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angmun reincarnation RAW novel - Chapter 14
당문전생 (14)
수업은 여전히 재미없었다
졸지에 수업을 들을 처지가 되었지만 이 또한 당문의 분위기를 파악할 기회라 여긴 당찬일이 눈동자만 돌려서 주변을 돌아보았다.
정확히 열일곱 명의 소년, 소녀들.
대략 열 살부터 열다섯 남짓의 아이들이 수업을 기다렸는데 모르긴 몰라도 이들이 당문의 후대를 이끌 인재로 지목되었으리라.
‘역시.’
아이들은 하나같이 영기 발랄했다. 또한 진지한 얼굴로 삼삼오오 모여 토론에 열중하는 눈치였다.
“자자, 소공자님들, 소공녀님들. 이제 수업을 시작할 터이니 집중하세요.”
왕 숙모가 우람한 손을 흔들자 아이들이 이내 조용해졌다.
“자, 오늘은 하독의 심화 과정으로 들어갈 거예요. 어제와 달리 한 부분 놓치면 다음부터 따라오기 힘드니까 긴장하셔야 합니다.”
왕 숙모의 우렁우렁한 외침에 아이들이 눈을 빛냈다.
물론 하나 빼고.
‘하독의 심화 과정이라니. 지겹군.’
입에 찢어져라 하품이라도 토하고 싶었지만 애써 눌러 참은 당찬일이 다른 아이들처럼 집중하는 척을 했다.
하지만 왕 숙모의 입에서 전부 아는 이야기만 나오자 이내 당찬일이 긴장의 끈을 놔 버렸다.
‘중리로 삼 할을 걷으면 현재 자본금이 두 배가 되는 시기가 대략…….’
몸을 앞뒤로 까닥거리며 열심히 딴생각하는 당찬일을 왕 숙모가 힐끔거리자 아이들도 그를 곁눈질했다.
‘이런.’
그제야 자신의 실수를 깨달은 당찬일이 자세를 바로 하고 다시금 수업에 집중하는 시늉을 했다.
“집중하세요, 집중.”
예, 예. 여부가 있겠습니까?
커다란 흑판을 꺼낸 왕 숙모가 독물의 종류와 기후 그리고 대상과의 거리 등을 복잡하게 적자 아이들도 문방사우를 꺼내었다.
“아시겠지요? 대상이 여기라면 하독하기에 최적의 장소는 이곳, 또 이곳, 마지막으로 이곳입니다.”
왕 숙모가 세 군데의 방위를 짚었지만 당찬일은 누구도 모르게 고개를 저었다.
‘다 틀렸어. 최적의 장소는 마지막의 반 장 밑이야.’
제아무리 완벽한 이론이라도 실전을 이길 수는 없다.
왕 숙모의 하독 방법은 이론에 기초를 두었기에 실전으로 다져진 당찬일의 성에 찰 리 없었다.
뒤이어 시작된 독물 학습도 마찬가지.
이전에는 강호의 여걸이었을지 모르나 지금의 왕 숙모는 실전을 치른 지 오래.
당연히 그녀의 교육은 실전적이라기보다 이론에 치우칠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당찬일은 다시 딴생각을 시작했다.
‘이자를 조금 낮출까? 그럼 더 많은 이들의 돈을 빌릴 텐데. 아니지. 너무 이자가 싸면 형평성에 위배가…….’
여기까지 생각이 미친 순간!
쉬익!
또다시 엉뚱한 생각에 삼매경인 당찬일을 발견한 왕 숙모가 들고 있던 나무토막을 날렸다.
‘이 정도야 가뿐하게…….’
딱!
“아야!”
맞았다.
당찬일이 이마를 짚으며 비명을 토하자 아이들이 까르륵 웃음을 터트렸다.
“당찬일 공자님!”
“으, 응?”
“대체 무슨 생각을 하시는 겁니까! 지금은 수업 시간이라고요!”
뒤이어 왕 숙모의 잔소리가 한바탕 쏟아졌고, 아이들은 그를 곁눈질하며 웃었다.
“자자, 다시 수업해야지요.”
탁자를 탕탕 두드린 왕 숙모가 독물과 독성에 관한 이야기를 늘어놓자 책상 밑으로 오른손을 쥐었다 펴면서 당찬일이 입술을 깨물었다.
‘실수할 뻔했다.’
무의식적으로 나무토막을 잡아채려던 오른손을 꾹 눌러 쥔 당찬일이 숨을 고르다 기이한 분위기를 느끼고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
머엉.
자신의 대각선에 앉은 소년이 완벽하게 멍때리고 있어서 당찬일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뭐야, 저 녀석?’
양손을 책상 밑으로 축 늘어트리고 고개마저 뒤로 젖힌 소년은 눈동자에 초점까지 없었다.
그야말로 무방비란 말이 어울리는 자세.
왕 숙모도 소년에게 가끔 시선을 던졌지만 원래 그런 아이라는 듯 고개를 젓고 다시 말을 이을 뿐이었다.
‘이 대단한 당문 후기지수의 몇 안 되는 문제아라는 건가?’
