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angmun reincarnation RAW novel - Chapter 140
당문전생 (139)
지금 뭐 하는 거요?
이룡자의 목소리는 그다지 크지 않아서 얼핏 들으면 독백처럼 여겨질 수도 있었다. 또한 주어도 없었기에 누구를 지칭하는지 알 길이 없었다.
하지만 맥락이 뻔해서 모두는 이룡자가 어떤 이를 지목했는지 대번에 눈치챘다.
사실 관옥사룡도 이만큼이면 정말로 많이 참은 거다.
얼마 전에 창룡무관의 매국동이 조훈에게 패배하고 나서부터 삼수삼보가 이십사수매화검법을 꺾었다고 사람들이 그 난리를 쳤는데도 화산파는 일절 대꾸를 하지 않았다.
사실은 이십사수매화검법의 전반 팔초만 패했을뿐더러 매국동이란 녀석은 자질도 그저 그런 속가였는데도, 소문이 소문을 부른다고 화산파가 아무런 응대를 내놓지 않자 군웅들 사이에서 삼수삼보가 이십사수매화검법을 꺾은 것이 기정사실로 굳어졌다.
아울러 이러한 절학을 아무런 대가 없이 배포하는 당문의 위상은 마구 상승해서 그들의 위치는 어느 결에 화산의 턱밑까지 이르렀다.
그래도 화산은 침묵했다. 그들은 말을 할 줄 모르는 사람들처럼 입을 닫아걸었다.
아미파에서 열리는 방등회에 당찬일이 참석한다는 소식을 듣고도 화산파는 그와 가급적이면 마찰을 일으키지 말라는 당부를 내렸다.
그렇게 꾹꾹 눌러 참았거늘 무림 명숙 중에서 손에 꼽힌다는 제갈외가 주축이 되어 자꾸만 화산파를 도발하는 격이다.
“사사제!”
관옥사룡 가운데 셋째인 감룡자가 눈살을 찌푸리자 이룡자가 입술을 깨물었다.
“저는 근자에 속가에서 벌어지는 기묘한 비무 행태를 말하는 것입니다.”
“그래도!”
“아니, 이상하지 않습니까? 입으로 싸우는 논검비무도 아닐진대 매번 대리를 내세우고 당사자는 입씨름으로 일관하니 참으로 기사(奇事)가 아닐 수 없잖아요?”
“크흠.”
이룡자가 연노처럼 이야기를 쏟아 내자 감룡이 못마땅하다는 듯 헛기침을 터트렸다.
물론 감룡자도 여러 사람이 화산에 대해서 설왕설래를 늘어놓아서 마음이 편하지만은 않았다.
듣기 좋은 가락도 한두 번이라는데 안 좋은 이야기가 계속해서 귓전에 걸리니 어찌 속이 좋겠는가.
솔직하게 말해서 지금까지 ‘무량수불’을 백 번도 넘게 읊었단 말이다!
하지만 도문의 사람으로서 최소한의 품위를 지키려고 무던히도 인내하던 감룡자가 곧 기이한 사실을 깨달았다.
‘그러고 보니.’
대사형과 이사형이 방관하고 있다!
분통을 터트리는 사사제 이룡자를 말려도 시원치 않은데 건룡자와 곤룡자는 입 한번 뻥긋하지 않았다.
이렇게 되자 눈치가 없는 건 자신이 되어 버려서 감룡자가 머리를 긁었다.
자신이 나설 계제가 아닌가 보다.
감룡자마저 뒤로 빠지자 이룡자의 음성은 더더욱 삐딱선을 탔다.
“아무리 세상에 가짜가 판을 친다지만 무림에서도 그럴 줄을 미처 몰랐습니다그려.”
“가짜는 아니겠지.”
처음으로 곤룡자가 이룡자의 말을 받아 주었다.
“자신이 나서지 못하는 사정이 있었겠지.”
“사정이요?”
이룡자가 다소 우스꽝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그 사정이란 게 한두 번이라면 모르겠지만 연이어 세 차례나 이어진다는 건 누가 봐도 이상하지 않습니까?”
“세 번?”
“그렇습니다, 사형.”
이룡자가 당찬일을 똑바로 직시했다.
“오가연합 비무 대회에서도 대리. 자신의 지부에서도 대리.”
이룡자가 고개를 돌리며 싸늘하게 덧붙였다.
“그리고 오늘까지 대리.”
말을 맺은 이룡자가 처연한 표정을 지으면서 고개를 가로저었다.
“무림 역사상 세 차례 연속 대리 비무는 전무후무한 일일 겁니다.”
“연달아 세 번이라면 이상한 일이 아니다, 사제.”
곤룡자가 묵직한 음성으로 단정 지었다.
“의도적인 거지.”
곤룡자마저 당찬일에게로 시선을 고정시켰다.
