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angmun reincarnation RAW novel - Chapter 137
당문전생 (136)
화산파는 뭐 했대?
무리를 이끌고 곤룡이 사라지자 혜윤이 펄펄 뛰었다.
“어쩌자고 그 자리에서 본인이 당문 사람이라고 넙죽 밝히세요, 밝히기를!”
“어차피 알게 될 일인걸요.”
혜윤의 마음 씀씀이가 고마웠지만 실질적으로는 도움이 안 되었기에 당찬일이 고개를 저었다.
“에휴! 앞으로는 그런 돌발 행동일랑 거두시라고요.”
툴툴거리면서 걷던 혜윤이 이번에는 누군가를 발견하고 합장했다.
“남궁 문주님, 오랜만에 뵙습니다, 아미타불.”
“아아, 혜윤 스님.”
혜윤을 따라 합장한 남궁천이 그녀의 뒤에 서 있는 당찬일을 발견했다.
“온다고 들었는데 이미 도착했군.”
“안녕하셨어요?”
남궁천은 오가연합 비무 대회부터 당찬일에게 호감을 표시했다. 아마도 남궁천의 담백한 성품과 당찬일의 다소 냉정한 성격이 잘 어울렸으리라.
“오오, 어전호위가 아니신가?”
오가연합 비무 대회에서 만났던 하북 팽가의 팽위가 당찬일에게 아는 체를 했다.
“그간 별고 없으셨습니까, 팽 가주님?”
“나야 늘 그렇지, 뭐.”
너털웃음을 터트린 팽위가 자신의 곁에서 뭐가 불만인지 오리처럼 입을 빼문 팽소명의 어깨를 눌렀다.
“너도 당 공자에게 인사해라! 오가연합 비무 대회에서 그나마 너의 본 실력을 알아봐 준 이는 당 공자뿐이었어!”
부친이 강권하자 팽소명이 마지못한 얼굴로 당찬일에게 포권했는데…….
“안녕하시오. 섬서 지방에서 활약이 대애―단하시다고 들었소이다.”
팽소명은 ‘대단’에 힘을 실어서 당찬일을 잔뜩 비꼬았다.
‘아직도 삐쳤군.’
사천성 성도부에서 약쟁이 의원 이행행을 놓고 대립했던 일 때문에 아직까지 마음을 풀지 못한 모양이다.
사실 당찬일로서는 억울할 만한 것이, 당시에 팽소명과 손을 섞었던 사람은 당호민이었다. 그런데도 소명은 당호민과 자신을 동일시하고 있었다.
‘그렇게 마음을 먹어서라도 속이 풀린다면야.’
당찬일이 어깨를 살짝 들어 올리는데 또 하나의 익숙한 얼굴이 다가왔다.
“당 공자, 나를 기억하시는가?”
물론이다. 전생에 사람 얼굴 외우는 연습부터 했다.
“낙일방의 소대겸 방주님이 아니십니까?”
당찬일이 자신을 알아봐 주자 소대겸이 반색을 했다.
낙일방은 섬서 지방의 신흥 방파였지만 당문 서안 지부의 부름을 받지 못했다.
그 이유는…….
“당문에서 서안에 지부를 개설했다는 소식은 진작 들었지만 공사가 다망해서 들르질 못했어.”
뻥이다.
조훈이 매국동이를 박살 냈다는 소식을 접하자마자 제갈세가에서 만났던 인연을 내세워서 방문하고 싶었지만 그러지 못했다.
낙일방의 근간을 이루는 무학은 낙일신권이다. 또한 낙일신권이 화산파의 이형권(移形拳)에서 비롯되었다는 건 누구나 아는 사실이다.
한마디로 낙일방은 섬서에서 화산파의 영향을 가장 많이 받은 문파 가운데 하나였다.
그러니 당문 서안 지부에서 깜짝 놀랄 만한 기보를 공개했지만 낙일방으로서는 손가락이나 빨 수밖에 없는 처지였다.
“그러셨군요. 마음만으로도 감사드려요.”
뒤이어 철검문의 용만호, 용건영 부자도 당찬일에게 인사를 건네자 이를 지켜보던 남궁천이 혜윤에게 합장했다.
“스님. 당 공자는 우리가 안내할 터이니 다른 일을 보셔도 괜찮겠습니다.”
남궁천이 정중하게 합장하자 혜윤이 반색했다.
“그래 주시겠어요? 우리 아미는 언제나 남궁가의 은덕에 감사한답니다.”
남궁천은 오대세가 중에서 불문(佛門)에 가장 가까운 가문이라 아미와도 돈독한 인연을 맺고 있었다.
가뜩이나 일이 많았던 혜윤에게 남궁천의 한마디는 그야말로 축복이라서 그에게 얼른 인사하고 몸을 돌렸다.
“아, 참.”
뭔가 생각난 듯 손뼉을 친 혜윤이 당찬일에게 소곤거렸다.
