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angmun reincarnation RAW novel - Chapter 154
당문전생 (153)
제게 맡기세요
촤촤촤촤―.
갈대숲을 스치듯 지나가던 인영이 자신을 막아서는 군상들을 피해서 쏜살같이 내달렸다.
팍!
인영을 막아섰던 군상들이 약속이나 한 것처럼 일제히 퍼지며 포위망을 구축했다.
촤아악!
인영이 기기묘묘한 수법으로 막 형성되는 포위망의 빈틈을 노리자 군상들이 신속하게 움직였다.
사실 인영과 군상들은 벌써 나흘 동안이나 쫓고, 쫓기는 신세였다.
그동안 군상들은 무려 스물일곱 차례나 천라지망을 폈고, 인영은 불가사의한 몸놀림으로 군상들의 그물에서 벗어나길 반복했다.
천라지망(天羅地網).
풀자면 하늘의 그물과 땅의 그물이라는 뜻이니 아무리 발버둥 쳐도 벗어날 수 없는 경계망이나 피할 길이 없는 포위망이란 소리다.
그런 견지에서 군상들이 펼치는 연합 공격은 훌륭한 천라지망이었지만 인영은 어떻게 해서든 그들의 포위망을 벗어났다.
촤촤촤촤―.
다시금 넓게 퍼지는 군상들의 진형.
하지만 인영은 허공에서 군상들의 움직임을 내려다보듯 그들의 약한 지점을 골라서 치달았다.
번쩍!
인영이 날다람쥐처럼 움직이는 것을 먼발치에서 주시하던 군상의 지휘자가 돌연 오른손을 쳐들었다.
번쩍!
검지를 치켜 올렸던 지휘자가 곧 새끼손가락을 아래로 내렸다.
―멸(滅).
쿵!
지난 나흘 동안 군상들이 천라지망을 펼친 이유는 인영을 생포하기 위함이었다. 만약 인영을 죽이려고 마음먹었더라면 힘들게 이런 포위망을 구축할 필요도 없었다.
그러나 인영이 워낙 신출귀몰했기에 결국 지휘자가 결단을 내렸다.
여기서 조금만 더 가면 성도부로 진입하게 된다.
성도부처럼 번화한 곳에서는 자신들의 행동에 커다란 제약이 걸리므로 인영을 잡기란 난망해질 터.
그럴 바에야 차라리 인영의 목숨을 취하는 편이 낫다.
우우웅.
지휘자의 명이 떨어지자 군상들의 동작이 달라졌다.
살기!
지금까지 군상들의 움직임은 조심스러웠다. 과격한 행동을 지양하고 인영을 적당히 압박하는 수준에서 이루어졌지만 이제는 아니었다.
처처척!
마치 군대의 그것처럼 군상들은 절도 있는 동작으로 포위망을 압축시키기 시작했다.
인간을 가위로 삼아서 면적을 가로로 자르고, 세로로 자르고, 다시 가로로 자르고, 세로로 자르고.
공간을 사람으로 재단하는 군상들의 움직임은 일사분란했다.
군상들의 판이한 움직임을 감지했을까. 아니면 자신에게 위기가 닥친다는 걸 알아차렸을까.
인영의 눈빛도 달라졌다.
‘드디어 본격적으로 해보자는 거지?’
위험한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인영의 표정은 어둡지만은 않았다. 천성이 낙천적인지는 몰라도 인영의 입가에서 실과도 같은 미소까지 엿보인 것은 착각만이 아닐 터.
‘그럼 나도 예의를 차릴 계제가 아니라는 거지.’
인영이 허리춤에 매달린 칼을 만지작거렸다.
가급적이면 물리적인 충돌을 최대한 피하고 싶었지만 그건 자신만의 바람이었나 보다.
‘그렇다면…….’
포위망을 눈으로 훑던 인영의 눈이 반짝 빛났다.
‘북북서.’
북북서란 북쪽과 북서쪽의 가운데를 의미한다.
군상들이 펼친 천라지망의 허점을 한 번 본 것만으로 파악한다는 건 인영의 관찰력이 남다르다는 뜻이다.
파악!
방향을 정한 인영이 북북서로 내달리자 군상들의 포위망이 말미잘처럼 출렁거리며 그를 압박했다.
사사삭!
우선 세 명의 무인.
세 사람의 도수(刀手)가 막아서자 인영이 칼을 수평으로 내리면서 그들에게 육박했다.
서서석.
초식이고 뭐고 없었다.
인영의 칼이 번뜩이자 세 사람의 칼잡이들은 칼집에서 칼을 빼 보지도 못한 채로 쓰러졌다.
단순한 칼질로 세 명을 항거 불능의 상태로 만든 인영이 계속해서 직진했다.
슈슈슉.
