야지요.”
쿵!
“안 그래요, 아버지?”
당찬일이 충격적인 선언을 했지만 당인은 아들의 말을 여유롭게 받았다.
“그래야겠지.”
당인이 기이한 시선으로 당찬일을 응시했다.
―우리가 지부를 비워야 화산파의 사주를 받은 이들이 지부에 난입할 수 있으니까요.
―그건……!
―우리 당문이 섬서에서 활동하려면 어떤 식으로든 화산파와 교통정리를 해야만 해요.
―하지만 형님의 방식대로 일이 진행된다면 화산파와 필연적으로 충돌해야 하지 않느냐?
―그걸 바라셨거든요.
―뭐?
―숙부님은 우리 서안 지부가 화산파와의 관계를 빨리 매듭짓길 원하셨을 겁니다.
―자칫 일이 틀어지면 우리 부자가 곤란한 지경으로 내몰릴 수도 있는데…….
―본가는 우리 부자의 안위 따위는 안중에도 없어요. 서안 지부가 잘만 돌아간다면 지부장은 누구라도 상관없다고요.
‘그렇군.’
당인이 당찬일에게서 눈을 뗐다.
당인 부자의 말을 듣고 매국동은 터져 나오는 환호성을 가까스로 눌러야만 했다.
‘드디어 이십사수매화검법의 중반부가!’
조훈과의 승부?
순간 매국동의 머릿속으로 비슷비슷한 말들이 스쳐 지나갔다.
누워서 떡 먹기, 식은 죽 먹기, 어린아이 손목 비틀기 등등.
그 말을 남기고 당찬일이 조훈과 함께 연무장 구석으로 이동하자 혼자 신났던 매국동이 문득 입을 열었다.
“우리 창룡무관이 질 경우엔 원하는 것이 없소?”
‘물론 질 리 없지만.’이라며 매국동이 시시덕거리자 당찬일이 그를 힐끔 쳐다보았다.
“그럼 바지라도 내릴래요?”
“뭐, 뭐요?!”
매국동이 발작하자 당찬일이 손을 내저으며 웃었다.
“됐어요. 됐어.”
당찬일이 미소 띤 얼굴로 답했다.
“더 바라는 것 없으니까 신경 쓰지 말아요.”
천천히 고개를 돌리며 당찬일이 서리가 뚝뚝 떨어지는 음성으로 덧붙였다.
“조금 후면 당신은 온몸으로 《삼수삼보》의 효용성을 입증해 줄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