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angmun reincarnation RAW novel - Chapter 149
당문전생 (148)
마물의 숙주
단순한 방울 소리였다.
언제든, 어디에서든 울려 퍼질 만한 평범한 방울 소리.
하지만 방울 소리에는 사람의 심신을 안정시키는 무엇이 깃들어 있었다.
“음!”
막 칼을 내치려던 현월 도장이 눈동자만 돌려서 방울 소리의 진원지를 쫓았다.
딸랑―.
천천히 걸어 나오는 당찬일의 손엔 영롱한 방울이 하나 들려 있었다.
“모두 물러나세요.”
당찬일이 나지막이 명하자 아직까지 목을 쓰다듬던 젊은 거지가 뒤로 빠졌다.
힐끗.
서로를 바라보던 제갈외와 낙산 사태도 약속이나 한 듯이 물러섰다.
옥군은 애당초 전면에 나서지도 않았고.
이렇게 되자 중앙에는 현월 도장과 제갈청청 그리고 당찬일만이 남게 되었다.
딸랑―.
다시 한 번 방울을 흔들면서 당찬일이 중얼거렸다.
“장문께서도요.”
저 방울은 무엇일까?
또, 당찬일은 무슨 생각으로 제갈청청을 혼자서 상대하겠다는 걸까?
“지금 제갈 여도우는 천고의 마물을 얻어서 인간을 초월한 상태요! 그런 제갈 여도우를 어찌 당 도우께서 홀로 감당하려는 거요?”
제갈청청을 곁눈질하면서 현월 도장이 외쳤다.
“아니지요.”
당찬일이 현월 도장의 말을 부정했다.
“제갈 여협은 마물(魔物)을 얻은 적이 없어요.”
딸랑―.
방울을 또 한 번 울려서 제갈청청을 견제한 당찬일이 씹어뱉듯 이야기를 토했다.
“마물의 숙주가 되었을 뿐.”
당찬일이 사태의 본질을 약여하게 결론 내리자 살짝 놀란 현월 도장이 그를 곁눈질했다.
지나치게 냉정하다.
지금처럼 급박한 상황을 맞이하고도 평정심을 잃지 않고 상황을 분석하다니.
“아무튼 지금의 제갈 여도우는 매우 위험하다오! 당 도우 혼자 감당하기 어렵소!”
당찬일의 입꼬리가 위로 올라갔다.
“천마왜보다는 위험해 보이지 않습니다만?”
그렇다!
당찬일은 천마왜라는 무시무시한 마물을 상대했었다! 그것도 무려 둘씩이나!
사옥정일지도 모르는 구슬을 소지한 제갈청청이 어느 정도의 위력을 발휘할지는 모르지만 전설상의 천마왜와 겨루었던 당찬일이라면 능히 감당하지 않을까?
할 말을 잃은 현월 도장이 숨을 들이켰다.
솔직히 공력을 일으키긴 했지만 현월 도장은 정말로 손을 쓰고 싶지 않았다.
여타의 무학으로는 제갈청청에게 조금의 타격도 입히지 못해서 부득불 사문의 비기인 칠십이파검을 준비했지만 그의 마음은 납덩이라도 내려앉은 듯 무거웠다.
칠십이파검은 상대를 제압하는 검법이 아니니까.
대상을 완전히 파괴해야만 끝이 나는 절멸의 무학, 그것이 바로 칠십이파검이었으니까.
하여 제갈청청에게서 구슬을 회수하면 물리적으로든 도의적으로든 책임을 지려고 했는데, 당찬일이 대신 나서 주었으니 얼마나 고맙겠는가.
스스슥.
갑자기 당찬일에 대한 신뢰도가 급상승한 현월 도장이 빠르게 후퇴했다.
“그럼 부탁하오.”
이건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었다.
정도 무림을 대표하는 구파일방의 장문인이 고작 열여섯 살짜리 소년에게 부탁이라는 것을 하다니.
하지만 현월 도장은 주저함이 없었다. 이전부터 그는 당찬일에 대해서 여러 이야기를 들었으니까.
“나중에 반드시 사례하리다.”
현월 도장이 형식적으로 인사를 건네자 그를 돌아보지도 않고 당찬일이 피식 웃었다.
“당연하지요.”
당찬일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어졌다.
“장문께선 제게 많이 고마우실 테니까요.”
오른팔을 내리면서 당찬일이 몸을 사선으로 틀었다.
“미안하기도 할 테고요.”
이게 무슨 말일까?
그렇다면 당찬일은 현월 도장의 곤궁한 처지를 고려해서 대신 나선 것이 아니란 소리일까?
당찬일의 표정에서 무언가를 느낀 현월 도장이 쓴웃음을 지었다.
“그럼.”
긍정이나 부정의 의사도 피력하지 않은 현월 도장마저 물러나자 제갈청청과 일대일 구도가 되어 버린 당찬일이 그녀의 정면으로 방울을 들어 올렸다.
“제자리로 돌아가.”
우웅―.
