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angmun reincarnation RAW novel - Chapter 141
당문전생 (140)
도우께선 진심이로구려
곤룡자가 물었지만 당찬일은 모종의 동작을 느리면서도 정확하게 구현하느라 여념이 없었다.
궁금하기는 남궁천도 마찬가지라서 당찬일을 바라보는 눈동자에 힘을 실었다.
평소라면 무슨 짓을 하든 상관이 없겠지만 비무를 앞두고 저게 뭐 하는 짓인지.
“저런 식으로 상대를 무시하는 건 아닌데.”
남궁천이 혀를 차자 제갈외가 그를 돌아보았다.
“흘흘…….”
뭐가 좋은지 몰라도 제갈외는 웃고만 있었다.
그리 유쾌한 상황이 아닌데.
“청청아.”
“예, 할아버지.”
제갈외가 난데없이 제갈청청에게 말을 걸자 남궁천이 미간에 주름을 잡았다.
일을 벌인 양반이 이제는 나 몰라라 딴청이라니.
“저 아이는 말이다, 무척이나 재미가 있어.”
당찬일을 가리키며 제갈외가 유쾌한 미소를 지었다.
“소위 말해서 지켜보는 맛이 있다고.”
몸을 앞으로 굽히면서 제갈외가 눈을 빛냈다.
“이번에는 또 어떤 일을 벌여서 노부를 즐겁게 해 줄는지.”
곤룡자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어 갈 무렵. 당찬일이 불쑥 물었다.
“도장께선 이 동작이 어찌 보이시나요?”
갑자기 질문을 받은 곤룡자가 쓴 입맛을 다셨다.
“그런 걸 어째서 빈도에게…….”
“사심 없이 대답해 주세요.”
지루하기 짝이 없는 동작을 반복하면서 당찬일이 재차 물었다.
“이 동작에서 무엇을 느끼세요?”
“아아…….”
솔직히 허접하다.
동작은 단순하다 못해서 단조롭고, 완급이라는 것도 찾아보기 힘들어서 지독하게 심심하다.
아무런 간이 되어 있지 않은 음식처럼.
밍밍하구려.
도사 체면에 이리 응대할 수는 없는 노릇이라 곤룡자가 적당히 둘러댔다.
“기초는 튼튼한 초식이지만 변화가 조금 아쉽구려.”
“변화만이요?”
그럴 리가!
“또한 강약의 조절도 조금 문제가 있고.”
“그리고는요?”
당찬일이 자꾸만 묻자 곤룡자가 난처해졌다.
솔직히 당찬일이 시연한 초식은 대단히 문제가 많아서 눈 뜨고 볼 수 없을 지경이었다.
그런데 자꾸만 평가해 달라니 참으로 난감하다.
하지만 내친 김이라고 생각한 곤룡자가 작심한 듯 입을 열었다.
“솔직하게 말해서 세기도 들쭉날쭉하고.”
“세기가 들쭉날쭉하다…… 또요?”
“무학을 이루는 줄기는 제법 튼실하나 이렇다 할 가지를 찾아볼 수 없소.”
곤룡자가 눈을 감았다.
“무릇 모든 초식은 근간을 이루는 줄기를 자잘한 곁가지 초식들이 받쳐 줘야 하는데 당 공자가 취하는 동작에서는 그런 것을 볼 수 없소.”
“결국 줄기 혼자서 외롭게 논다는 소리로군요. 그다음은요?”
참다못한 곤룡자가 당찬일을 불렀다.
“이보시오, 당 도우.”
당찬일이 고개를 들자 곤룡자가 탄식처럼 이야기를 풀어냈다.
“보아하니 도우께서 펼치는 수법은 당문의 기초 무학 같은데…….”
“맞아요.”
당찬일이 냉큼 답하자 곤룡자가 허탈하게 웃었다.
“가전(家傳)의 초식을 타인에게 평가받는 건 바람직한 처신이 아니라오.”
그래도 도인이고, 연장자라서 곤룡자가 정중하게 훈계했다.
하지만 당찬일의 생각은 많이 달랐다.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아요.”
“음?”
“부족한 가전의 무학을 타인에게 선보인다면 그 당장은 비웃음을 받겠지요. 하지만 그것을 밑거름으로 한 차원 발전시킨다면 가문의 홍복이 아닐까요?”
“그야 당연히…….”
“반대로 부족한 가전의 무학을 여타의 재주로 가린다면 당장은 체면에 손상이 가지 않겠지만 장기적으로 가문에 악영향을 끼치지 않을까요?”
당찬일의 통렬한 지적에 곤룡자가 꿀 먹은 벙어리가 되었다.
그리고…….
‘으음.’
‘끄응.’
군웅들 속에서 얼굴이 처참하게 썩은 몇몇이 보였다.
이들은 바로 당문의 원로들이었다.