“그렇군요.”
고수에게서 몸을 돌린 당찬일이 입을 살짝 내밀었다.
“어쩌다 보니 내가 세 차례 연속 대리 비무라는 공전절후의 기록을 세웠네요.”
누구에게 하는 말일까?
독백처럼 읊조리던 당찬일이 돌연 제갈외에게로 몸을 틀었다.
“그런데 세 차례 연속 대리 비무가 무림법에 저촉되는 행위인가요?”
“설마.”
제갈외가 코웃음을 쳤다.
“무림법이 비록 엉성하기 짝이 없지만 그런 거지 같은 법 조항은 없어.”
“그럼 왜들 저러는 걸까요?”
“글쎄다?”
늙은 생강의 입가에 능청맞은 미소가 스치고 지나갔다.
“저들도 나처럼 제대로 보고 싶은 게 아닐까?”
관옥사룡 쪽을 힐끔거리며 제갈외가 의미심장한 표정을 지었다.
“대리로서가 아니라 당사자가 펼치는 진정한 삼수삼보를.”
“그런가요?”
제갈외를 따라서 관옥사룡 쪽을 곁눈질한 당찬일이 빙글 몸을 돌렸다.
“그럼 제대로 말을 하든가.”
번쩍!
당찬일이 기세를 발출하자 그의 지척에 있던 고수가 벌러덩 나자빠졌다.
‘이, 이것이 진정한 당 공자의 모습!’
펄럭.
당찬일이 기운을 발산함에 따라 그의 옷깃이 광풍에 나부끼는 깃발처럼 펄럭였다.
부릅!
당찬일이 발산하는 기도는 무인의 피를 끓게 만드는 무엇이 있었다.
‘아미타불, 아미타불…….’
난데없는 호승심으로 가슴이 벅차올라서 혜윤 스님이 연신 불호를 외웠고.
‘저 소협은 사람을 묘하게 자극하는군.’
한구석에서 돌아가는 추이를 관망하던 젊은 거지가 두 주먹을 쥐었으며.
‘훗!’
관옥사룡 가운데 누군가도 간만에 느껴 보는 승부욕을 자제하려 무진 애를 써야만 했다.
자신이 발산하는 기세에 사람들이 저마다 반응했지만 정작 당사자인 당찬일은 이를 의식하지 못한 듯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우리 당문은 비록 암기와 독으로 일가를 이루었지만 경신술이나 권각술 같은 기초 무학도 소홀하지 않았지요.”
당연한 소리다. 그럼 천하제일가라는 당문이 멀리서 치사하게 암기나 찍찍 뿌려 대고 붙으면 냅다 초록색 독병을 투척하는 간사한 문파일까?
“해서 우리 당문의 기초 경신술과 권각술에 삼수삼보를 결합시키겠어요.”
‘처음 시도하지만.’이라면서 당찬일이 입술을 다물자 관옥사룡 가운데 의외의 인물이 일어섰다.
“가전의 무술과 삼수삼보를 결합하겠다는 당 도우의 의도는 훌륭한 발상이라고 할 수 있소이다. 하지만 무술은 상대가 존재해야 제 위력을 발휘하는 법.”
귀빈석에서 성큼 걸어 나온 곤룡자가 당찬일에게 정중히 포권했다.
“미력하나마 빈도가 당 도우의 상대가 되어 드리리다.”
쿵!
“이사형?”
“이사형께서 어찌?”
몸을 일으킨 이는 뜻밖에도 곤룡자라서 감룡자와 이룡자가 대경했다.
당찬일이 삼수삼보를 시연하면 그와 손을 섞을 이는 자신뿐이라고 생각했던 이룡자는 선수를 빼앗긴 것만 같아서 아쉬웠다.
반면 관옥사룡 가운데 가장 침착한 감룡자는 굳이 자신들이 당찬일과 비무를 벌여야 하는지에 관해서 회의적인 입장이었다.
그런 판국에 이사형인 곤룡자가 나섰으니 어찌 놀라지 않을까?
“이사형, 이러지 않으셔도…….”
“아니다.”
감룡자의 말을 자른 곤룡자가 묵직한 음성으로 입을 열었다.
“삼수삼보는 섬서 지방을 평정했다는 소리까지 듣는 최고의 절학이다. 그러니 어찌 내가 가만히 있을 수 있겠느냐?”
곤룡자가 작심한 듯 입을 열자 감룡자가 대사형인 건룡자를 바라보았다.
‘대사형과도 상의가 되었다는 건가.’
건룡자도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았기에 감룡자가 난감한 표정으로 탄식했다.
‘굳이 이럴 필요까진 없지 않은가.’
이때 감룡자의 귓전으로 곤룡자의 전음이 파고들었다.
―그리 큰 걱정은 하지 말아라, 삼사제.
―이사형!