사람의 말을 알아듣기라도 한다는 건지 당찬일의 명령에 구슬이 파동을 일으켰다.
“훗,”
당찬일이 짧은 웃음을 터트렸다.
곱게 말한다고 듣는다면 지금과 같은 사달이 벌어지지 않았을 테니까.
그나마 구슬이 제갈청청의 이지(理智)를 완전히 제압하기 전이라서 파괴적인 행동을 자제하는 모양이니 한시라도 빨리 그녀에게서 마물을 분리해야 한다.
딸랑―.
과연 탈혼령은 효과를 발휘해서 방울 소리가 들릴 때마다 제갈청청이 멈칫거렸다.
“저것이 사옥정일지는 모르지만 최소 천마왜와 결을 같이하는 물건인 모양이로군.”
손바닥을 적시는 땀을 옷에 문지르며 제갈외가 어금니를 물었다.
“그것을 어찌 아시오?”
낙산 사태의 물음에 제갈외가 한숨을 몰아쉬었다.
“청청이가 말하길 찬일이가 구슬을 흔들 때마다 천마왜가 동요했다고 하더이다.”
“대체 저 구슬이 무엇이기에…….”
딸랑― 달랑―.
탈혼령을 거푸 흔들어서 제갈청청의 움직임을 억제시킨 당찬일이 그녀에게로 다가서는 순간!
쭈아악!
제갈청청이 몸을 뒤틀면서 지니고 있던 칼로 당찬일을 내리쳤다.
콰직!
당찬일이 가까스로 피했지만 제갈청청의 검이 지나간 자리엔 굵은 자국이 남았다.
“청청이의 검학이 저런 위력을 발휘하다니!”
제갈청청은 또래의 여인들보다 지혜롭고 총명하지만 무학의 성취도는 부친을 닮아서 그리 뛰어난 편은 아니었다.
하지만 지금의 제갈청청은 천하를 오시할 위력의 무공을 사용하고 있다.
‘현월 도장이 칠십이파검을 사용하려고 했던 이유가 있었군.’
고개를 끄덕인 당찬일이 남궁천을 곁눈질했다.
―남궁 가주님.
―음?
당찬일이 난데없이 전음하자 남궁천이 깜짝 놀랐다.
―제갈 여협의 손발을 묶어 주세요.
당찬일은 하고 많은 사람을 놔두고 왜 자신에게 부탁하는 걸까?
―낙산 사태는 반탄강기의 여파로 아직까지 기혈을 가라앉히지 못하고 있어요. 또한 제갈 노사는 손녀딸에게 손을 쓰기 힘들지요.
젊은 거지야 단박에 깨졌으니까 그렇다 쳐도 현월 도장은?
―현월 장문은 여러모로 심기가 복잡해서 자칫하면 실수를 범할지도 몰라요.
그래서 결국 자신이란 건가.
가만히 고개를 끄덕인 남궁천이 검집에서 칼을 꺼내지 않고 그대로 들었다.
―삼초 이내로 끝내도록 하세.
당찬일의 답변을 듣지도 않고 허공으로 몸을 띄운 남궁천이 제갈청청을 향해서 수직으로 칼을 휘둘렀다고 생각한 순간!
휘르릉!
그의 검이 일정 지점에서 기이한 각도로 틀어지면서 제갈청청의 전신을 옥죄였다.
사방금(四方禁)!
남궁세가가 자랑하는 철검십식(鐵劍十式) 가운데 두 번째의 초식!
사방, 다시 말해서 동서남북을 단 일초의 검식으로 묶어 버리는 희대의 절초!
남궁천의 사방금이 자신을 둘러싸자 제갈청청이 몸을 돌렸다.
땅! 땅! 땅! 땅!
단 네 번!
제갈청청은 네 차례 검을 휘둘러서 남궁천의 사방금을 완벽히 틀어막았다.
‘역시.’
사방금에 네 개의 방위를 통제한다고 해서 네 차례의 변화를 보이는 것이 아니다. 수많은 변환을 거듭하면서 사방을 통제하는 것일 뿐.
하지만 제갈청청은 사방금이란 검초가 변환하는 시점을 정확히 꿰뚫어 보고 그 허리를 잘라 냈던 것이다.
‘저것은 제갈 여협의 눈이 아니다.’
마물의 시야!
제갈청청의 텅 빈 동공은 더 이상 그녀의 눈이 아니었다. 그 자리엔 사옥정일지도 모르는 마안(魔眼)이 대체되어 있었다.
사방금이 간단히 가로막혔지만 처음부터 예상했던 전개였기에 남궁천은 당황하지 않았다.
‘내 자식을 빼앗아간 놈이라면 이토록 호락호락하게 물러나지는 않겠지.’
파앗!
공력을 끌어올리며 남궁천이 수직으로 세웠던 검을 아래에서 위로 힘차게 퍼 올리다 돌연 태산압정(泰山壓頂)식으로 찍어 눌렀다.
비류폭(飛流瀑)!
철검십식 가운데 네 번째의 초식!