원로전 노인들은 당찬일이 아미파의 봉축 행사에 혼자 참석한다는 소식을 듣고 부랴부랴 행장을 챙겼다.
역사상 아미파의 봉축 행사에 처음으로 정식 초대가 되었는데 열여섯 살의 소년이 홀로 참가한다는 사실이 영 거슬렸던 것이다.
그래서 원로들은 일반 향화객을 가장하고 아미파의 봉축 행사에 슬쩍 모습을 드러냈던 거다.
하면 당찬일은 원로들의 참석을 인지하고 지금의 발언을 한 것일까?
“도우의 말씀처럼 된다면야 무엇을 바라겠소? 하지만 그건 최상의 경우이고, 최악의 상황도 고려해야만 하오이다.”
곤룡자가 진중한 음성으로 덧붙였다.
“도우가 이야기한 성과를 거두지 못한다면 자칫 가문의 치부만 만천하에 공개하는 격이 될 수도 있소이다.”
“도장의 말씀은 틀림없는 사실이에요.”
고개를 끄덕인 당찬일이 곤룡자에게 돌발적인 질문을 던졌다.
“그럼 화산은 어땠을까요?”
“음?”
“화산파는 외부의 조력을 전혀 받지 않고 오늘날의 고절한 검공을 이루었을까요?”
“흠.”
곤룡자가 진중한 침음을 터트렸다.
“소림이나 무당은 어땠을까요?”
당찬일의 문제 제기는 충분히 고려할 만한 대상이었다. 화산이라고 처음부터 화산은 아니었을 테고, 소림이나 무당도 마찬가지였을 터.
처음에는 불완전하고 빈틈이 많은 무학을 수많은 사람과 시대가 아울러 오늘날의 이십사수매화검법이 나왔고, 칠십이종절예가 탄생했을 거다.
고심하는 곤룡자를 뒤로하고 양손을 들어 올린 당찬일이 몸을 돌렸다.
“좁은 소견으로 짐작하자면 지금의 명가들 중에서 외부의 도움을 받지 않은 문파는 없을 겁니다. 자신의 모자람을 인정하는 순간부터 발전이 이루어지니까요.”
누군가를 향한 통렬한 지적.
당찬일의 이야기를 듣고 한때는 무림에서 가장 두려운 사내로 손꼽혔던 당적이 입술을 깨물었다.
―거참.
틀린 소리가 하나도 없었으니까.
‘과연 사람들이 나를 무서워했던 이유가 내 무학 때문이었을까?’
절대로 아니다. 사람들은 어디까지나 당적의 무시무시한 독술을 두려워해서였다.
오죽하면 그 당시 무가에서 누군가 급사하면 당적이 다녀갔나, 하는 이야기가 돌았겠는가.
무학이 아니라 다른 방면으로 이름을 높이기로는 당웅도 만만치 않았기에 두 원로는 서로를 바라보며 머쓱한 표정을 지었다.
“그래서 우리 당문도 무려 육백 년이란 시간 동안 지켜 오던 기존의 구습을 과감히 탈피하기로 했지요.”
우연일까?
좌중을 돌아보던 당찬일의 시선이 씁쓸해하는 당적과 당웅을 스치듯 지나친 것은?
당적과 당웅에게서 눈을 뗀 당찬일이 유장하게 말을 이었다.
“이러한 결정을 내리는 데는 가문을 사랑하시는 원로 어르신들의 전폭적인 지지가 바탕이 되었고요.”
애초부터 당찬일은 당적과 당웅이 이곳에 참석했다는 걸 꿰뚫고 있었다.
다시 말하지만 전각안은 모든 것을 기억하는 눈이니까.
“이것은 당문본학(唐門本學)이라고 해요.”
당찬일이 힘주어 입을 열었다.
“도장의 말씀처럼 당문본학은 당문이 개파한 이래로 거의 손을 보지 않았기에 부족한 부분이 산더미처럼 많은 몸놀림이에요.”
자신의 손바닥을 내려다보던 당찬일이 천천히 몸을 틀어서 곤룡자와 마주했다.
“하지만 당문의 기초 무학답게 기본에는 충실한 무공이라고 자부해요.”
당찬일의 술회에 곤룡자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건 사실이었으니까.
단지 너무나 예스러운 움직임이라서 시대에 뒤떨어져도 한참을 뒤떨어졌다는 점이 문제였다.
변화, 강약, 세기, 완급 조절, 기타 모든 면에서 말이다.
“이제부터 근본밖엔 내세울 것이 없는 당문본학으로 도장의 이십사수매화검법을 상대할 겁니다.”
당찬일이 곤룡자에게 다시 한 번 정중하게 포권했다.
“홀로 외롭던 당문본학을 풍성하게 꾸며 볼 터이니 잘 부탁합니다.”
