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angmun reincarnation RAW novel - Chapter 152
당문전생 (151)
구슬과 감응하는 사람
당찬일이 불렀지만 현월 도장은 완고한 등을 보인 채로 몸을 돌리지 않았다.
“그런 것 신경 쓰지 말고 푹 쉬시구려.”
현월 도장이 여전히 그를 외면했지만 당찬일은 그의 등판을 보며 시리도록 차가운 웃음을 지었다.
전과 다르게 지금은 현월 도장의 등이 무척이나 비좁다고 생각하면서.
“당장 물으실 것이 없다면 장문께 제가 하나만 여쭈어볼게요.”
현월 도장의 양해도 구하지 않고 당찬일이 입을 열었다.
“장문께선 정말로 구슬에서 사기를 몰아내셨나요?”
쿵!
순간 멈칫했던 현월 도장이 곧 인상을 찌푸렸다.
“당 도우의 말씀처럼 구슬에서 사기를 완벽히 몰아내지 못했소이다.”
현월 도장이 말을 이었다.
“빈도가 구슬을 완벽하게 정화시켰다고 말했었지요? 그건 실언이었나 봅니다. 이 세상엔 완벽이란 존재하지 않는 것을.”
현월 도장이 자책하는 기색을 보이자 당찬일이 고개를 돌리며 ‘그렇군요’라고 중얼거리다 돌연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런데 왜 저는 구슬에서 형언할 수 없는 악의(惡意)를 느꼈을까요?”
쿵!
당찬일의 의뭉스러운 혼잣말은 현월 도장의 가슴에 비수처럼 틀어박혔다.
“그렇다고 전해지는 것처럼 광증(狂症)이 도질 정도는 아니었거든. 딱 사람을 미혹시킬 만큼만 남아 있었지.”
현월 도장에게 고개를 돌리며 당찬일이 싸늘한 미소를 지었다.
“마치 누가 남겨 놓은 것처럼.”
잠시 숨을 멈추었던 당찬일이 짧게 덧붙였다.
“일부러.”
분노에도 수치가 있다.
한바탕 욕을 퍼붓는 것으로 끝날 분량이 있겠고, 한 방 날리지 않고서는 분이 풀리지 않는 경우도 있다.
그보다 분노의 양이 많다면 상대방에게 상해를 입힐 것이고, 분노가 극에 달한다면 그의 목숨을 취할 것이다.
악의도 마찬가지.
지금껏 누구도 계량하지 않았지만 악의도 분노처럼 단계를 나눈다면 사람을 미혹시키는 수준에서 미치게 만드는 지경까지 구분할 수 있으리라.
당찬일의 눈빛을 담담하게 받아 내던 현월 도장이 결국 무거운 탄식을 터트렸다.
“이 모든 일이 매듭지어지면 모두에게 석고대죄하려 했거늘, 당 도우께서 너무 일찍 알아차리셨구려.”
현월 도장이 작심한 듯 입을 열었다.
“그렇소이다. 빈도는 구슬에서 일정한 악의가 남았음을 알면서도 여러분께 선보였소.”
“공개할 대상까지 정확히 지정해 놓고서 말이지요?”
당찬일의 질문은 송곳처럼 이어졌다.
“저와 제갈 여협 그리고 남궁천 가주님이 선발된 이유는 모두 구슬과 연관이 있었지요?”
“그건…….”
현월 도장이 어금니를 물었다.
곤궁한 처지로 내몰린 현월 도장이 딱했을까?
“그 부분에 관해서는 빈니가 설명하겠어요.”
문이 열리며 낙산 사태가 들어섰다.
“당 시주의 말씀처럼 세 분은 특별히 선발되었어요. 하지만 그건 현월 도장의 생각이 아니라 이 늙은 비구가 먼저 제안했었답니다.”
“그 의견에 나도 한 표 던졌다네.”
제갈외가 제갈청청의 손을 잡고 방으로 들어섰다.
이렇게 모이자 사옥정일지도 모르는 구슬을 둘러싼 회합의 주인공들이 다시 뭉친 격이었다.
아니, 한 사람 빼고.
“결국 그랬군요.”
남궁천마저 돌아오자 특별히 선발된 세 사람이 모두 모였기에 당찬일이 길게 숨을 내쉬었다.
“천마왜를 목격한 남녀와 사옥정일지도 모르는 구슬 때문에 자식을 잃은 아버지. 저 마물을 공개하기에 더없이 좋은 관객이었겠지요.”
당찬일의 신랄한 지적에 남궁천의 안색이 어두워졌다.
“우리 중에서 구슬과 감응하는 사람이 누구인지, 마물과 동화되면 어떤 위력을 발휘하게 되는지, 그 점을 여러분께선 알고 싶으셨지요?”
쿵!
“그래서 청성파의 문도들조차 모르는 비처가 필요했고요?”