통상적인 검초는 위면 위, 아래면 아래쪽을 공격한다. 그러나 비류폭은 일반적인 검법과는 궤를 달리해서 상변과 하변을 동시에 노리는 수법이다.
거기다 천하십이대검류(天下十二代劍流) 가운데 산검(散劍)과 중검(重劍)이 복합으로 깃든 검식이라서 단일 검류를 사용하는 검초보다 위력이 몇 곱절 위였다.
쿠르릉!
폭포수가 벼락처럼 떨어지듯 남궁천의 비류폭이 직각으로 퍼부어지자 지금껏 여유 만만하던 제갈청청의 얼굴에 처음으로 어떤 표정이 떠올랐다.
그것은 바로 귀찮음.
그녀가 비류폭을 향해서 손을 쭉 뻗자 위와 아래로 제갈청청을 윽박지르며 다가서던 남궁천이 뒤통수가 뻥 뚫리는 듯한 충격을 받았다.
그리고 눈앞에서 펼쳐지는 어떤 초상.
―이 녀석은 나를 뛰어넘을 거요!
―벌써부터 갓난아이의 미래를 결정지으시려고 하세요?
―무가의 자식이 무가의 피를 잇는 것은 당연하지. 그럼 부인께서는 이 아이를 글줄이나 달달 파는 서생 나부랭이로 키우고 싶소?
―그건 그러네요.
소리 내어 웃던 자신의 부인은 너무도 현숙했으며 그녀의 품에서 방싯거리던 아이는 천상에서 안겨 준 축복이었다.
그랬다. 분명 그런 시절이 있었다.
하지만 어느 날을 기점으로 모든 것이 바뀌었다.
극락의 선물이었던 아이는 한순간에 절명했고, 그 충격으로 자신의 부인은 정신을 놓아 버렸다.
언제나 웃음이 끊이지 않던 가문은 삽시간에 초상집으로 변모했으며 가신들과 시비들은 닥쳐 온 위기를 감당하느라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
그때 자신은…….
‘난, 나는 무엇을 했지?’
세가주로서 흔들리는 가문을 다잡아야 마땅했거늘 정작 자신은 자식을 잃은 상실감에 방관이라는 도피처로 피신해서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그토록 사랑했던 부인이 하루하루 시들어 갔는데도 말이다.
마침내 한 떨기 꽃과 같았던 부인이 말라비틀어지고 나서야 정신을 수습했지만 이미 자신에게 남은 건 허울뿐인 가주라는 직함이 전부였다.
주르륵!
남궁천의 눈가에서 굵은 눈물이 흘러내렸다.
“부인…….”
그가 잃어버린 것은 아이가 아니었다. 아이의 어머니이자 자신의 동반자였던 부인이었다.
콱!
남궁천의 가슴에 커다란 못이 하나 틀어박혔다.
아픈가?
원통한가?
단장(斷腸)이란 이런 것일까?
가슴을 부여잡으며 남궁천이 부들부들 몸을 떨었다.
만약 그때로 돌아가서 모든 것을 되돌릴 수만 있다면 자신의 모든 것을 바쳐도 아깝지 않을 텐데.
그때로 돌아갈 수만 있다면.
‘아아.’
남궁천의 시야가 천천히 좁아지는데 누군가 그의 뺨을 어루만졌다.
‘과, 광이냐?’
아이의 태명은 광(光)이었다. 세상을 밝게 비추라는 의미로.
하지만 아이는 세상을 밝히지 못했다. 타오르기 전에 꺼져 버려서 재조차 남기지 못했다.
‘광아!’
남궁천이 손을 들었다.
―이제 일어나세요.
‘부인?’
손길의 주인은 그의 아들이 아니었다. 자신의 방임으로 시들어 버린 부인이었다.
―광이와 저는 없지만 당신에겐 해야 할 일이 남았잖아요.
‘부인!’
―그때의 실수를 되풀이하지 말아요.
볼에서 손을 뗀 초상이 천천히 옅어지자 남궁천이 입을 벌렸다.
‘잠시! 잠시만!’
그의 외침을 들었을까?
발길을 멈춘 남궁천의 부인이 똑바로 손을 들어 어딘가를 가리켰다.
그곳에는 자신의 신호만을 기다리며 눈을 빛내는 당찬일이 있었다.
‘그렇구나!’
처음 보자마자 당찬일이란 아이에게 그토록 끌렸던 이유가 이것이었다.
자신은 당찬일이란 아이에게서 너무도 일찍 이승을 떠난 아들의 미래를 엿보았던 거다.
만약 자신의 아이가 정상적으로 성장했다면 저 모습이었을 텐데.
아니…….
‘저렇게 자랐으면 좋았을 텐데.’
그렇다면 이런 모습으로 늘어져 있어서는 안 된다.
훌륭하게 성장한 광이에게 부끄럽지 않으려면 단장(斷腸)의 아픔을 떨치고 우뚝 서야만 한다.
심연의 끝자락까지 밀고 들어온 열패감을 힘차게 밀어내면서 남궁천이 칼을 들어 올렸다.
“차아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