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angmun reincarnation RAW novel - Chapter 139
당문전생 (138)
같은 초식, 다른 위력
투로가 아닌!
제갈외의 한마디에 사람들이 깜짝 놀랐다.
그렇다. 당찬일은 무학이 아니라 순수한 투로를 보여 주고 있었다. 그렇기에 당찬일의 동작은 승무(僧舞)처럼 여리고 하늘하늘했다.
또 하나.
“과연 어르신이로군요.”
제갈외에게 포권한 당찬일이 진중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사실 《삼수삼보》는 독립적인 무학이 아닙니다.”
자신의 손바닥을 내려다보면서 당찬일이 말을 이었다.
“《삼수삼보》는 우리 당문의 선조께서 남기신 구명절초에 모종의 가르침을 보탠 초식이라서 독자적으로는 제 위력을 발휘하기 어렵습니다.”
“그럼?”
“일정한 형식을 갖춘 무학에 끼워 맞춰지면 해당 무공의 위력을 극한까지 끌어올리지요.”
“호오, 그렇다면 《삼수삼보》는 결합하는 무공과의 궁합에 따라 그 힘이 달라지겠군.”
“맞습니다.”
제갈외가 언급한 궁합이란 말이 재미있어서 당찬일이 보름달만큼이나 환하게 웃었다.
‘어머?’
‘내가 지금 뭘 본 거야?’
조금 전까지 관옥사룡을 빨아 대기에 여념이 없던 무가의 여식들이 서로를 바라보며 깜짝 놀랐다.
당찬일의 미소는 관옥사룡의 그것에 비해서 조금도 꿀리지 않았으니까.
“그럼 진정한 《삼수삼보》를 어찌 보여 주겠나?”
제갈외가 묻자 그 말을 기다렸다는 듯 당찬일이 빙글 몸을 돌렸다.
“고수 공자님.”
“나?!”
당찬일이 가리키자 고수가 펄쩍 뛰었다.
그가 자신을 지목할 거라고는 상상조차 해 보지 않았으니까.
“나, 나는……!”
당찬일을 마주하자니 양학에게 당했던 수치스러운 패배가 떠올라서 고수가 입을 뻐끔거렸다.
“나오세요.”
재차 당찬일이 청하자 소대겸이 고수에게 눈짓했다.
《삼수삼보》의 창시자가 손수 지도해 준다니. 이보다 좋은 기회가 어디 있을까.
―당찬일 공자는 너를 농락했던 양학이란 자를 몇 마디의 언질만으로 무릎 꿇린 전적이 있다.
무릎 꿇린 적 없다.
양학의 습관을 파고들어서 억지 승리를 가져왔을 뿐.
하지만 이것만으로도 소대겸은 충분히 감동을 받았기에 자신의 애제자를 마구 떠밀었다.
―뭐 하느냐? 이 좋은 기회를 놓치려고?
―아니, 그게…….
머뭇거리던 고수가 비척비척 앞으로 나섰다.
하늘 같은 사부님의 명을 어길 수는 없는 노릇이었고, 무엇보다 당찬일은 신비로운 구석이 많았기에 그가 자신을 지목하자 고수도 약간의 기대를 품었다.
머쓱한 얼굴로 나선 고수가 더듬더듬 입을 열었다.
“우리 사문의 무학을 알아야겠지요?”
“필요 없어요.”
“예?”
고수가 깜짝 놀랐다.
필요 없다니? 조금 전에는 일정한 형식을 갖춘 무학에 《삼수삼보》를 끼워 넣어야 한다면서?
“정말로 우리 낙일방의 무학이 필요 없다는 거요?”
이해하지 못하겠다는 표정으로 고수가 양손을 들어 올리자 당찬일이 고개를 저었다.
“당연히 낙일방의 무학은 필요하지요.”
“그럼 어째서?”
“아니까요.”
“예?”
“이미 낙일방의 기초 무학은 알고 있으니까 다시 보여 줄 필요 없다는 거예요.”
당찬일이 담담하게 웃자 고수의 눈이 화등잔만 해졌다.
“누가 알려 줬기에?”
놀라기는 소대겸도 마찬가지라서 당찬일의 말을 듣고 다급하게 주변을 돌아보았다.
그리고 당찬일의 대답은 모두를 경악이라는 강물 속에 빠트렸다.
“고수 공자님이 보여 줬잖아요.”
“내가?”
여기서 잠깐.
당찬일은 알려 줬다고 하지 않았다. 보여 줬다고 했다.
그 말인즉슨.
“일 년 전에 고수 공자님이 펼친 낙일방의 무학을 아직까진 기억하고 있어요.”
당찬일이 기수식 형태로 동작을 취했다.
“이것이 전륜나(轉輪羅).”
“어, 어…….”
“이것은 전륜진황(轉輪振荒).”
“그, 그게…….”
더듬거리는 고수는 당찬일의 다음 동작을 보고 충격을 받아야만 했다.
