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angmun reincarnation RAW novel - Chapter 153
당문전생 (152)
비밀을 나누면……
‘아버지?’
그렇다. 추적자를 막아선 인영은 다름 아닌 당인이었다.
“울어요……. 추적자와 겨루면서 그가 우네요.”
인형처럼 눈물을 주룩주룩 흘리면서 제갈청청이 말을 이었다.
“그는, 그는…….”
슬픔에 몸부림치던 제갈청청이 양손으로 머리를 감싸 쥐었다.
“아아악!”
퍼뜩!
제갈청청과 교감이 끊긴 당찬일이 침상에서 벌떡 일어섰다.
“제갈 여협! 정신 차려요!”
“아아…….”
제갈청청의 얼굴은 온통 눈물로 범벅이었다.
힘없이 늘어졌던 제갈청청이 곧 머리를 매만지면서 억지로 웃었다.
“난 괜찮아요. 아픈 사람 앞에서 이 무슨 추태인지.”
제갈청청이 정신을 가다듬자 당찬일은 그녀가 보았던 장면에 관해서 이야기를 나누었다.
“정말로 내가 본 광경들이 당 공자에게도 전달되었다는 건가요?”
“그래요.”
“혹시?”
“그 혹시가 맞을 겁니다. 나나 제갈 여협이나 잠깐 동안 구슬의 지배를 받았기에 서로 공명하는 모양이에요.”
“서로 공명하는 건가요…….”
제갈청청이 말꼬리를 흐렸지만 당찬일은 그녀의 심리 상태를 돌아볼 계제가 아니었다.
“아무리 나한테도 제갈 여협의 시야가 전해졌다지만 당사자만은 못할 거예요. 제갈 여협께서 본 것을 조금 더 소상히 설명해 주세요.”
당찬일의 부탁에 제갈청청이 눈동자를 위로 올렸다.
“그러니까…….”
제갈청청이 천천히 입을 열었다.
“추적자를 막아선 사람이 하도 서럽게 울어서 그만…….”
제갈청청의 말이 끝나자 당찬일이 숨을 내쉬었다.
“그분은 내 부친이에요.”
“그렇다면 역시!”
“또한 강보에 싸인 아이는 나일 확률이 높지요.”
“하면 아이를 안고 전력으로 내달리는 사람은 누굴까요?”
순간 당찬일이 숨을 들이켰다.
그가 누구인지 짐작이 갔으니까.
그는 이미 죽어 버린 유평월. 전생의 자신일 테니까. 전생의 자신이 어째서 현생의 자신을 안고 도주하는지는 알 길이 없지만.
당찬일의 안색이 무겁게 젖어 들자 제갈청청이 어렵사리 물었다.
“춘부장(椿府丈)께서는 그런 말씀을 안 하시던가요?”
전혀.
당인은 지금까지 이런 이야기를 한 번도 입에 올린 적이 없었다.
뭐 좋은 일이라고 말할까.
그리고 이건 어디까지나 추측인데 당찬일의 모친은 이 일로 목숨을 잃었을 확률이 높다. 아울러 전생의 자신, 다시 말해서 유평월도.
즉, 유평월의 마지막 임무는 누군가를 암살하는 것이 아니라 누군가를 보호하는 것이었나 보다.
그런데 어째서 마지막 임무에 관한 기억이 뇌리에서 모조리 삭제되었을까?
또한 유평월과 여인을 쫓던 눈이 없는 사내는 누구일까?
모든 것이 의문투성이다.
당찬일이 자신의 가슴을 지그시 눌렀다.
‘이 녀석의 출생에 이런 비밀이 숨겨져 있었는지는 미처 몰랐다.’
워낙 당찬일의 안색이 어두워서 제갈청청이 아무런 말도 꺼내지 못했다. 그녀가 당찬일의 눈치를 살필 이유는 전혀 없는데 말이다.
한동안 당찬일의 곁에 앉아 있던 제갈청청이 곧 일어섰다.
“오늘의 일은 비밀에 붙일 테니 걱정하지 말아요.”
오른손을 불끈 쥐며 제갈청청이 당찬일을 안심시켰다.
누군가 말했다.
슬픔을 나누면 약점이 되고, 기쁨을 나누면 질투가 된다고.
제갈청청의 다짐은 인간의 잔인한 속성을 꿰뚫어 보는 것이라서 당찬일이 희미하게 웃었다.
잘 컸다.
아직은 많은 나이가 아닌데도 불구하고 사람들의 미묘한 심리를 정확히 통찰하고 있다.
‘그래, 이 정도는 되어야 제갈세가의 장녀라고 할 수 있지.’
당찬일이 고개를 끄덕이자 무슨 생각을 하는지 잠시 주저하던 제갈청청이 입술을 깨물었다.
“아버지께도요.”
제갈진수에게도? 그건 쉽지 않을 텐데.
하지만 제갈청청의 어조는 확신을 담은지라 당찬일이 고개를 끄덕이는 것으로 감사의 표시를 대신했다.
