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angmun reincarnation RAW novel - Chapter 156
당문전생 (155)
전우(戰友)
구명지은을 베푼 상대에게 감사는 못 할지언정 이런 투박한 질문이라니.
옥군의 질문엔 번들거리는 칼날이 껴 있어서 허투루 답변했다간 즉시 두 쪽으로 베어질 것만 같았다.
“또…….”
옥군이 평소의 유들유들한 기색을 얼굴에서 지웠다.
“내가 이곳에 있다는 걸 어찌 알았지?”
“알려 주시니 알았지요.”
이게 무슨 말일까. 알려 주니까 알았다니?
“옥군 사부에게선 무척이나 독특한 빛이 흘러나온단 말이지요.”
“내게서 빛이? 어디에?”
옥군이 자신을 마구 돌아보다 손이며 발 그리고 고개까지 젖혔다.
없다. 자신의 몸엔 먹이나 기타 물감이 묻은 흔적을 발견할 수 없었기에 옥군이 눈살을 찌푸렸다.
“말장난하지 말고.”
“사실입니다.”
당찬일이 옥군을 직시하자 파계 도사의 안색이 굳어졌다.
거짓말이 아니다. 이 소년은 진실을 이야기하고 있다는 걸 눈으로 말하는 중이다. 하지만 언제 당찬일이 자신에게 물감을 묻혔다는 말인가?
“저는 묻힌 적이 없지요.”
“그럼?”
“사부께서 손수 묻히지 않았습니까?”
“내가 직접…… 아!”
옥군은 청성에서 병상에 누운 당찬일의 몸을 더듬었다. 행여라도 사옥정으로 추정되는 물건을 갈무리하지 않고 있나 해서.
“설마 그때?”
끄덕끄덕.
당찬일이 무겁게 고개를 끄덕였다.
“넌 그럼 내가 방문하리라 예상했던 거니?”
또다시 끄덕끄덕.
“무슨 근거로 그리 생각했다는 것이냐?”
옥군이 묵직한 질문을 던졌지만 당찬일은 얼른 대답하지 않았다.
찌익.
품에서 꺼낸 건포를 잘근잘근 씹으면서 당찬일이 입을 열었다.
“당문에 잠입할 때는 옥군. 청성에서는 파문을 가장한 현 자 돌림의 일대 제자.”
꿀꺽!
건포를 씹어 넘긴 당찬일이 전면을 응시하며 중얼거렸다.
“당문에선 복지부동하면서 사옥정을 찾아 헤매는 한편, 대가주님이 사주한 백일야의 구성원들을 모조리 죽여 살인멸구하는 치밀함.”
고개를 돌려서 옥군을 응시하며 당찬일이 잘라 말했다.
“옥군 사부는 이중 간자였지요?”
쿵!
본래 그는 청성의 현암이었지만 파문을 가장해서 무림을 떠돌며 옥군이란 신분을 획득했다.
그리고 그는 옥군이란 별호를 이용해서 당문의 특사 자격을 얻음과 동시에 당과로의 밀명을 받는 이중적인 위치를 무려 십 년 이상 고수했다.
“사옥정 때문에 십 년 동안이나 우리 당문에서 암약한 분이니 그것과 잠시나마 하나가 되었던 저를 남몰래 찾아오리란 건 당연하잖아요?”
옥군이 헛웃음을 지었다.
“제법 추리력이 좋구나. 그래, 너의 몸을 더듬다 내게 미세한 물감이 묻었다 치자. 그것을 너는 어찌 알아보았다는 것이냐?”
불가에서 말하는 육신통 가운데 천안통을 터득했다 치더라도 사람의 몸은 생각보다 작은지라 수풀이나 나무에 가려지면 절대로 볼 수 없다.
“아무리 안력이 뛰어난 이라도 반경 삼십 장 이내의 물건을 가려내는 것이 고작이다. 거기다 나는 끊임없이 움직였기에 삼십 장을 상회하는 안력를 지닌 이라도 내게 묻은 물감을 볼 수 없었을 거야.”
옥군의 단언은 당찬일의 한마디에 보기 좋게 깨졌다.
“지상이라면 그렇겠지요.”
“뭐?”
“옥군 사부께서 말씀하시는 반경 삼십 장엔 하늘이 포함되지 않습니다.”
“설마!”
“지상에서 백 장 위로 저의 세 번째 눈이 모든 걸 감시한다는 사실을 옥군 사부는 모르셨을 거예요.”
하늘에 조력자가 있었다고?
끼루룩.
어디선가 하얀색의 거대한 새가 내려와 당찬일과 옥군의 머리 위를 맴돌았다.
“거기다 저 녀석은 상상을 초월하는 안력을 지녔거든요.”
척 보기에도 새는 매과의 영물이었다.
일반적으로 매는 인간보다 시력이 여덟 배를 상회한다고 했으니 그보다 뛰어난 영조의 안력은 사람의 열 배 이상일 터.