“이따가 회향 한마당을 할 때 다소 소란스러울 수 있으니 당 시주께서 넓은 마음으로 이해해 줘요. 알았지요?”
혜윤이 오른쪽 눈을 찡긋 감았다 뜨자 당찬일도 웃음으로 화답했다.
밉지 않은 스님이다.
잇속은 철저히 챙기면서도 타인에게 미움을 받지 않으니 이것도 재주라면 재주다. 그 잇속이라는 것이 사문에 관계된 것이라 더 그럴 수도.
‘본바탕은 선한 사람이다.’
떠나가는 혜윤을 물끄러미 바라보던 당찬일이 고개를 돌렸다.
‘헉!’
그곳에는 팽위를 비롯한 모두가 ‘자네는 내게 할 말이 있을 거야’라는 눈으로 당찬일을 기다리고 있었다.
아, 남궁천은 예외였고.
‘이런. 이런.’
하지만 당찬일은 이들의 눈빛을 무던히도 넘기면서 자리에 앉았다.
“재미있군.”
당찬일이 착석하자 그의 옆에 앉은 남궁천이 피식 웃었다.
“모두들 자네와 이야기를 나누고 싶어 하는군.”
“그렇습니까?”
당찬일이 의뭉을 떨자 남궁천이 전면으로 시선을 이동시키면서 지나가듯 중얼거렸다.
“나도 그렇다네.”
심지어는.
둥둥둥둥―.
연등 행사가 성대하게 진행되었다.
스님들과 불자들이 아미산을 한 바퀴 도는 거리 행사를 시작으로 제등 행진이 이어졌고 아미의 장문인 도현 스님이 집전하는 연등법회가 열렸다.
도현 스님의 낭랑한 설교는 모든 사람에게 방등일의 의미를 새겨 주었다.
뒤이어 아미파 연등회의 꽃인 회향 한마당이 열렸다.
웅성웅성.
아미파는 정통 불문이지만 정도 무림을 대표하는 구파일방의 일원이라는 이중적인 특성을 지녔으며, 비구니로 이루어진 문파라는 또 하나의 특징을 가졌다.
하여 아미파의 봉축 행사에는 일반인과 무림인이 모두 참석했으며, 관에 적을 둔 사람들과 이들의 가족까지 얼굴을 내밀었다.
“자, 그럼 여러 무림 제현들의 인사말이 있겠어요.”
도현 스님의 설교가 끝나고 사회로 나선 도천 스님이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
“우선 제갈세가의 제갈외 노시주부터.”
제갈세가는 특이하게도 가주인 제갈진수가 와병을 이유로 불참했다. 대신 제갈진수의 부친이자 전대 문주인 제갈외가 노구를 이끌고 참석했다.
제갈청청의 부축을 받으며 제갈외가 단상으로 향했다.
“오늘은 뜻깊은 날이외다…….”
제갈외의 인사말이 시작되자 모두가 무림 원로의 말을 경청했다.
“……하여 온 누리에 부처님의 광명이 깃들기를 바라마지 않소이다.”
제갈외가 덕담을 마치고 몸을 돌리는데 죽장을 짚으며 노비구니가 다가왔다.
“어렵게 와 주셨습니다, 제갈 노시주.”
“사태가 아니시오! 그간 강녕하셨소이까?”
제갈외와 반갑게 인사를 나누는 늙은 비구니는 아미의 정신이랄 수 있는 낙산 사태였다.
“큰일이 있었다고 들었어요.”
“무림인의 삶이란 것이 그렇지 않소이까? 화려한 개화만큼이나 산화(散花) 또한 서글프지요.”
제갈외가 씁쓸한 표정을 지었다.
낙산 사태와 제갈외가 소리 죽여 이야기를 나누자 사람들도 설왕설래를 나누기에 바빴다.
“제갈세가에 흉사(凶事)가 있었다면서?”
“말도 말게. 섬서 지방을 피로 물들이는 흉악한 살인마에게 삼십육마라선법을 극성으로 깨우친 제갈군과 그의 휘하 스무 명이 당했다더군.”
“흉수는? 잡았대?”
“못 잡았으니까 이러지. 다만 그 자리에 뜻밖의 인물이 있었다더군.”
“뜻밖의 인물? 누구?”
사람들이 이런저런 이야기를 주고받고, 낙산 사태와 이야기를 마친 제갈외가 자신의 자리로 돌아갔다.
뒤이어 내외 귀빈들의 축사와 덕담이 이어졌고, 남궁천의 인사에 이어 당문의 차례가 되었다.
“당문에서는 당과로 노가주님의 축사를 당찬일 공자님께서 대독(代讀)하시겠습니다.”
도천 스님의 소개로 단상에 오른 당찬일이 당과로의 축사를 읽자 장내가 다시 시끄러워졌다.
“저 공자님이야.”
“저 공자님이라니? 뜬금없이 그게 무슨 소리야?”
“조금 전에 뜻밖의 인물이 누구냐고 물었지? 바로 당찬일 공자라니까.”