“여기서 퇴법만 떼어 내면 전륜무(轉輪舞).”
쿵!
이럴 수가!
전륜나와 전륜진황은 양학과 겨루면서 선보였기에 기억력이 비정상적으로 좋은 이라면 떠올릴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전륜무는 다르다.
전륜무를 그때 펼치지 않았단 말이다.
“누가 그러더군요. 전륜진황은 전륜나를 펼치는 동시에 낙일방이 자랑하는 퇴법인 전륜무(轉輪舞)를 더하는 무공이라고.”
“다, 단지 그것만으로?”
고수가 어이없어했지만 당찬일은 지극히 당연하다는 듯 설명했다.
“전륜진황에서 전륜나만 떼어 내면 전륜무가 되는 것이니 어렵지 않았어요.”
어렵지 않다니!
권법과 퇴법을 분리하는 건 무척이나 어려운 작업이다.
상체와 하체는 언제나 유기적으로 움직인다. 주먹을 날릴 때는 발로 중심을 잡고, 발을 차올릴 때면 손이 뒤따르는 법이다.
그러므로 해당 무학의 원리를 모르는 상태에서 권법에서 퇴법을 분리하는 건 불가능에 가깝다.
하지만 당찬일은 자신의 무학을 단 한 번 본 것만으로 자연스럽게 분리를 이야기한다.
어찌 그것이 가능할까?
전각안!
모든 것을 기억하고 모든 것을 분석하는 눈!
당찬일이 강호삼대마안 가운데 하나인 전각안의 소유자였기에 그것이 가능했다.
“혹시 나를 지목한 이유도?”
끄덕.
고수를 선택한 특별한 이유는 없었다. 우연히 당찬일은 낙일방의 무학을 알고 있었고, 마침 낙일방의 대제자가 이 자리에 있었을 뿐이다.
반쯤 얼이 빠져 있는 고수를 무시하고 전륜나와 전륜무의 동작을 취하던 당찬일이 곧 고개를 끄덕였다.
“이렇게 하면 되겠군.”
“에?”
“전륜나는 찰나지간에 주먹을 열여덟 번 내쳐서 상대방을 권영(拳影)으로 뒤덮는 권법이지요?”
“그렇소.”
“좋아요. 그럼 내공 없이 전륜나의 초식으로 나를 공격해 보세요.”
“당 공자를?”
끄덕끄덕.
“내 무학이 일천해서 뭇 군웅들의 놀림감이 되지 않을까 염려되는구려.”
아따, 말 많다.
“걱정 말아요.”
당찬일이 날카롭게 눈을 빛냈다.
“나 역시 전륜나로 응대합니다.”
뒤로 물러서면서 당찬일이 덧붙였다.
“물론 나도 내공을 사용하지 않아요.”
내공을 끌어올리지 않은 사태에서 동일한 초식으로 겨룬다면 승부는 무학의 숙련도로 결정된다.
하지만 당찬일의 신비한 능력을 본 터라 고수는 방심하지 않고 자세를 잡았다.
“그럼 가오.”
잠시 후…….
“이럴 수가.”
바닥에 주저앉은 고수가 지면에 찍힌 자신의 권흔(拳痕)을 응시했다.
“분명 전륜나였는데.”
자신은 분명 전륜나로 공격했고 당찬일도 분명 전륜나로 맞섰다. 이런 경우라면 숙련도가 압도적으로 우위인 자신이 승리해야 마땅하다.
하지만 패했다. 아니, 이기고 지고 말고 할 것도 없었다.
자신의 모든 전륜나는 당찬일의 전륜나에 의해서 바닥에 내팽개쳐지고, 버려졌으니까.
“분명 전륜나였는데…….”
“아니.”
고수가 같은 말을 반복하자 그를 굽어보며 당찬일이 중얼거렸다.
“이것은 유능일초예요. 전륜나라는 권법과 결합한 유능일초이지요.”
놀라기는 사람들도 마찬가지였다.
시작과 함께 고수는 전륜나라는 초식으로 주먹의 숲[拳林]을 만들어 냈다.
전륜나는 화산의 이형권을 모체로 하는 권법이었기에 이를 지켜보는 관옥사룡의 표정에 은은한 자부심이 배어 나왔다.
당찬일이 전혀 새로운 전륜나로 응수하기 전까지는.
고수가 권림으로 자신을 압박하자 당찬일이 전륜나를 펼쳤고 주먹의 숲은 낙엽이 되어 스러졌다.
한순간에!
무릎을 굽혀서 넋이 나가 있는 고수의 어깨를 잡은 당찬일이 담담한 어조로 이야기해 주었다.
“다시 한 번 말하지만 《삼수삼보》는 기본적으로 구명절초에서 출발해요. 상대방을 잡아먹는 수법이 아니라 자기 자신을 보호하는 호신의 무학이지요.”
“아아…….”