인간의 열 배가 넘는 시력으로 하늘에서 모든 것을 관찰했으니 당찬일이 미세한 흔적을 묻힌 자신을 너무도 수월하게 찾았던 거다.
그렇다면 모든 것이 설명된다.
당찬일이 가릉강변에서 백일야가 쳐 둔 천라지망을 손바닥처럼 들여다보았던 것도, 그래서 적재적소에 독과 암기로 그들을 무력화시킨 것도.
저 영조가 하늘에서 당찬일에게 지상의 상황을 부처님의 손바닥처럼 알려준 덕이었던 거다.
둔기로 머리를 거세게 두들겨 맞은 듯한 충격을 받아서 옥군이 진심에서 우러나오는 감탄성을 내질렀다.
“너 정말로…….”
하는 양이 영락없이 비천대로구나!
입으로 토하진 않았다.
사실 비천대에 관해서는 대략적으로는 들었을 뿐, 직접 대하거나 만나 본 적이 없기에 그들에 대해서 이러쿵저러쿵 논하는 건 실례다.
그래도 당찬일이란 소년이 당문의 일반적인 아이들과는 확연하게 다르다는 것만큼은 사실이다.
“그랬군. 그랬어.”
모든 것을 납득한 옥군이 고개를 끄덕이자 당찬일이 이중 간자라는 추측에 이어 또 하나의 돌발적인 문제를 제기했다.
“아마도 옥군 사부님은 검군 대협과 함께 우리 당문의 몇 안 되는 특사였을 거예요.”
당찬일의 예측을 들은 옥군이 별다른 대응을 내놓지 않았다.
무언은 곧 긍정.
“여기서 두 가지의 의문이 들어요.”
“그게 무엇이냐?”
언어로 이루어지는 모든 행위를 즐긴다는 옥군답게 그는 당찬일의 추리를 즐기는 눈치였다.
“첫 번째로는 옥군 사부께서 무슨 재주로 특사 자격을 획득했느냐는 것이지요.”
당찬일이 옥군을 의도적으로 외면했다.
“검군 이서악 대협이라면 몰라도 옥군이란 이름값으로는 대가주님께서 특사의 자격을 부여하진 않았을 테니까요.”
사실 이 말은 옥군으로서는 자존심이 상할 법한 이야기였다.
검군 이서악은 무림사군자라는 이름값으로 특사가 되었지만 옥군이란 별호는 그에 비하면 한참 못 미친다는 뜻이니까.
사람은 타인과 비교당하면 모멸감을 느낀다. 비교 대상이 제아무리 잘난 사람이라도 말이다.
그러나 옥군은 당찬일의 말을 무심히 넘겼다.
설마 배알도 없는 걸까?
옥군의 무덤덤한 반응을 유심히 지켜보던 당찬일이 두 번째 의문을 제기했다.
“옥군 사부께선 어떤 경로로든 대가주님이 백일야를 사주해서 청성파에 모종의 작업을 걸었다는 사실을 알아냈을 거예요.”
그래서 청성파에 구금된 백일야의 요원들을 상잔 형태로 몰살시켰을 것이다.
“이 점을 저는 이해할 수 없다는 거지요.”
당찬일이 주먹을 쥐었다.
“대가주님이 직접적으로 언질하지 않았더라도 옥군 사부께선 그분의 주변 사람에게서 정보를 얻어 냈을 겁니다. 또, 정보를 흘린 사람도 옥군 사부가 대가주님의 총애를 받으니까 무심결에 흘리지 않았을까 해요.”
“글쎄.”
애매모호한 미소를 짓는 옥군을 곁눈질한 당찬일이 곧 탄식했다.
“조금이라도 이상하다 싶으면 본인의 자식까지 멀리하는 분인데,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은 옥군 사부를 곁에 두었다는 사실을 납득하기 어려워요.”
당찬일이 정말로 모르겠다는 표정을 짓자 옥군의 안색이 딱딱하게 굳었다.
말인즉슨 물음이지만 질문 속에 결론이 드러나 있어서 자신에겐 해명 이외에 어떠한 선택권도 주어지지 않았다.
이건 대화를 가장한 심문이다.
또한 이런 심문법을 통상적으로 강호인은 알지 못한다. 무림인들은 알 이유도 없고, 숙지할 필요도 없다.
이런 심문법은 특수한 업무를 맡는 이들이나 터득한다.
역시…….
‘이 녀석은 비천대의 행동 양식과 너무도 일치하는 방식을 택하고 있어.’
모든 면에서.
생각을 정리하는 옥군을 보며 당찬일이 희미한 미소를 머금었다.
그가 어떤 마음을 품고 있는지 훤히 짐작했으니까.
하지만 속내를 내색하지 않고 당찬일이 계속해서 옥군에게 물었다.
“옥군 사부님의 어떤 면이 대가주님께서 쳐 놓은 의심의 철벽을 녹였을까요?”
“그 질문에 내가 왜 대답해야 하지?”
옥군의 물음에 당찬일이 어깨를 살짝 들어 올렸다가 내렸다.
옳은 지적이다.