당찬일을 가만히 지켜보던 곤룡자가 지나가듯 중얼거렸다.
“도우께선 진심이로구려.”
당찬일이 명쾌하게 답했다.
“당문은 언제나 진심이었답니다.”
살아남기 위해서!
당찬일의 눈에서 화광이 충천했다.
무인은 어쭙잖은 도발 따위에 넘어가지 않는다. 유치한 말 몇 마디는 신경조차 쓰지 않는다.
하지만 무인이 본능적으로 반응하는 지점이 있다.
그건 바로 순수한 투기(鬪氣)!
당찬일이 발산하는 순백색의 투기는 청정하던 곤룡자의 가슴을 뜨겁게 만들었다.
‘홀가분하군.’
분명 곤룡자는 당찬일에게 몇 가지의 결례를 범했다. 하지만 그의 행동은 제갈외와 남궁천의 도발에 의한 자구책이라고 봐야 한다.
그러나 이제부터 세속적인 예의나 형식은 무의미하다.
상대방이 순도 백의 투기로 나오는데 무엇을 더 따지겠는가.
“좋구려!”
호기가 치밀어서 곤룡자가 멋들어진 미소를 머금었다.
진심은 진심으로 상대해야 하는 법.
“준비하시오.”
쿠르릉!
곤룡자의 마음에 진심이 머물자 그의 기세가 일변(一變)했다.
‘유장하구나!’
목검을 수평으로 겨눈 곤룡자에게서 산중을 오가는 소슬바람을 느낀 당찬일이 한 걸음 뒤로 물러섰다.
가 볼까?
앞으로 나서며 당찬일이 홀로 비파를 타는 여인을 그려 냈다.
띠잉―.
비파 소리는 듣기에 썩 훌륭했지만 그 자체만으로는 너무나 가냘파서 너무도 위태로웠다.
‘분명 줄기는 제법 튼실해.’
목검을 쳐 내며 곤룡자가 미간에 주름을 잡았다.
‘하지만 갈래 초식이 없어서 지나치게 정직하다.’
파앗!
곤룡자의 목검이 허공에서 아홉 번 회전했다.
매화구변(梅花九變)!
매화가 아홉 번을 변하니 그 신묘함은 다할 길이 없다!
예로부터 아홉은 가장 많은 수를 의미한다.
그래서 하나와 둘로 다할 수 없는 것은 셋으로 묶어 그 많음을 보여 주고, 셋으로 다할 수 없는 것은 아홉으로 그 지극히 많음을 보여 준다고 했다.
매화구변은 아홉으로 지극히 많음을 보이는 이십사수매화검법의 중반부를 여는 변초다.
파라락!
과연 산문의 직전제자와 속가는 차원이 다른 걸까?
곤룡자의 손에서 매화구변이 펼쳐지자 장내는 흡사 춘삼월로 거슬러 올라가는 듯했다.
‘아아.’
‘아름답구먼.’
중인들이 곤룡자의 일검에 흥취가 도도해졌다.
검초 하나로 모든 이들의 감흥을 일거에 사로잡았으니 과연 화산파라 하겠다.
물론 곤룡자는 약속대로 당찬일의 근처로는 검초를 가져가지 않았다. 그저 매화구변이라는 초식이 얼마나 아름다운가를 선보였을 뿐이다.
‘이것이야말로 화산의 진정한 인사인가?’
초식에 담긴 곤룡자의 의도를 파악하고 기분이 좋아진 당찬일이 팔을 길게 뻗어 다소 긴 포권으로 화답했다.
이제 예의를 갖추었으니 본격적으로 당문본학을 살찌울 차례다.
‘비파 소리 호젓하니 통소가 뒤를 받쳐 주고.’
전진을 멈춘 당찬일이 발을 구르자 그의 잔영이 수많은 매화 사이에서 노닐었다. 설명할 필요도 없이 이 보법은 공성벽이었다.
‘훗.’
난데없이 당찬일의 잔영이 솟아났지만 곤룡자는 당황하지 않고 검결지를 맺은 왼손을 옆으로 쭉 폈다.
매화만개(梅花滿開)!
겨우내 인고하던 매화가 봄을 맞이하며 화려하게 꽃을 피우는 모습을 형상화한 초식!
이전의 매화구변에 이어 매화만개까지 이어지자 당찬일의 주변은 매화의 세례로 발 디딜 틈조차 없었다.
하지만 당찬일도 곤룡자처럼 당황하지 않았다.
아니, 도리어 그는 이러한 자리를 마련해 준 제갈외와 남궁천에게 감사했으며, 진심으로 자신을 상대해 주는 곤룡자가 고마웠다.
그렇다고 고개를 숙이거나 포권으로 사의(謝意)를 표할 수는 없다.
무인은 무인의 방식으로 고마움을 전하는 거다.
이렇게.
파―앗!