“그래서 유능일초와 결합한 전륜나는 타인을 살상하기보다 낙일방의 문도들을 지켜 주는 조력자로 자리매김할 거예요.”
고수의 어깨에서 손을 뗀 당찬일이 몸을 일으켰다.
“물론 모든 무학은 양면적이라서 마음먹기에 따라 달라지겠지만.”
때로 호신용으로, 때로는 살상용으로.
‘뭐지, 이 녀석?’
일 년 전에도 열다섯이라고는 믿기지 않았다. 그때의 당찬일은 어른스러움 따위와는 전혀 다른 무엇으로 오가연합 비무 대회에 참석했던 좌중을 압도했다.
그리고 일 년이 지난 지금.
당찬일은 한층 더 커진 모습으로 나타났다.
성장이 아니라 성숙. 발달이 아니라 발전.
아마도 그건 당찬일의 마음가짐이 달라졌기에 가능하지 않았을까?
당찬일이 넉넉한 미소를 짓자 없던 용기까지 쥐어짠 고수가 가까스로 입을 열었다.
사문과 아무런 연관이 없는 사람에게 무학 이론을 묻는다는 건 쉽지 않다. 그러나 사부님의 말씀처럼 이 좋은 기회를 어찌 놓치겠는가.
“그렇다면 삼보도 우리 낙일방의 보법과 결합시킬 수 있겠소?”
“가능할 거예요. 전륜무는 워낙에 기본기가 탄탄한 보법이라서 진지행과 결합시킨다면 재미난 효과를 거둘 수 있을 거예요.”
고수와 이야기를 주고받던 당찬일이 문득 고개를 돌렸다.
“이만하면 만족하시겠어요?”
당찬일의 물음에 제갈외가 실처럼 얇은 웃음을 지었다.
“대충은.”
조금 전에 자신이 말했던 그대로 답하며 제갈외가 의뭉스러운 미소를 머금자 당찬일도 개구진 미소로 화답했다.
“그럼 됐네요.”
몸을 돌리는 당찬일을 눈으로 좇던 제갈외가 제갈청청에게 물었다.
“멋지지?”
“예?”
“저 아이 말이다. 또래와는 전혀 다른 품격을 지녔거든.”
“아, 예.”
당찬일을 외면하며 제갈청청이 기어들어 가는 소리로 덧붙였다.
“귀여워요.”
“뭐라고? 저 노회한 녀석이 뭐가 귀여워?”
제갈외는 모른다. 여성들이 남자에게 호감을 보이면 우선적으로 멋있다는 말보다 귀엽다는 표현을 사용한다는 것을.
이를 알 리 없는 제갈외가 손녀의 이해할 수 없는 평가에 고개를 갸웃거렸다.
“정말로 저 녀석이 귀엽다고? 내가 볼 땐 뱃속에 능구렁이를 서른 마리 정도 품고 사는 놈처럼 보이는데 뭐가 귀엽다는 게냐?”
“그래도 귀여운걸요.”
“허허, 우리 손녀가 언제부터 능구렁이를 귀여워했는지 모르겠구나.”
제갈외 조손이 때아닌 논쟁을 벌이는데 당찬일과 고수의 토론을 지켜보던 이들이 하나둘 입을 열었다.
“과연 《삼수삼보》야. 동일한 초식에서 완전히 다른 힘을 이끌어 냈어.”
“신통방통하네. 거기다 당찬일 공자는 낙일방의 무학을 오늘 처음 펼치는 거라잖아.”
“그러니까 《삼수삼보》라는 소리가 나오는 거라고.”
“《삼수삼보》가 그리 대단한가…….”
반신반의하는 무인에게 《삼수삼보》 추종자가 한마디 덧붙였다.
“삼 년 전에는 명판도 못 내밀던 조훈이란 청년이 《삼수삼보》를 급히 익혀서 섬서 제일이네 뭐네 떠들어 대던 창룡무관의 매국동이를 작살냈다니까?”
“그 소식은 들었지만 원래 소문이란 과장되기 마련이라서…….”
여전히 무인이 미덥지 못하다는 표정을 짓자 《삼수삼보》 추종자가 관옥사룡 쪽을 힐끔거렸다.
“뭐가 과장됐는데? 창룡무관의 창룡팔초는 화산의 이십사수매화검법의 전반부 여덟 초식이라고! 그걸 꺾었으니 《삼수삼보》의 위력이 입증된 거잖아.”
딴에는 목소리를 낮췄지만 《삼수삼보》 추종자의 음성은 관옥사룡의 귓전에 정확히 틀어박혔다.
이어서 추종자의 결정적인 한마디.
“그게 사실이라면 《삼수삼보》가 섬서 지방을 평정할 만하구먼.”
쿠우우―.
관옥사룡의 얼굴에 찬 서리가 한 겹 내려앉았다.
그리고…….
이룡자가 고수를 지도하는 당찬일을 향해 포문을 열었다.
“또다시 대리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