목숨 한번 구해 줬다고 상대방의 모든 비밀을 캐내려고 든다는 건 어불성설이다.
특히나 무림이란 대지에서는 목숨보다 명예나 비밀을 중시하는 사람들이 부지기수다. 이런 이들은 차라리 혀를 깨물고 죽을지언정 위의 두 가지를 포기하지 않는다.
“대답하지 않으셔도 상관은 없어요. 어차피 저의 두 번째 의문도 풀어 주지 않으실 테니까요.”
“두 번째라. 그건 또 무엇이냐?”
옥군의 눈동자가 심유하게 빛났다.
“만약 너의 두 번째 궁금증이 나의 호기심을 자극한다면…….”
길게 말을 늘이던 옥군이 뜻밖의 이야기를 뱉었다.
“너의 의문을 풀어 줄지도 모르지.”
그런가요, 하며 당찬일이 고개를 돌렸다.
무인이면서도 무력보다 언어를 사랑하는 사내. 힘을 우선시하는 분쟁보다 대화를 위주로 하는 타협을 조금 더 선호하는 남자.
그것이 바로 옥군이었다.
“옥군 사부는 사옥정으로 추정되는 물건을 찾겠다는 일념 하나로 우리 당문에서 무려 십 년 이상을 숨죽이고 지냈어요.”
옥군이 별다른 대답을 내놓지 않자 당찬일은 계속해서 말을 이었다.
“십 년. 말이 좋아서 십 년이지, 십 년이란 세월은 불확실한 목표를 바라면서 보내기엔 너무 긴 시간이거든요.”
그래서 십 년이면 강산도 변한다는 말이 있다.
“하지만 옥군 사부는 그렇게 십 년을 보냈어요. 이 말은 옥군 사부께서 당문에 사옥정이 있으리라는 확신을 가졌다는 뜻이겠지요.”
잠시 숨을 들이켠 당찬일이 마지막 질문을 던졌다.
“사부께선 어떤 근거로 우리 당문에 사옥정이 있다는 확신을 품으셨지요?”
이때 옥군이 화제를 확 틀어 버렸다.
“네 부친이 몇 번째지?”
옥군의 뜬금없는 물음에 당찬일이 왼쪽 눈을 찌푸렸다.
이런 와중에 당문의 족보라도 살피자는 건가?
“다섯째입니다만?”
당인이 당과로의 다섯 번째 아들이란 사실을 모르는 이는 없다.
“무적패왕과 당문낭군은?”
“장자와 차남이지요.”
“당문군주는 여섯째니까 셋째와 넷째가 비지?”
“대가주님의 셋째는 태어나자마자 급사했다고 들었지요. 당시 피도 눈물도 없다던 대가주님께서 사흘 밤낮을 통곡하셨다더군요.”
당찬일이 길게 답하자 옥군이 눈으로 물었다.
―그럼 넷째는?
넷째는 당협이란 인물이었다.
본래 당문의 무인은 어느 정도 자라면 독이나 암기 가운데 하나를 선택해서 집중적으로 수련한다.
하지만 당협은 재능이 통상적인 관례를 과감하게 거부하고 독술과 암기술 모두를 섭렵했다.
독술과 암기술을 모두 익혔을 때 그의 나이가 채 스물도 안 되었으니 당협의 재질이 얼마나 탁월했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었다.
하여 당문의 모든 이들은 당협이야말로 당문 사상 최고의 인물이라고 평가받는 삼조 당거정의 뒤를 이을 인물이라며 그에게 아낌없는 성원을 보냈다.
그러나 당협은 이십 년 전에 벌어진 정마대전에서 명예로운 최후를 맞이했다.
훗날 제이차 무림혈겁으로 명명된 마교와 정도와 중도 연합의 혈전은 마교의 패퇴와 백리무극이라는 무신(武神)을 탄생시키며 종식되었다.
당협에 대해서 생각하던 당찬일의 눈이 커졌다.
“혹시?”
“너는 정말로 특이하구나. 당문 사람에게 당협이란 이름은 금기어이거늘, 어찌 그를 아는 눈치인 거지?”
당찬일이라면 몰랐겠지만 유평월이 당협이란 이름을 모를 수 없다. 유평월이 지옥 같은 비천대의 수련을 마치고 귀환했을 때, 당협은 당문의 자랑으로 우뚝 서 있었으니까.
잠시 당협을 떠올리던 당찬일이 고개를 돌렸다.
“옥군 사부께서 당협 숙부와 죽마고우일 줄은 미처 몰랐네요.”
“죽마고우라니.”
옥군이 고개를 저었다.
“나는 그와 소싯적엔 일면식도 없었다.”
옥군이 부정하자 당찬일도 곧바로 수긍했다.
옥군의 본래 신분은 청성파의 장문과 같은 항렬인 현 자 배분의 도인이다. 그러므로 옥군은 어릴 때부터 청성파에 입문했을 확률이 높다.
‘나이 어린 도인과 당문의 소년이 인연을 맺을 확률은 거의 없어.’
그렇다면?
“우린 전우(戰友)였다.”