숨 쉴 틈도 주지 않고 십여 발의 화살이 날아들자 앞으로 나아가던 인영이 돌연 방향을 뚝 꺾었다.
인간의 움직임이라고는 도저히 믿을 수 없는 방향 전환.
그렇게 진로를 틀어 버린 인영이 북서쪽으로 내달리자 이번에는 그의 앞으로 다섯 개의 쇄물도구(鎖物道具)가 날아들었다.
낫부터 작은 칼 그리고 철추(鐵鎚)까지.
종류는 다양했지만 이들 모두는 쇠사슬을 매달린 형태였다.
‘동영의 무기로군.’
쇄물도구를 이용해서 살상을 저지르는 집단은 동영의 무사들이다. 이로 미루어 자신을 추적하는 집단은 동영의 무사를 고용했거나, 그들의 기술을 전수받았음이 분명하다.
‘고약하게 되었어.’
인영이 짧은 탄식을 토했다.
쇄물도구는 온갖 무기를 사용하는 동영에서도 매우 독특한 위치를 차지한다. 한마디로 쇄물도구를 다루는 자들은 비장의 일격과도 같은 존재들일 터.
자신을 쫓는 집단이 이들을 동원했다는 건 필살의 의지를 드러냈다는 뜻이다.
쾅!
이번 공격은 만만치 않은 것이라 인영도 쇄물도구를 피하면서 하나의 무기에 뺨을 긁혀야만 했다.
피싯!
쇄겸(鎖鎌)이 볼을 스치고 지나가자 피가 주르륵 흘러내렸지만 닦을 시간이 없었기에 인영이 납작 몸을 엎드렸다.
여기서 공격을 피한다고 공중으로 도약한다면 스스로 과녁이 되는 것이라 몸을 낮춘 인영이 숨을 골랐다.
‘전부 다 동원되었다는 건가.’
인영을 추적하는 집단은 무림에서 알아주는 청부 단체다. 비록 이들이 암살에 특화된 집단은 아니지만 작정하고 달려들자 매우 효과적으로 인영을 압박했다.
‘후우.’
호흡을 정돈한 인영이 문득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빌어먹을 정도로 푸른 하늘.
겨울을 이겨 내고 찬연한 모습을 드러내는 봄의 하늘은 시리도록 푸른 법이다. 하지만 오늘처럼 높고 푸른 봄날의 하늘은 본 적이 없었다.
이런 날이라면 그녀와 손잡고 산이며 들로 나들이를 가면 제격일 텐데.
‘보기만 해도 섬뜩한 병장기들과 연애라니.’
툴툴 웃으며 인영이 고개를 들었다.
촤라락!
다시금 날아드는 쇄물도구들!
이번에는 무려 일곱 개의 병장기가 쏟아졌다.
‘다음번엔 아홉인가?’
아니.
인영이 일곱 개를 피하자 기다렸다는 듯 열다섯 개의 무기가 날아들었다.
젠장이다.
이토록 아름다운 날에 이런 무식한 자들과 놀아야 한다니.
사실 인영은 낭만적인 사람이다. 무림에서 소문난 사랑꾼이 바로 인영이란 말이다.
그런 자신인데 이런 날에 이 무슨 짓인가.
‘할 수 없지.’
지금까지는 살수(殺手)를 쓰지 않았다.
다시 말하지만 인영은 낭만적인 사람이라서 분쟁이 발생해도 되도록 말로 해결하려 노력했다.
그 결과 입만 살아서 물에 빠트리면 물고기랑 수다나 떨 거라는 평가를 받았지만 어쨌든 인영의 입담은 나름 유명했다.
하지만 지금은 안 되겠다.
언어는 소통하려는 의지가 조금이라도 있는 상대에게 통하는 의사 전달 수단이다. 죽자고 달려드는 상대에게는 그에 맞는 방법이 필요하다.
바로 무력이라는.
파악!
결심을 굳힌 인영이 전면으로 쏘아지자 꿈틀거리던 군상들의 포위망이 크게 요동쳤다.
“헉, 헉…….”
스물인가, 서른인가.
베어 넘긴 적의 수를 헤아리지 못하겠지만 아무튼 많은 군상들을 처리한 인영이 거칠게 숨을 몰아쉬었다.
물론 그 와중에 인영도 크고 작은 상처를 입어서 전신은 피 칠갑이었다.
조금 전까지는 맵시 있는 차림새를 자랑해서 흡사 산수 유람이라도 나온 유생처럼 보였는데 이제는 봉두난발의 야차가 따로 없었다.
문제는 공력의 고갈과 하체의 부상.
상체와 왼팔의 부상은 견딜 만하다. 어차피 검은 오른손으로 쓰고, 상반신의 상처는 치명적이지 않아서 고통을 감내하면 그만이다.
하지만 다리는 다르다.