―설마하니 내가 한순간의 호승심을 이기지 못해서 이러리라고 생각하느냐?
곤룡자의 묵직한 한마디에 감룡자가 쓴웃음을 지었다.
산속에서 도를 닦는 도인이라고 해도 실상 일반인들과 별반 다르지 않았다. 보통 사람과의 차이를 말하라면 자신의 감정을 조금 더 숨길 줄 안다는 정도다.
솔직한 심정으로는 곤룡자가 아니라 자신이 나서서 당찬일의 삼수삼보를 보기 좋게 꺾어 버리고 싶었으니까.
이렇게 된 이상 별도리 없다.
둘째 사형을 응원할 수밖에,
감룡자의 눈빛이 누그러지자 곤룡자가 중앙으로 성큼성큼 나섰다.
“빈도는 화산파의 곤룡자라고 하오이다. 양해도 구하지 않고 이렇게 불쑥 나서서 송구스럽게 생각하오.”
곤룡자가 예의 있게 인사하자 관옥사룡의 추종자들이 펄펄 뛰었다.
“어마! 그럴 수도 있지요!”
“이 정도쯤은 결례도 아니라고요!”
결례다.
곤룡자의 행동은 두 가지 면에서 변명 불가인 실수를 저지르고 있었다.
아미파의 행사에서 무단으로 위력을 과시하려는 중이며, 당찬일에게 동의도 구하지 않고 비무를 청한 상태다.
결정적으로 곤룡자는 당찬일에 비해서 열 살이나 나이가 많다.
무도(武道)에서 연령을 따지는 건 우스운 일이지만 손윗사람이 손아래에게 비무는 청하는 예는 흔치 않다.
나이를 초월할 만한 명분이 있다면 몰라도.
이런 점을 의식했을까?
곤룡자가 잘 깎인 목검을 꺼냈다.
“섬서에서 우리 화산파의 속가제자가 설익은 이십사수매화검법으로 객기를 부리다 당 도우의 가르침을 받은 이에게 망신을 당했다지요?”
‘설익은’에 방점을 찍은 곤룡자가 양손으로 목검을 받쳐 들었다.
“이에 사과하는 의미에서 빈도는 이십사수매화검법의 중반 팔초로 당 도우의 삼수삼보를 보조할까 하오이다.”
이십사수매화검법의 중반 팔초!
그것도 본산의 촉망받은 도인이 펼치는 진정한 검초!
발끝에서부터 시작된 알 수 없는 흥분이 온몸을 휘감고 돌아서 손끝까지 전해지자 당찬일이 저도 모르게 입술을 꽉 깨물었다.
척!
“곤룡자 도장님의 가르침을 청합니다!”
당찬일이 진심에서 우러나온 포권으로 곤룡자를 환영하자 장내는 기묘한 분위기에 사로잡혔다.
화산파와 당문의…… 아니, 화산파와 삼수삼보의 진정한 승부가 이제 펼쳐지려 한다.
이때…….
“그리고.”
목검을 내린 곤룡자가 입을 열었다.
“오늘은 부처님의 자비로움이 온 누리에 가득하는 초파일(初八日)이오.”
불자도 아니면서 웬 초파일 타령?
“비무란 폭력적인 성격을 최대한 거세한 겨룸이지만 결국 피와 살이 맞부딪치는 현장이라 결국에는 물리적인 충돌이 발생할 수밖에 없소.”
당연하다. 비무도 결국 싸움이니까.
내공을 사용하지 않기에 치명성을 현저히 줄였지만 자칫 잘못하다간 큰 부상을 입을 수도 있는 게 비무다.
“하여 만에 하나라도 발생할 수 있는 불상사마저 제거하는 의미로 빈도는 당 도우의 몸에 손을 대지 않을 것이오.”
쿵!
비무 중에 상대방의 신체를 전혀 건드리지 않겠다!
“힘들 텐데…….”
팽위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상대방의 신체를 전혀 건드리지 않는다는 건 상대방과 합을 철저하게 맞춘 대타를 벌일 때도 난망하다.
그런데도 곤룡자는 그렇게 하겠노라고 선언했다.
“대단하군.”
제갈외가 자신의 허벅지를 두드렸다.
“곤룡자는 극도의 평화적인 비무를 벌이겠노라고 선언함으로써 자신이 범한 무례를 상쇄시켰어.”
과연 명가다운 대처라서 남궁천도 고개를 끄덕였다.
“옳습니다. 관록사룡이란 이름은 허명이 아니었군요.”
남궁천마저 곤룡자를 인정하는데 멍하니 서 있던 당찬일이 느닷없이 기이한 자세를 잡았다.
착!
그가 기이한 몸놀림을 시작하자 벙쪄 버린 곤룡자가 눈살을 찌푸렸다.
“지금 뭐 하는 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