“그럼 보중하세요.”
짧은 인사를 남기고 제갈청청이 사라졌다.
그녀가 방을 비우자 홀로 남은 당찬일이 천천히 일어나서 다시 침상에 궁둥이를 붙였다.
“비밀을 나누면 결국 서로에게 부담이 되는 것을.”
하지만 지금 당장은 자신의 비밀이 제갈진수에게 알려지지 않는 편이 낫다.
“이제 더 올 사람은 없는 건가?”
숨 가빴던 하루는 그렇게 마무리되었다.
* * *
사흘 뒤, 올 때와 마찬가지로 제갈세가의 마차는 낙산 사태와 제갈외 조손, 남궁천과 당찬일을 싣고 청성파를 떠났다.
현월 도장은 당찬일에게 며칠 더 묵으면서 정양하라고 권했지만 귀가가 너무 늦으면 부친께서 걱정하실 거라는 답변에 더는 잡지 못했다.
“그럼 어쩔 도리가 없지요. 다만…….”
“청성에서 벌어진 사옥정에 관한 일은 되도록 비밀에 붙일 것을 약속드려요.”
당찬일이 고개를 돌려 누군가를 응시했다.
“제 걱정보다 옥군 사부님의 입을 단속하시는 편이 나을 겁니다.”
옥군은 웃었다. 매우 어설프게.
당찬일 들을 실은 마차가 뉘엿뉘엿 떠나가자 그 광경을 한참 동안 지켜보던 현월 도장이 몸을 돌렸다.
“이제 갔구나, 현암아.”
“예. 사형.”
옥군의 정체는 현월 도장의 사제인 현암이었다. 그는 청성파의 촉망받는 도인이었지만 모종의 이유로 스스로 산문을 떠났다.
그렇게 도복을 벗은 현암은 옥군이란 속인으로 살았지만 마음만큼은 여전히 청성을 향했기에 그는 지금까지 청성파의 손발로 지냈다.
“흠.”
마차가 하나의 점이 되었다가 완전히 사라지고도 자리를 뜨지 못하던 현월 도장이 문득 품을 뒤져 거무튀튀한 구슬을 꺼냈다.
처음 공개되었던 그대로 거무죽죽한 구슬.
하지만 자세히 살펴본다면 구슬을 감싸던 미묘한 기운이 사라졌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현월 도장의 손바닥 위에 놓인 구슬을 물끄러미 응시하던 옥군이 나지막이 침음했다.
“정말로 찬일이가 사옥정에 남아 있던 마지막 사기를 빨아들였을까요?”
“그야 모르지.”
눈을 들어 하늘가를 바라보던 현월 도장이 고개를 저었다.
“이것의 사기는 보통 사람이 감당할 수 없다. 하물며 불문이나 우리 도문의 깨달음이 없다면 요사스러운 기운을 감당하기란 난망하지.”
“그런데 찬일이는 멀쩡하군요.”
“맞다.”
몸을 돌린 현월 도장이 옥군을 정면으로 바라보았다.
“당 도우의 몸으로 사기가 빨려 들어갔는지, 공중으로 산화했는지 알 길이 없구나.”
“찬일이의 기를 살폈지만 마기나 사기를 감지할 순 없었습니다.”
제갈청청보다 앞서서 숨어들어 당찬일의 몸을 주물렀던 정체불명의 침입자는 옥군이었다.
“그렇다면 정말로 사기가 자연스레 증발한 것일까?”
“사형의 말씀처럼 사옥정의 사기를 맨몸으로 받아 낼 속인(俗人)은 절대로 존재하지 않으니 그렇겠지요.”
절대로라는 말에 방점을 찍으면서 옥군이 답하자 현월 도장도 동의했다.
“그래…….”
옥군의 말처럼 사옥정으로 추정되는 물건의 사기는 상상 이상이라서 불문의 숭고한 가르침이나 도문의 청정한 깨달음으로도 감당하기 어렵다.
하물며 속인이라면?
뭔가 석연치 않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숙인 현월 도장이 옥군에게 물었다.
“이제부터 어쩔 것이냐?”
현월 도장의 질문을 받은 옥군이 고개를 끄덕였다.
“당문에 들러서 그녀에게 용서를 구하고 곧바로 떠나려고요.”
옥군이 사천 쪽으로 시선을 이동시켰다.
“그들이 기다리고 있거든요.”
“그래.”
옥군을 기다리는 이들이 누구인지 너무나 잘 알기에 현월 도장이 묵직한 숨을 토했다.
“현암아.”
“예, 사형.”
“나는 네가 옥군으로서의 삶을 걷는다고 해도 탓하지 않을 것이다. 아니…….”
형형한 눈으로 옥군을 바라보던 현월 도장이 눈을 감았다.
“옥군으로 살기를 바란다.”
조금 전에 현월 도장이 그랬던 것처럼 옥군이 하늘가를 우러렀다.