소년의 방임적인 태도에 고소 지으며 당찬일이 그를 주시했다.
그리고 반쯤 벌어진 소년의 입에서 흘러나온 말.
“저 아줌마는 입만 열면 구라네.”
‘음?’
“뭐가 하독하기에 최적의 장소가 거기, 또 거기, 마지막으로 거기야.”
쿵!
“최적의 장소는 마지막의 반 장 밑인데.”
워낙 작은 독백이라 누구에게도 들리지 않을 소리지만 당찬일의 귀는 피할 수 없었다.
‘저 녀석…… 제법이잖아?’
독물부에서의 자신이 보인 행태와 묘한 기시감을 느낀 당찬일이 소스라치게 놀랐지만 애써 내색하지 않고 소년의 넋두리에 귀를 기울였다.
“아줌마, 독을 그렇게 쓰면 언제 죽으라고. 독 퍼지기 전에 상대가 자연사하겠어.”
정확하다!
소년의 진단은 자신이 파악한 그대로라서 당찬일이 그를 천천히 뜯어보았다.
얼굴의 반을 가린 장발. 살짝 위로 치켜 올라간 입꼬리.
허무함이라는 감정을 가득 담았다가 그 공허마저 지워 버린 눈동자.
냉소로 가득한 속내를 멍청함으로 위장한 소년은 당찬일의 호기심을 끌기에 충분했다.
“그러니까 강의하기 전에 직접 먹어 보라고, 아줌마.”
이건 또 무슨 소리인가?
‘저 아이는 직접 저 독물을 먹어 봤다는 소리인가?’
이때 우연인지 몰라도 소년이 강시처럼 고개를 돌렸다.
무척이나 천천히.
자신을 주시하는 당찬일과 눈이 마주친 소년이 웃었다.
씨익.
‘허, 그 녀석.’
순간 수업을 마치는 타종이 울렸고, 모두가 분주히 짐을 챙겼다.
“아이고, 당찬일 소공자님, 고생하셨어요.”
나무토막을 던진 게 미안했는지 한달음에 달려온 왕 숙모가 당찬일에게 고개를 숙였다.
“괜찮아요. 그보다…….”
당찬일이 고개를 돌려서 어기적어기적 짐을 꾸리는 소년을 응시했다.
“저 아이.”
“누구…… 아, 당쾌풍 공자님이요?”
당쾌풍은 대가주인 당과로의 동생인 당과수의 손자다.
당과수는 당과로와 치열하게 후계 쟁탈전을 벌였지만 세가 기울자 재빨리 그에게 충성 맹세를 하고 납작 엎드려서 자리 보존했다.
그 결과 당과수의 후손들은 한직이나마 돈이 되는 자리를 차지할 수 있었다.
자신과는 재종형제 사이인 당쾌풍.
“당쾌풍 공자님이 지금은 나사 빠진 기세지만 소싯적에는 달랐답니다.”
“달라요?”
“그렇다니까요? 여간 영특하지 않았다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많이들 기대했고요.”
‘후계 구도에서 밀려난 가문의 한 줄기 희망이었다는 건가?’
“하지만 언제부터인가 하라는 공부는 집어치우고 산으로 들로 놀러 다니기에 바빴답니다. 누가 잔소리라도 할라 치면 저렇게 멍한 태도로 일관하고요.”
고개를 저으며 왕 숙모가 혀를 찼다.
“저도 수십 차례 잔소리를 했지만 자동으로 벌을 서니 방법이 없더라고요. 그래서 이제는 수업 참가에 의의를 두는 형편이에요.”
“그렇군요.”
고개를 끄덕인 당찬일이 의자에서 일어섰다.
“이제 독물들 견학하시면 되고요. 더는 수업 참가를 하지 않으셔도…….”
“아니요.”
왕 숙모의 말을 자르며 당찬일이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었다.
“저도 참가합니다, 내일부터.”
* * *
그 뒤로 당찬일은 아이들에게 적당한 인기를 얻었다.
당찬일 본인의 매력이 아니라 떡으로 아이들의 환심을 샀다는 표현이 맞을 테지만 아무튼 그는 당문의 후기지수들과 천천히 녹아들었다.
물론 수업은 여전히 재미없었다.
‘채집이라.’
오늘은 야외 학습이다.
당문 인근의 수풀을 두 시진 동안 자유로이 돌아다니면서 특이한 약초나 독초, 또는 독충을 채집하는 시간이 주어져서 아이들이 쾌재를 불렀다.
당찬일로서도 십삼 년이란 시간에 당문의 외적, 내적 지형이 어떤 식으로 변모했는지를 합법적으로 관찰할 수 있는 기회라서 나쁠 것이 없었다.
수십 차례 독을 다루었고, 상대에게 독물을 사용하기도 했지만 독충이나 독초를 채집한 적은 없었다.
하지만 다년간 견식한 가락으로 어떻게든 할 수 있으리라 다짐하며 당찬일이 수풀을 상살 헤쳐 나갔다.