낙산 사태와 현월 도장 그리고 제갈외가 벌인 행위는 넓은 범주에서 생체 실험에 준하는 위험한 행동이었다.
당연히 정파를 대표하는 세 사람의 명예에 누가 되는 행동이었던지라 이런 비밀 공간이 필요했던 거다.
자칫하면 만인의 지탄을 받을 수 있으니까.
“이 늙은 비구의 욕심이었소. 부디 용서하시구려.”
낙산 사태가 무릎을 꿇자 제갈외도 탄식했다.
“나도 할 말이 없구먼.”
존경받아 마땅한 원로들이 이렇게 나오자 남궁천이 눈을 감았다.
이 모든 것이 무림을 위해서라든가 대의가 어쩌니 했다면 자리를 박차고 나갔을 것이다.
하지만 두 명의 원로들은 일체의 변명 없이 잘못을 시인했기에 남궁천은 그저 탄식을 터트릴 수밖에 없었다.
낙산 사태와 제갈외가 사리사욕 때문에 이런 일을 벌이지 않았다는 것쯤은 알고 있었으니까.
그래도 꼭두각시처럼 놀아났다는 사실은 변함이 없지만.
“흠.”
결국 마음을 굳힌 남궁천이 낙산 사태에게로 다가갔다.
“이미 벌어진 일인데 어쩌겠습니까. 그만 일어나세요.”
누가 뭐라고 해도 세 사람 가운데 가장 심기가 상했을 이는 남궁천이었다.
원로들의 행동으로 말미암아 남궁천은 애써 가슴에 묻었던 자식을 다시 파내야만 했으니까.
그런 그가 용서하겠다고 나섰으니 어쩌겠는가.
제갈청청이 고개를 숙이고 당찬일도 딱딱한 얼굴을 조금은 풀었다.
“청청아…….”
제갈외가 손녀에게 다가섰다.
“못난 할아비를 용서해라.”
제갈외가 제갈청청의 손을 잡았다.
“할아비의 욕심이 과했어.”
욕심이 아니라 계산이 잘못되었던 거다.
아무리 구슬이 무공을 증폭시킨다고 하더라도 자신의 손녀가 구파일방의 장문과 맞설 정도가 될 거라고는 예측하지 못했다.
“전 괜찮아요, 할아버지.”
제갈외의 손을 맞잡으며 제갈청청이 힘없이 웃었다.
“단지 저 때문에 고생하신 여러분들께 죄송할 따름이에요.”
모두에게 고개를 숙인 제강청청이 침상에 앉아 있는 당찬일에게로 다가왔다.
“특히나 당 공자께서 이성을 잃은 저를 막느라 고생하셨다고 들었어요.”
공손하게 포권하는 제갈청청에게선 일 년 전의 거만함 따위는 찾아 볼 수 없었다.
웃는 낯에 침 못 뱉는다고.
제갈청청이 사과하자 당찬일이 손을 내저었다.
“아니에요. 저도 같은 일을 겪었는데요.”
담담하게 웃던 당찬일이 가슴에서 시작된 통증 때문에 몸을 굽혔다.
“크흑!”
“당 공자!”
제갈청청이 당찬일에게 달려들어 그를 감싸 안았다.
“괜찮……!”
텅―.
그 순간 제갈청청에게로 밀려 들어오는 정체를 알 수 없는 장면들과 사람들.
“어맛!”
당찬일에게서 떨어진 제갈청청이 손을 입으로 가져갔다.
“왜 그러느냐?”
화들짝 놀란 제갈청청이 제갈외의 물음에 억지웃음을 지었다.
“아, 아니에요, 잠시 머리가 아파서…….”
대충 둘러대는 제갈청청을 의아하게 바라보던 제갈외가 고개를 끄덕였다.
하긴.
자신의 손녀도 잠시나마 구슬의 조종을 받았으니 아직은 후유증이 남아 있을 터.
“몸이 온전치 않으면 쉬어라.”
“아, 예.”
고개를 푹 숙인 제갈청청이 방을 나갔다.
그런 그녀를 의미심장한 시선으로 주시하던 당찬일이 곧 자신의 허벅지를 더듬었다.
구슬의 지배에서 벗어나려고 칼로 찌는 부위는 붕대로 싸매져 있었기에 상흔을 볼 수는 없지만 당찬일은 직감적으로 알 수 있었다.
‘상처가 벌써 아물고 있어!’
고작 하루가 지났을 뿐인데 자해한 부위가 낫는 중이라는 건 말이 안 된다.
‘이것도 구슬의 힘인가.’
잠시 고심하던 당찬일이 고개를 돌렸다.
“쉬고 싶군요.”
이만 나가 달라는 정중한 요청.
“그, 그렇군!”
“우리가 환자 앞에서 경우 없이 떠들어 댔어!”