“언젠가 사형께서 그러셨지요. 저는 유난히 속취(俗臭)가 강해서 도인으로 살기 힘들 거라고.”
그런 적이 있었던가?
“당시 제가 사형께 말씀드렸지요. 이번 일을 마무리 짓는다면 도복을 벗겠노라고.”
“맞다. 그리고 나는 기꺼이 허락하겠다고 말했지.”
그리고 십육 년이 흘렀다.
“이번에도 같은 말씀을 드려야겠네요.”
빙글 몸을 돌린 옥군이 현월 도장에게 정중히 포권했다.
“청성의 현암, 이번 일을 마무리 지으면 속인이 되려고 합니다. 부디 파문을 허락해 주십시오.”
옥군의 청을 들은 현월 도장이 몸을 돌렸다.
“일부터 마무리 짓자꾸나.”
무심한 듯 냉정한 현월 도장의 얼굴에도, 과장된 엄숙함을 연출하는 옥군의 표정에도, 따뜻하고 촉촉한 마음이 깃들어 있었다.
굳은 듯 자리하던 둘이었는데 먼저 움직인 사람은 옥군이었다.
“그럼 소제(小弟)는 떠나겠습니다.”
천천히 몸을 돌리면서 옥군이 장난스러운 한마디를 남겼다.
“다음번부터는 멍청한 아우는 없을 겁니다, 현월 장문.”
여전히 옥군을 바라보지 않으면서 현월 도장이 나지막이 중얼거렸다.
“그러시든가.”
피식.
현월 도장의 답변을 들은 옥군이 둥실 떠서 사라졌다.
그마저 자리를 비우자 천사동에는 현월 도장 혼자서 고고히 청성을 굽어보았다.
착잡한 얼굴로 청상과 청상 주변의 산하를 살피던 현월 도장이 탄식하듯 입을 열었다.
“켜켜이 쌓였던 세월의 퇴적물이 흐르는가.”
옥군이 사라진 방향을 눈으로 훑던 현월 도장이 뜻밖의 말을 입에 올렸다.
“백마련이란 퇴적물이.”
* * *
“사신이 왔다 갔어요.”
요깃거리를 사려고 제갈외 조손과 남궁천이 자리를 비워서 낙산 사태와 단둘이 남게 되자 당찬일이 그녀에게 처음 꺼낸 말은 이것이었다.
“방등일의 모든 일정을 마치고 객방에서 쉬려는 저를 찾아왔지요.”
당찬일이 낙산 사태를 응시하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사신이 제게 어떤 말을 했을까요?”
“그걸 빈니가 어찌…….”
낙산 사태가 잡아떼자 당찬일이 단도직입적으로 이야기를 꺼냈다.
“청성파에서 보았던 사옥정일지도 모르는 물건.”
당찬일의 눈이 가늘어졌다.
“일 년 전에는 아미에서 보관했었지요?”
당찬일의 흔들림 없는 눈을 마주하던 낙산 사태가 곧 희미한 미소를 지었다.
“왜 그렇게 생각하시오?”
낙산 사태를 직시하던 당찬일이 고개를 돌려 뉘엿뉘엿 저무는 태양을 바라보았다.
“아미파에서 그와 마주쳤었거든요.”
“그라면……?”
낙산 사태가 묻자 당찬일이 모호한 대답을 내놨다.
“예전에 사옥정과 연관이 있었고, 지금도 사옥정과 연관이 있지만 이전과는 다른 위치에 있는 사람.”
낙산 사태를 빤히 응시하던 당찬일의 얼굴에 신비로운 미소가 떠올랐다.
“……이랄까요?”
예전에 사옥정과 연관이 있었고, 지금도 사옥정과 연관이 있지만 이전과는 다른 위치에 있는 사람이라니.
이건 대체 무슨 소리일까?
낙산 사태가 뜨악한 표정을 지었지만 당찬일은 제 할 말을 고집했다.
“현재는 황실의 일을 하는 모양이더군요. 하지만 그가 무엇을 하는지는 중요하지 않아요.”
당찬일이 몸을 돌렸다.
“그가 사신과 지인이라는 사실이 핵심이니까요.”
잠시 당찬일을 응시하던 낙산 사태가 천천히 걸음을 옮겨서 평평한 돌이 앉았다.
“그렇구려.”
죽장에 양팔을 올린 낙산 사태가 힘없이 웃었다.
“현월 장문의 설명을 듣고 추리했나 보구려. 맞아요. 그 물건은 일 년 전에 우리 아미파가 보관했었지.”
“그걸 사신이 찾으러 왔던 건가요?”
당찬일이 넘겨짚었지만 이번만큼은 완전히 틀렸다.
“본인 손으로 가져다주었는데 본인이 또 가지러 왔을 리가. 돌려달라고 하면 돌려줄 수밖에 없는 것을.”
쿵!
“그럼……?”
낙산 사태의 얼굴에 착잡한 기운이 어렸다.
“우리가 보았던 구슬은 려군이가 가져다준 것이라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