“정말로?”
중인(衆人)들의 수군거림에 낯빛이 안 좋아지는 사람들이 있었다. 하지만 그들은 사람들을 의식하지 않고 계속해서 떠들어 댔다.
“그럼 뭐야? 제갈세가의 부녀는 저 공자님이 구했다는 거야?”
“혼자서 그놈들을 상대했겠나? 제갈진수 가주와 제갈청청 여협하고 합심해서 놈들을 물리쳤겠지.”
혼자서 상대했다.
“셋이서 연수했는데도 놈들을 죽이거나 생포하지 못했어?”
“그렇다네. 흉수들의 무위가 상상을 초월했나 봐.”
“흐음.”
그리고 문제의 한마디가 터져 나왔다.
“화산파는 뭐 했대?”
쾅!
언짢아하던 인물들의 낯빛이 대번에 썩어 들어갔다.
“섬서에서 벌어진 참사라며? 그것도 한두 번이 아니었고. 그런데 화산은 뒷짐만 지고 있었다는 거야?”
부지런히 떠드는 사람들을 뒤로하고 편지를 다 읽은 당찬일이 단상에서 내려왔다.
그가 내려가자 사람들의 시선이 집중되었지만 곧 호명된 도호 때문에 당찬일의 존재감은 싹 날아갔다.
“다음으로 화산파의 무한 진인을 대신해서 건룡자 도장이 축사를 하십니다.”
“오오, 건룡자.”
이른바 무림 명숙들이 감탄하고.
“드디어 관옥사룡이 나오시나 봐.”
무가의 여식들이 상큼 눈을 빛내며 단상 주변으로 몰려들었다.
“그 유명한 관옥사룡의 등장인가?”
남궁천이 자못 흥미진진하다는 듯 중얼거리는데 이들에게로 제갈외가 다가왔다.
“오셨습니까?”
“대충 이야기는 마쳤네.”
제갈외는 위치가 위치인지라 한동안 원로들이 놔주지를 않았다.
“뭔 말들이 그리 많은지. 저렇게 하고픈 이야기가 많은 걸 보면 먹고 싶은 것도 많을 거야.”
가까스로 원로들에게서 빠져나온 제갈외가 너털웃음을 터트렸다.
“그나저나 너도 왔구나.”
“예, 어르신.”
당찬일이 제갈외에게 예를 표했다.
무림의 명숙입네, 하고 어깨에 힘을 주는 군상들 가운데 그나마 존경을 받을 만한 인물은 제갈외를 비롯한 극소수다.
“아주 섬서 지방을 휩쓸고 다닌다지?”
제갈외가 당찬일의 옆에 앉으며 덕담을 늘어놨다.
“아닙니다.”
당찬일이 쓴웃음을 지었다.
“아니긴. 나도 듣는 귀가 있는데. 요즘 섬서에서 당문 서안 지부를 모르면 바보라는 소문이 자자하더군. 안 그러냐, 얘야?”
제갈외가 시립해 있는 제갈청청을 돌아보았다.
“그렇습니다, 할아버지.”
“봐. 그렇다고 하잖아. 이런 건 젊은 애들한테 물으면 재깍재깍 답이 나오거든.”
“하하하하.”
더 이상 대답할 말도 없고 해서 당찬일이 형식적으로 웃었다. 그런 그를 곁눈질하던 제갈외가 단상에 오르는 건룡자에게 시선을 던지며 슬그머니 입을 열었다.
“어땠느냐?”
뜬구름 잡는 식의 물음.
“놀랍더군요.”
역시 뜬구름 잡는 식의 대답.
“두렵진 않았고?”
제갈외의 알 수 없는 질문에 당찬일이 기묘한 답변을 내놓았다.
“아직 시간이 있으니까요.”
당찬일의 대답을 들은 제갈외가 제갈청청과 눈을 마주했다.
―정녕 이 아이가 방울과 보법과 신법으로 천마왜를 상대했단 말이지?
―예.
―첫 번째 녀석은 제압했고, 두 번째 녀석에겐 밀렸다?
―제가 볼 때는요.
제갈청청이 살짝 고개를 끄덕이자 제갈외가 탄식했다.
―흠.
제갈외의 한숨에 남궁천이 의문을 표시했다.
“무슨 일이라도 있으신지요?”
“아닐세.”
손을 내저은 제갈외가 전면을 응시했다.
연단에선 무가의 여식들 그리고 섬서 지방에서 이곳 사천까지 원정을 온 추종자들의 환호를 받으며 건룡자가 유장한 축사를 이어 갔다.
물론 연설은 지루하기 짝이 없었다.
힐끗!
제갈외가 눈짓하자.
끄덕.
낙산 사태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제갈외가 남궁천에게 물었는데 실상 이곳에 모인 모든 이들에게 질문을 던지는 격이었다.
“근자에 섬서 지방에서 기이한 사건이 연이어 발생한 사실을 알고 있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