모든 무학의 기본은 발놀림이거늘 오른발을 쇄겸자가 반쯤 관통한 탓에 치유하기 어려운 상처가 생겨서 인영이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지혈이라도 하면 그나마 나을 텐데.’
이대로 계속 출혈을 일으킨다면 얼마 지나지 않아서 버티지 못할 거다.
결정적으로 내공이 바닥났다.
장기간 전투를 치르다 보니 인영의 내력은 거의 소진되어 당장에라도 진기를 일주천하지 않는다면 원정내단마저 손상될지도 모른다.
이대로 원정내단이 다친다면 무인으로서의 삶도 영원히 끝남은 물론 당장의 목숨마저 위태로울 것이다.
‘업보다.’
포위망을 죄어 오는 군상들을 보며 인영이 쓰게 웃었다.
저들을 이용하고 내친 쪽은 자신이다. 그렇기에 저들의 분노는 정당하다고 할 수 있다.
물론 자신은 무림의 안녕에 입각해서 저들을 이용했다. 하지만 저들은 손익이 철저한 집단이라서 그런 추상적인 관념을 이해할 리가 없다.
저들은 당장 무림이 멸망하더라도 주판알을 튕길 존재들이니까.
인영이 입을 벌리는데 숨 돌릴 사이도 없이 군상들의 공격이 이어졌다.
파라락.
세 개의 쇄겸과 철추가 날아들자 인영이 이를 악물고 자리에서 벗어났다.
처처척!
그의 전면을 막아서는 네 명의 창수(槍手)들.
창은 모든 근거리 무기 가운데서 최장의 사거리를 지닌 병기다. 하여 가장 많이 쓰이지만 가장 다루기 힘들다는 양면성을 지닌 병장기다.
쿡! 쿡!
창의 기본기는 뭐니 뭐니 해도 찌르기다.
네 개의 창이 전방에서 압박해 들어오자 인영이 몸을 살짝 띄웠다.
전방에서 찔러 들어오는 창의 높이가 자신의 허리춤이라서 그보다 반 치 정도만 떠올라서 창수들의 공격을 피할 요량이었다.
하지만 창수들은 네 명만이 아니었다.
인영에게 창을 내지른 네 명이 팔을 쭉 뻗은 상태에서 허리를 굽히자 그들의 등을 타 넘으며 또 다른 네 명의 창수가 달려들었다.
‘이런.’
절묘한 연수합격.
선제공격을 감행한 창수들은 처음부터 인영이 공중으로 몸을 띄울 것이라고 예상했다. 하여 그들은 창을 내지르는 시늉만 하고 몸을 굽혀 후발대에게 자리를 내주었다.
제아무리 뛰어난 신법을 지닌 이라도 허공에서 몸을 가누기란 지상에서보다 몇 배 더 난감하다.
인영도 마찬가지라서 후발대의 습격에 당황했다.
그래서 인영은 방향을 전환하여 공격을 피하기보다 정면으로 맞서기를 택했다.
인영에겐 그만한 힘과 무학이 있었으니까.
‘절체절명의 순간이 아니라면 봉인하려 했거늘.’
인영이 칼을 빙글 돌리며 결심했다.
‘부득불 살계를 여는구나.’
슈각!
인영의 손에서 검이 발출되자 허공으로 기이한 섬광이 피어났다.
따당!
검과 창이 부딪치자 인영의 막강한 검세에 창수들이 일순간 뒤로 물러섰다.
그 순간 인영의 검이 기이한 각도로 틀어졌다.
“일조향로(日照香爐).”
촤아앙!
인영의 검이 향로봉을 굽어보는 태양처럼 창수들에게 떨어져 내렸다.
“이익!”
너무나 막강하다.
인영의 검에서 지금까지와는 비교를 거부하는 검세가 폭사되었기에 당황한 창수들이 창을 짧게 잡고 공격을 대비했다.
하지만 인영의 손에선 이미 일조향로에 이은 두 번째 절초가 펼쳐지고 있었다.
무겁기에 패도적이고, 쾌속하기에 위협적인 만부막적의 검초를.
“비류직하(飛流直下)!”
쿠르릉!
힘차게 날아올랐다 곧바로 떨어지는 폭포수처럼 인영의 검이 굽이치듯 몰아쳤다.
따다당!
“크흑!”
“컥!”
일수에 네 개의 창을 분쇄한 인영의 검이 허공에서 유려한 곡선을 그리면서 무시무시한 마무리를 예고했다.
“의시은하(疑是銀河).”
쫘아악!
인영의 입에서 장중한 외침이 터져 나오자 구천(九天)이 열리며 은하수가 드러나듯 어마어마한 위력의 검세가 파생되었다.
“역시…….”
군상들의 지휘자가 어금니를 깨물었다.
“힘을 숨기고 있었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