사람을 한 번 보면 어떤 형태로 변하든 대번에 알 수 있다는 시야를 지닌 그다.
그런 눈으로 독초와 독물을 발견하지 못할 리 없다.
‘뭔가 특이한 녀석을 채집해서 가져다주면 당문에서 어떻게 독을 추출하는지, 또 어떤 식으로 이용하는지 알 수 있을 거다.’
당문은 강호상의 모든 무가들 가운데 가장 폐쇄적인 집단이다.
지금이야 당과로가 집권해서 대외적으로 왕성한 활동을 한다지만 아직도 독물 다루는 법이라든가, 용독술이나 암기술은 철저히 대외비다.
그래서 당찬일은 희귀 독충을 제출하여 그것에서 독을 어찌 분리하는지, 어떤 방법으로 응용하는지 알아내고자 마음먹었다.
물론 그러기 위해서는 일반적인 거미나 지네 따위가 아닌, 정말로 진귀한 독충을 잡아야 한다.
“어디 보자. 희귀한 놈이라.”
빛을 흡수할 것만 같은 새까만 거미를 집어 든 당찬일이 곧 고개를 저으며 그것을 내던졌다.
“새끼과부거미. 이 정도로는 왕 숙모의 흥미를 끌지 못한다.”
그 뒤로 몇 개의 독충을 더 채집했지만 왕 숙모의 눈을 단번에 잡아끌 만한 놈은 아니라서 그것들을 미련 없이 놔준 당찬일이 팔짱을 꼈다.
“조금 더 들어가야 하나.”
고심하는 당찬일의 옆으로 누군가 다가왔다.
“어이, 재종. 뭐 하시나?”
기다란 머리로 얼굴의 반을 가린 소년.
한쪽만 드러난 눈동자엔 세상천지의 모든 허무를 쓸어 담아서 그 자체가 공허인 남아.
당쾌풍이었다.
“독충 찾지 않나.”
당찬일이 담담하게 대꾸하자 그의 옆으로 얼굴을 들이밀며 당쾌풍이 눈을 빛냈다.
“그래? 재종이 찾아낸 독충이 뭔가 볼까나?”
당쾌풍은 특이하게도 당찬일만을 콕 짚어서 재종이라고 불렀다.
수업을 듣는 아이들 중에서 자신과 재종지간인 소년소녀들이 다수 존재하는데도.
당찬일이 방생시킨 곤충들을 힐끔거리던 당쾌풍이 고개를 저었다.
“흐음…… 재종, 이건 아닌데.”
나도 안다. 하지만 눈에 띄는 놈이라곤 이것들이 전부다.
“이봐, 재종.”
무릎걸음으로 당찬일에게 다가선 당쾌풍이 귀띔했다.
“내가 죽여주는 놈이 사는 곳을 아는데, 가 볼래?”
당쾌풍이 이끈 곳은 깊은 산중이었다.
“이제부터 조심해야 해, 재종.”
심각한 표정으로 좌우를 살피며 당쾌풍이 당찬일을 불렀다.
“만일을 대비해서 내게 꼭 붙으라고. 여기부터는 매우 위험하니까.”
당찬일보다 두 살이 많은 당쾌풍이 썩 나서며 호기롭게 외쳤다.
하지만 당찬일은 그가 조금도 미덥지 않았다.
‘네 몸이나 간수해라.’
첩첩산중으로 들어가면서 당쾌풍은 심심한 건지, 본인도 무서워서인지 몰라도 당찬일에게 이것저것 늘어놨다.
“기왕 듣는 수업인데 왜 집중하지 않느냐고?”
당찬일의 물음을 받은 당쾌풍이 턱을 살짝 들었다.
“무수리 양성 수업인데 무엇하러 집중하겠냐?”
“무수리 양성 수업?”
반문하는 당찬일을 들여다보던 당쾌풍이 습관처럼 고개를 뒤로 젖혔다.
“독약처에서 수업을 받는 녀석들은 제 딴엔 선택받았다고 생각하겠지만 그게 무수리로 가는 지름길이란 걸 모른다는 말이지.”
“어째서?”
“어째서긴.”
뒤를 돌아보며 당쾌풍이 입꼬리를 실룩거렸다.
“진정한 황자들께선 얼굴 한번 비치질 않으시니까.”
진정한 황자.
당과로의 장남과 장녀 그리고 차남의 슬하를 말하는 것이다.
이들은 직계 중에서도 직계라서 끈 떨어진 아이들과 섞여서 수업을 듣지 않고 개인 교습을 받는단다.
“우리는 아무리 발버둥 쳐 봐야 결국 황자님들의 수발이나 들어야 할 처지라는 거지.”
당쾌풍이 싸늘한 조소를 날렸다.
“그게 우리의 현주소다.”
“음.”
십삼 년 전에는 이러지 않았다.
아마도 당과로가 자신의 후예들을 갈라치기 하는 것으로도 모자라 서열까지 나눠서 무한 경쟁으로 내모나 보다.
‘친족까지 무한 경쟁을 시키다니. 정말로 지독한 인간이로군, 당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