모두가 설왕설래를 나누면서 겸연쩍은 표정으로 방을 나섰다.
그날 저녁.
당찬일이 쉬고 있는 침실로 누군가 스며들었다.
스르륵.
침입자의 신법은 매우 뛰어나서 옷깃 스치는 소리 하나 없이 몸을 움직였다.
말 그대로 유령처럼 당찬일에게 다가선 침입자가 그를 내려다보았다.
슥.
촌각 동안 그를 살피던 침입자가 손을 내밀어 당찬일의 수혈을 짚었다.
“…….”
그러고도 한참 동안 미동 없이 당찬일을 응시하던 침입자가 곧 그의 상의를 풀었다.
상의가 탈의되자 당찬일의 가슴이 드러났다.
십육 세의 나이라고는 믿기지 않는 당찬일의 탄탄한 가슴과 복근을 유심히 살피던 침입자가 곧 그의 상체를 손가락으로 더듬었다.
침입자의 정체는 남자였으니 누가 본다면 남색을 자행하는 광경으로 보일 터.
하지만 침입자는 아랑곳없다는 듯 당찬일의 몸을 주무르기에 바빴다.
그렇게 한참 동안 당찬일을 더듬던 침입자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흐음…….”
당찬일에게서 손을 뗀 침입자가 다시금 어둠 속으로 몸을 묻었다.
스르륵.
처음부터 스며들지 않았던 것처럼 침입자가 사라졌지만 당찬일은 여전히 눈을 움직이지 않았다.
침입자가 방을 빠져나간 지 일각 후.
이번에는 다른 사람이 모습을 드러냈는데 그는 처음의 침입자와 달리 인기척을 숨기지도, 행동거지를 조심하지도 않았다.
당찬일이 누워 있는 침상으로 다가온 두 번째 침입자가 그의 손을 잡았다.
“당 공자, 당신은 대체 어떤 인생을 살았던 건가요.”
두 번째 침입자의 정체.
제갈청청이었다.
당찬일의 손을 잡고 한동안 그를 내려다보던 제갈청청이 손을 풀려는 순간.
“무엇을 봤지요?”
“헉!”
자는 줄로만 알았던 당찬일이 입을 열자 깜짝 놀란 제갈청청이 뒤로 물러서려 했다.
꽉!
그녀의 손을 강하게 잡은 당찬일이 재차 물었다.
“저한테서 낮에 무엇을 본 거예요?”
“아, 아니…….”
당찬일에게 잡힌 손을 풀려고 제갈청청이 허둥거렸다.
“당황하지 말아요.”
당찬일의 나지막한 말에 제갈청청이 몸부림을 멈췄다.
“나는 단지 여협께서 무엇을 봤는지 알고 싶어요.”
“으음.”
당찬일의 차분한 어조에 심신이 안정된 제갈청청이 팔에 힘을 풀었다.
“내가 본 것이 당 공자의 과거일지는 확신할 수 없어요. 그저 나의 공포가 구체화한 산물일지도 몰라요.”
끄덕끄덕.
당찬일이 고개를 끄덕이자 제갈청청이 입을 열었다.
“아이가 있어요.”
파앗!
아직까지 제갈청청과 당찬일은 손을 맞잡은 상태.
제갈청청이 입을 열 때마다 그녀가 보았던 장면들이 당찬일에게 전달되었다.
“누군가 아이를 안고 달려요.”
파앗!
아이를 안고 달음박질치는 인영은 사내였다. 아니…….
‘사내의 뒤로 같이 달리는 여인!’
당찬일의 동공이 어떤 여인의 초상을 쫓았다. 그녀는 아이를 안은 사내를 비호하듯 연신 뒤를 돌아보면서 걸음을 재촉했다.
“이때 누군가 아이를 뒤쫓아요.”
파앗!
거친 숨소리를 내면서 아이를 안고 내달리는 사람들을 추적하는 인영.
“그는, 그는……!”
으드득.
얼마나 긴장했는지 제갈청청이 손아귀에 힘을 잔뜩 주었다.
그리고 제갈청청이 뱉은 놀라운 한마디.
“눈이 없어요.”
눈이 없어요. 눈이 없어요. 눈이…….
“눈이 없는 추적자가 아이를 안은 사람을 덮쳐요!”
여인이 추적자를 막아서고…….
부르르.
제갈청청의 떨리는 어깨만큼이나 섬뜩한 장면이 스치듯 지나가고 힘없이 무너지는 여인을 타 넘으며 도약한 추적자가 아이를 안은 사내에게 떨어졌다.
무서운 기세로.
이때…….
“드디어 그가 도착했어요!”
그라니? 대체 누구를 말하는 것일까?
챙!
수리매가 먹이를 발견하고 직선으로 하강하듯 떨어져 내리는 사내를 막아선 인영.
그는 바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